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심양 옆을 흐르는 혼하(渾河) 주변의 평야지대에는 수확이 한창이다. 많은 인력과 축력을 동원해 하천에 제방을 쌓고 농토를 늘려 농작물 재배 면적이 대폭 늘었다.
넓은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신이 났다. 새로 개간한 농토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수량이 많아지자 다들 좋아서 태왕을 칭송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우리에게 이런 풍족한 삶을 가져다 주신거야.”
“당연하지, 우리 백성을 살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 오셨잖아.”
“일찍 조선을 떠나기를 아주 잘 했어.”
“수확이 끝나면 우리 아이들을 혼인시키도록 하세.”
“그러세. 속내를 잘 아는 우리가 사돈을 맺으면 더 좋지.”
친한 친구인 농민들은 조선에서 노비로 살다가 과감하게 이곳으로 가족과 같이 탈출했다. 봉황성에서 정착해 빠르게 신식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심양 지역의 농장주는 대부분 조선 출신들이다.
“아이들에게는 새로 산 농토를 넘겨주세.”
“그게 좋겠어.”
노비로 살다가 많은 국유지를 임대 받아 농사를 짓다가 보니 이제는 자신의 소유인 농토를 어느 정도 구입할 수 있었다.
자신들은 농장주지만 여전히 국유지를 임대한 소작농이다. 그래서 자손에게는 소작농이 아닌 자신 소유인 농토에서 농사를 짓게 해주고 싶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축을 이용해 두 집안이 협력하자 쉽게 재물이 모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토지가 생긴 조선출신 농민들은 이곳에서는 부유층으로 변하고 있었다.
태왕을 조선 출신들에게 아주 싼 임대료를 받고 넓은 토지를 배분해 주었다. 그리고 감자를 공급해 주게 되자 토지의 형편에 따라 심게 되어 전보다 수확량은 4배로 늘어났다.
더구나 새로 개발되는 흑룡 강 주변이나 또는 멀리 연해 시 주변도 식량을 증산하고 있었다. 대진국이 한해에 필요한 식량은 충분하고 비축할 여유도 생겼다.
태왕은 심양 지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직할시로 정하고 또한 중경이라고 명명해 특별히 관심을 두었다. 계속해서 이곳에서 군사들의 조련에 힘을 쓰는 가운데 어느새 수확철인 가을이 된 것이다.
최인범은 드넓은 평야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농민들을 찾았다. 일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밭이나 논두렁에 모여 식사하는 곳으로 가보고 있었다.
평범한 옷차림으로 슬며시 다가가 보자 농민들의 밥상은 매우 풍요로웠다. 전에는 구경하기 힘든 수산물들이 반찬으로 놓여 있고 젓갈종류와 푸짐한 고기반찬들이 보였다. 벌건 고추장도 있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연해 시에서 생산한 수산물이 여기까지 운반되는군.”
“그렇습니다. 동서를 횡단하는 대도로를 통해 동해에서 잡은 수산물을 용정에서 이곳으로 운송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일부는 흑룡 지역에서 오기도 하고요.”
제일 늦게 개발된 흑룡 강 동쪽에서 잡은 수산물들도 서쪽으로 이동되었다. 굳이 명나라를 공격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살 기반을 잡았기 때문에 사실 전쟁을 피하고 싶었다.
‘어지간하면 평화협상을 하는데 막무가내로 저리 나오니 어쩔 수 없어.’
전후 사정이 어찌 돌아가던 명나라는 몽골과 제태국과 연합해서 대진국을 공격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언제 명나라가 침략을 해올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빨리 수확을 끝낼 필요성이 있었다.
최인범은 농군들의 일하는 모습을 돌아보고 나서 지역의 군수를 만나 지시했다.
“최대한 빨리 수확을 끝내도록 하시오.”
“넷!”
“대민 봉사하도록 군대에 지시를 내릴 것이니 협조를 받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수확을 빨리 끝내야 빈 공간으로 변한 농토에서 대규모로 군사훈련을 할 수 있었다. 겸사겸사해서 군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농민들의 수확을 돕도록 지시했다.
