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어느새 따스한 봄이 돌아와 산과 들의 메마른 대지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고 계곡에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봄이 되자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쟁포로들이다. 대진국에서 나름 배려를 해서 이동용 천막과 모포를 제공해 주었지만 밤에는 추위로 견디기 힘들었다.
“아직도 밤에 조금 춥기는 하지만 해동되어 전보다 지내기가 편하군.”
“자네 딸은 대진국으로 시집을 둘이나 가서 자네도 대진국으로 들어가 살 수 있지 않나?”
“그렇지 않아. 딸을 3명 대진국으로 시집을 보내면 대진국에서 국민으로 받아 주지만 전에 군인으로 요동을 갔던 전적이 있어서 1년간 이곳에서 성곽 공사장에서 노역해야 돼.”
“그런가? 나는 딸을 2명만 시집보내면 대진국의 국민으로 받아 주는 줄 알았는데.”
“자네는 관청에서 내거는 공고문을 잘 읽어보지 않고 사는군. 딸을 2명 시집보내면 조정에서 지목하는 곳으로 이주할 수 있다네. 그리고 3명을 시집보내면 원하는 곳으로 얼마든지 이주가 가능하고.”
“그런가? 조정에서 지목하는 곳은 어딘데?”
“멀리 동쪽 끝의 동경직할시가 있는 연해주 지역이나 또는 북경직할시가 있는 흑룡 강 지역으로 이주하면 돼.”
북경지역 즉 서경직할시에는 조선출신들이 이사를 와서 거주하게 되고 전쟁포로로 잡힌 사람들 중에 딸을 대진국으로 시집을 보낸 사람은 별도로 국민으로 받아주는 조치가 내려졌다.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이 완전히 대진국으로 흡수되자 명나라는 우후죽순 격으로 사방에서 도적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대부분 홍건적이라고 부르는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쓴 도적들이다.
그런 홍건적 중에는 커다란 성을 차지한 큰 무리가 있고 그들은 어김없이 왕이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명나라는 이제 전국 시대와 같이 변하고 있었다.
“명나라에서 살다가는 어떤 무리에 죽어갈지 모르니 대진국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야.”
어떤 법이고 법망의 허점이 있었다. 대진국으로 이주하려는 재력가들은 급하게 황하 주변에 흔하게 있는 노예시장으로 가서 소녀들을 매입했다.
“얼마요?”
“요즈음은 가격이 올랐소. 말 한 필 가격을 주시오.”
“너무 많이 올랐군.”
한창 피난민이 황하로 밀려올 때는 말 한필 가격이면 예쁜 소녀들은 4명씩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대진국에서 새로운 이주 자격을 발표하자 소녀들의 가격이 빠르게 올랐다.
소녀들을 사서 자신의 딸로 입적해 대진국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고 자신도 이주하는 것이다. 수양딸을 3명 시집을 보내고 이주 신청을 했으나 문제가 발생했다.
“친 부모가 아니고 수양딸을 시집보낼 경우에는 한 사람만 이주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부부와 가족이 집단으로 이주하려면 최소한 10명의 수양딸을 대진국으로 시집을 보내야 됩니다.”
“예?”
결국 이미 수양딸을 시집보내고 이주하려고 벼르던 명나라 사람은 별수 없이 또다시 7명의 소녀들을 매입해 대진국으로 시집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명나라의 15-16세인 여자들은 일시에 대진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대부분 15세나 16세를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대진국의 남자들이 대부분 어린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더 어릴 경우에는 혼인하려면 16세가 되도록 기다려야 하고 초등학교를 보내 줘야 하니 15-16세 정도가 제일 좋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16세가 넘는 처녀를 선택하지 왜 15세를?”
“그야 말을 조금은 해야 혼인을 허가해주니까 말을 배워야 하는 기간이 필요하지.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조금 복무할 기간도 남았고.”
조선이나 여진 그리고 몽골 그리고 한족들은 모두 가부장적인 제도를 채택한다. 그 때문에 아비의 혈통에 따라 종족을 구분한다.
