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자금성으로 돌아가던 최인범은 최복동의 보고를 받았다. 그동안 조사한 사실을 소상하게 밝힌 것이다. 보고를 받던 최인범은 문뜩 호국사찰의 주지스님도 의심스러웠다.
“최 원장, 짐이 보기에 주지스님도 한 패거리라는 느낌이 드는군. 더구나 호국사찰의 중들이 건장한 체구를 지녔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고. 즉시 군사들을 동원해 호국사찰을 포위하고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해. 드나드는 불자들도 모조리 체포하고.”
“넷!”
흔히 썩어도 준치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잘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거대한 대륙을 통치하던 명나라 황실이 그동안 아무리 엉망으로 통치했어도 그들의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분명 잔존세력들은 황실의 재물을 숨겨놓고 뭔가 모의하는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재물이란 저승의 귀신도 부린다는 말을 진리로 아는 명나라 사람들이라 재물이 많다면 무슨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
“최 원장, 그놈들이 아직도 뭉쳐서 지내는 것을 보면 분명히 숨겨놓은 황실의 재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 반드시 찾아내도록 하시오.”
“명을 받들겠나이다.”
지시를 받은 최복동을 급하게 부하들을 데리고 호국 사찰로 향했다. 그는 기마병들과 같이 호국 사찰에 있는 주지스님은 물론 중과 사찰을 찾아오는 불자들까지 모조리 검거해 자금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금성으로 끌려와 임시로 만든 수용시설이나 또는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다. 특히 뭔가 의심이 나는 건장한 중들은 모조리 지하 감옥으로 보냈다.
자금성의 지하에는 명나라의 환관들이 운영하던 동창에서 사용하던 감옥이 있었다. 비록 지상 건물은 화재로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지하시설은 온전했다.
지하 시설에는 조사실이나 고문실 그리고 지하 감옥이 있었다. 해자와 연결된 지하 감옥에는 커다란 웅덩이도 있었다. 웅덩이에는 대형악어들이 사육되고 있었다.
온천수를 끌어들여 온도를 유지하고 뜨거운 욕조물이 흘러들어오는 하수구가 별도로 있어 악어들이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악어를 키워서 뭐를 하려고 한 거지?”
“아마도 위협을 가하려고 무섭게 생긴 대형악어를 키운 것 같사옵니다.”
“해자로 통하는 수로를 열면 해자에서 악어들이 살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한 번도 없었다니 일단 이곳에서 키우다 나중 해자로 보내려고 계획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인범은 북경을 점령하고 자금성에서 지내고 있지만 처음으로 지하 시설을 돌아보았다.
최복동에게 넌지시 물었다.
“국가정보원의 서경 지부에서 지하시설을 모조리 사용하나?”
“넷!”
이런 대답에 최인범은 조금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이런 시설을 국가정보원에서 사용하는 줄 알면 관료들이 국가정보원장이 너무 겁나서 절절 매겠어.”
“폐하, 죄를 지은 놈이나 겁나지. 정직한 관료야 이런 시설이 있어도 하나도 겁내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소. 명나라의 동창 조직도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운영하다가 나중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리는 이상한 조직으로 변했지 않소. 그러니 이런 초법적인 시설을 국가정보원의 서경지부에서 관리한다면 말썽이 생길 수 있으니 앞으로 시설은 모두 황실로 넘기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나이다.”
최인범은 지하감옥 시설은 나중에 술 저장창고로 사용할 계획이다. 포도주나 또는 오래 숙성시키면 맛이 좋은 인삼주나 또는 각종 과일주를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기왕에 있는 시설이니 파괴하지 말고 잘 활용하면 좋겠어.’
지하 감옥에는 여전히 수많은 죄수들이 있었다. 작은 감옥 칸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부분 수감기록에 강간, 살인 등 흉악범으로 기록된 사형수들이라 북경을 점령하고 그대로 놔두었다.
최인범은 가정제와 왕 황후를 찾으며 남쪽에 건설되는 천리장성이 어느 정도 건설되면 봉황성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제태국에 건설되는 산동장성과 산동 운하 역시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떠날 생각이다.
‘우선 확실하게 안정된 것을 봐야하니 더 머물러야 돼.’
이렇게 판단하고 최인범은 경호 실장에게 지시했다.
“오늘부터 죄수들을 개별로 재판을 다시 시작할 것이니 준비해.”
“넷!”
“경호 실장은 검사 역할을 수행하고 짐은 주심인 재판관, 두 비서관은 배석 판사로 3인의 합의체인 판결을 내릴 것이니 명나라 포로들 중에서 가정제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관료로 10명을 불러서 죄인들의 변호를 담당하도록 준비해.”
“넷!”
“판결은 지금은 전시 상황이자 계엄령이 선포된 서경직할시라 단심이니 사건을 보다 정확하게 조사해서 공소장을 다시 작성해 재판에 임하도록.”
“명심해서 거행하겠습니다.”
“적용하는 법령은 대명률과 대진국 법령을 참고해서 공소장을 새로 작성해.”
“넷!”
이날 이후 지하시설에서는 비공개로 죄수들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경호 실장은 경호실 요원들을 총동원해 죄인들의 범죄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대부분 동창에서 남긴 기록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지하 감옥으로 들어와 있었다.
“죽일 놈들이야. 어찌 재물이 탐이 난다고 해서 죄가 전혀 없는 선량한 상인을 역적으로 몰아넣고 재물을 압수하고 사형수로 만들다니.”
“권력이란 본시 그런 거죠.”
물론 죄수들 중에는 진짜로 흉악한 살인이나 강간죄를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재판장의 참관인들은 모두 호국사찰에서 잡혀온 불자들이나 스님들이다.
