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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476화 (476/519)

476화

꼭 전쟁하려고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명나라가 망해 버렸으니 대륙은 지금보다 더 무질서 해질 것이라 철저히 대비하려는 것이다.

‘주변에서 우릴 도우려면 너무 멀어.’

제일 가까운 곳인 제주도에서 지원 받으려고 해도 최소한 일주일 이상이 걸릴 것이다. 더구나 연락을 받고 지원 병력이 오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된다.

“병력의 열세는 화력으로 보강하는 수밖에 없으니 화포를 최대한 확보하시오.”

“넷!”

김신완 총통은 군사권과 행정권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했다. 해군의 경우 전함 5척, 전투함 5척, 보급함 5척이 배치되고 판옥선이 10척이다. 육군은 아직 완전히 군사가 편성되지 못한 1개 정규보병사단과 1개 예비보병 사단만 있었다.

상해 시에 정규보병사단을 배치하지만 방어만을 위해 화포를 많이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상해 시에도 예비 보병사단을 창단합시다.”

“넷!”

전함의 경우 주산도에 배치하고 전투함은 상해 운하의 남쪽 항구에 배치했다. 또한 판옥선 5척을 상해 운하에 배치하고 남은 5척은 장강 하구에서 10킬로미터 들어온 상해 북쪽 항구에 배치했다.

“초계활동에도 필요하니 판옥선을 10척 더 늘립시다.”

“여기서 건조해야 됩니다.”

“일단 수리 기술자를 모아서 건조를 시작합니다.”

보급함 5척은 계속해서 주산군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상해 남항으로 나르고 있었다. 이런 부대 배치를 끝내고 일시적으로 무역을 중단해 많은 수산물이 상해지역에 비축했다.

비축 창고에 수산물이 산 같이 쌓이고 있었다. 넓은 평야지대에 벼와 밀의 파종을 끝낸 농민들은 어물을 건조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건어물을 너무 많이 쌓아 두는 것이 아니야?”

“전쟁이 터지면 어민이나 농민이 모두 전투에 참여해야 하니 충분히 비축해 놓으려는 거지.”

“아무리 그렇더라도 수산물이 너무 많아서 비축창고가 모자랄 지경이야.”

더구나 남해도에서 보낸 안남미까지 비축창고에 가득하자 은근히 걱정이다.

이렇게 되자 제주도 지역에서 오던 수산물은 중단하고 남해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일염만 계속해서 운반해 오고 있었다. 상해 시에서도 천일염을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강의 물이 많이 내려오기 때문에 염도가 너무 낮고 품질이 좋지 못해 생산하지 않았다.

상해 지역에 엄청난 양의 수산물과 식량이 쌓여 있는 가운데 서쪽은 너무 대조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명나라가 망하자 곳곳에서 홍건적이 출현했다. 도적에 무리의 규모가 조금만 크면 왕을 칭하며 활동하자 농민들은 정상적인 생산 활동을 하지 못했다.

“작년에는 홍수와 가뭄으로 식량이 모자랐는데 올해는 홍건적 때문에 농사를 지를 수 없으니 올 해는 뭘 먹고 살지 막막하군.”

“상해로 가면 식량은 많다고 하던데.”

“전에는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교역을 안 한다고 하니 큰일이야.”

남명 지역의 백성들은 살기가 점차 어려워지자 남경의 헌강왕을 원망했다. 봄이라 우선은 안남미에 나물을 넣어 죽이라고 끓여 먹지만 조금 지나면 안남미도 떨어지게 생겼으니 불만이 많았다.

“공연히 명나라를 이어간다며 황제라고 선언해서 우릴 쫄쫄 굶기나 몰라.”

“망한 나라가 뭐가 좋다고 남명이라고 칭하나 모르겠어.”

누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백성들은 대부분 갑작스러운 교역 중단이 헌강왕이 남명의 황제라고 선언해서 벌어진 사단임을 느끼고 있었다.

