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화
한편 충청남도 회덕현의 변두리의 한밭 주막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커다란 갓을 쓴 양반들도 보이기 아낙네들도 보였다.
조선도 점차 변해서 이제는 양반이라고 해서 백성들과 한자리에 앉는 것이 별로 어색하지 않게 변했다. 물론 여전히 차별은 하지만 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생겼다.
웅성웅성.
한밭 주막에 모인 양반들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통방통하신 도인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많군.”
“복비가 너무 비싸지 않나?”
“무슨 소리야 도인께서 시키는 대로 하면 만사형통인데. 쌀 두말이면 아주 싼 편이지.”
“명당도 알아내려면 쌀을 10가마를 내야 한다던데.”
“그런 정도야 대수인가? 조상의 묘만 잘 쓰면 부귀영화가 보장되는데 쌀 10가마가 아니라 20가마를 내도 반드시 알아 내야지.”
주막에 모여 있는 일반적인 백성들은 연말이라 내년도 운수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백팔 노인은 귀신같이 알아낸다고 하던데. 내 내년의 운수가 과연 좋을지 모르겠어.”
“보는 사람마다 다들 내년에는 운수 대통한다고 하던데.”
“그런가?”
사람들을 상대로 운수를 보는 사람은 전라도 지리산에서 오래 도를 닦았다고 소문난 수염이 허연 도인이다. 도인은 화려한 언변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내년도 운수를 봐주고 있었다.
“내년에는 자네는 반드시 아들을 보고 재물이 늘어날 운수요.”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소. 하지만 그냥 재물 운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 조상의 묘를 반드시 옥천으로 이전하는 것이 좋소.”
“조상님의 산소를 이전해요?”
“이웃한 금산이나 또는 옥천 그리고 보은에는 좋은 명당 자리가 많으니 그쪽으로 산소를 모조리 옮기면 자손만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오.”
“도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땅을 팔고 좋은 명당으로 이장하죠.”
북방의 강국인 대진국은 명나라를 멸망시켜 북경을 차지하고 안정적으로 발전 중이다. 그러나 약소군인 조선은 앞으로 어찌 변할지 몰라 백성들은 뒤숭숭한 상태다. 일부는 전쟁을 할지 모른다고 하고 일부는 소리 없이 대진국으로 흡수될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조선은 망하는 건가?”
“시기가 문제지 이제는 조선도 끝났다고 봐야지.”
“하긴 군사권과 외교권이 없으니 망한 나라지.”
특히 재력이 좋은 사대부들의 경우 대진국에서 앞으로 어찌 나올지 몰라 매우 불안했다. 사대부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할지 모르니 전전긍긍했다.
시절이 매우 하수선할 경우 늘어나는 것은 감언이설로 재물을 취하려는 사기꾼들이다. 조선 팔도에는 혹세무민으로 백성들의 재물을 갈취하는 부류들이 대폭 늘어났다.
지리산에서 20년간 도를 닦아 사람들의 미래를 예측한다고 떠벌이는 백팔 도인이다. 그는 매우 능숙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조선이 망하게 되는 것은 모두 왕실에서 조상들의 산소를 잘 못써서 생긴 문제요. 그러나 그대의 가문도 조상의 묘를 잘 써야 되는 거요.”
“도사님, 어디 좋은 명당이 있나요?”
“그렇소. 금산으로 가면 대둔산과 서대산 자락에는 아주 좋은 명당이 있어요.”
“어딘지 소개해 주면 안 되나요?”
“소개야 해 줄 수 있지만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서 임야 가격이 매우 비쌀 거요.”
백팔 도인은 때로는 조상의 묘를 잘못 써서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 새로 산을 사서 이장하도록 권했다. 때로는 후손이 고관으로 출세한다고 설복시켜 조상들의 묘를 타지로 이전하도록 권했다.
