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화
봉황사에 도착해 정강대군과 비행기라고 불리는 물건을 하늘로 날리며 어울려 주는 태왕의 모습을 보던 소피아는 느끼는 점이 있었다.
‘태왕폐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구나.’
자신은 아직 아이가 없으니 소피아는 태왕의 행동에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아이를 낳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되겠어.’
부부사이에 아이가 없으면 자칫 나중에 젊음이 사라지면 찬밥 신세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피아는 이번에 대련까지 이동하는 동안 태왕을 독점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돼.’
이렇게 판단하고 다시 태왕이 놀아주고 있는 정강대군을 바라보았다. 왕정국가에서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왕자의 삶에 대해 생각이 떠올랐다. 조선에서 추방당한 형태로 살아야 하는 정강대군의 처지는 매우 처량해 보였다.
소피아는 남의 일이 내 일이라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아들 보다는 딸이 더 좋겠어.’
소피아는 비참한 처지로 변할지 모르는 태자보다는 공주가 더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이라 벌써부터 있지도 않은 아들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소피아 황비가 도착하자 최인범은 놀아주고 있던 정강 태자를 상궁에게 넘겨주며 당부했다.
“호위 무사들과 같이 노는 시간이 많도록 해.”
“예이, 명을 따르겠나이다.”
최인범은 군사훈련 중인 경호실장을 불러 지시했다.
“떠나도록 하지.”
“넷!”
한동안 봉황사에서 지내던 최인범 일행은 남쪽으로 이동했다. 중앙도 도청 소재지가 있는 단동까지는 잘 포장이 되고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었다.
“도지사가 노력을 많이 했군.”
“사실 대부분 작업은 육군의 공병대원들이 했사옵니다.”
“그런 가?”
축력 이외에는 모두 순수한 인력으로 조성했다. 인간의 힘이 얼마가 강한지 도로는 나중에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수도로 가는 중요한 도로이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쓰기도하고 그만큼 물동량의 이동이 많은 것이다. 말과 마차를 타고 빠르게 달려 단동에 도착하자 전에 떠날 때보다 시가지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야 도시답게 변했어.”
태왕의 이런 평에 강사상은 조용히 응수했다.
“폐하, 저는 저런 건물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네요. 저는 한옥으로 지은 건물이 보기가 좋습니다.”
이런 응수에 최인범은 별다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또 어찌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목조 건물이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화강암이나 또는 대리석과 구운 벽돌로 건축된 다층 구조인 건물들이 많았다. 쉽게 표현하면 유럽식 건물들이 많은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최인범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먼 훗날까지 사용이 가능한 구조로 아주 튼튼하게 지어 놓았군.’
최인범은 전생에서 늘 아쉽게 느끼는 것은 조선의 한옥은 목조라 아름답기는 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전란이 발생하거나 또는 방화나 또는 자연적인 화재로 오래된 건축물이 드물었다.
보여주는 문화가 전부는 아니다. 아무튼 앞으로 건축은 오래 후대까지 물려서 사용할 정도로 건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단동은 압록강 내에 있는 북항 지역과 하구 밖에 있는 남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북항에는 도청이나 기타 관청이 많고 남항에는 해군사관학교를 비롯해 해양대학, 해군총사령부와 제1함대사령부 그리고 산업시설인 조선소, 목재소, 제철소, 화포제작소들이 있었다.
북항에 도착한 최인범은 4사단 사령부에 들려 조선에서 오게 된 군사정보를 듣게 되었다.
“폐하, 조선에 12군단을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본토에서 가는 군대인가?”
“넷! 단동, 환인, 통화에 있는 2군단 병력들이 반으로 나뉘어 조선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력에 차질은 없고?”
“넷! 이제는 준사관학교에서 준사관들도 속속 배출이 되고 사관학교도 졸업생들이 배출이 되어 병력 증강에 별 문제가 되지 않사옵니다.”
2년제인 사관학교는 학년 당 400명씩 장교를 배출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 학사장교 제도를 두어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3개월간 군사교육을 받고 장교로 복무하게 되자 군대에서 필요한 초급 장교 수요를 그런대로 충당하고 있었다.
독립된 국가로 선포한지 2년이 지나자 이제는 각 분야가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힌 것이다.
조선의 북쪽에 주둔하게 되는 정규사단들은 34사단 평양, 35사단 덕원부, 36사단 개성에 주둔하게 되었다. 조선왕국의 수도인 한양에 정규 보병사단을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의 사대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일종에 배려다.
“그런 정도면 충분하군.”
물론 앞으로 조선을 완전히 병합하면 개성의 군대 이외에 한양을 비롯한 중요한 지역에 정규 사단을 추가로 배치할 생각이다.
‘2개 정규 보병 군단인 6개 보병사단 정도는 더 있어야 되겠어.’
아직은 급하지 않고 앞으로 명나라와 전쟁을 벌여야하니 우선은 서부 전선에 치중할 때다. 이렇게 판단한 최인범은 의주에 주둔 중인 조선군에 대해 물었다.
“의주에 있는 조선군은 어찌 되었나?”
“폐하, 그들은 이미 모조리 각 도에 1개씩 두는 예비보병 사단으로 편입하거나 또는 심양으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의주에는 예비사단 병력인 3000명만 주둔 중이고 우리나라의 사단장이 지휘하고 있사옵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진가?”
“넷!”
미리 전부터 준비는 했지만 비교적 빠른 기간에 조선의 북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평양에서 반란의 모의하던 관찰사는 병사들과 같이 심양으로 떠난 상태다.