군사들까지 총동원해 수확을 돕게 되자 누런빛의 넓은 들판은 어느새 수확을 끝내고 텅텅 빈 공간으로 변했다.
심양의 내성에 있는 대형 창고들에는 콩, 쌀, 밀들이 가득 쌓였다. 이제는 심양은 물론 요동 전체의 대형 비축창고에는 대진국의 모든 백성들이 풍족하게 먹고 살 정도로 농작물 가득 쌓여 있었다.
“등신들은 왜 저러나 몰라? 백성들이나 잘 먹일 생각을 못하고.”
“그들이야 백성을 노예와 같이 취급하기 때문이죠.”
명나라는 메뚜기 떼와 홍수 피해로 먹을 식량이 너무 부족했다. 대진국의 무역상들이 안남미를 대량으로 사서 보충을 해줘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명나라의 식량 부족 사태로 대진국은 안남미의 판매로 엄청난 재물을 차지했다.
명나라의 위기를 틈타 힘들이지 않고 상해 지역을 완전히 요새와 같이 만들었다. 이미 상해로 육군까지 보냈으니 명나라에서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명나라는 두고두고 상해 때문에 힘쓰기 힘들게 됐어.’
상해는 장강 하류에 위치해 있으니 해군을 동원해 장강까지 얼마든지 장악할 수 있는 거점이다. 상해를 개발하고 나니 남경의 헌강왕도 정신을 조금 차린 것 같았다.
명나라와 요하 근처에서 교전이 벌어지면 바로 반격해 조양을 점령할 계획이라 지시를 내렸다.
“여유 있는 식량은 모두 심양으로 보내도록 해.”
“넷!”
현장을 돌아보고 필요한 지침을 내린 최인범은 심양의 내성으로 돌아왔다.
심양의 내성에는 태왕이 거처인 별궁이 커다랗게 지어져 있다. 최인범은 별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대련에서 명나라와 제태국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최복동이 찾아와 보고했다.
“폐하, 명나라에서 드디어 우리 대진국과 결전을 벌인다고 공포를 했사옵니다.”
“정식으로 공포를 했다는 건가?”
“넷! 장강 북쪽의 모든 성으로 파발을 보내 군대를 징집해 산해관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서를 보냈사옵니다.”
“전쟁을 일으킨다는 명분은 뭔가?”
“그건 아직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대규모의 전쟁을 외국과 벌이려면 무슨 핑계라도 있어야 백성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는 전쟁을 한다면서 대의명분으로 삼을 어떤 구실을 아직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한심한 놈들이군. 그런 썩은 머리로 무슨 전쟁을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군.’
최복동은 마지막으로 알아낸 정보를 보고했다.
“명나라에서 요하를 넘을 시기를 기해 제태국은 위해도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옵니다.”
“다른 준비는?”
“폐하, 명나라도 황하 중류지역에서 선박을 대대적으로 건조하고 있답니다. 모두 우리의 화물선과 비슷하게 건조 중입니다.”
뭔가 준비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니 놀랄 사건은 아니었다. 적의 함정 수가 궁금해 물었다.
“수가 얼마나 되나?”
“현재 파악한 규모는 100척이라고 하옵니다.”
“의외로 많군. 그들도 나름 비장에 수단을 준비하고 있었어. 혹시 우리가 그런 정보를 알았다는 것을 적이 알면 곤란하니 누구에게도 그 정보를 알리지 않도록 해.”
“넷!”
배를 건조해 화포를 싣고 발해를 건너 대련을 점령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참으로 한심한 계획이다. 대진국의 해군력은 그런 허접한 명나라 해군을 얼마든지 격퇴시킬 능력이 있었다.
‘함정만 있다고 해군이 아닌데 그 놈들은 도무지 해군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군.’
어리석기 그지없지만 그것이야 적국인 명나라 사정이다. 최인범은 아직은 산해관에 명나라 군인들이 모이지는 않은 상황이라 느긋하게 지시를 내렸다.
“명나라야 어찌 나오던 우리는 해야 할 일만 정상적으로 시행하도록 해.”
