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화
제태국이 개국한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승승장구하는 대진국을 배신하고 명나라와 협상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전투를 벌여서는 도저히 이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군왕인 장광윤은 본시 상인출신이라 협상하자고 주장하는 신하들의 건의에 쉽게 승낙했다.
“좋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협상해 봅시다. 누가 사신으로 갈 것인가?”
“전하, 소신이 다녀오겠습니다.”
사신으로 간다고 앞으로 나선 사람은 등주 출신인 이세군이다. 그는 대련 시와 계속해서 교역하던 터라 그곳의 육군이나 해군 사령관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대련 항구에서 기거하며 무역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소피아 황비와 어느 정도 친분관계가 있었다.
“그대가 간다면 협상을 시작해 볼 수 있겠어. 뭐를 넘겨주던 잘 협상해 보라.”
“넷!”
사태가 자못 심각하게 돌아가자 장광윤은 과감하게 평화 협상을 시도해보도록 지시했다. 이미 위해 항구를 떠나 제태국의 왕궁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대진국과 협상하기 위해 이세군을 사신으로 보내게 되었다.
‘배신한 대가가 만만치 않겠어.’
사실상 항복하겠다는 사신을 보내는 것이라 쉽게 협상이 타결될 수는 없었다. 전투를 벌여 패한 이후에는 협상이 더 어려울 수 있으니 급하게 사신을 보냈다.
‘왕 황후가 보내준 미녀와 재물에 내가 눈이 멀었어.’
장광윤은 왕 황후가 보내준 미녀들과 많은 귀금속이 든 보물 상자를 받자 대진국을 배신한 것이다. 더구나 왕 황후가 은밀하게 서찰을 보내 가정제가 죽으면 같이 명나라를 통치해 보자고 은근히 유혹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가장 멍청하게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미인계에 내가 너무 쉽게 혹한거야.’
요염한 왕 황후라 혹시 진짜로 자신에게 시집을 올수가 있다고 판단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자칫하면 이번에 자신의 목숨이 달아나게 생겼다.
‘왕궁을 요구하면 주고 서쪽으로 천도해야 되겠어.’
제태국은 군왕이나 신하들 모두 막상 대진국이 공격해 오자 자신들이 얼마나 전력이 약한지 확연하게 알았다. 대진국이 진군한다는 말에 군사들이 모두 서쪽으로 도망쳐 왔으니 해보나마나한 싸움이다.
한편 평화협상을 하기 위해 이세군은 서둘러 왕궁을 떠나 등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무역선을 타고 대련으로 향했다. 대련으로 가서 소피아 황비를 만나 사정해 보려는 것이다.
무역상은 급하게 배에 오른 이세창에게 다가와 물었다.
“전쟁이 터져 본국에서 무역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련 항에 복귀하는 무역선이오. 보아하니 관리 같은데 혹시 망명하려는 거요?”
“사신으로 가는 겁니다.”
“알았소.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해도 사신이야 항상 보호하는 것이 예의이니 선실에 조용히 있으면 해는 가하지 않겠소.”
“고맙소.”
한편 산동 반도의 북쪽 해안선을 따라 전진하던 대진국의 육군은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모두 서쪽으로 도망친 항구를 점령한 군단장은 해군이 부두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도로를 정비하며 왔어도 너무 빨리 도착해 버렸어.”
“도시의 도로가 너무 좁으니 가옥을 철거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 가옥을 철거한 나무는 따로 모아두고.”
“넷!”
겨울이라 땔감도 많이 필요하고 또한 적과 교전이 벌어지면 방어벽을 만들려면 목재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장차 도로 확장을 위한 건물 철거를 먼저 시도하라고 지시했다.
공병대원들이 해안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도로를 확장하기 제일 좋은 지점을 정하고 철거에 들어갔다. 대부분 목조 건물이라 기와지붕일 경우는 기와를 빠르게 내렸다. 다음에는 기둥에 밧줄을 묶고 기마병들이 말을 이용해 쓰러트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히이잉! 히잉! 우드득! 와르르! 쿵!
