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화
한편 산해관을 통해 요서 지역으로 이동하는 최인범 일행은 많은 말을 이끌고 이동 중이다. 빨리 이동하기 위해 각자 3필의 말을 지니고 있었다.
빠르게 이동해 요하에 도착했다. 요하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곳에 제방 공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인데 한 낮에도 일하나?”
“폐하, 모두 심양까지 쳐들어왔다가 잡힌 전쟁포로들입니다.”
“너무 심하게 부려 먹는 것은 아닌가? 나중에 돌아가면 원한이 깊어질 것인데.”
“폐하, 그렇지 않습니다. 귀국을 원하는 전쟁포로들의 일부는 이미 북경 지역으로 보내 천리장성 공사장에서 일합니다. 여기서 정착하려는 전쟁포로들만 동원해 제방 공사를 해서 경작지를 늘리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포로들을 모조리 대륙으로 귀환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포로들은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로 돌아가길 원치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 가봐야 농토도 별로 없고 가족들과 오래전에 해어진 처지라 이대로 요서 지역에 늘러 앉기를 원했다.
이런 보고를 받자 최인범은 전쟁포로들의 정착에 대해 지시했다.
“포로 출신은 되도록 한곳에 정착시키지 말고 최대한 분산해서 정착시키도록 해. 한족이 다수를 이루는 정착지가 생기면 나중에는 이상하게 변할 수도 있으니까.”
“넷! 명대로 분산해서 정착시키겠습니다.”
“군인으로 편입해서 멀리 발령 내는 방법으로 분산시켜.”
“넷!”
대진국은 대가축의 수가 대폭 늘어나 소나 말을 동원해 요서 지역에도 제방이나 도로 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제방을 쌓아도 침수되는 지역이 많을 것 같으니 낮은 지역에는 풍차를 많이 만들도록 해.”
“넷!”
최인범은 요하 남쪽인 요택 지역을 지나 요동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넓은 평야지역이 펼쳐지는 요동은 이미 수확이 시작되고 있었다. 농토의 크기에 비해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대부분 대가축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대진국의 수도인 봉황성에 도착하자 어느새 가을이다.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드디어 북경을 비롯한 요서지역까지 차지하자 봉황성의 백성들이 나와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폐하 만세! 만만세!”
“대진국 만세!”
서남쪽으로는 하북성을 차지하고 서쪽은 대흥안령산맥까지 영토로 만들었다. 멀리 남쪽으로는 주산군도와 상해 지역에 주산 담로를 설치했다. 또한 남해도(대만)까지 진출하고 동쪽으로는 동해도(북해도)와 사할린(극동도)까지 차지하자 엄청난 영토를 지닌 거대한 제국이 건설된 것이다.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봉황성으로 돌아오자 마침 설화 황비가 아름다운 공주를 순산했다. 이제는 황실에도 후계자로 삼을 태자와 공주가 있으니 후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황궁으로 들어가는 태왕을 환영하던 백성들은 수군거렸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라 황실에 더 많은 황족이 생기기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태왕폐하께서 앞으로 빈자리인 황비마마도 한명 더 늘리고 귀비나 왕비 그리고 다른 후궁자리도 모조리 채웠으면 좋겠어.”
“암, 황제시니 그런 정도로 후궁이 있어야 돼.”
일부일처제가 아닌 일부다처제를 채택하는 대진국이다. 그래서 한다하는 고관이나 또는 재력가들은 대부분 아내를 여럿 을 거느리고 있었다. 백성들은 황제라 당연히 많은 후궁을 거느려야 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황궁으로 돌아온 최인범은 황후와 황비들을 만났다, 아들까지 있으니 오랜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느껴지고 있었다. 월녀와 설화는 전보다 더 자신감이 팽배한 모습이다. 그러나 정향이나 진유향은 환하게 웃으며 반겼지만 조금은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
“다들 고생 많았소.”
“폐하, 명을 정벌해 북경을 차지한 위대한 업적을 이루심을 진심으로 감축 드립니다.”
“고맙소.”