풍요로움이란 상대적이다. 바로 이웃한 지역은 쌀이 남아돌고 수산물도 너무 풍족하니 배고픔은 더욱 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김신완 총통은 상해 시 서쪽에 건설된 토성을 살펴보고 있었다. 제방과 같은 형태로 20미터 높이로 쌓아 놓은 토성이라 사실 대규모의 군사가 밀려오면 방어벽으로 충분치 않았다.

그나마 믿는 것은 토성 옆에 있는 폭이 50미터가 넘는 운하다. 그리고 운하와 연결되는 작은 호수들을 통해 태호까지 판옥선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올해처럼 봄에 강우량이 충분할 경우만 갈 수 있었다.

“기회가 생기면 가물어도 태호까지 갈 수 있는 운하를 건설하면 좋겠어.”

“총통님, 그건 양날의 칼이 아닙니까? 자칫하면 그 운하를 타고 남명이 진격하면 곤란합니다. 지금처럼 대규모 군대가 함부로 이동하기 어려운 늪과 호수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나도 그 때문에 시도하지 못하고 있어. 더구나 남의 나라 땅에 거금을 들여 운하를 파줄 필요성도 없고.”

김신완 총통은 외딴 지역인 담로라 함부로 무슨 사업을 벌일 수 없었다. 이제 상해 시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가지고도 충분히 먹고 살고 수출도 할 수 있었다.

“보리만 수확되면 식량은 충분하지?”

“넷! 비축된 물량을 모조리 수출해도 충분합니다.”

김신완 총통은 비록 토성이지만 보다 견고하게 하부지역은 석축을 쌓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석축을 쌓기 위해 토목 기술자를 불러 설계도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서쪽에서 바지선으로 돌을 운반해서 석축을 쌓은 방법을 연구해.”

“넷!”

김신완 총통은 출입구인 성문에서 기거하며 토성의 방어력을 높이는 새로운 공사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미 입구에는 웅성인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성의 안쪽에도 또다시 웅성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상해 시장이 찾아와 김신완 총통에게 건의했다.

“총통님, 폐하께서 특별히 훈령을 내려 보내지 않았으니 이쯤해서 남명과 교역을 다시 시작하시죠.”

“아니요. 폐하의 훈령이 내려오지 않았더라도 당분간은 남명과는 교역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함부로 주산 담로를 넘실거리지 않을 겁니다.”

“만약 이러다가 진짜로 밀고 쳐들어오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그나마 유지하던 자리도 물러나야 될 거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내가 보기에는 헌강왕이 사신을 보낼 것이니까.”

“식량을 이렇게 쌓아 두면 자칫하면 여름에 썩게 됩니다.”

상해 시장의 이런 염려에 김신완 총통은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남게 되는 안남미는 모조리 가축사료로 만들도록 하시오. 돼지가 빨리 번식하니 주로 돼지사료를 만들어 사육 두수를 늘리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김신완 총통도 계속해서 교역을 중단할 의사는 없었다. 하지만 남명의 헌강왕을 곤란하게 만들어 길들이려는 생각에서 무역을 중단했다.

한편 남경을 수도로 하는 남명으로 나라 명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헌강왕은 조정 신료들과 논의하고 있었다. 주된 의제는 부족한 식량을 조달하는 문제다. 다른 지역도 식량이 부족하니 해법은 주산 담로뿐이었다.

“폐하, 주산 담로의 상해 시에서 식량을 사와야 합니다.”

“그거야 알지만 그곳에서 교역을 일방적으로 중단해 버렸으니 어찌 사온단 말이오?”

“폐하, 봉황성으로 연락해 황비 마마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당장 급한데 그게 무슨 소용이요. 더구나 정향 황비의 위상이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데. 우리가 명나라를 승계한다고 선언한 것 때문 같으니 서로 좋은 쪽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해 보시오.”

“예이.”

사실 다시 교역하는 방법이야 아주 간단했다. 황제라는 칭호야 사용하더라도 명나라를 계승한다는 내용만 취소하면 된다. 그러나 이미 거창하게 선포해버린 마당이라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더구나 이제는 대진국에서 이주민도 받지 않으니 미인을 보내주는 조건으로 협상하기도 곤란했다. 고민하던 조정신료들과 협의해 헌강왕은 남명(南明)이란 명칭을 남주(南朱)라고 바꾸어 칭하기로 했다.

