489화
본시 조선을 매우 깔보는 경향이 있는 명나라 출신인 서계는 조선 왕실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그래서 그 방법의 일환으로 조선의 정강대군을 슬며시 거론했다.
“영상, 황궁으로 다시 들어가 정강대군이 지내시는 동궁을 돌아보시죠.”
“장관님, 정강대군께서 동궁에서 지내십니까?”
“그렇소. 아직 태자 마마께서 연치가 너무 어리셔서 동궁은 정강대군께서 지내고 있지요. 그러니 황성으로 오신 기회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알았소. 가보지요.”
그동안 봉황산성의 봉황사에서 어미인 민비와 같이 지내던 정강대군은 학업 때문에 동궁으로 옮기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후일 태자나 공주들의 교육을 위해 황궁 바로 옆에 황실학교를 건립해 두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만들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시키고 있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의 특수한 학교를 만들었다.
윤원형은 동궁으로 가서 정강대군을 만났다. 보지 못한 사이에 많이 자랐고 동궁에서 호사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빈비는 여전히 봉황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대군마마,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형님, 전하께서는 무탈하시고요?”
“그러하옵니다. 항상 마마를 걱정하고 있사옵니다.”
“너무 고마운 일이군요. 나야 여기서 폐하께서 많이 신경 써주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정강대군은 대군으로 태왕의 친 아들인 태자와 똑 같은 대우를 받았다. 불문에 들었다고 하지만 민비는 황실 내명부의 왕비와 같은 대우를 해주었다.
동궁에 딸린 시녀들도 아주 많고 봉황사에 지내는 민 비도 수시로 황궁으로 들어와 아들을 만나고 있었다.
정강대군을 만나고 나자 윤원형은 조금은 다급해졌다. 만약 대진국의 태왕께서 정강대군을 내세워 조선의 국왕이라고 내세우면 졸지에 자신이나 윤 대비는 완전히 몰락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서계는 슬며시 태왕의 의중을 말했다.
“황궁의 시설이 좋지만 본시 남쪽에서 살던 정강대군이라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폐하께서는 적당한 시기에 정강 대군을 조선의 한양으로 보낼까하고 고심하는 중입니다.”
“정강대군을 한양으로 보낸다고요?”
“그렇소. 정강대군은 본시 왕위를 이어야할 정통성을 지닌 대군이 아니오?”
이런 말에 윤원형은 너무 두려워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는군.’
조선은 대진국의 제후국이라 태왕께서 군왕을 얼마든지 교체할 권한이 있었다. 물론 적당한 명문이 필요하지만 하려고 하면 그런 명분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무능하다고 할 수도 있고 건강을 핑계로 물러나라고 할 수도 있어.’
조선의 주상(명종)은 매우 병약해 비실비실했다. 자주 병석에 눕기도 해서 계속 한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중이다. 그에 비해 어리지만 정강대군은 매우 총명하고 건강했다.
서계가 윤원형에게 정강대군을 만나게 하는 뜻은 분명히 군왕을 자리를 교체할 수 있다 것을 의미한다. 그리되면 윤 대비는 섭정에서 물러나고 자칫 불문에 들어간 민 비가 환속해서 섭정하거나 또는 대진국에서 직접 통치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나 가문의 몰락이 가까워진 것을 느낀 윤원형은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서계가 요구하는 것은 모조리 들어주고라도 현재 주상의 보위는 유지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군사력도 빼앗긴 처지로 어쩔 수 없어.’
아니나 다를까 서계는 조선 조정에 많은 것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우리와 다른 사법제도이니 대진국의 제도를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조선의 큰 도시에는 별도로 법원을 설치해야 됩니다.”
조선은 아직도 군현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방수령이 재판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치안 유지의 필요성과 재판을 위해 경찰서와 검찰 그리고 법원까지 만들겠다고 하자 거절할 수 없었다.
“꼭 그렇게 해야 된다면 설치하세요.”
“경찰이나 검사들이 근무할 건물을 신축해야 합니다.”
“협조야 하지만 재정을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재정 문제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선 팔도에서 광산을 개발해 거기에서 나오는 재물로 충당할 것이니 그렇게 아세요.”
광산 개발권을 차지한다고 하자 윤원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왕실에서 지분을 가져야 되지 않나요?”
“무슨 소립니까? 조선 왕실이야 앞으로 황실에 속하게 되는데 따로 그런 권리를 가질 필요는 없죠.”
서계는 더욱 심하게 압박했다.
“영상, 범죄를 저지른 죄인은 우리가 잡고 재판은 조선에서 하는 것은 조금 이상합니다. 그러니 행정 편의를 위해 재판권도 넘겨주기 바랍니다.”
“재판권까지요?”
“그렇소.”
이미 치안 유지를 위해 각 지방에 경찰서와 검찰청을 두기로 했다. 결국 재판권까지 넘기게 되었다. 사실 이미 군사권이 없는 조선이라 대진국에서 행정권까지 넘기라고 요구해도 거절하기 어려운 상태다.
‘공연히 반발하다가는 왕실 자체를 폐지할 수 있어.’
조선에 있는 광산을 개발하면 거기에서 나오는 재물은 모조리 조선에 재투자하기로 약속하고 광산 개발권도 넘겨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광산에서 나오는 수익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각 지방에 필요한 건물을 건립해 정상적으로 근무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은 사법권까지 차지하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역참 시설을 인수해 우편제도를 활성화 시키겠다고 했다. 군사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하니 그러 시설 또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왜의 침략을 봉황성까지 알리려면 봉수대 조직도 넘겨야 됩니다.”