백팔 도인이라고 칭하는 노인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거액을 받고 속칭 점을 쳐주거나 사주팔자를 봐주었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그저 사주만 봐주지만 사대부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그들의 선산에 대해 거론했다.
찾아온 손님들이 모두 주막에서 떠나자 백팔 도인은 주막의 건넌방에서 두 사내를 은밀하게 만나고 있었다.
“행수님들, 제가 계속 여기서 이래야 합니까?”
“우리와 계약했으니 당연히 계속해야지. 사대부들이 찾아오면 한밭에 있는 묘는 반드시 이전할 수 있도록 옥천이나 타지에 명당이 있다고 떠벌이도록 해.”
“알겠습니다.”
백팔 도인이 은밀하게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마칠복과 마팔복이다.
두 사람은 황후의 지시를 전달 받자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전라도 지방에서 도를 닦았다는 사람들을 여럿 포섭했다. 아주 맹탕이면 쉽게 들통이 나기 때문에 그럭저럭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는 사람을 모집했다.
백팔 도인은 그들 중에 한사람이다. 하얀 수염과 고고해 보이는 외모가 그럴듯해서 회덕의 부동산 매입을 위한 물밑 공작조로 발탁했다.
마칠복과 마팔복은 황후의 지시를 받은 한밭 지역의 아주 낮은 야산에 무수한 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이렇게 점쟁이나 도인들을 동원해 갑자기 명당 타령을 해서 이장하도록 선동하고 있었다.
백팔 노인이 유명해진 이유는 지역의 권문세가인 송씨들의 조상 묘를 이전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감언이설에 매혹된 송씨들이 흉한 일만 일어난다고 하는 조상의 묘소를 이전하게 되었다. 이전하기 위해 조상의 묘를 파보니 안에는 물이 홍건하게 고여 있었다.
“이러니 집안이 잘될 리가 없지.”
“허어! 백팔 도인의 말이 사실이었어.”
풍수지리에서 묘택은 오색 빛이 나는 토질에 건조한 곳이 좋다고 한다. 물론 좌청룡 우백호도 따지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혈에 해당하는 토질이다. 그런데 너무 흉하다고 해서 파묘하고 보니 물이 가득 고여 있다. 졸지에 백팔 도인은 능력이 뛰어난 도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은 몰래 묘안으로 작은 철봉을 찌르고 물을 집어넣어서 벌어진 사태다. 설마하니 그런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한밭에서는 대대적으로 묘를 이정하는 풍토가 생겼다.
“사방으로 널려 있는 묘를 명당으로 모조리 옮기게 되니 우선 산소 관리가 편하고 좋군.”
“당연하지.”
조상의 묘가 천지 사방으로 흩어져있어 관리하기가 어려웠으나 집단으로 한곳에 모시니 아주 편리했다. 조상의 묘를 옮기자 필요가 없어진 산이나 또는 관리를 위해 소유하고 있던 논이나 밭도 판매하게 되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석물(石物)도 얼마든지 하게 되었다.
“자네는 어디서 석물을 가져왔나?”
“나야 채운에 있는 석공장에서 사오는 거지.”
“나는 금산에서 구해 보려는 데.”
“이 사람아 기왕에 하는 석물이니 채운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아.”
결국 송씨들은 한밭에 있는 조상들의 묘를 집단으로 옥천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바로 근처에 사는 강씨들도 흉하다는 조상들의 산소를 모조리 파서 보은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본시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덩달아 같이 뛰는 법이다. 흉지로 알려진 한밭에서 조상들의 묘를 사대부들이 이전하게 되자 백성들도 덩달아 묘를 이전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우리는 어디로 가지?”
“신도안에 새로 아주 크게 만든 공동묘지가 있다니 그곳으로 이전하지.”
“아, 전에 태조께서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다는 그곳?”
“길지니 도읍으로 정하려고 했지. 그러니 그곳으로 가세.”
