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화
살기가 어려워지자 소주, 항주, 남경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상해나 주산도로 몰려왔다. 남자들은 이주민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부모들은 10세만 넘는 여자들은 모조리 넘겨주며 사정했다.
“데리고 가서 살려만 주시오.”
“알았소. 기술을 가진 사람은 남자도 받는데 혹시 기술이 있소?”
“없습니다.”
“혹시 광산에서 일할 생각은 없소? 아니면 어부로 일하던가?”
“그것을 하면 이주가 되나요?”
“그렇소. 하지만 이곳과 달리 너무 추운 곳이라 적응하기는 조금 힘들 겁니다.”
이런 제안을 받자 대부분 포기하고 건강한 젊은 부부는 광부나 어부로 산다고 서약을 하고 이주민이 될 수 있었다.
주산도에는 멀리 연해 시에서 많은 선박들이 도착해 있었다. 연해 시로 가져갈 소금을 운반하려고 부산포까지 왔다가 남명에서 초특급 태풍과 홍수로 대규모로 유랑민이 발생하자 소금이나 쌀을 싣고 도착한 것이다.
제 5함대의 많은 함정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김천명은 태왕의 방침을 전달했다.
“동해도와 극동도로 이주할 사람은 받아 주라는 명령입니다.”
“알았소. 분리해서 떠날 수 있도록 하죠.”
전에는 소주 미인이라고 해서 미모를 기준해서 이주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새롭게 개척할 동토 지역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건강을 우선으로 선발해 보내기로 했다.
일시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와 주산도는 매우 번잡했다. 다행히 제 5함대 소속의 함정에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신속하게 떠나게 되자 주산도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김천명은 김신완 총통에게 태왕의 지시사항을 건달했다.
“태왕께서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주민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앞으로는 기술자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지금과 같이 대규모의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은 버리고 안정적으로 발전을 모색하신다니 그렇게 아세요.”
“알았소.”
제 5함대는 많은 이주민을 데리고 보타도를 떠나고 있었다. 이주민들은 남자는 2할에 불과하고 8할이 여자들이다. 대진국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대부분 혼인을 약속해 이주했기 때문에 여자들이 필요했다.
먼 바다로 나온 함정들은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김천명은 함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명으로 가서 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여자를 공짜로 구했으니 재물이 남게 됐어.”
“사령관님, 남는 재물은 반납하나요?”
“무슨 소리야. 동해도나 극동도를 발전시킬 자금으로 사용해야지.”
“아, 그렇군요.”
자신의 관할 구역인 동해 북부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재물이 필요했다. 태왕폐하가 주신 특별 자금 이외에 조정에서 배당된 자금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기왕에 여자들을 사서 약속을 지키라고 태왕폐하께서 보내준 자금도 그 지역에 투입할 생각이다.
“부산포에 도착하면 파발을 봉황성으로 보내야 되겠어. 그래야 연해 직할시에 도착하면 폐하의 승인을 받아 자금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아무리 정당하게 사용해도 특별 교부금이니 용도 변경을 보고하고 집행하는 것이 좋죠. 자칫하면 공금 유용이나 횡령죄로 감옥을 갈 수도 있겠네요.”
이제는 대진국도 자리가 잡혔기 때문에 전처럼 공금을 함부로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한다. 국방부에서는 감찰국을 강화해 놓았다. 그래서 국방비인 공금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한편 많은 식량과 소금을 싣고 주산 담로로 오게 된 무역상들도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멀리 남쪽에서 식량을 싸게 수입해 남명으로 판매할 계획으로 식량 수입 사업에 동참했다. 무역상들이야 재물을 벌기 위해서 위험한 모험도 마다하는 것이다.
보타도의 동항 부두에서 모인 무역상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식량을 수입해 파는 사업은 전망이 어떻다고 보시오?”
“나는 전에 하던 황과 금속을 왜에서 사서 단동으로 판매하겠소. 남쪽으로 가면 바닷길도 잘 모르고 위험할 지도 모르니 종전대로 살겠소.”
“기왕에 위험한 바다를 다니는 무역이니 같이 가봅시다.”
일부는 너무 위험하다고 남쪽으로 가서 식량을 사서 나르는 계획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무역상들은 이번 기회에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고 싶었다.
“남명은 홍수로 가뭄이 해갈 되었다고 해도 농토가 너무 엉망으로 변해 식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이번에 쌀을 사오면 돈을 많이 벌수 있어요.”
“알았어. 나도 같이 가지.”
“나도 가겠소.”
무역상들은 남명지역에서 벌어진 자연재해를 기화로 큰 재물을 벌어볼 욕심으로 새로운 사업에 동참했다. 나라가 안정되어 물가의 변동이 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전과 달리 무역업은 그저 운송업과 같이 변해 큰 이득을 챙기기가 어려웠다.
무역업이 계속 번창하려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된다. 그래서 무역상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현난풍과 같이 남쪽으로 가볼 생각이다.
현난풍이 이끌고 도착한 전함 5척 이외에 전함 10척, 전투함 10척 그리고 보급함 20척과 더불어 60여척의 무역선이 남쪽으로 떠나게 되었다.
20척씩 무리를 지어 현난풍의 전함들이 선두에 서서 남쪽으로 향했다. 해군 소속인 함정에는 막상 쌀을 사올 대금으로 넘겨줄 것이 마땅치 않아 무기와 화약을 싣고 있었다.
현난풍은 이주민들 중에 목공 기술을 지닌 사람이나 기타 주물 기술자나 대장장이들을 별도로 뽑아 같이 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모든 생필품을 주산 담로를 통해 조달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본적인 생필품은 자체적으로 생산해야 돼.”
현난풍의 말에 함장이 나서며 답했다.
