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최인범은 마치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산해관으로 몰려오는 피난민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련에서 척계광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넷! 아직 도착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하옵니다.”
처음 계획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척계광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대련에 주둔 중인 정규보병 사단 3개로 구성된 군단을 천진으로 이동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전함이나 또는 전투함 그리고 보급선이나 화물선을 동원해 병력을 이동시키려니 늦어지고 있었다. 기마병으로 3만명에 불과하니 산해관에서 후퇴하게 될 명나라 대군을 막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3만명의 보병군단을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북경이나 또는 천진을 국경으로 정해 방어선을 구축하려면 더 많은 병력이 와야 된다. 그래서 추가해서 명령을 내렸다.
“모든 화물선도 동원해서 군대를 이동시키도록 전해.”
“넷!”
이미 탈영병이 속출하는 명나라 군대라 6만명 정도라면 충분히 만리장성을 방어벽으로 사용해 저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명나라 군대와 알탄 칸의 기마병이 다시 합쳐져 산해관을 공격할까 은근히 걱정이다.
“조양으로 도망친 알탄 칸이 문제야.”
“폐하, 너무 염려 안 해도 될 것입니다. 바보가 아닌 알탄 칸이니 전세가 이미 기울어 버렸다는 것을 아니 아마도 자신들의 부족이 있는 서쪽으로 도망칠 것입니다.”
전쟁이란 변수가 너무 많아 안심할 수는 없었다. 경계를 철저히 하며 산해관에서 척계광이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북경에 있던 배도치가 와서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폐하, 기마병들 중에 혼인을 하지 못한 병사들이 명나라 여자와 혼인하길 원합니다.”
“뭐라? 왜 명나라 여자와 혼인해? 조선 여자를 데려와 혼인하게 해준다는데.”
“폐하, 사실 조선에서 오는 여자야 그저 무작위로 데려오기 때문에 미모가 조금은 떨어집니다. 그래서 기마병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직접 여자의 얼굴을 보고 미인과 혼인하고 싶어 하옵니다.”
배도치의 말에 최인범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근위기마병도 이제 배가 부른 돼지가 됐나? 무슨 여자의 미모를 따지고 그러나?”
“폐하, 사실 사내라면 미인과 살고 싶은 거야 본능이죠. 그러니 병사들의 소원을 들어 주세요.”
“알았어, 북경을 점령한 공로가 있으니 원하는 여자와 혼인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겠지. 대신 혼인할 여자는 한 명씩만 고르도록 해.”
일부다처제를 택하는 대진국이라 혹시 여러 여자와 혼인한다고 할 수도 있어 규칙을 정해 주었다. 조선에서 여자들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다는 것도 무리다. 자신이야 조선출신들이 앞으로 이곳에서 정착하길 원해 그런 방법을 선택했지만 조선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선에서 여자들을 보내라고 하면 내 속을 곡해해서 심하게 반발 할 지도 모르니 차라리 명나라의 미녀들과 혼인하게 놔두는 것이 좋아.’
태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3만명의 기마병들은 처가 있으나 없으나 다들 포로수용소로 가서 마음에 드는 미녀들을 고르고 있었다.
한편 대진국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은 알탄 칸은 급하게 도망쳐 조양에 도착했다. 10만명인 부족민을 데리고 가다가 겨우 2만명의 기마병과 3만명의 부족민만 데리고 도망쳤다.
“찢어 죽일 놈, 자마카가 나를 배신하다니.”
“칸, 여기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대진국의 기마병과 자마카 기마병이 조양으로 진군하고 있사옵니다.”
“끙! 놈이 나를 잡으려고 하는군.”
“칸! 속히 조양을 버리고 서쪽으로 가야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그나마 퇴로가 차단될 수 있사옵니다.”
“알았어.”
믿고 있던 부하인 자마카에게 배신을 당하자 알탄 칸은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화가 난다고 해서 자마카나 대진국과 정면으로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다.
명나라 군대와 협공해 대진국을 차지하려던 야심은 그저 큰 착각이었다. 이미 동맹국이던 제태국은 대진국에게 패해 항복하고 말았다. 들리는 소문에는 군왕인 장관윤은 부하의 배신으로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소문만 무성한 혼란한 시기라 정확한 정보가 아닐 수 있지만 아무튼 제태국은 대진국에게 철저하게 굴복해 군사권까지 대진국의 명령을 따르는 신세가 되었다.
알탄 칸은 서둘러 부하들에게 다시 명령했다.
“조양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자.”
“넷!”
자신의 가족을 모조리 적군에게 넘겨준 상황이나 우선 몸을 피하는 것이 급했다. 자마카는 자신의 직계나 인척인 가족들을 데리고 이동 중이라 그 외에 부족민은 서쪽의 장가구 쪽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조양은 본시 한족과 몽골 족이 뒤엉켜 사는 곳이라 알탄 칸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조양에 있는 가축도 모조리 모아.”
“알겠습니다.”
알탄 칸은 반 강제로 조양에 거주하던 몽골과 한족들을 이끌고 서쪽의 숭덕을 거쳐 장가구로 떠나게 되었다. 추운 겨울철이지만 모두 가축을 데리고 떠나기 때문에 그런대로 이동은 수월했다.
조양에서 살던 사람들 중에 일부는 알탄 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남쪽으로 향했다. 이미 북경이나 산해관이 점령당해 남쪽으로 도망칠 길은 없었다.
소문에는 남쪽으로 가면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니 우선 무작정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 것이다. 스스로 포로가 될 각오로 산해관으로 향했다.
조양에는 그나마 여진족들이 조금 남아 있고 텅텅 빈 도시로 변했다.
두두두두.