재활용이 가능한 자재는 따로 모아 놓으며 도로를 확장하는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이윽고 많은 건물을 철거하자 항구도시를 가르는 넓은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때 근해에서 초계활동을 하던 전함과 보급함이 부두로 들어와 보급품을 하역했다. 아직도 교전하지는 않아 무기들이 많이 남았지만 무기와 탄약을 내려놓았다. 등주와 가까워 오자 제태국의 군대와 조우가 임박했다.
전함에서 척계광이 내려 군단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은 제태국의 군대가 공격할 준비가 모두 끝난 것 같지 않으니 우선 광산부터 점령하시오.”
“알았소. 기마병을 보내 점령하죠.”
이미 정찰대를 광산으로 보내 그곳에 수비 병력이 2천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자 군단장은 쉽게 답했다. 기마병들만 보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너무 쉽게 답하자 척계광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 금광의 지리는 제가 잘 압니다. 그곳은 좁은 골짜기에 목책이 설치된 산악지형입니다. 기마병을 광산으로 보내는 것은 별로 적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니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기마병은 해변에 그대로 놔두시고 보병과 포병 그리고 공병을 모조리 보내세요. 화포로 목책만 파괴하면 그들도 쉽게 항복할 겁니다.”
“알았소. 그렇게 하죠.”
“금 광산으로 보내는 군사들은 계속 그곳에 주둔시키세요. 그래서 광부들이나 포로로 잡은 군사들은 계속해서 금을 생산하도록 해야 합니다.”
적의 전력으로 보아 광산의 수비 병력은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그곳을 안전하게 지키고 금을 생산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혹시 적이 다시 반격을 가해 공격할 지도 모르니 1개 사단을 보내세요.”
“알았소.”
정예사단에는 기마병이 2000명이 있으니 나머지 8000명만 그곳으로 보내기로 했다.
“사단장, 그곳에서 계속 주둔한다고 판단하고 점령과 동시에 방어 준비를 신속하게 하도록. 이곳에서 큰 문제가 없으면 기마병도 보낼 것이니 그렇게 알고.”
“명을 받들겠나이다.”
1개 사단을 광산 지역으로 보내고 나자 척계광은 산동 반도의 지도를 펴놓고 점령할 지점을 정해 주었다.
“군단장님. 앞으로 여기에 그려진 선을 따라서 국경선을 정할 것이니 반드시 이곳까지 점령해야 됩니다.”
산동반도는 조선에서는 흔히 새의 머리로 표현한다. 그리고 용을 숭상하는 대륙에서는 용머리에 해당한다며 언제고 조선을 노려보는 형세라고 했다.
“새의 머리 부분인 이곳을 경계로 삼으면 제일 효율적으로 방어가 유리한 국경선이 그러지니 반드시 공략 하세요.”
제태국의 왕도인 유방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동쪽까지 영토로 삼는다고 결정한 것이다. 척계광은 보다 더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했다.
“이 지점들은 지대가 아주 낮고 중간에 호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국경선으로 발해 만과 청도를 연결하는 대형운하를 건설할 계획이니 그렇게 아세요.”
이런 설명을 듣자 군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해 시와 똑 같이 운하를 파서 국경선을 확정할 계획이군요.”
“그렇습니다. 운하건설공사는 전쟁포로나 또는 제태국에서 보내는 인부들이 담당하게 될 것이고요.”
“알겠습니다. 왕성 근처까지 압박하면 되겠군요.”
이런 결정을 내리자 군단장은 사단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등주를 먼저 함락하고 다음에는 유방으로 진군하도록.”
“넷!”
대진국의 2개 사단 병력이 드디어 서쪽으로 진군해 빠르게 등주에 있는 제태국의 육군을 향해 공격하게 되었다.
쾅! 콰광! 과광!
포병 부대의 화포에서 매섭게 불을 품으며 제태국과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육군에서 드디어 등주를 공격하는 시각에 발해에서는 해군이 드디어 등주에 도착한 명나라의 해군을 공격하려고 넓게 포진했다.