“제독님, 좋은 생각이지만 그러다 보면 본국과 멀어질 수 있사옵니다. 그러니 주산 담로를 통한 교역은 계속해야 되옵니다.”
“알았소. 앞으로는 무역상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도록 합시다.”
남해도를 개척해 담수항도 이제 인구가 2만명이나 되는 도시로 변했다. 주변에 사는 인구를 포함하면 5만명이나 된다. 인구수에 포함되지 않은 남자 노예의 수가 무려 3만명이나 달했다. 그래서 무역상들이 충분히 교역할 정도로 발전했다.
현난풍은 제주도 출신인 해녀들이 상류층을 이루는 마치 여인국과 같은 형태로 남해도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지금보다 인구가 더 늘게 되면 태왕을 만나 직할 담로나 또는 행정도로 인정 받아볼 생각이다.
“폐하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어.”
“전에 마음대로 하라고 명령하셨으니 허락하실 겁니다.”
현난풍은 제주도 남쪽의 암초인 이어도 전설을 알고 나름 전설에 부합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나름에 이상향을 만들어 볼 생각으로 남해도를 개발했다.
그러나 대국인 명나라와 너무 가깝게 접한 지역이다. 유구국과도 가까워 태왕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남해도를 태왕께 넘겨주고 새로운 지역을 찾아 볼 생각이다.
현난풍은 자신이 더 늙기 전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지구본에 그려진 신대륙을 가보고 싶었다.
“함장, 이번 일만 성사되면 우리는 함대를 별도로 구성해서 동쪽으로 가보지.”
“제독님, 아메리카라는 곳으로 가시려고요?”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네.”
지구본에는 신대륙으로 멀리 남쪽의 호주가 있고 동쪽에는 아메리카가 그려져 있었다. 호주도 가보고 싶지만 원주민들만 살고 문명과 접하기 어려운 곳이라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함장, 사실 인생이란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재미로 사는 거야.”
“그렇습니다.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도 무인지경이면 그야 말로 혼자서 무인도에서 사는 것 같으니 사람들이 있는 곳이 좋죠.”
“아메리카로 가면 원주민들도 많고 또 유럽인들도 만날 수 있다니 한번 가서 그들과 대적해 보자고.”
“넷!”
막강한 해군력을 지니다 보니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진출도 고려해 보았다. 하지만 본시 온대지역에서 살던 선원들이라 풍토병에 걸릴 염려가 많았다.
“안남 지역에서 쌀이나 사서 비축해 놓고 계획을 수립해 보자고.”
“넷!”
누군가처럼 그저 모험하기 위해 함정 몇척을 가지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 대규모로 함대를 몰고 신대륙으로 가서 아예 정착해 버릴 구상을 하는 것이다.
현난풍이 이런 생각을 하며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멀리 북쪽에서는 태왕이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련 직할시에 도착한 최인범은 남명지역에서 초특급 태풍이 불어 대홍수가 일어난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급하게 이주민을 받으라는 지시를 비롯해 연해의 제5함대로 명령해 여자들을 사오도록 조치를 내렸다.
대련 시의 별궁에서 머물며 최복동을 만났다. 국가정보원장인 최복동은 자신이 방심한 사이에 명나라와 몽골 그리고 제태국이 밀약하자 기겁해서 이곳으로 와서 정보원들을 진두지휘했다.
“정보원장, 특별히 알아낸 정보가 있나?”
“넷! 서로 밀약한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제태국의 경우 산동성을 완전히 봉토지로 받는 조건으로 협상을 했사옵니다.”
“뭐라? 가정제가 그리 명령했단 말인가?”
“폐하, 가정제는 이미 거의 감금상태나 다름이 없어 전혀 힘이 없고 이제는 말도 잘 하지 못하는 정도랍니다. 모든 권력은 왕 황후가 휘두르고 있사옵니다.”
“왕 황후 옆에는 누가 실권자로 지내고?”
“전과는 달리 특별한 실권자가 없습니다. 조정은 대신들이 활발하게 논의를 거쳐 국정을 살펴 지극히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동창은 어떻고?”
“동창의 조직은 그대로 있지만 그 또한 전과 다르게 상당히 약화되었고 자금성에서 환관들이 대거 숙청되어 변했습니다.”
서로 경쟁 관계인 명나라인데 왕 황후가 통치하면서 전보다 나은 형태로 통치되고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서로 적대관계인 이웃한 나라다. 그러니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상황이다.
‘일이 아주 고약하게 되었어.’
명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대진국과 우호 관계를 잘 유지한다면 전보다 주변 환경이 좋아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서로 침공하려는 처지다 보니 일이 많이 꼬인 것이다.
‘이거 내가 큰 착각을 했어. 왕 황후가 집권하면 반란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했더니 전혀 그게 아니야.’
무슨 조건을 내걸었던 왕 황후는 가정제 대신으로 국정을 관장하면서 몽골과 제태국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였다. 더구나 남명의 헌강왕까지 포섭한 것으로 보이자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했다.
“정보원장, 비자금을 지참하고 보낸 정보원들이 겨우 그런 허접한 정보만 수집했다는 거요?”
“아닙니다. 아직 소식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지. 반드시 중요한 정보를 가져올 겁니다.”
전에는 마음대로 명나라로 정보원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변했다. 해안의 경비를 강화하고 산해관의 출입도 아주 엄격해져 소식이 오가기가 어려워졌다.
“병력을 집결하고 있나?”
“아직 모이지는 않고 물자만 산해관 쪽으로 계속 이동 중입니다.”
“북경도 중요하지만 제태국의 움직임도 잘 살펴보시오. 자칫하면 적이 양동 작전을 펼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위해도의 지부로 연락해 정보를 수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