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해군총사령부에서 함대 사령부의 편제가 바뀌었다. 주산 담로 분견대는 전함 5척, 전투함 5척, 보급함 5척, 판옥선 10척으로 구성됐다.
판옥선 10척은 조선에서 보유하던 함정이다. 판옥선은 웅진반도를 거쳐 산동반도로 이동되어 사용했다. 그러다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되어 주산 담로에 도착했다.
상해 시에는 그곳을 수비할 병력이 500명에 불과하자 부관이 건의했다.
“총통님, 판옥선을 상해로 보내 국경선인 운하를 오가며 침입을 대비해야 됩니다.”
“알았어. 여기도 밀수를 감시해야 되니 판옥선 5척만 상해로 보내.”
“넷!”
날씨가 맑았지만 해군은 서두르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 새털구름이 보이자 태풍이 몰려오는 기미를 느끼고 있었다.
“빨리 화약과 비상식량을 넉넉히 챙겨서 떠나.”
“넷!”
5척의 판옥선은 급하게 주산항구를 떠나 상해 서쪽에 있는 운하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주산 담로에는 비상이 발동되었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높은 산에 있는 관측소에서 대북이 울리고 하늘에서는 화려한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많은 섬이 담로에 속해 있기 때문에 포를 쏘아 알리고 있었다.
“태풍 경보다!”
“빨리 대피해.”
해군들은 서둘러 모든 함정들을 회항시켜 부두에 정박시키고 단단히 고정했다. 해군들이 보타도 서쪽 항구에서 대피하는 동안 어선들은 주산의 남항으로 이동해 다가오는 태풍을 대비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비구름 사이를 뚫고 빠르게 다가오는 전함들이 보였다. 모두 5척이 돛을 펄럭이며 보타도의 서쪽 항구로 다가왔다.
“어느 나라 배야?”
“전함입니다.”
다소 비정상적인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전함들을 보자 망원경으로 자세하게 살폈다. 깃발을 살피고 나자 관측장교가 보고했다.
“현난풍 제독이 오십니다.”
“하필이면 이때 오나?”
다행이 바람만 거세고 아직 비바람까지는 휘몰아치는 상태는 아니었다. 무사히 보타도에 도착한 전함 5척은 서둘러 서쪽 항구로 이동해 부두에 정박했다.
현난풍은 태왕으로부터 해군중장인 제독으로 임명된 비공식적인 해외원정함대 사령관이다. 김신완 총통은 전함에서 내리는 현난풍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총통, 감사합니다. 오는 동안 잘못했으면 태풍으로 몰살당할 뻔 했습니다. 태풍의 위력이 평소와는 전혀 달라 보이니 철저하게 대비해야 될 것입니다.”
“알았소.”
“초특급 태풍이니 철저하게 대비하세요.”
현난풍은 주산 담로 와서 필요한 무기와 보급품을 공급 받으려고 오다가 태풍의 끝자락에 걸려 겨우 도착한 것이다. 현난풍의 이런 초특급 태풍에 대한 정보로 주산 군도는 더욱 부산하게 움직이게 되었다.
“전군은 빨리 다시 확인해.”
“넷!”
태풍의 위력이 평소와 다르다니 피항한 어선들을 더욱 단단히 고정해야 된다. 또한 허름한 가옥에 사는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되니 바쁘게 움직였다.
“전 주민은 안전한 대비시설로 빨리 옮기도록 하시오.”
바쁜 가운데에도 전함에 실린 물건들을 하역해 벽돌로 지어진 튼튼한 창고에 넣었다. 그런 작업이 모두 끝나자 서쪽에 지어놓은 대피시설로 가게 되었다.
휘이익! 휘이익! 윙! 윙!
거세게 바람이 불더니 폭우가 거칠게 내리고 있었다.
우두두두. 피융! 피융!
대피시설인 벙커형의 건물 지붕에 올려놓은 커다란 판석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태왕께서 지붕에 고정되지 않은 판석을 올리지 말고 석회로 단단히 고정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방심해서 그런 시공을 하지 않다가 보니 돌로 만든 판석들이 거센 바람에 날아가고 있었다.
‘아고야, 그동안 모은 내 월급이 다 날아가네.’
태왕께서 지시한 그대로 따르지 않아 생긴 태풍 피해다. 그러니 문책을 받지 않으려고 총통인 자신의 개인 자금을 써서 복구할 생각이다.
휘이익! 우드득! 우당탕! 쾅! 우드득!
안전한 대피시설에서 숨어 있었지만 옆에 서있는 아름드리 고목이 쓰려지면서 대피시설을 덮쳤다.
쾅! 과광!
단단한 지붕 위에서 마치 포탄이라도 떨어진 정도의 굉음이 크게 울렸다. 건물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대피시설은 끄떡없이 버티고 있었다. 대피 시설은 본시 훗날 포격을 받아도 어느 정도 버틸 정도로 아주 튼튼하게 지어놓았기 때문에 안전했다.
‘폐하께서는 어찌 이런 강한 태풍이 오는지 알고 미리 이렇게 튼튼하게 지으라고 했나 모르겠군.’
대피시설은 비상식적으로 벽이 두껍고 또 지붕도 두텁게 만들어 놓았다. 그때는 공사비를 너무 들이고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태왕께서 이런 초특급 태풍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지시한 것 같았다.
“역시 태왕폐하는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이야.”
피해 상황이 너무 궁금해서 밖으로 나가 살펴보려고 해도 감히 나갈 수 없었다. 거친 바람은 사람이 날아갈 정도라 엄두가 나질 않았다. 태풍이 워낙 커서 그런지 이틀 동안 비바람과 함께 거센 풍랑이 지속되었다.
