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서남 국경선과 서경 설치>
나라 간에 벌어지는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두머리인 군왕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수도를 점령하는 행위다. 그러나 북경을 점령했지만 그만 가정제나 왕 황후를 잡지 못하고 고관들을 단 한명도 잡지 못했다.
보통 황제가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가정제는 상당히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혹시 북경에 숨어 있을 지도 몰라.’
이렇게 판단하고 부하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거액의 상금을 걸고 가정제를 찾아 봐!”
“넷!”
거액의 상금까지 걸어놓고 가정제의 행방을 찾았지만 도무지 어디로 사라진지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영악한 왕 황후가 어쩌면 변장하고 전혀 엉뚱한 곳에 숨어 있을 수 있었다.
부하들은 재물을 찾으면서 가정제의 행방을 수소문하다가 포기하고 보고했다.
“폐하,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보자들의 말에 의하면 가정제와 왕 황비는 이미 낙양으로 떠난 것 같사옵니다.”
“혹시 그런 제보가 연막일 수 있으니 북경 주변을 다시 수색해.”
“넷!”
가정제와 왕 황비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가고 어느새 새해가 되었다.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완전히 수중에 넣게 되자 의미가 깊은 새해를 맞이했다.
주변에 위협이 될 만한 무력이 없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에게 휴식을 줄 겸 지시를 내렸다.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니 준비를 해. 병사들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음식을 장만하고.”
“넷!”
명나라 수도인 북경을 점수한 축하연을 겸하는 천제를 올리려는 것이다.
자금성 중앙에 커다란 제단이 마련되고 많은 음식이 차려졌다. 대부분 피난을 떠났지만 자금성의 숙주로 일하던 사람들을 찾을 수 있어 그들이 음식을 마련했다.
이른 새벽에 해가 뜨기를 기다려 천제는 시작되었다. 술을 올리고 동쪽을 향해 최인범이 절을 했다.
흥무 4년인 정미(丁未: 1547년) 명(明)나라의 가정제(嘉靖帝)가 즉위한지 벌써 26년이나 지났다. 왜는 천문(天文) 16년으로 조선(朝鮮)은 명종(明宗)이 즉위한지 2년이 되었다.
전쟁의 상처는 너무도 컸다. 화려하고 번화하던 북경은 거의 폐허로 변했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대부분 떠났기 때문에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후다닥! 다다다다!
작은 꼬마들이 건물들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다가 기마병이 나타나자 급하게 몸을 숨겼다. 잡히면 포로수용소로 끌려가기 때문에 숨는 것이다.
기마병들은 새해 첫날이라 소년을 잡지 않고 근처에 음식을 놓아 주고 멀어졌다.
“오죽하면 도둑질을 할까?”
“전쟁이 터지면 애들만 불쌍하지.”
건물들이 대부분 불타버려 쓸모가 없어진 자금성에서 최인범은 황제가 사용하던 높고 큰 옥좌에 앉아 신년하례를 받았다.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천제를 지내고 있었다.
“태왕폐하! 만세! 만만세!”
“만세!”
가정제와 왕미미 황후를 잡지 못하고 불타서 폐허가 되어버린 자금성이지만 점령은 큰 의미가 있었다. 신년하례를 받고 나자 최인범은 즉시 조치를 내렸다.
“배도치 사령관, 그대는 앞으로 자금성에 주둔하며 북경과 천진을 관리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앞으로 북경은 서경직할시로 칭하고.”
“넷! 명을 따르겠나이다.”
처음 계획으로는 북경을 차지하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북경을 이대로 놔두고 철수하면 반드시 이곳을 거점으로 한족들이 또다시 모여들어 요동지역을 노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남하하지 않지만 북경과 천진을 연결하는 지역을 서남부 국경선으로 정했다. 최인범은 서남부지역의 방어 사령관으로 배도치를 임명하고 대장으로 계급을 올렸다.
“배 대장, 앞으로 요서나 만리장성 북쪽에서 남하하는 한족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아서 만리장성과 같이 남쪽에 성곽을 건설하도록 해.”
“넷!”
“공연히 욕심 부리지 말고 서쪽으로는 거용관부터 북경을 지나 천진까지 연결하는 장성만 축조하고 그곳을 국경선으로 방어에 주력해.”
“명심하겠습니다.”
최인범은 이곳에 정규 사단과 기마사단을 주둔시킬 계획이다, 천진과 한 덩어리로 만들어 직할시 지역으로 관리할 생각이다.
요동으로 진격한 명나라 군사들만 처리하고 나면 이곳에 1개 군단의 기마병과 정규보병사단 정도의 병력만 주둔시킬 계획이다.
자금성이나 큰 관공서 건물과 저택들이 대부분 불에 타서 폐허로 변했다. 폐허가 된 북경에 더 머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부하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약탈을 허용했다.
“병사들은 필요한 물건을 챙기도록 해.”
“넷!”
“앞으로 자금성은 서남부지역의 방어사령부로 사용해.”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계속해서 잡아들이고 있는 한족인 포로들에 대해서도 필요한 지침을 내렸다.
“포로를 잘 감시해야 되지만 노역이 힘들다고 남쪽으로 도망치면 그대로 놔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성곽을 축조할 재료는 불탄 건물들의 잔해를 치우며 나오는 재료를 사용하고.”