등주에 도착한 명나라 해군은 등주에서 보급을 받고 반은 먼저 대련으로 향했다. 100척의 함정이 대련으로 떠나자 대진국의 해군은 멀리 동쪽으로 우회하는 방법으로 명나라 해군이 떠난 등주에 도착한 것이다.
“비서관님, 대련 항이 피해를 보지 않을 까요?”
“그렇지 않아, 대련 항에 설치된 해안포대의 사거리가 명나라 함포보다 더 멀리 나가니 충분히 방어가 가능해. 더구나 해안선을 따라 성곽을 축조해 두었으니 충분히 방어할 거야.”
일찍 명나라의 공격을 대비해 요새로 만든 대련 항이라 해군이 돕지 않아도 충분히 방어할 능력을 지녔다. 먼저 떠난 명나라의 해군 함정 100척이야 대련에서 격침시킨다고 판단했다. 자신은 2진으로 대련으로 향하려는 등주에 남아 있는 함선들만 파괴하기로 했다.
명나라의 수군을 따돌리고 대련에서 이동한 제 2함대의 전함 10척, 전투함 10척 도착했다.
“비서관님, 진격할까요?”
“이동해.”
“넷!”
함선들이 모조리 도착하자 척계관은 드디어 후미에 남아 있는 명나라 해군을 공격하기 위해 등주로 다가갔다.
이어서 제 2함대의 전함 20척과 전투함 20척이 등주 항구에 도착했다. 거기에 더해 제1함대 소속인 전함 10척이나 보급선이 집결했다. 대진국의 해군은 등주 항구에 정박 중인 명나라 해군함정 100척을 상대로 매섭게 함포사격을 가했다.
“사격!”
둥둥둥. 둥둥둥. 쾅! 콰광! 과광!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100척의 함정에서 일제히 함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등주에 있던 명나라의 함선들에게 무수한 돌탄이 날아갔다.
슝! 슝! 쾅! 쾅! 과광!
대진국의 해군이 근처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한 명나라 해군은 급하게 항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매섭게 날아오는 함포사격에 명나라 함정들은 하나 둘 파괴되고 말았다.
명나라 함정에서도 함포사격을 가해서 응사해보지만 사거리가 너무 짧아 대진국의 함정에는 미치지 못했다. 설마 이렇게 화포의 위력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이런, 사거리가 너무 짧아서 도저히 상대할 수 없어.”
명나라 해군사령관은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언제고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나라 사이에 무기를 제일 성능이 좋은 것을 판매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모양이 똑 같아 성능이 같다고 판단했더니 그게 아니었어. 우리에게는 재고정리로 판매한 거야.’
대진국의 해군은 전혀 피해를 보지 않으며 멀리서 함포로 사격해 돌탄만 날렸다. 더 전투를 해보나 마나 패배라는 것을 직감한 함장들은 급하게 명령했다.
“빨리 부두로 돌아가!”
명나라 해군 함정들은 급하게 기수를 돌려 부두로 향했다. 그러니 불과 얼만 떨어지지 않은 거리지만 부두에 도착하기 전에 함정들은 하나 둘 파괴되었다.
“으아악!”
“후퇴!”
겨우 겨우 부두에 접안해 육지로 올라가 보니 이미 등주는 대진국의 육군들이 진격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전투를 벌일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명나라의 해군들은 급하게 외쳤다.
“항복! 항복!”
들고 있던 허접한 무기를 모조리 버리고 항복했다. 대진국의 육군은 재빨리 다가와 무장을 해제시키고 임시로 만든 포로수용소에 가두었다.
등주도 도로를 크게 내려고 철거하게 되었다. 철거된 집에서 나오는 목재를 이용해 넓은 벌판에 포로수용소를 지었다. 추운 겨울이라 얼어 죽지 않으려면 포로들 스스로 수용시설이 막사를 짓는 수밖에 없었다.
“바다에 있는 부서진 함정의 잔해를 주어와 건축 재료와 난방에 필요한 연료로 사용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