자마카의 기마병과 금일여의 기마병이 조양에 도착했지만 이미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버려 전투를 하지 않고 점령할 수 있었다. 자마카는 알탄 칸이 서쪽으로 도망친 사실을 알고 금일여에게 건의했다.
“장군, 나는 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되겠소. 자칫하면 알탄 칸이 역습을 가할 수 있습니다.”
“알았소. 얼른 떠나도록 하시오. 하지만 알탄 칸이 더 서쪽으로 가기 전까지는 북쪽으로 이동하지는 마시오.”
“알겠습니다.”
자마카는 기마병들을 데리고 서둘러 대흥안령산맥 서쪽에서 주둔하고 있는 부족들에게 돌아갔다. 금일여는 연락병에게 지시했다.
“북경에 계신 폐하께 속히 보고해.”
“넷!”
금일여는 부하들을 이끌고 조양을 방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조양에 남아 있는 여진족들도 합류해 임시로 목책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금일여는 조양만 지키라고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쪽으로 진격하지 않았다. 요동 지역으로 진군한 명나라 군대가 퇴각할 틈을 주기 위해서는 금주는 지금 그대로 놔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되니 차분하게 목책만 설치해.”
“넷!”
한편 요하를 넘어 심양 성의 서쪽에 도착해 공성무기를 만들며 준비하던 명나라 군대는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난감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오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유격대가 자신들의 보급품을 불살라 버리며 괴롭혔다. 이제는 전투병들까지 성을 나와 야간에 기습적으로 공격하고 사라졌다.
“총병관님, 이번에는 건초 더미를 불사르고 군마를 탈취해 사라졌다고 하옵니다.”
“뭐라? 보초는 어찌 세웠는데 또 군마를 탈취 당해.”
“너무 빠르게 공격하고 후퇴해 반격하지 못했습니다.”
무려 수십만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왔으니 어딘가는 허점이 나타나게 된다. 더구나 급하게 사방에서 모집해 데리고 온 농민군이라 군기가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기습 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차츰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벌써 사망자가 2만명에 달하고 부상자도 5만명이나 되니 그 나마의 전력도 점점 약화되었다. 시간이 지속될수록 군량미도 부족하니 자신들이 점점 불리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이런 식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여기서 소멸되고 말겠어.”
“총병관님, 북경으로 태왕이 진격했다고 하옵니다.”
“뭐라? 북경을 점령해?”
“그렇습니다. 그리고 폐하나 황후님의 소식은 아직도 모르고 소문에는 모두 죽었다고 하옵니다.”
새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동으로 북경을 대진국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요동으로 진군한 명나라 군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군사들은 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이러다 전설처럼 요택에서 모조리 죽을 지도 몰라.”
“기회를 봐서 탈영을 해야 되겠어.”
원세창은 여기까지 와서 심양 성을 공격해 보지도 못하고 퇴각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수십만의 병력을 데리고 와서 그냥 물러나면 역사에 남는 졸장부인 장군으로 기록될 것 같았다.
고민하던 원세창은 결국 지휘관들을 불러 논의했다.
“준비가 부족하지만 심양 성을 공격해 봅시다.”
“총병관님, 이길 수 없는 전투를 벌여 공연히 병력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병사들을 온전하게 데리고 산해관으로 돌아가야 대진국과 전투를 벌여 북경을 수복하던 아니면 협상이라도 할 여지가 있습니다.”
휘하의 지휘관들은 모두 심양 성의 공격에 난색을 표명했다. 누구 한사람 심양을 공격한다는 지휘관은 없었다. 더구나 후방 지역의 보급 부대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영병이 속출했다.
다들 반대를 해도 철군을 명령하지 않자 참모가 다시 권했다.
“총병관님, 이제 해동이 되면 요하를 건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서둘러 퇴각을 명령해야 하옵니다. 이번 전쟁은 우리가 잘못 판단한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입니다.”
원세창은 후퇴를 떠올리지만 철군작전도 만만치 않았다. 대진국에서 후퇴하는 자신들을 온전히 놔둘 것 같지 않았다.
“지휘관들은 후퇴만 하면 된다고 판단하지만 그것도 쉬운 작전이 아니야. 뭔가 좋은 방법이 있어야 후퇴도 가능해.”
“그렇군요. 대진국에서 우릴 그냥 놔줄리 없겠네요. 더구나 태왕이 북경에 있으니 반격이라도 당할까 염려해 우리가 온전하게 돌아가길 원치 않을 겁니다.”
결국 전방 부대만 동원해 공격하는 척만 하면서 병력을 조금씩 후방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내일부터 공격을 시작하고 철군해.”
“넷!”
다음날 명나라 군대는 허접한 공성무기들을 앞세우고 심양 성을 공격했다.
“와! 와!”
크게 함성을 지르며 높은 탑이나 각종 공성무기를 몰려 명나라 병사들이 성벽으로 달려들었다. 망루에서 이런 모습을 망원경으로 살피던 이지함 장관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허어, 아무리 허접해도 그렇지. 우리에게서 구매해간 화포를 사용하지 않고 고대에서나 사용하는 공성 무기만 동원해 돌격하다니. 너무 어이가 없군.”
와! 와!
명나라 병사들은 크게 함성을 지르고 달려왔다. 그러자 사거리 내로 들어온 명나라 병사들을 향해 매섭게 화포가 발사 되었다.
광! 콰광! 쾅!
“후퇴!”
“후퇴!”
명나라 병사들은 성곽으로 돌진하다가 대진국에서 화포를 쏘면 재빠르게 사거리 밖으로 물러났다. 악착 같이 덤비는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명나라 군대는 계속해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도대체 전쟁을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싸우는 시늉만 하는 전쟁놀이를 하자는 의도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