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화
<남경 건설의 시작>
늦은 가을이 되자 봉황성은 차가운 기운으로 점차 얼어붙고 있었다. 그러나 봉황성의 황궁은 마치 봄이라도 왔다는 듯이 화사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이유는 황비들의 임신 사실로 황궁의 분위기가 무척 밝아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미녀인 궁녀들이 황궁으로 들어왔지만 진유향만 접하고 있었다. 그러자 황후나 황비들은 다소 황당하게 생각했다.
황후는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 않는 사실이 너무 이상해서 중얼거렸다.
“폐하께서는 참으로 이상해. 왜 젊고 예쁜 미녀들은 놔두고 이제 늙어가는 진 빈만 접하시는지 모르겠어.”
황후의 중얼거림을 듣던 상궁은 이내 답했다.
“마마, 진 빈마마 처소에서 지내는 궁녀의 말에는 어젯밤에 진 빈마마께서 피를 토했다고 하옵니다.”
“뭐라? 무슨 피를 토해?”
“아침에 코피를 한사발이나 토했다고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그동안 너무 폐하와 자주 접해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같사옵니다.”
“어의를 보냈나?”
“예, 너무 놀라서 어의를 보내는데 몸에 이상은 없다고 하옵니다. 아무래도 진지가 너무 고갈되어 일어난 현상이라고 판단해 보약을 지어 먹는다고 하옵니다.”
이런 말에 황후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태왕은 힘이 너무 좋아 자주 접하면 여자는 견디기가 힘들다. 하루에도 두 번 이상을 접하는 때가 많으니 사실 버거운 상대다.
‘진 빈을 아예 죽이려고 하시나. 너무 무리하시는군.’
많은 궁녀와 시녀가 살고 있는 황궁은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편이다. 진 빈이 너무 심하게 정사를 벌이다가 피를 토했다는 소식은 모든 궁녀와 시녀들에게 퍼졌다.
“어머나, 힘도 좋으시지. 그런 힘을 우리에게도 좀 나누어 주시면 안 되나?”
“너는 꿈도 너무 야무지다. 내 친구가 진 빈 처소에 있는데. 그 애 말에는 밤이면 돼지의 멱을 따는 이상한 비명소리도 요란하다는 거야.”
“그건 또 무슨 뜻이냐?”
“그야 모르지. 며칠간 그런 소리가 들리더니 진 빈 마마께서 피를 토했다니 어쩌면 폐하께서 잠자리에서 주먹으로 패는 습성이 있는지도 모르지.”
황후를 비롯해 황비의 경우 태왕과 잠자리를 하면 바로 옆방에서 지밀상궁들이 밤에 보초를 선다. 그보다 낮은 신분인 진 빈의 경우 잠자리를 하면 지밀상궁이 옆에서 보초를 서지는 않았다. 양반집의 안채와 같은 정도에 불과한 작은 전각이라 구조 자체가 보초를 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밀상궁들이나 궁녀나 시녀는 모두 전각의 뒷마당이나 앞마당에서 밤에 서성이며 대기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궁녀나 시녀들은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상한 소리로만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해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남녀 간에 벌어지는 방사에 대해 많이 배웠다. 하지만 남자 경험이 전혀 없는 궁녀들은 괴이하게 지르는 감창을 마치 요란하게 메로 찰떡을 치는 소리로 들었다. 더구나 가끔 토하는 큰 소리를 태왕에게 주먹으로 주어 터져서 토해내는 비명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상한 습관이 있어서 다른 궁녀를 취하지 않는지도 몰라.”
“그래, 아마도 그럴 것 같아.”
가끔 토해내는 비명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크게 토하니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궁녀들은 태왕과의 잠자리를 기대해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러나 이미 혼인해 남자와의 잠자리 경험이 많은 시녀들이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안다. 궁녀들의 이런 수군거림에 별다른 설명을 해주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다.
“침묵 서약을 어기면 좋은 일자리에서 쫓겨나니 함봉하는 것이 최고야.”
“답답하면 우리처럼 출궁해서 혼인해 보면 알게 될 거야. 진 빈 마마께서도 저렇게 너무 무리하게 욕심 부리다가는 오래 살기 힘들겠어.”
“그러게. 과해서 넘치면 다소 모자람만 못한 건데.”
진 빈 마저도 피를 토해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최인범은 황궁에서의 생활이 너무 무료했다.
‘황궁에서만 지내려니 너무 답답하군.’
별로 하는 일 없이 한곳에 진득하게 지내면 벌떡증이 생기는 최인범은 황궁에서 지내다가 밖으로 거동하게 되었다.
가끔 봉황산성 옆의 동물원이나 또는 가축개량 사업소들을 돌아보았다.
봉황산성에 있는 봉황사로 가서 정강대군을 만났다. 정강대군은 이제 혼자서 천자문을 읽거나 초등학교 과정을 거의 끝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배에 관심이 많아 수시로 최인범이 만들어준 모형 배를 연못에 띄워놓고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나?”
“폐하, 저는 언제나 실제로 큰 배를 타 볼 수 있나요?”
“원한다면 단동으로 가서 타도되고 황궁으로 와서 해자에서 작은 배는 타볼 수 있지.”
최인범은 큰 배를 타고 싶다는 정강대군을 데리고 단동으로 가서 초대형 함선인 전함을 태워주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정강대군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최인범은 급해졌다.
‘이 아이가 자라면 조선을 직접 다스릴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군.’
워낙 총명한 정강대군이라 앞으로 자라면 대진국으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정강대군의 성장 때문에 조선을 합병해야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고심했다.
중궁의 편전에서 이황 국무총리를 만나 그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총리, 조선을 어떻게 합병하는 것이 좋겠소?”