이렇게 이전할 재력이 없는 사람은 남들이 모두 파묘하자 같이 파묘해서 모조리 불에 태워 유골만 사찰로 가져가 안치하고 있었다. 그것마저 할 수 없으면 그냥 태워서 갑천에 유골을 뿌리고 있었다.
땅이 얼어붙은 한 겨울에 이런 이장하는 일들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마칠복은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마을 단위로 조직했다.
“전문적으로 이장하는 인부로 일하시오.”
“겨울이라 놀면서 골패나 만지니 나도 하겠소.”
“장기 계약하면 선금을 주겠소.”
“선금을 줘요?”
“그렇소. 대신 나중에 계약을 어기면 위약금을 물어야 됩니다. 기간을 2년입니다.”
“알았어요. 계약을 하죠.”
남경으로 건설되는 한밭에서 앞으로 각종 대규모 공사가 벌어지게 되니 마칠복은 공사장에서 일할 인부들을 미리 확보해 놓고 있었다.
대대적으로 묘소를 이전하는 유행이 번지는 가운데 마칠복과 마팔복은 빠르게 매몰로 나오는 토지를 매입했다. 싼 가격으로 많은 토지를 판매했지만 워낙 넓은 토지를 판매하니 회덕 현에는 재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재물이 넘쳐나자 자연히 회덕에는 주점이 늘고 기방이 늘어났다. 조상들을 모시던 선산을 팔아 쉽게 재물이 생긴 사대부들은 흥청망청 유흥비로 날리고 있었다.
일찍이 어린 나이부터 백두 상단에서 근무해 이재에 밝은 마칠복은 동생인 마팔복에게 지시했다.
“팔복아. 너 유성으로 가서 땅을 사라.”
“왜요? 뭐 하러 땅을 사요?”
“내가 보기에 한밭 지역이 개발되면 아무래도 유성온천지역이 주막이나 기방 등 유흥업소가 많이 생길 것 같으니 우선 토지를 사놓는 것이 좋아.”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근처에 제3군단 사령부가 있고 많은 군인이 주둔하니 토지를 매입해 온천을 이용한 유흥업소를 운영해볼 생각이다.
“왜의 온천을 참고해서 시설하면 잘 운영될 거야.”
“형님, 왜녀들을 데리고 와서 운영하면 특색이 있고 좋지 않을까요? 횟집도 운영하고요.”
“그것 좋은 생각이다.”
급하게 유성온천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는 동안 봉황성에서 태왕의 서류가 도착했다. 국가정보원 소속인 요원이 전달해주었다.
단단히 밀봉된 두툼한 서류에는 백두 건설 회사를 설립하라는 지시다. 그리고 건설 회사를 설립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목수나 석공을 빨리 모집해야 되겠어.”
“알았어요. 우선 비석을 만드는 석공을 만나서 그들과 연락되는 석공부터 모으죠.”
서류에는 주택지로 결정된 지역의 토지를 확보했으면 그곳에 2층으로 연립주택을 지으라고 지시했다. 개발하려면 계속해서 한밭에 살면서 공사장을 다녀야 하니 그들이 지낼 숙소 공사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구역별로 적어도 1000세대가 사는 주택단지를 조성하라는 지시다.
그동안 정부나 군대의 주도로 건설 공사를 했지만 이제는 민간인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내용이다.
“좋았어. 우리도 기회에 큰 회사를 만들어 운영해 보자.”
“형님, 너무 무리가 아닐까요?”
“무슨 소리야. 폐하께서 팍팍 밀어주실 건데. 그러니 최대한 빨리 기술자들을 모아. 그리고 기와와 벽돌 공장도 새로 만들도록 하고.”
“알았어요.”
최인범은 그동안 칠복이 형제에게 무심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남경 건설을 기회로 두 형제에게 사실상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한해가 지나가는 가운데 한반도의 중심인 한밭에서는 주택단지를 만드는 공사장들이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