제일먼저 재판을 받게 된 죄인은 노비로 주인의 어린 딸과 주인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중죄를 저지른 놈이다.
경호 실장은 공소장을 읽고 나서 최종적으로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자 명나라 관리 출신이 변호했다. 죄인은 노비로 주인에게 너무 핍박을 받고 살았던 점을 참작해 선처를 베풀어 사형은 면해달라고 했다.
최인범은 두 비서관의 의견을 물었다.
“어떤가? 힘들게 살았으니 죄를 감해 줘야 하나?”
“아닙니다. 그런 정도 핍박을 당한 사실로 딸과 부인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사형을 집행해야 되옵니다.”
“저도 사형에 동의합니다.”
배석 판사들인 비서관들도 모두 사형을 원하자 최인범은 즉시 명령했다.
“효수! 즉시 집행 해.”
단오하게 명령을 내리자 옆에서 기다리던 태씨 형제들이 언월도로 죄인의 목을 댕강 잘라버렸다. 잘라진 머리는 즉시 긴 대나무 장대에 걸려 자금성 밖의 오문 앞에 세워졌다. 장대에는 커다란 천으로 죄인의 이름과 죄목이 적혀 있었다.
목이 잘라진 몸뚱이는 대형 악어가 사육되는 연못으로 던져졌다.
풍덩! 푸다다닥! 아지직!
죄인의 몸은 붉은 피를 품으며 악어 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아무리 죄인으로 사형되었다고 해도 악어의 먹이로 주는 것은 너무 잔인했다.
‘흐읍! 겁나는 분이군.’
참관인으로 재판정으로 나와 이런 장면을 목격한 스님들이나 불자들은 다들 기겁했다. 그들은 급하게 손 모아 합장하며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최인범은 하나하나 자세하게 살피며 재판을 계속 진행했다. 재판을 빨리 끝내기 위해 진짜 흉악범부터 재판은 진행되었다. 그래서 10명이나 되는 죄인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쯤 되자 스님과 불자로 구성된 참관인이나 또는 변호를 위해 참석한 명나라 사람이나 다들 겁이 나서 벌벌 떨었다. 이건 재판을 공정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진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들의 지은 죄를 스스로 자복하라는 노골적이면서도 은근한 협박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낀 것이다.
덜덜덜.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뭔가 중요한 죄를 저지른 처지다. 겁나는 광경을 목격하자 죽어가는 죄인들의 모습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들 겁을 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최인범은 지시를 내렸다.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은 다른 죄인을 재판장으로 부르도록 해.”
“넷!”
참관인들은 겁에 질려 급하게 검사나 변호사를 만나 애걸했다. 모든 죄나 비밀을 자백할 것이니 죽음은 면하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어차피 죽여야 하는 중죄인을 잔악하게 처리함으로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보고 있었다.
최인범은 재판이 끝나고 나서 지하 시설에서 쉬고 있었다. 바로 옆방은 죄인들을 고문하는 고문실이지만 이곳은 아주 편안하고 푹신한 침대가 있는 침실이다.
‘여긴 도대체 누가 사용하던 곳이야. 너무 화려한 고급 가구로 치장했어.’
최인범은 석벽을 더듬어 가며 살폈다. 글씨들의 적혀 있던 흔적들이 보이자 불빛을 가져가 살폈다. 이곳을 다녀간 죄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어서 그랬는지 이름들이 까만 숯검정으로 작게 적혀 있었다.
‘어라, 삼수도 여기에 있었네.’
그런데 백삼수(白三水)수라고 적혀 있어야 하는 글씨가 백삼수(伯三首)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일 수 있지만 백삼수는 이곳에 들어와 왕 황후와 놀아나다가 죽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니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백삼수가 뭔가 의미를 남기기 위해 이렇게 적어 놓은 것 같았다.
항상 뭔가 비밀스러운 장치를 만들어 숨기기를 좋아하던 백삼수다. 어쩌면 중요한 뭐를 숨긴 장소를 나타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놈이 그냥 곱게 죽을 놈은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벽을 살살 두드려 보았다.
탁! 탁!
딱딱한 석벽이라 둔탁한 소리만 들렸다. 그러나 백삼수의 행실을 너무 잘 아는 최인범은 집요하게 벽을 두드렸다.
팅! 팅!
안이 비어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인범은 벽돌을 조심스럽게 대검으로 파서 꺼내게 되었다. 벽돌을 꺼내자 그 안에는 작은 서책이 들어 있었다.
“흠! 백삼수가 일기를 썼군.”
자금성에 들어온 백삼수는 처음에는 야심찬 미래를 적어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고 또 태왕인 자신을 배신한 것이 제일 후회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중에 왕 황후가 자신을 해할지 모른다고 느꼈군.’
그래서 그런지 자신은 의형인 태왕에게 지은 죄가 커서 목이 3번은 달아나야 하는 너무 큰 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그래서 백삼수(伯三首)라고 개명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놈도 결국 죽을 무렵에는 개과천선했어.’
서책의 후반부에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최인범은 자신과 백삼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서책을 읽었다.
드디어 백삼수가 명나라로 와서 지내던 기록을 읽던 최인범은 기겁하고 놀랐다.
‘허, 이런 일이 있었다니. 기가 막히는군.’
너무 황당한 사건이 자세하게 적혀 있으니 더 이상 서책을 볼 수가 없었다.
부들부들.
너무 열불이 나서 머리에서 김이 풀풀 품어질 지경이다. 전혀 상상해보지도 않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죽은 자가 거짓을 적지는 않았을 것이라 느낌이 들었다. 미칠 것 같아서 머리가 띵해지고 너무 어지러웠다.
백삼수는 죽으면서 자신에게 풀기가 매우 난해한 큰 화두를 던져 놓았다.
‘썩을 놈, 곱게 죽지 않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