“봉수대까지요?”
“그렇소. 군사적인 문제니 반드시 넘겨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윤원형은 결국 봉수대까지 넘기기로 해 사실상 조선의 행정권까지 대부분 넘기게 되었다. 윤원형이나 조선의 왕실이나 조정신료들도 모두 각오하고 있던 일들이다.
서계가 윤원형과 만나 조선의 행정권 일부까지 차지하는 협상을 끝내고 보고하자 최인범은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내무장관에게 지시했다.
“본국은 이제 모든 분야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니 장관은 모두 차관에게 업무를 받기고 조선의 한양으로 가시오. 그래서 분야별로 조선 조정에서 무리 없이 인수받을 수 있는 업무는 인수를 받으시오.”
“넷!”
행정권도 인수 받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꼭 필요한 분야는 이미 인수를 받았으니 조선 조정에서 반발하는 분야는 손대지 말고 쉽게 넘기는 부분만 인계 받아도 됩니다.”
“명을 따르겠나이다.”
내무장관은 물혼 다른 장관들도 조선으로 가서 인수 받아야 될 일이 아주 많았다.
최인범이 제일 중요하게 신경을 쓰는 사업은 국도 1호선의 확장 및 정비공사다. 최인범은 각료들에게 국도 1호선이 지나가는 지방에 대해 설명했다.
“국도 1호선은 부산, 밀양, 경산, 대구, 구미, 김천, 영동, 회덕, 청주, 진천, 이천, 하남, 의정부. 개성, 평양을 지나게 되니 참고하시오.”
“넷!”
한강 이남지역의 도시들은 나열하는 이유는 국도 1호선이 지나가는 지역은 앞으로 중요한 교통과 행정의 요충지가 되기 때문이다. 국도 1호선과 다른 국도를 어디서 연결해 어떤 도시를 발전시켜야 되는지 정확하게 명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조선을 인수하기 위해 치밀하게 모든 분야에 손을 쓰고 있지만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대진국을 건국할 때는 백지 상태에서 관료를 임명해 별로 복잡하지 않았다.
조선을 합병하려니 매우 복잡했다. 기존의 관료들을 한 번에 모두 해직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기도 곤란했다.
“도지사와 시장 그리고 군수를 새로 임명해야 하니 우선 조선으로 가서 행정단위를 조정해 보시오.”
“넷!”
“도호부는 시로 만들고 현이나 군은 통합해서 군으로 만드시오. 그리고 현은 군에 속한 면이나 읍으로 변경시키도록 하고.”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선 왕실이 가지고 있는 관료 임명권을 차지해야 된다. 그것은 아직 시간이 지나야 된다고 판단했다. 우선 조선 조정과 협의가 없더라도 임의대로 사전에 행정 단위를 조정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공연히 외부로 일려져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현지 상황을 고려해 조정해 놓으시오.”
“넷!”
행정단위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도 시간이나 인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최소한 행정단위가 조정되어 확정된 상태가 되어야 기존의 관료 조직을 버리고 새롭게 관료를 임명할 수 있었다.
최인범이 각료들과 조선을 합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멀리 남쪽에서 남주의 헌강왕이 사신을 보냈다. 남주의 사신은 주산 담로의 총통 부관과 같이 찾아왔다.
남주의 헌강왕 경우 자체적으로는 남명의 황제라고 칭하지만 대진국으로 사신을 보낼 경우는 왕으로 칭하고 있었다. 장인인 헌강왕이 보낸 사신이라 최인범은 근정전으로 불러 만나게 되었다.
“특별히 부탁할 일이 있다고요.”
“폐하, 제발 도와주세요. 남쪽의 복건성에서 또다시 못된 왜구들이 대규모로 침입해 동해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신의 말에 최인범은 다소 이상하다고 판단했다. 그 지역은 남해도와 인접한 곳이라 현난풍이나 대마불이 충분히 왜구들을 소탕해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상했다.
‘너무 오래 만나지 않아 무슨 문제가 생겼나?’
이렇게 판단한 최인범은 사신에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왜구들이 침범을 했다는 거요?”
“폐하, 무려 600척이나 되는 왜구가 일시에 침범했사옵니다.”
“뭐요? 왜구들이 그렇게 많이 침범해요?”
“그렇사옵니다. 그들은 단순한 왜구가 아니고 정식 군대입니다.”
사신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인지야 확인해야 된다. 아무튼 동왜의 세력이 전에 비해 더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왜가 더욱 강해지면 반드시 왜를 통일하려고 시도할 것이라 신경이 써질 수밖에 없었다. 규슈를 합병하는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알겠소. 왜구가 준동한다니 돕기는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왜구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남주에서 어느 정도 군비를 충당해야 근본적으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폐하, 얼마나 군비를 내놓아야 할지?”
“그 문제는 매우 복잡하니 국방장관과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협의하세요.”
최인범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합병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동안 동왜가 어느새 해군력을 대폭 확장해 활동하는 중이다. 특히 해군력을 강화했다니 신경이 써질 수밖에 없었다.
‘왜놈들이 어느새 그렇게 많은 해군을 보유하다니.’
조선의 합병도 중요하지만 동왜를 비롯한 왜에 대해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최인범은 즉시 국가정보원으로 연락해 최복동을 부르기로 했다. 그가 와야 왜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제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을 빨리 불러 오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