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산해관을 떠날 때는 무려 50만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남아 있는 군대는 10만명에 불과했다. 일부는 이미 탈영해 멀리 달아나 버리고 일부는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총병관인 원세창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후우! 거의 전멸한 셈이군.”
부관은 다소 다급한 표정으로 권했다.
“총병관님, 빨리 산해관으로 가야 됩니다. 늦으면 협공 당하게 생겼습니다.”
“부관 산해관도 대진국의 군대가 지키고 있으니 갈 수도 없지 않나?”
너무도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요동정벌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이대로 머물 수는 없었다. 이제는 사방으로 대진국의 군대에 포위된 형국이다. 무리하게 외국을 침범한 죗값을 톡톡히 치루는 중이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공연히 군사들만 죽였어.’
심양으로 가서 화끈하게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했다면 이런 비참한 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으로 정말 치욕스럽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벌인 것이다. 군사력이나 또는 전략에서도 대진국에게 한참이나 뒤진 명나라다. 적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다는 것이 큰 실수다.
이미 군량미도 떨어져 가고 있으니 원세창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지휘관들은 모두 모여.”
“넷!”
잠시 시간이 지나자 지휘관들이 모여들었다. 원세창은 10만명의 병사들이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우리의 요동 원정은 실패했소. 그리고 산해관도 이미 봉쇄되었고 북경도 점령당해 패하께서는 사망했다고 하니 항복합시다.”
이런 말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군이 나서며 건의했다.
“총병관님, 산해관을 공격해보면 어떨까요? 우리에게는 아직도 10만명의 군대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부하의 말에 원세창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것도 어렵네. 이미 군량이 모두 떨어진 상황이라 산해관으로 가서 며칠은 굶은 병사들을 어찌 데리고 전투를 벌인단 말인가?”
“총병관님, 말을 잡아먹고 한 번 공격해 봅시다.”
“아니요. 북경을 점령당한 처지라 더 이상 무모하게 대진국과 전투를 벌일 필요가 없소.”
장군들 중에 일부는 말을 모조리 잡아먹고 힘을 내서 산해관에서 일전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장군들은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추운 겨울에 식량도 없고 입고 있는 옷들도 허접했다. 겨우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중이다. 무엇하나 가진 것이 없는 상황이라 마지막 결전을 포기한 것이다.
산해관으로 가서 태왕께 항복하기로 결정하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화포와 탄약 등 무거운 무기는 모조리 금주에 내려놓읍시다. 비게 된 우마차에는 부상자를 싣고 산해관으로 떠납시다.”
일방적으로 후퇴를 했지만 가끔은 후미에서 교전이 벌어져 부상자가 많았다. 그리고 전쟁이 아니더라고 동상에 걸린 환자들도 많았다.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어 같이 이동 중이다.
부하들도 이제 항복만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끝까지 나를 따라주어서.”
원세창은 지휘관들이 자신의 뜻에 동조하자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관은 금주에 남아서 우리의 항복 의사를 뒤에서 추적해 오는 대진국의 장수에게 전해.”
“넷!”
아직 많은 군사가 남았다고 하지만 도저히 대진국의 막강한 군대를 상대할 수 없으니 전투를 포기한 것이다. 서북쪽의 조양에는 3만명이나 되는 기마병이 포진해 있다. 그리고 동쪽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군대가 요하를 건너 서서히 압박해 오는 중이다.
공연히 대적하려고 객기를 부리다보면 전멸당할 위험성이 높았다. 금주는 항구도시라 언제 대진국의 막강한 해군 함정이 공격해 올지 모른다.
“포로로 잡히더라도 고향에서 하는 포로 생활하는 것이 나을 거야.”
“들리는 소문에는 성만 쌓으면 모두 고향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그 소문을 믿어 보자고.”
금주에서 산해관으로 가려면 반드시 해변과 가까운 도로를 따라 이동해야 된다. 발해 만에는 수많은 대진국의 해군 함정이 활동 중이다.
해변과 가깝게 이동하게 되면 반드시 공격당하게 된다. 그래서 해변과 다소 떨어진 곳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전투를 포기한 상태에서 필요 없이 희생자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명나라의 10만명의 군대가 금주를 떠나 산해관으로 향하자 이런 소식은 빠르게 사방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다소 느리게 금주로 진격하던 권철이 이끄는 기마병들도 진군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금주로 빨리 이동해.”
“넷!”
금주에 도착한 권철은 남아 있던 부관을 만났다, 항복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항복하려면 여기서 기다려야지 산해관으로 왜 이동하나?”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어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민간인들도 같이 이동하기로 결정해 산해관으로 떠난 겁니다.”
권철을 적이 기만전술을 펼칠 수 있다고 판단해 기마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나라 군대의 뒤를 따라 진격해.”
“넷!”
