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서쪽에서 부는 불길한 열풍>
추운 북쪽 지역인 동토의 땅에도 어느새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넓은 들판에는 농부들이 가축을 이용해 각종 작물을 심고 있었다.
연해 시를 떠난 태왕 일행은 드디어 흥개호 옆의 초대형 목장에 도착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흥개 목장에는 몽골에서 수많은 말과 소가 들어와 한가롭게 노닐었다.
최인범은 말을 타고 목장을 돌아보며 만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정도면 앞으로 동쪽에서 필요한 군마나 농우는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겠어.”
이런 중얼거림에 목장 관리인이 급하게 보고했다.
“폐하, 몽골에서 수입해온 소는 너무 거칠어 농사를 짓은 농우로 사용하기가 어렵사옵니다.”
“한우와 교잡종을 생산하면 되니 계속해서 교잡종을 만들고 가축의 품종이 시원치 않으면 선별해서 빨리 도태를 시키도록 해.”
“넷!”
최인범은 목장의 운영방식은 완전히 방목이 아니고 혼합형이다. 넓은 초지에 방목도 하고 일정량의 사료를 공급해 주는 사육 방식이다. 그러니 사료를 별도로 만들어야 된다. 그래서 옥수수 줄기를 사료로 사용하는 사일리지를 만드는 방법을 목장 관리인에게 전수해 주었다.
“옥수수 줄기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청초인 상태로 보관해 보시오.”
“넷!”
또한 옥수수나 밀을 이용한 배합사료를 만드는 방법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흥개호 주변에 풍차 시설을 만들어 그곳에서 옥수수를 바수거나 눌러서 사료의 소화력을 높이는 방법을 설명해 준 것이다.
“가축도 염분을 흡수해야 되니 그런 부분은 연해 시에 나오는 수산물의 부산물을 섞어서 만들면 될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지시할 사항이나 또는 전수할 내용들을 두툼한 책자로 만들어 관료들에게 넘겨주었다. 이곳으로 이주민들이 오게 되자 광산도 개발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생산되는 광물은 앞으로 모조리 연해 시로 보내시오.”
“넷!”
이곳 개발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내리고 나자 이창수 경호실장에게 지시했다.
“경호 실장, 봉황성으로 떠나지.”
“넷!”
최인범은 100명의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서쪽으로 이동했다. 200명의 경호원들은 역참에 있는 마차를 이용해 연해 시에서 많은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두두두두.
비포장도로라 많은 말들이 달려가지 먼지가 일어났다. 그래서 최인범은 선두에서 이동하고 마차는 뒤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수십대가 되는 마차가 동원되어 많은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척계광이 동해도에서 가져온 선물들이 제일 많았다. 또한 연해 시에서 봉황성으로 보내는 선물들도 많았다.
건어물과 모피가 있고 특이한 것은 해구신도 많았다. 선물 형태로 받아서 가지고 가는 물건 중에 유달리 해구신의 수가 많다는 것을 알고 최인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각료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아하겠군.’
대진국은 일부다처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고위관료에게는 부인들이 보통 2명이나 3명이 있으니 해보는 생각이다. 조선과 다른 것은 정실과 첩이라는 개념이 없어 서자라고 해서 제도적으로 불리한 처지는 아니다.
해구신은 정강제로 널리 알려졌다. 그 때문에 자신이 없는 동안 국정을 비교적 잘 이끌어준 각료들에게 포상으로 해구신을 넘겨줄 생각이다.
“해구신이 너무 많으니 고위급 장성들에게도 두 개씩을 보낼 수 있겠어.”
최인범은 연해 시에서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전에 조선에서 구했던 운석과 같은 금속 성분을 지닌 운석을 상당량 받았다.
“호위 무사들에게 갑옷과 장검을 만들어 주면 적당하겠어.”
최인범의 말에 철갑웅이 급하게 답했다.
“폐하, 제가 입는 갑옷이나 마갑과 같이 만들면 되나요?”
“그렇게 제작하는 것이 좋겠어, 내가 보기에 100벌은 충분히 만들 것 같으니 갑옷과 마갑까지 제작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줘.”
“넷!”
마차를 호송하는 경호원들은 한 필로 타고 가지만 100명의 경호원들은 별도로 말을 한 필씩 뒤에 달고 이동 중이다. 일정한 구간에 도착하면 태왕은 마차 행렬과 떨어져 먼저 봉황성으로 갈 계획이다.
두두두두.
드디어 용정에 도착하자 최인범 일행은 역참과 관청에서 운영하는 여관에서 쉬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최인범은 새로 경호 요원으로 합류한 아이누 청년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호랑이나 맹수사냥은 자신이 있다고?”
“넷!”
최인범은 아이누 청년들에게 부르기 쉬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희들은 곰을 숭배하니 앞으로 태일웅부터 태육웅으로 불리는 이름을 사용해.”
“넷!”
유달리 덩치가 큰 유전자를 지녔다고 판단해 클 태(太)를 성으로 삼았다. 특히 큰 덩치인 불곰을 섬기기 때문에 이렇게 지어준 것이다. 척계광의 생각대로 철씨 삼형제가 두 명씩 데리고 다니도록 조치를 내렸다.
“아직은 풍습이나 무술이 익숙하지 않으니 철갑웅 형제들이 개인별로 책임지고 교육해.”
“명을 따르겠나이다.”