최인범은 황궁으로 들어와 며칠간 내궁에서만 지냈다. 부인이 여럿이라 하루에 한 사람을 만나 동침도하고 나름 같이 산책을 하거나 또는 후원의 연못에서 낚시질을 하는 등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 후궁에서 시간을 보내던 최인범은 드디어 근정전으로 나와 국무총리를 비롯한 모든 각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간단한 다과를 차려놓고 공주 탄생을 축하도 하면서 좌담회 형식으로 만났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는 자리지만 모두 국정을 담당하는 고위직이라 자연히 대화는 국정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논의되는 것은 후궁을 들이라는 주청에 대해서 이황 국무총리가 각료를 대표해서 나섰다.
“폐하, 백성들이 간절하게 원하오니 후궁을 들이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래서 다양한 민족의 후궁을 받아들임으로 대진국이 모든 백성들을 차별하지 않는 다는 것을 널리 보여주어야 되옵니다.”
“총리, 꼭 그럴 필요가 있나요?”
“폐하, 그렇게 해야 하옵니다. 전에 유구왕국의 공주를 돌려보내자 유구출신들이 매우 실망한 일도 있었사옵니다. 제후국의 공주나 또는 미녀들은 반드시 한 명씩은 후궁으로 들여야 되옵니다.”
총리의 건의에 각료들이 일제히 외쳤다.
“폐하, 후궁을 받아 드리옵소서.”
총리나 각료들의 생각에는 다민족이 사는 대진국이니 특정 지역 출신을 후궁으로 받아들임으로 통합이 더 쉽다고 판단해 건의하는 것이다.
그러자 최인범은 즉시 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는 자신에게 너무 많은 부인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답하지 않았다.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황제가 되었지만 꼭 다른 왕조의 황제들처럼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최인범은 슬며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비록 정무를 보는 근정전에서 나누는 대화지만 부담 없이 나누는 좌담회니 각료들에게 짐의 진심을 말하죠.”
먼저 이렇게 말문을 열자 총리나 각료들은 기대에 차서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최인범은 다른 말을 토했다.
“사실 짐도 가끔은 다른 후궁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인들이 4명이나 되니 더 늘린다는 것은 거북스럽고 싫더군요. 아무튼 짐은 오랜 세월이 지나 나중에는 모를까 지금은 새로 후궁을 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이란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최인범은 한자리를 깔아서 응수했다. 그러자 이황 국무총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궁하고 있었다.
‘그렇지, 지금 보다는 나중에 젊은 후궁을 들이는 것이 더 좋을지 몰라.’
사내란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젊은 미녀를 곁에 두고 싶어 하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태왕께서 속심을 발설하자 각료들은 더 이상 후궁을 들이는 것을 건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좌담회는 일부다처제인 혼인제도의 폐단을 거론하게 되었다. 행정 관료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유달곤 내무장관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폐하, 관료들의 경우 너무 많은 부인을 데리고 살면 살림살이에 필요한 재물이 많이 필요해 자칫하면 공금을 횡령하거나 또는 뇌물을 받는 사건을 저지르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관료들은 많은 부인을 거느리는 것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이 좋사옵니다.”
일부다처제를 채택하지만 내무 장관의 말대로 거기에 따른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일부일처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
각료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의견들을 말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공직자는 부인을 2명 이내로 제한하자고 하고 어떤 사람은 3명이나 4명으로 제한하자고 했다.
모든 사람들의 말을 듣던 최인범은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미 일부다처제가 실시되어 모두 부인을 여럿 거느리고 사는데 갑자기 제한을 한다면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공직에서 근무하는 관료는 부인의 수는 3명으로 제한하고 일반인은 4명 이내로 정하세요. 그리되면 큰 타격이 없는 가운데 차츰 변하게 될 겁니다.”
“폐하, 너무 많지 않나요?”
“꼭 그렇지는 않소. 이미 그런 정보의 부인을 거느리고 더 많은 부인을 거느린 관료도 많으니 그런 정도가 제일 적당합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법은 존재할 수 없었다. 대진국은 일부다처제를 채택해 한민족의 수를 대폭 늘릴 수는 있었지만 그 때문에 다른 폐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혼인 제도를 바꿀 수 없어 부인의 수를 제한하는 법을 발표하게 되었다.