‘권철이란 관찰사의 공로가 크니 나중에 요서를 장악하면 그곳 도지사로 임명해야 되겠군.’
조선왕국에서 보면 역적이지만 대진국으로 보면 투항한 장수라 예우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성리학의 뿌리가 깊은 조선이고 또한 대진국 내에서도 투항한 적장이라고 배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심양에서 벌어질 명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 모두 해결된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심양에 가면 꼭 만나봐야 되겠어.’
대진국은 조선이나 명나라에서 투항해온 인물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권철의 경우도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공로를 세웠다.
‘안동 권씨라면 꼭 만나볼 필요가 있어.’
최인범은 권철이란 이름은 전생에서 자주 들었던 느낌이라 관심을 표했다. 외자 이름이라 자연히 권율 장군과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항에서 위화도 지역까지 천천히 돌아보고 난 최인범은 북항을 떠나 남항으로 이동했다. 압록강 변에는 홍수를 대비한 제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많은 풍차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군총사령부에 도착한 최인범은 부사령관인 박인배 대장을 만나 해군의 현황에 대해 보고를 받게 되었다. 대진국의 해군도 그동안 큰 변화가 있었다.
육군이나 해군의 총사령관은 모두 태왕인 최인범이 겸직했다. 그래서 육군이나 해군 총사령부에는 부사령관이 국방장관의 명령에 따라 군정권만 행사하고 있었다.
군령권은 태왕이 국방장관을 통하거나 또는 직접 육군의 군단장이나 해군의 함대사령관으로 이어진다. 함대 사령부에는 전함, 전투함, 보급함, 판옥선으로 구분된다. 해군에 속하던 조운선이나 화물선은 모두 해양부로 관할이 넘어갔다.
“부사령관, 조운선과 화물선을 해양부로 넘기니 불편한 점은 없나?”
“없사옵니다.”
“다행이군.”
각 함대사령부에는 전투함 20척, 보급함 20척, 판옥선 40척으로 구성됐다. 전함 60척으로 구성되었던 제 1함대사령부의 경우 현재는 완전히 소멸되어 보유한 함정이나 병사들이 없었다.
전함의 일부는 현난풍에게 넘기고 일부는 대마불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제 4함대와 제5함대에 인계한 것이다.
해군의 1함대사령부는 단동, 2함대사령부는 대련, 3함대사령부는 위해, 4함대사령부는 제주, 5함대사령부는 연해. 6함대는 흑룡 시에 있었다.
“앞으로 흑룡 강에서 활동하는 제 6함대를 제외한 모든 함대사령부에는 전함 15척씩으로 똑 같이 배치하도록 하시오.”
“넷!”
내해에 속하는 2함대와 3함대사령부로 초대형인 전함을 배치하려는 이유는 명나라와 벌어질 전쟁을 대비할 필요성 때문이다. 전에는 전함의 경우 왜나 또는 서양을 의식해 남쪽에만 배치했다. 이제는 5개 함대에 초대형 함정인 전함을 배치한 것이다.
“각 함대에 전함 배치가 모조리 끝나면 제일 마지막에 다시 전함으로 1함대를 구성하도록 하시오.”
“넷!”
“판옥선의 경우는 조선이 보유하던 선박을 최대한 인수해 사용할 계획이니 더 이상은 건조하지 마시오.”
“명을 따르겠나이다.”
최인범은 조선 북부지역의 군사력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다. 그래서 단동에 있는 제 1함대의 역할이 줄어들게 되었다. 장차 명나라와 전쟁을 치루고 나서는 제 1함대 사령부의 경우 조선의 부산으로 옮길 계획이다.
‘기회가 생기면 왜놈들을 한 번 더 작살을 내자고.’
주변국인 명나라에는 해군력이 전무한 실정이라 왜에 대해서만 대비하기로 결정하고 있었다.
‘명나라도 뭔가 계획이 있으니 우리와 한판하려는 것이니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야.’
비록 황제인 가정제는 멍청한 정신병자지만 인구가 많은 명나라에 바보들만 살지 않는다. 무슨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감히 대진국을 침공할 음모를 꾸밀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해군 총사령부에 들려 해군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내리고 나자 최인범 일행은 해안선으로 난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다.
수도권 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소피아는 비단옷을 벗고 가죽 갑옷으로 갈아입고 말을 타고 같이 이동했다.
“폐하, 명나라의 가정제가 무모하게 우리에게 도전한다니 너무 이상합니다.”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여전히 명나라가 전쟁 준비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북경조정과 결별하려던 헌강왕이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제일 의심스럽다.
“남명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약속했으면 가정제가 호기를 부릴 수는 있어요.”
“설마 헌강왕께서 그런 약속을 할 리가 없죠.”
“정향 황비가 있다고 하지만 헌강왕은 그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을 것 같소.”
명나라를 모조리 차지할 욕심이 있는 헌강왕이라 나름 음모를 꾸밀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경의 세력이 약해져야 독립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면 충분히 몰래 이중적인 음모를 꾸밀 수 있었다.
최인범은 이렇게 생각하자 정보원을 남경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장인과 사위라고 하지만 서로 필요성 때문에 정략혼인을 했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 짐작이 사실이면 정향 공주만 앞으로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겠어.’
그렇다고 해서 정향 황비를 자신이 배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헌강왕 때문에 명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면 각료들이 정향을 배척하기가 쉬웠다.
소피아는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이 수집한 북경의 중요한 정보를 태왕에게 말했다.
“폐하, 북경의 자금성에서 아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