“넷!”
거대한 저택들이 많이 불타버렸다. 그 때문에 주추나 섬돌 기타 구운 벽돌은 너무 흔했다. 앞으로 북경을 서경직할시라고 칭하게 됐다. 단순한 국경도시와 국제 무역항구로 변하게 됐으니 아직은 남은 건물만 사용해도 충분했다.
“이주민은 조선에서 보내도록 조치를 내릴 것이니 참고해.”
“넷!”
태왕의 이런 결정으로 기마병 1만명은 천진으로 이동하고 1만명은 산해관으로 향했다. 앞으로 산해관을 통해 남쪽으로 오는 한족들은 모조리 포로가 잡혀 새로운 장성 축조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다.
아직도 요동지역에는 수십만의 명나라 군대가 있으니 일단 산해관을 기점으로 철저하게 방어선을 구축할 계획이다.
“화포 200문은 모조리 산해관으로 보내.”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먼저 이런 지시를 내리고 경호원들과 같이 성곽을 축조할 지역을 돌아다녔다. 천진과 북경을 이어주는 운하를 성곽 안으로 넣어 성곽을 건설하기로 했다. 성곽에서 서쪽으로 일정한 거리는 농토로 써먹을 생각이다.
“국경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 안에 있는 농가는 무조건 철거해.”
“폐하, 그 지역은 성곽 안에서 거주하는 농민들이 낮에만 나가서 일하는 농토로만 쓰나요?”
“그렇지. 산지는 모두 벌목하고 완전히 밭이나 초지로 만들도록 해.”
“알겠습니다.”
결국 국경선으로 성곽을 쌓고 서쪽 10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영토에 포함시킨다는 뜻이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대부분 피난을 떠났지만 천진이나 산해관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을 포로로 잡아들여 성곽 축조 공사장에 동원하자 곳곳에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천진과 연결하는 대로도 정비하고 북경과 천진 사이의 도로로 다시 확장공사를 했다.
전에 정복한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모든 주민을 포로로 잡아 강제 노역에 동원하는 경우가 없었다. 처음에는 농민을 대상으로 잡아들여 강제노역을 시키더니 차츰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었다.
“우리 한족은 남쪽으로 보낼 생각인 모양이야.”
“그렇군. 원나라와 전혀 들리게 통치하는군.”
물론 대진국의 국민으로 받아 주는 경우는 있었다. 물건을 생산하는 기술자들의 경우 실력을 인정받으면 대진국 국민으로 만들었다. 기술자들의 경우 선택권이 주어져 남쪽으로 가려면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도망칠 수 있었다.
기술자들은 가족을 모아놓고 상의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각자 말해 봐.”
“아버님, 저는 남고 싶습니다. 대진국 국민이 되면 말이나 글을 배우기가 조금 힘들지만 살기는 명나라 보다 좋을 것 같으니 남겠습니다.”
대가족이라 수가 많아 의견이 갈리게 되면 각자 좋은 쪽으로 살기로 결정했다. 결국 가족들이라고 해도 대진국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나자 헤어지고 있었다.
명나라 사람으로 살겠다고 하며 공사장으로 가는 부모들을 바라보며 남겠다는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미친 황제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뭐가 좋다고 저러나 모르겠어.”
“노인들은 말을 배우기가 힘드니까 그렇죠. 아무튼 우리가 잘 살면 나중에 혹시 불러 올지 모르니 우선 여기서 자리를 새로 잡을 구상이나 해조죠.”
가만히 보니 도망쳐도 그대로 놔두자 공사장으로 와서 힘들게 일하던 포로들은 밤만 되면 남쪽으로 무리를 지어 도망치고 있었다.
포로로 잡을 사람은 아직도 많으니 달아나는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
“기마병을 보내 잡을 까요?”
“아니, 식량도 부족하니 도망가게 놔둬.”
북경을 서경으로 만들어 영토에 포함시키는 조치를 내리고 보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최인범은 북경을 떠나 동쪽의 산해관으로 가게 되었다.
산해관은 이미 기마병들이 장악하고 이곳에 있던 명나라 군사들은 모조리 포로로 잡혔다.
“포로가 몇 명이나 되나?”
“군인인 포로는 2만명이고 민간인들은 5만명 정도입니다.”
“의외로 많군.”
“폐하, 민간인들의 경우 대부분 요서 지역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입니다.”
“어디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요서의 전 지역에서 왔습니다. 특히 조양과 금주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요동이 전란에 휩싸이자 본국으로 피난을 왔지만 오히려 포로로 잡힌 것이다.
“모두 천진의 공사장으로 보내도록 해.”
“넷!”
산해관으로 가서 살펴보니 피난민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피난민들 사이에는 가끔은 요동으로 갔던 군인들이 탈영해 숨어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탈영병의 수가 많아지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 후미에 있는 보급병들이 대부분 도망쳐 버린 것을 알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원세창이 협상을 제시하겠군.”
“협상을 들어 주실 생각입니까?”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이 타당하면 받아 줘야지.”
전쟁도 하나의 경제를 위한 통치 수단이라고 판단하는 최인범은 적당한 명분만 주어지면 언제고 협상할 용의가 있었다. 물론 명나라의 총병관인 원세창이 제시하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