아누이 청년들은 덩치도 크고 타고난 무골들이라 앞으로 잘 훈련시키면 철씨 삼형제 이외에 좋은 호위 무사로 양성될 것 같았다.
‘앞으로 정면 돌파 능력이 더 좋아지겠어.’
전쟁에 출전하면 항상 선두에서 기마병을 이끌고 있다.
최인범은 경호원 이외에 근접 경호를 담당할 호위무사를 별도로 두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최인범은 철씨 삼형제와 아누이 청년들에게 새로운 직책을 주기로 했다.
“철갑웅, 앞으로 호위관을 별도로 만들 것이니 네가 지휘관인 호위관 업무를 수행하고 다른 두 명은 호위부관으로 칭해. 새로 합류한 태씨 형제는 호위병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봉황성으로 가면 호위병의 수는 48명까지 늘려.”
“넷!”
“소속은 황실 직속으로 운용하게 되니 그렇게 알아.”
“알겠습니다.”
본시 황제의 경우 주변에 환관으로 근접경호병을 별도로 두지만 대진국은 환관을 많이 두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호위관이란 별도의 조직을 만든 것이다.
“앞으로 호위병들은 전투에 집중해서 투입되니 그렇게 알고.”
“잘 알겠습니다. 기마술에 능한 병사를 차출해 구성하겠습니다.”
최인범은 태씨 형제들에게 갑옷과 활 그리고 장검들을 넘겨주었다.
“봉황성에 도착해 운석으로 새로 갑옷을 만들면 주도록 해.”
“넷!”
무술 실력은 어느 정도의 수준은 되지만 능숙한 기마술을 익히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게 생겼다.
“이동 중에도 기마술을 계속 훈련해.”
“넷!”
새로 합류한 태씨 형제들의 역할을 정하고 나자 경호실 업무와 중복되지 않도록 업무를 조율하게 되었다. 경호원들의 경우 앞으로 근접경호는 하지 않도록 조치를 내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용정으로 떠나 서쪽으로 이동했다.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갈수록 길은 더 좋아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지역이라 이동하기가 수월했다. 대진국은 우편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전에 비해 도로 사정이 상당히 좋아졌다.
최인범이 이동하는 도로에는 많은 돌다리가 건설되어 있었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최인범은 개울가에서 쉬면서 멀리 보이는 학교 시설을 망원경으로 살폈다.
망원경으로 살피는 학교 주변에 소년소녀들이 개울에서 뭔가 잡고 있었다. 여선생이 초등학생들과 같이 야외실습을 나온 것 같았다.
사내애들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고 여자들은 나물을 캐고 있었다. 이곳은 주로 조선 출신들이 이주해 와서 조선의 시골 풍경과 비슷했다.
“흠! 여긴 이제야 나물을 캐는 것 같군.”
“폐하, 여긴 추운 지방이라 조선보다 봄이 한 달 가량 늦사옵니다.”
초등학교는 기존에 건축되던 방식이 아니었다. 나무와 흙벽돌로 벽을 만들고 지붕에는 기와를 올린 구조로 아주 긴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 운동장도 넓게 만들어져 그곳에서는 학생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대진국은 점차 근대화된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개울가에서 쉬던 최인범은 다시 말에 올라 지시했다.
“마차는 뒤에 따라 오라고 하고 우리 먼저 가자!”
“넷!”
최인범은 빨리 봉황성으로 돌아가 명나라의 움직임을 살필 생각이다. 국가정보원의 조직이 잘 가동된다고 하지만 실수나 방심으로 중요한 정보를 미처 알지 못할 수 있다.
‘가정제가 알탄 칸과 모의해 위장하고 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야.’
최인범 일행은 압록강 북부 지역의 동서를 관통하는 대로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한편 태왕으로부터 특별한 지시를 전달받은 국가정보원장인 최복동은 정보조직의 간부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명나라 움직임이 수상하다니 북경과 천진 산해관으로 정보원을 더 보내도록 해.”
“넷!”
최복동은 태왕의 서찰을 받자 자신이 뭔가 큰 실수를 했다고 판단했다. 명나라와 몽골에서 똑 같이 대진국에서 많은 무기를 구입해가니 방심한 것이다.
“만약 세 나라가 우리를 협공하기 위해 밀약했다면 큰일이니 철저하게 조사해.”
“넷!”
“특히 거용관으로 직접 사람을 보내서 두 나라의 전투 상활을 정확하게 수집하고.”
“알겠습니다.”
최복동은 조용하기만 한 조선도 은근히 신경이 써졌다. 조선까지 명나라와 결탁을 하게 되면 아무리 강한 대진국이라도 힘든 싸움이 되니 조심해야 된다.
“조선도 안심할 수 없으니 한양으로 정보원들을 더 보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명나라와 무기를 수출한다는 점 때문에 국가정보원은 북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 일부를 철수시켰다. 정보원의 수가 대폭 줄다가 보니 중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국가정보원에서 정보원들을 급하게 명나라와 몽골 그리고 조선으로 침투시키는 동안. 대련직할시에서 지내는 소피아 황비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용은 군량이나 또는 화약 등의 수입 요구량이 전에 비해 4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또한 대운하를 통해 남쪽에서 대규모로 식량이 운반되고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흠! 뭔가 이상하군. 제태국 때문에 대운하 사용이 어렵다고 하더니 이런 정도의 식량이 천진으로 보내지고 북경이 아닌 산해관으로 보낸다니 너무 수상해.”
소피아는 상인들을 통해 명나라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이런 정도만 알려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