“폐하, 이제 행정권만 시행하면 되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야 그렇지만 행정권을 행사해야 조선도 대진국과 똑 같이 발전시킬 수 있지 않겠소?”
최인범이 조선 합병을 서두르는 이유는 점차 조선과 대진국의 경제적인 격차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늦게 합치게 되면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재물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조선의 사대부 중에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무리가 있으니 그것이 제일 문제다. 그러나 최인범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합시다. 한반도의 중심인 충청남도 회덕을 직할시로 만들어 남경이라고 칭하도록 합시다. 신도시가 완공되면 앞으로 그곳을 중심으로 행정력을 장악하도록 하세요.”
“명을 따르겠나이다.”
한양이 한반도의 중심이지만 더 남쪽인 충청남도 회덕지역을 직할시로 만들어 경제와 행정의 중심지로 만들 생각이다.
“한양은 그저 상징적인 고도로 남겨 두도록 합시다.”
“넷!”
“총리만 아시고 이런 결정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본시 황제 국가란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수도를 두는 5경을 두는 관습이 있었다. 특히 발해가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지역을 골고루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하던 제도다.
전통을 따른다는 의미 보다는 대진국은 중요한 거점을 개발하기 위해서 그런 제도를 따르고 있었다. 조선을 흡수하면서 지금까지 모든 산업과 군사 행정 중심인 한양이 아닌 남쪽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양에 밀집된 조선의 사대부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강제로 합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모든 토지는 왕실이나 또는 개인이 소유권을 가지니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토지를 매입해야 된다.
‘토지개발 공사가 사용하는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어.’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토지를 충분히 매입하고 나서 도로나 관공서 건물을 지어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곳을 직할시로 만든다면 한반도의 중심지라 쉽게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조선을 합치기로 결정하자 서둘러 교태전으로 가서 황후를 만났다. 그리고 자신이 구상하는 조선의 합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폐하, 한양을 남경으로 삼지 않고 새로운 곳에 신도시를 건설해 남경으로 만들려면 재물이 너무 들어갈 것 같군요.”
“물론 재물이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잘 만하 개발하면 나중에는 오히려 더욱 재정 상태가 좋아질 수도 있소.”
제일 중요한 문제는 비밀리에 엄청난 토지를 매입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또한 비밀을 유지해야 하니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어야 된다.
“황후! 적당한 인물이 없겠소?”
“폐하, 있사옵니다.”
“그게 누구요?”
“폐하께서 처음에 같이 움직이던 마칠복과 마팔복이 있사옵니다. 그들은 제가 폐하를 대신해 백두상단을 운영할 때 항상 비밀리에 저를 보호했사옵니다. 그리고 방금 폐하께서 추진하시는 토지 매입을 은밀하게 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했고요. 그래서 아직 표면으로 노출되지 않고 있사옵니다.”
황후의 말에 최인범은 아주 오래전에 해어져 그동안 잊고 있었던 마칠복과 마팔복이 떠올랐다.
“내가 그 애들에게 너무 소홀하게 대했군.”
“폐하, 그렇지 않사옵니다. 그들은 여전히 폐하의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한 제가 소유하고 있는 조선의 염전이나 인삼포를 관리하고 있사옵니다.”
황후인 월녀는 여전히 조선의 충청남도 지역에 천일염을 생산하는 대규모의 염전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새로운 농작물 재배지인 인삼포를 소유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칠복이 형제라면 비밀을 노출시키지 않고 많은 토지를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알겠소. 그렇다면 황후가 나서서 칠복이 형제에게 연락하시오.”
최인범은 조선의 지도를 꺼내놓고 토지를 사야할 위치를 정해주었다. 그러자 황후는 그곳을 잘 안다는 듯이 이내 답했다.
“어머, 그곳은 저도 삼포로 사용하려고 사둔 토지가 많은 곳인데요.”
“그렇소? 그렇다면 더 쉽게 토지를 살 수 있겠군.”
최인범이 이렇게 말하자 황후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답했다.
“폐하, 그렇지 않아요. 그 지역은 송씨와 강씨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집성촌이라 그들이 소유한 토지가 아주 많사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토지를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사옵니다.”
“그렇소? 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는 거요?”
“그야, 일대에 그들의 조상들 산소도 많고 사대부라고 해서 가난해도 상업에는 진출하지 않고 농업만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황후의 말을 들어보니 생각지 않은 복병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회덕 지역을 직할시로 만들기로 결정했으니 계획을 변경하고 싶지 않았다.
“어렵더라도 꼭 필요한 토지를 사시오.”
“알겠습니다. 바로 마칠복에게 연락하죠.”
황후에게 일단 회덕 지역의 토지 매입을 지시하고 나서 국가정보원장인 최복동을 만났다.
“정보요원 중에 부동산 매입을 잘할 수 있는 요원을 차출하시오.”
“폐하, 회덕에서 토지를 매입하시려고요?”
“그렇소. 최대한 많은 토지를 매입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조선의 한양 지부로 연락해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인범은 조선을 합병하려고 군사들을 동원하면 사대부가 반발해 대진국에게 대항하려는 무장 세력이 나타날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소 시간이 걸이더라도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해 그곳을 중심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순리적인 방법으로 흡수하는 것이 제일 좋아.’
이미 회덕으로 대진국의 군단사령부를 만들어 보냈으니 공병대가 그 지역을 정확하게 측량하고 있다. 그러니 별도로 사람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성곽이야 축조할 필요도 없고 새롭게 도로만 건설하고 수시로 범람하는 하천에 제방이나 교량만 건설하면 되니 별로 어렵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