“대외적으로 남주로 칭하도록 합시다.”

북경의 황제가 소유하고 있는 옥쇄를 차지한 상황도 아니라 나라 명을 바꿈으로 해법을 찾은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자 사신을 주산 담로 보내게 되었다.

굴복하는 협상을 하기 위해 떠나야 하니 많은 선물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금은보화는 기본이고 무역에 필요한 금속 괴도 가져가기로 했다. 또한 별도의 선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논의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으나 만고의 진리라는 미인계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최고의 미인을 선발해서 태왕께 보냅시다.”

“그게 좋겠네요.”

“태왕이 말을 좋아하니 한혈마를 보내기로 합시다.”

한혈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명마로 남경지역에서는 흔하지 않았다. 반드시 다시 교역을 하기 위해 아깝지만 한혈마 10필을 보내기로 했다.

남경의 헌강왕이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린 이유는 서쪽에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서쪽에 있는 무한에서 처음에는 홍건적이 출연하더니 점차 세역이 커져가더니 드디어 나라를 선포한 것이다.

“남한과 대적하려면 반드시 민심을 얻어야 되니 부족한 식량을 들여오는 교역을 서두릅시다.”

“넷!”

무한(武漢)에 새로 생긴 나라는 자신들은 유방이 건국한 고대국가인 한(漢)나라의 전통을 이어 간다고 하며 나라 명을 남한(南漢)으로 칭했다. 그들 역시 지도자인 유종방을 황제라고 칭했다.

남쪽에서 강자로 행세하던 남경 세력이 식량 사정이 악화되어 민심이 사납게 변하고 이반되는 틈을 타서 건국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장강을 타고 내려올 심산인지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헌강왕은 대진국의 담로인 주산이나 상해 지역에 포진한 군대와 대적할 수는 없었다.

남부 지역이 남주와 남한으로 크게 갈라져 대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제태국이 있는 북서쪽은 홍건적이나 지방의 호족들이 왕이라 칭하며 많은 신진 세력들이 등장했다.

상해 서쪽의 서중문(西中門)에 헌강왕이 보낸 사신이 도착했다. 마침 서중문에서 석축 공사 계획을 검토하고 있던 김신완 총통은 사신을 성문의 누각에서 만나게 되었다.

“헌강 폐하께서 태왕폐하께 보내는 선물입니다.”

“선물이 너무 과하군요.”

소주 출신이라는 미녀 2명과 한혈마 10필을 보내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상자를 가져왔다. 태왕께 보내는 선물이라니 거절할 수 없어 답해 주었다.

“헌강왕 전하께 고맙다고 전해 주시오. 선물은 봉황성으로 바로 보내지요.”

김신완 총통의 이런 응수에 사신은 뭐가 문제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흠! 나라 명칭은 물론 황제라는 칭호도 거북하다는 뜻이군.’

협상을 성사시켜야 하니 사신은 김신완 총통의 이런 응수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즉시 자신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곡물 교역을 요구했다.

“그동안 돈독하던 양국의 우의를 생각해서 쌀이나 기타 곡물을 보내 주시오. 곡물의 구입 대금은 금괴로 결재하겠습니다.”

이미 남경의 사정이 어찌 되어가는 지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미룰 이유는 없었다. 대진국으로는 남한이 남주를 먹어 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태왕폐하의 대륙의 외교 방침은 명나라가 망했으니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져 계속해서 서로 다투기를 원했다.

“알았소. 사정이 급하다니 식량을 보내드리죠. 대신 소주지역에서 인부를 보내 주시오. 운하와 접한 제방이 너무 약해 보강하려고 하니 협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인부를 모아서 보내 드리지요.”

“여름에도 공사해야 하니 서두르세요.”

결국 김신완 총통은 남경 세력이 많이 약화되자 그제야 다시 교역하기로 결정했다. 장강 하구에 위치해 드디어 대륙의 흐름을 약간 조정하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총통은 태왕 지침에 따라 남의 나라 위기를 틈타 철저하게 실리를 챙기는 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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