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459화 (459/519)

459화

이세창은 소피아 황비와 같이 대련 만으로 진입하던 명나라 함정들이 파괴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상륙 작전을 펼치려고 부두로 접근하다가 그대로 격침당하는 명나라 함정들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했다.

대부분 함정과 함께 수장되어 죽고 일부 살아남은 병사들은 모조리 포로로 잡혔다.

‘이건 전쟁이나 전투가 아니야. 완전히 일방적인 살육이지.’

이세창은 겨울이라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자신이 목격한 처참한 장면들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에 식은땀이 난 것이다. 겁에 질려 다리까지 마구 떨었다.

‘평화 협상? 그것 우리에게는 너무도 사치스러운 용어야. 무조건 항복하고 태왕폐하의 처분만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야.’

해상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을 구경하던 소피아 황비는 살아남은 명나라의 함정들이 멀리 달아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사신께서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

“넷! 마마, 저희를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폐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뭐든지 하겠사옵니다.”

“뭐라도 내놓는다니 무순 뜻입니까?”

“전에처럼 태왕 폐하께서 미녀를 원하시면 얼마든지 보내드리고 금괴를 원하시면 금괴를 보내겠습니다.”

이세창의 이런 말에 소피아는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답했다.

“폐하께서 언제 미녀를 달라고 하던가요? 듣기가 거북하게 말씀하시는군요.”

“죄송합니다. 제 뜻은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뭐든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소피아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구는 턱하니 아들을 낳고 누구는 임신한 상태인데 자신은 아직도 소식이 없는 판국에 미녀를 보내 준다니 기분이 별로다.

“그런 입에 발린 요설에 불과한 말을 앞으로 절대로 하지 마세요. 나는 본시 무역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막연한 충성맹세나 어떤 달콤한 약속도 믿지 않아요. 그러니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으로 현물을 내놓으세요.”

“황비마마, 저희가 보유한 금광을 드리겠습니다.”

“뭐요? 그곳은 이미 대진국에서 점령했을 것인데요. 본시 산동성 전체가 태왕 폐하의 봉토지가 아니었나요? 제태국의 장광윤은 임시로 관리하라고 폐하께 위임을 받은 처지고요. 그런 자신의 처지를 너무 쉽게 망각하다니요. 아직도 뭐가 문지 정확하게 모르는군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불쾌해진 소피아는 자신의 심중을 말했다.

“임시로 임명된 관리인에 불과한 처지로 감히 주인을 배신하고 여자의 꼬임에 넘어 갔으니 관리인을 바꿔야 되는 거죠.”

소피아 황비는 평화 협상을 하기 위해 찾아온 이세창을 심하게 압박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점도 있지만 외교란 부드럽게만 해서는 안 되고 때로는 상대국을 압박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폐하께서 제태국을 소별시킬 의도는 전혀 없지만 강하게 몰아야 해.’

이세창은 더 이상 사정해도 협상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이미 제태국의 장광윤을 축출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다른 왕을 그대들이 선택하도록 하시오.”

“그런 방법뿐이옵니까?”

왕정국가에서 군왕을 몰라내라고 말하니 최고로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한 것이다. 난감한 표정으로 응수하자 소피아는 다시한번 강조했다.

“그렇소. 내가 보기에는 제태국은 그런 방법이 최선 같소. 내가 그런 일을 결정할 위치에 있지는 않으니 더 이상 그런 문제를 논하지 마시오.”

대진국을 배신한 장광윤을 왕에서 몰아내는 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지도자를 추대하라는 의미다. 이세창은 더 이상 협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대련을 떠나기로 했다.

사실 잘 될 것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멸망하는 것 보다는 철저하게 굴복해 살아남아 보려고 찾아 온 것이다.

이세창은 별궁을 떠나 부두로 가게 되었다.

‘함정들이 많군.’

명나라의 해군을 완전히 섬멸한 제 2함대 함정들이 들어와 있었다. 해군도 아니고 해안포대에 전멸 당하는 광경을 목격하자 이세창은 대진국의 무력을 정확하게 알았다.

‘태왕께서 마음만 먹으면 명나라는 금방 점령하게 생겼어.’

이미 산동 반도에도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멀리 남쪽의 상해에도 군대가 있으니 쉽게 대륙을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태왕은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

‘대륙을 통치하던 전 왕조들의 형태가 싫어서 그런 것 같군.’

이세창은 귀국할 배편을 구하기 위해 부두 주변에서 알아보고 있었다. 해전을 끝내고 대련으로 돌아와 부두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해군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많은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후군인 명나라 해군들도 등주에서 전멸했다는 것을 알았다.

‘흠! 명나라에서 고심해서 시작한 해군은 완전히 섬멸해 버렸어.’

명나라가 벌인 이번 전쟁은 이미 승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아직 요하 지역에서 전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명나라의 육군도 패배할 것으로 예측했다.

‘요동으로 가는 육군도 전멸 당할 수 있겠어.’

제태국이나 또는 명나라로 판매한 화포는 대진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구형이다. 그래서 화포의 위력이 신형에 비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직접 부대를 방문해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진국의 육군은 화포도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세창은 대련으로 와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상한 것은 심양으로 간다고 해도 태왕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태왕께서는 어디로 간 거야?’

들리는 소문에는 태왕께서는 북쪽에서 자마카 족장이 공격하자 기마병을 이끌고 떠났다고 한다. 중요한 전투가 벌어질 심양이 아닌 멀리 북쪽으로 떠났다는 것이 다소 이상했다. 더구나 태왕의 행보가 일반인들도 알 정도로 소문이 퍼지자 조금 의문이 생겼다.

‘누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널리 퍼트린 것 같아.’