결국 태왕을 만나 좌담회에서 논의한 그대로 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약간 변질이 되어 관료는 40대까지는 2명의 부인을 둘 수 있고 40대 이후에는 3명 그리고 60대가 되면 4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도록 정해진 것이다.
대진국도 고관인 관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참조해 이런 법령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일부 백성들은 너무 기가 차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늙은 놈들이 젊은 여자를 데리고 살려고 만든 혼인법이야.”
“암, 늙은 고관 놈들이 자기들 편리를 위해 혼인법을 저렇게 이상하게 만든 것이야.”
일부에서는 불평하지만 일반인은 젊어서도 부인을 4명 둘 수 있으니 대부분 그 법령에 찬성했다. 다만 공직 생활을 하려면 젊어서 함부로 많은 부인을 거느리면 안 된다.
봉황성으로 돌아온 최인범은 때로는 모든 각료를 모이라고 해서 의견을 듣거나 또는 장관들을 따로 따로 만나서 새로운 지침들을 내려주었다.
명나라와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이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군대를 보유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 때문에 국방장관을 만나 군의 감축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주변에 위협적인 무력이 없다고 해도 군의 감축은 매우 신중해야 된다. 그래서 현재 정규사단은 그대로 두고 도에 하나씩 두고 있는 예비보병사단에 대해서만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장관, 일단 예비보병 사단 규모를 5천명으로 줄이고 현역은 1천명 예비군은 4천명으로 정해서 도에 여단을 하나씩 두도록 합시다.”
“명을 따르겠나이다.”
워낙 넓은 영토를 차지해서 현재 12개 군단으로 나뉜 정규사단은 그대로 존속시키기로 했다. 아직은 교통 사정이 좋지 않으니 지방마다 배치된 정규군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군사적 분쟁을 해결해야 되기 때문이다.
전에는 1만명이던 예비보병사단의 편제가 반으로 줄었다. 현역은 1천명으로 줄어들게 되자 사실 대대적으로 군인을 감축하는 것이다.
감축된 군인들은 모두 전역하고 일부는 시도지역에 있는 경찰서의 경찰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 최인범은 내무장관과 경찰청장을 만나 지시했다.
“앞으로 군인이 경찰로 바뀌는 특별 채용은 줄여야 하니 경찰을 양성하는 경찰학교를 새로 만들도록 하시오.”
“넷!”
군대의 수가 줄어들면서 지방에는 학교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 전에는 군에서 사용하던 건물이나 시설이 교육부로 이관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대진국은 빠른 속도로 내부적으로 기틀이 잡혀갔다. 이런 변화는 조선으로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도 대진국과 똑 같이 각 도에 배치된 예비사단이 여단으로 바뀌었다.
조선을 합병하기로 결정한 최인범은 드디어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국방장관, 제 3군단을 조선으로 보냅시다.”
“폐하, 어디로 주둔시킬까요?”
“제3군단 사령부는 충청도 회덕에 두고 부산과 광주에 사단사령부를 두도록 하시오.”
“넷!”
“평양, 덕원부, 개성에 있는 제 12군단은 평양에 군단사령부를 두지만 개경의 주하는 사단은 한양의 왕십리로 이동하도록 하시오.”
이미 조선왕국의 군사권과 외교권은 대진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실 조선 조정은 비록 군왕이 있고 섭정하는 윤 대비가 있다고 하나 그저 허수아비에 지니지 않았다.
“공연히 시간을 지체하면 이런 저런 말썽이 생길 여지가 많으니 신속하게 배치하시오.”
“넷!”
충청도 회덕에 군단 사령부를 두는 이유는 경상도와 전라도에 배치된 사단 병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회덕의 사단이 지원하기 쉬운 지리적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제 3군단은 용정, 목단, 훈춘에 주둔하며 조선과의 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역할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부대를 이동하는 것이다.
조선으로 군부대 이동을 명령하자 이런 소식은 빠르게 널리 퍼졌다. 그 때문에 잠시 안심하던 주변국들이 매우 긴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