결국 시장의 원리에 따라 수요가 많아지게 되어 15-16세의 여자들 매매가격은 대폭 올랐다. 특히 미모가 뛰어난 15살 정도의 처녀들의 경우는 가격이 급상승했다.
대진국의 대련에서 지내던 소피아 황비는 다시 천진으로 오게 되었다. 요동지역은 물가가 안정되어 사업을 벌여야 큰 이득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에 천진에서 운영하던 발해 여각을 비롯한 발해 상단을 다시 운영하기 위해 오게 되었다. 천진에서 소피아를 만난 최인범은 약간 불만스럽게 말했다.
“황비, 이제 사업은 그만 두고 봉황성에서 지내지. 왜 또 이곳에서 사업을 벌이려는 거요?”
“폐하, 제가 사업을 또다시 대대적으로 벌이려는 것은 친정인 타타르 왕국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타타르 왕국도 청해성까지 진출했으니 전보다는 살기가 좋아졌지 않소?”
“폐하, 그야 그렇지만 아직도 그곳은 소금이 부족해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발해 만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대량으로 보내려면 제가 천진에서 사업을 벌여야 하옵니다.”
오래전부터 만리장성 남쪽을 지나는 사막의 비단길이라고 불리던 무역 로가 있었다. 소피아는 그 길을 따라 소금, 비단 등을 타타르 왕국으로 보내면서 그곳을 통해 페르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가져와 이득을 보겠다는 계획이다.
“설마, 직접 무역하러 다니지는 않겠지?”
“폐하, 그건 염려 마세요. 제가 직접 가지는 않습니다.”
소피아 황비가 천진에서 머물겠다고 하자 결국 그녀가 기거할 곳은 북경의 자금성으로 정해졌다.
“자금성을 다시 복원할 것은 없고 남은 건물만 대충 수리해서 사용하시오. 지역방어사령부는 외성을 사용하고 내성은 그대가 사용하면 충분할 것이오.”
“그렇게 하죠.”
대규모로 상단을 운영하려면 마치 군대와 같은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물품을 보관할 창고나 말이나 낙타등도 많이 보유해야 하니 큰 공간이 필요했다.
“황비는 자금성의 북문을 통해 거래하면 되겠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렇게 되어 자금성은 건청문까지는 배도치가 서남부 방어사령부로 사용하게 되었다. 북쪽의 건청궁이나 기타 동궁과 서궁은 모조리 소피아 황비가 발해 상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소피아 황비는 태왕에게 타타르 왕국과 교역하라는 허락을 받자 정작 다른 사업을 추진했다. 소금이나 비단도 모아 두지만 전혀 엉뚱하게 어린 소녀들은 대대적으로 매입했다.
타타르 왕국으로 갔던 연타발이 대규모로 상단을 이끌고 도착했다.
“황비마마, 소신 문안드리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소.”
“소신이 너무 무능하여 북경 점령에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해 정말 송구하옵니다.”
“메뚜기 떼의 습격 때문에 그리 된 것을 폐하께서도 이미 아니니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이제 무역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으니 필요한 것을 말해 보시오.”
“마마, 타타르 왕국은 영토가 넓어졌지만 사람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요?”
청해까지 점령한 타타르 왕국은 여전히 인구가 부족했다. 그래서 소피아 황비는 태왕께는 소금을 보낸다고 하며 명나라에서 소녀들을 타타르로 보내고 대신 그곳에서 타타르 여자들을 데리고 올 계획이다.
“포로수용소와 황하로 가면 소녀들이 많으니 빨리 매입하도록 하시오.”
“넷!”
“필요하면 소년들도 사서 데리고 가시오.”
소피아 황비는 다른 황비에 비해 같은 출신들이 대진국에 너무 적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타타르 출신을 늘리려는 것이다. 타타르 출신들은 태왕이 좋아하는 몸매나 얼굴을 지닌 백인과 혼혈인 여자들이 많았다. 그 영향으로 대진국의 고관들도 타타르 출신인 여자들을 매우 좋아하는 경향이 많았다.