이세창은 전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보는 중에 중요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제태국의 앞날은 등주 출신인 척계광 비서관이 산동 반도에서 직접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돌아가서 그와 협상해보는 것이 좋겠어.’

명나라 해군을 완전히 전멸시키자 대련은 전처럼 어선들이 들어왔다. 많은 무역선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무역 항구로 변했다. 대련과 등주 사이를 오가는 화물선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대련에서 배편을 구하려고 돌아다니는 중에 부두에 있던 대형 함정들이 모두 떠나고 있었다. 드디어 제2함대는 요하로 모조리 떠나는 것이다.

‘저렇게 많은 함선이 가면 명나라 군대는 이제 완전히 독안에 든 쥐 시세로 변하겠어.’

이세창은 함선에 많은 육군도 타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으니 반드시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판단했다. 해군도 몰살당해 버렸으니 요하로 진출한 명나라 육군은 이제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게 생겼다.

‘이제 명나라는 완전히 끝났어.’

명맥이야 이을지 모르지만 대진국의 힘 때문에 황제국이라고 위세를 떨 정도는 아니었다.

대련을 떠나 등주에 도착한 이세창은 바로 척계광을 만나러 서쪽으로 이동했다.

‘척계광은 등주 출신이니 어쩌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

이 무렵 제 3함대의 함정들은 위해 항구를 떠나 산동 반도의 남쪽으로 이동했다. 육지에서는 예비보병 사단인 육군이 해안을 따라 진격했다. 이들은 제태국과 전쟁이 터지자 소집된 예비군으로 필요에 의해서 2만명이 이동했다.

중간 중간에 있는 항구에는 500명 단위로 잔류해 주둔하게 된다. 산동 반도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포로로 취급하기 때문에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 예비군들이 항구 도시를 점령하는 것이다.

“도로부터 정비하고 항구시설도 정비해.”

“넷!”

이미 제태국의 군인들은 모조리 왕도인 유방으로 철수해서 저항하는 무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드디어 목표인 청도에 도착하자 해군들은 함정들은 부두에 접안하고 해군들은 하선했다.

“여기를 기점으로 국경선으로 정했으니 주둔지를 만들도록 해.”

“제독님, 근처에 있는 은광부터 접수해야죠?”

“당연하지. 우선 격군들을 보내서 접수하고 육군이 도착하면 인계해.”

“넷!”

전부터 살던 산동 반도의 주민들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해변에서 살던 사람들의 왜구의 출몰과 대진국의 초토화 작전 때문에 서쪽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전에 비해 인구가 대폭 줄었다. 더구나 이번에 전쟁이 터지자 그나마 남아 있던 주민들도 대부분 서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대부분 텅 빈 마을이야.’

청도를 점령하자 그나마 남아 있던 주민들은 이제는 신분이 포로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신분만 그렇게 구분하고 모아서 포로수용소를 운영하지는 않았다.

“숲으로 도망친 주민들은 해변으로 데리고 와! 해변에는 빈 집들도 많으니 분산해서 머물게 하고 해변에 염전을 만들도록 해.”

“넷!”

앞으로는 대진국의 영토로 포함될 지역이라 천일염을 생산할 염전을 만들고 더불어 수산업도 시작하도록 풀어 줄 계획이다.

산동반도를 완전히 점령하게 되자 청도 항구로 많은 주민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모두 청도를 개발하기 위해 내륙에서 살다가 이사하는 것이다.

“부두 공사만 끝나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거요.”

청도에는 본래 산동에서 살던 원주민 이외에 황해도 지역에서 이주해 오는 조선 출신들도 많았다.

“여기로 이주하면 여자를 주어 혼인시켜 준다니 와야지.”

“땅과 집도 공짜로 준다고 하잖아.”

한반도는 전에 비해 개인당 경작 면적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가난한 백성들은 많았다. 그래서 새롭게 대진국의 영토로 변한 산동 반도로 이주하면 농토와 집 그리고 여자를 제공한다고 하니 황해도와 충청도에서 이주해 오는 가난한 청년들이 많았다.

원주민들이 서쪽으로 피난을 떠나며 식량은 모조리 가져갔다. 그 때문에 산동 반도는 식량 사정이 일시적으로 좋지 않았다. 외부에서 들여와야 될 지경이다.

청도로 와있는 임방경 제 3함대시령관은 부하에게 지시했다.

“빨리 주산 담로로 연락해서 안남미를 이곳으로 보내 달라고 해.”

“사령관님, 식량은 뭐를 주고 가져오죠?”

“우선 은괴를 가져가 넘겨주고 식량을 보내 달라고 해.”

“넷!”

태왕께서 있다면 자금배정을 받아 식량을 마음대로 가져올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 은괴를 주고 사와야 한다. 제3함대 사령관이 이렇게 처리하며 주민들을 동원해 부두 공사를 하는 중에 북쪽에 있던 척계광이 도착했다.

그는 측량하는 기술자들인 공병부대원을 이끌고 왔다. 공병부대원들은 긴 대나무 장대에 붉은 깃발을 달아 표시하고 있었다.

“깃발 밖에 운하를 파도록 하시오.”

“운하를 파다니요?”

“서쪽에 폭이 넓은 운하를 파면서 생기는 토사로 남북을 가르는 도로를 겸한 토성을 건설하라는 지십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죠.”

청도에서는 부두 공사 이외에 운하 공사와 도로이자 제방 그리고 국경선인 토성 역할을 하는 다목적인 토목 공사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동쪽에 잔류한 주민들은 공사장으로 와서 힘들게 흙을 나르고 있었다. 많은 가축이 동원된 공사지만 워낙 방대한 지역에서 벌이는 공사라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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