“넷!”
제일 먼저 처리할 일은 남해도로 가서 활동하던 현난풍이 요구한 화물선 30척을 판매해 달라는 요구에 대한 처리다. 그곳을 대진국의 영토로 포함시키는 문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남해도는 아직 인구수도 적으니 담로로 만들고 추후에 도로 승격시키도록 했으니 정보원장은 그곳에 국가정보원의 지부를 설치하시오.”
“넷!”
국가정보원은 담로에 반드시 지부를 설치하기 때문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화물선 30척도 보내서 앞으로는 안남미를 광동성이나 복건성으로 공급해 주라고 연락 하시오. 천일염 생산 기술자를 그곳으로 보냈으니 국가정보원에서 염전을 관리하고. 자체적으로 사용하고 남는 소금은 명나라로 판매하라고 연락하시오.”
“폐하! 염전의 수익금은 어찌 하죠?”
“모두 지부 운영비로 사용하고 남해도의 개발에 재투자해.”
“알겠습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부처인 국가정보원에게 염전을 관리하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비밀 유지의 필요성 때문이다. 천일염 생산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으라는 의미다.
“폐하, 남경의 헌강왕께서는 백성들의 원망이 두려워 더 이상 북쪽으로 식량을 보내거나 군대를 보내지 않기로 했답니다.”
“헌강왕이 더 이상 우리와 척을 지면 정향 황비가 점점 곤란해지는데 이쯤해서 멈추었다니 천만다행이야.”
“폐하, 그렇더라도 헌강왕께서 북경으로 식량을 보내 돕는 사건은 이대로 묵과하기는 곤란한 반역 행위입니다.”
“무슨 말인가? 그분이야 대진국의 백성이 아닌데 무슨 반역이야. 나라 간에는 항상 있는 일이니 너무 헌강왕을 원망하지 말게. 우리도 적국인 명나라와 그동안 계속해서 생필품도 팔고 심지어 무기까지 판매하고 있었잖아 그러니 이미 벌어진 과거의 사건으로 신경을 너무 과하게 쓰지 말도록 해.”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나라를 통치하는 처지로 헌강왕의 처세에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다. 헌강왕은 북경의 조정이 대진국과 교전을 벌여 약화되면 그때 북경으로 진군해 완전히 대륙을 차지하려는 야심으로 북경을 도왔다고 판단했다.
‘딸이나 사위 보다 자신의 권력 욕구가 더 크다가 보니 생긴 일이야.’
나쁜 쪽으로 생각하면 사위를 죽이려는 행동이라 주산 담로에 있는 군대를 동원해 남경을 초토화시켜야 된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전혀 다르게 해석도 가능했다.
헌강왕은 명나라를 도와줘 그들이 무리하게 대진국과 전쟁을 벌이도록 부추겼다. 그래서 전쟁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침공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니 잘된 일일 수 있었다.
‘올해 명나라와 일전을 벌이고 나면 조선을 병합해도 돼.’
강한 대국으로 변한 대진국이지만 양쪽에서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왕에 한판 크게 벌여야 끝날 명나라와 일전은 이번에 벌여 끝낼 생각이다.
“정보원에서는 육군 정보 사령부와 협조해서 몽골의 알탄 칸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아내도록 하시오.”
“넷!”
명나라와 전쟁이 임박해지자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봉황성을 떠나 이곳으로 모두 와 있었다. 특이한 일은 예술학교로 보내진 미녀들을 많이 대동하고 왔다는 점이다.
“왜? 미녀들이 데리고 왔나?”
“황후마마께옵서 태왕폐하께서 적적하실지 모른다며 보냈사옵니다.”
“알았어. 미녀들은 별궁에서 지내도록 해.”
많은 미녀들이 심양으로 왔으나 최인범은 그저 한번 단체로 살피고 이후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각료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왕정 국가에서 유달리 이미 있는 황후나 황비 그리고 진 빈 이외의 여자는 거들떠보지 않으니 너무 이상한 것이다.
마침 별궁으로 오래 기다리던 인물이 찾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