한편 명나라 군대는 금주와 주변에서 살던 민간인들도 같이 이동했다. 그 때문에 10만명이던 사람이 30만명으로 불어나 산해관으로 향했다. 남아 있어도 전쟁포로고 산해관으로 가도 전쟁포로 신세다. 그래도 본시 살던 남쪽으로 가서 사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이동하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는 이제 군인이 아니다. 무기도 모조리 버려 그저 피난민과 같이 이동하는 굶주린 패잔병일 뿐이다. 그 때문에 무질서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원세창이 직접 이끄는 직할 부대의 2만명 정도면 그나마 질서를 지켜 이동했다. 그러나 후방지역에서 척후병이 달려와 대진국의 기마병이 온다고 보고하자 질서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빨리 산해관으로 가자.”
“넷!”
원세창은 산해관으로 가서 태왕을 직접 만나 항복할 계획이다. 태왕은 비록 적이지만 필요할 경우가 아니면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다른 장군들에게 항복하면 어찌 될지 모르지만 태왕을 만나 항복하면 죽이지는 않을 거야.”
“총병관님, 그건 소문에 불과하지 않나요? 혹시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 포로로 잡히면 강제 노역을 시키겠지만 무모하게 사람을 죽이는 군왕은 아니야.”
원세창은 태왕이 명나라에서 활동하던 때의 행적을 너무 잘 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원수라고 해서 무력을 동원해 살해할 만한 사건들이 많았었다. 그런 때마다 원수를 용서해 주고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었으니 덕을 베푸는 성품이라고 판단해 기대해 보는 것이다.
원세창은 심복부하를 불러 항복한다는 서찰을 넘겨주며 명령을 내렸다.
“산해관으로 가서 태왕폐하께 직접 전달해!”
“넷!”
전쟁에 승리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항복하려고 가는 길이라 병사들은 다들 힘이 하나도 없었다.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무겁기만 했다.
한편 산해관에서 살던 명나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천진이나 북경으로 이주했다. 살던 곳을 떠나 이주하게 된 이유는 모두 전쟁포로가 되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 천진과 북경 그리고 천진과 산해관을 연결하는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장소는 그뿐만이 아니다.
석탄의 생산하는 당산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원된 사람들은 대부분 직접 갱도로 들어가지는 않고 외부에서 광산과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측근들과 같이 광산을 방문한 최인범은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북경이나 천진은 모두 석탄으로 난방이나 기타 연료로 사용하게 되니 생산량을 2배로 늘리도록 해.”
“명을 따르겠나이다.”
“고령토 생산도 늘리고.”
“넷!”
이곳은 고령토가 많이 매장되어 있어 고대로부터 우수한 도자기를 생산했다. 그래서 도자기산업이 매우 발달된 곳이다. 광산도 많지만 과수나무도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지금은 포로지만 여기서 일하는 광부들은 나중에 모조리 대진국 국민으로 등록시켜 주도록 해.”
“넷!”
석탄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힘든 생활을 하는 광부들에게는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 포로로 구분되는 명나라 사람들 중에 기술자들은 대진국의 국민으로 받아 주기 때문에 광부들도 기술자라고 포함시킨 것이다.
“북경에서 챙긴 재물을 이곳으로 투입해.”
“명을 따르겠나이다.”
최인범은 만리장성 남쪽의 북경, 천진, 산해관, 당산을 모두 서경직할시 구역으로 포함시켰다. 명나라의 경제, 문화, 정치, 군사의 중심이던 이곳의 기능을 대폭 축소해 서남부를 지키는 군사지역으로 존립하도록 결정했다.
당산 지역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내리고 나자 다시 산해관으로 오게 되었다.
척계광이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산해관으로 도착했다.
“폐하, 3만명을 인솔해 산해관에 병사들을 배치했사옵니다.”
“수고 많았군. 산동에서도 잘 마무리했고.”
최인범은 측근들과 같이 이곳의 방어나 기타 현안들을 논의하고 있었다.
대련에 있던 최복동도 산해관으로 와있었다. 그가 산해관으로 오게 된 이유는 명나라의 가정제와 왕 황후의 정확한 행적을 몰라 그들을 수배할 필요성 때문이다.
“폐하, 장안으로 갔다고 하던 가정제는 정보원에서 조사한 결과 소문에 불과합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갔다는 건가?”
대진국에서 거용관을 통해 북경으로 진군하는 순간. 자금성에서 사라진 가정제와 왕 황후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움직인 것 같은데 행적을 전혀 알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상금을 걸어도 정확하게 제보하는 사람이 없나?”
“넷! 아직 없사옵니다.”
혼란한 와중에 변장하고 북경을 벗어난 것은 확실하지만 그 후의 행적은 알 수 없었다.
산해관의 천하제일문에서 북쪽을 살피는 와중에 원세창이 보낸 부관이 도착했다. 항복한다는 서찰을 가져온 부관을 보며 물었다.
“산해관으로 와서 항복한다고?”
“넷! 높으신 덕으로 저희들을 용서해 주세요.”
전쟁을 벌이기보다 항복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척계광에게 명령을 내렸다.
“척 비서관이 원세창을 만나서 구체적으로 협상해.”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