연타발을 굳이 멀리 황하에 가지 않고도 많은 소년 소녀를 매입했다. 그래서 천진에서는 소금을 싣고 북경지역에서는 비단을 매입하고 소년소녀들을 데리고 타타르 왕국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에 소피아를 만나 그녀의 지시를 받았다.
“왕국으로 돌아가면 페르시아 출신이나 천축국 출신인 미녀들을 구해 오시오.”
“넷!”
연타발이 서쪽으로 떠나자 소피아는 발해 상단의 행수들에게 지시했다.
“우선 천진에서 황하까지 교역 법위를 넓이도록 하세요. 그리고 조양으로 가는 상단도 별도로 운영하고.”
“넷!”
소피아가 많은 자금을 투입해 발해 상단을 운영하자 서경직할시 지역은 활기차게 경기가 살아나 활기차게 변하고 있었다.
명나라의 자금성은 이미 많은 건물이 불탔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건물에는 여러 기관들이 입주해 사용하고 있었다.
대륙의 정보를 수집하는 국가정보원 지부 사무실도 이곳으로 들어와 업무를 보고 있었다. 특히 직할시는 화폐를 발행하기 때문에 조폐창의 지부사무실과 공장도 들어섰다.
깡! 깡! 화르륵! 화르륵!
커다란 화덕에는 명나라 군대에게서 회수된 무기들이 녹고 있었다. 대진국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이외에는 모조리 녹여서 화폐 생산에 사용되고 있었다.
최인범은 이곳에 들려 의외로 화폐 주조량이 많아 공장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왜. 화폐 주조량을 늘리나?”
“폐하, 제태국에서 무역거래를 하며 자신들의 화폐나 금괴 은괴 대신으로 대진통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곳으로 보내려고 대진통보의 제조량을 늘리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도 앞으로 쌀 대신으로 화폐로 받길 원해 필요량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포로들도 화폐를 선호하다니 이제 배가 부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동안 너무 후하게 식량을 준 것 같습니다.”
명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리는 현상이 벌어지자 은본 위주인 명나라 화폐는 이제는 쓸모가 없는 화폐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대진국의 화폐인 대진통보가 명나라 북부지역이나 제태국의 공용화폐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흠! 나라의 경제 규모가 너무 방만하게 늘어났어.’
물론 화폐를 발행하는 원가에 비해 가치가 더 높으니 손해 보는 사업은 전혀 아니다. 최인범은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조폐창의 제조공장을 떠났다.
소피아가 자금성의 교태전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그녀와 같이 지내며 새로 영토에 편입된 서경직할지 지역을 돌아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건설하는 천리장성의 안쪽과 밖은 전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국경선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변했다.
척계광 비서관이 감리감독을 하는 성곽 공사장을 돌아보았다. 공사장 서쪽이나 남쪽에는 한창 농민들이 파종하고 있었다. 대부분 소나 말을 이용해 파종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파종을 끝내고 있었다.
“역시 조선출신들이 부지런해.”
“그렇습니다. 조선에서 이주한 농민들은 제가 보기에 일하다가 죽을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밭에서 일합니다.”
좁은 토지에서 농사를 짓던 조선출신들은 부지런히 일했다. 봄 파종만 무사히 마치면 앞으로 자신이 국가에서 싼 임대료만 받고 농토를 빌려 준다고 하자 부지런히 파종하고 있었다.
‘이번에 파종만 무사히 끝내면 서경지역도 식량이 부족하지는 않겠어.’
모든 일들이 예정대로 모두 잘 돌아가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사라진 가정제의 행방을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한편 국가정보원장인 최복동은 자금성 내에 지부사무실을 내고 대련에서 가동하던 정보 조직을 모조리 이전시켰다.
정보조직이 구성되자 본격적으로 서경직할시지역의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태왕께서 신경을 쓰는 가정제와 왕 황후의 행방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최복동은 사무실 근처에 있는 화폐 제조공장으로 가서 외부에서 수집해 오는 은괴와 금괴를 살폈다. 혹시 황궁에서 사용하던 패물이 흘러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도피하고 있다면 분명히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패물을 유출시킬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