현난풍은 의외로 태풍에 대해 무덤덤했다.
“현 제독은 겁나지 않소?”
“태풍이 불면 겁이냐 나지만 여기는 땅이니 겁나지 않지요.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면 바로 죽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이런 태풍이면 육지도 안전하지 않소.”
“그렇지요. 하지만 제가 있는 곳에서 이런 태풍을 자주 경험해 육지에서는 그런가 하고 지냅니다.”
여전히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지만 그렇게 거세지는 않았다.
현난풍 태풍의 경험이 많아 이미 태풍이 지나갔다고 판단했다.
“이제 사람들을 나오라고 하세요. 복구 작업을 하셔야죠.”
“그래야 되겠네요.”
태풍이 지나가고 나자 사람들은 대피 시설이나 집에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김신완 총통은 주변의 상태를 바라보고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헉! 완전히 쑥대밭으로 변했어.”
도로는 거센 폭우로 많은 곳이 유실되었다. 다소 허름하던 건물들은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산에는 곳곳이 산사태가 일어나 계곡물이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 홍수 피해를 주고 있었다.
김신완은 급하게 말을 타고 함정들이 있는 부두로 가서 살피고 그제야 안심했다.
“휴! 다행이 함정들은 모두 안전하군.”
현난풍은 급하게 전함에 올라 일일이 살폈다. 조금의 피해라도 발생하면 바다로 나가면 물이 새는 등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철저하게 살펴.”
“넷!”
소홀하게 판단해 결박을 온전하게 하지 않은 어선들은 서로 부닥쳐 20여척이 심하게 파손되었다. 피해 현장을 돌아보던 김신완은 확실히 뭔가 다른 것을 알았다.
아주 오래된 건물은 모두 안전했다. 또한 태왕께서 지시한 그대로 시설하거나 건축한 건물들은 모두 안전했다. 그리고 새로 지었더라도 지시에 따르지 않은 건물들은 모조리 파괴되었다.
‘휴우! 내가 건방지게 폐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벌을 받는 거지.’
복구하려면 재물도 많이 들고 또한 인력 소모도 많으니 걱정되었다. 주산 담로에 속한 섬들에 있던 해군들이 속속 피해 규모를 보고 해왔다.
안전하게 대피를 지시했지만 무려 200명이나 사망 또는 실종되고 부상자도 1000명이나 발생했다. 인구도 별로 많지 않은 지역에서 이런 정도의 피해라면 너무 큰 피해를 본 것이다.
“육군이나 해군은 부상자나 사망자가 없나?”
“넷! 모두 안전하게 대피해 피해가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는 민간인도 대피를 했는지 확인하도록 해.”
민간인들의 피해가 심한 이유는 너무 가볍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태풍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별로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있다가 산사태로 매몰이 되거나 해변에서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던 것이다.
비상식량이나 중요한 물자는 모두 새로 지어진 튼튼한 건물에 보관되어 있었다. 김신완 총통은 서둘러 비상식량을 풀고 장비를 꺼내 피해 복구에 나서게 되었다.
주산군도를 관통한 태풍은 상해를 비롯해 소주 지역을 강타했다. 엄청난 폭우와 거센 바람이 몰아치자 남명의 장강 주변은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한 것은 그동안 너무 가물어 물이 부족하던 지역은 태풍으로 가뭄이 해소되었다. 거북 등으로 갈라지던 논이나 밭에 비가 내리자 피해는 보았지만 그래도 농작물을 심을 수는 있었다.
“이제 말라 죽지는 않겠어.”
“그래도 강변에 사는 사람들은 물에 잠겨 죽어가잖아.”
가물다가 일시에 폭우가 내리자 오히려 산사태도 많이 발생하고 홍수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상해는 장강이 큰 홍수가 나자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말았다. 다소 높은 고지 이외에는 완전히 물에 잠겨 버린 것이다. 운하를 깊이 파고 그곳의 토사로 건설한 대형인 둑이자 도로인 곳에 사람들이 다들 대피해 바다와 같이 변한 농토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올해 농사는 완전히 끝났군.”
“뽕나무는 물에 잠겨도 살아남잖아. 그러면 가을누에라도 키우면 되지.”
이곳 상해 지역에는 뽕나무와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 버드나무는 화약제조에 사용할 재료인 부드러운 목탄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때 주산도에 있던 판옥선 5척이 둑에 접안해 식량을 내려놓았다.
“총통께서 보내는 구호품이요.”
“감사합니다. 주산 담로는 피해가 없나요?”
“거기도 피해가 아주 심합니다. 오면서 보니 경계인 운하나 내부 운하에 물고기가 많으니 우선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보세요. 구명정과 그물을 주고 갈 것이니 그것을 사용해요.”
“알겠습니다.”
구호품을 무한정 보낼 수 없으니 우선 식량을 보내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버티라는 지시다. 농민들은 나름 살 길을 모색했다.
“우리 높은 지역인 도로와 둑에 콩이라도 심어 봅시다.”
“그럽시다. 그렇게 해도 먹고 살 정도의 식량을 수확할 것이오.”
너무 가물어 심어볼 생각을 못하던 장소에 콩을 심거나 옥수수나 수수 등을 심으며 농민들은 물이 빨리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태풍으로 내린 폭우 때문에 장강의 범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제주도에서 태풍을 자주 경험한 농민들은 이런 정도의 재난에 굴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