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화
오우치 요시타카가 돗토리에 도착해 태왕이 있는 전함으로 찾아왔다. 요시타카는 당초 약속한 그대로 많은 은괴와 금괴 그리고 황, 주석, 구리를 가져왔다.
“폐하, 약속한 전비입니다.”
“약속한 수량보다 많군요.”
“폐하, 도고 섬에 있는 노예들을 돌려주신다니 그 대금까지 한 번에 가져왔사옵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비를 모두 정산하자고 하자 의아했다. 어쩌면 전쟁을 더 확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의도적으로 취하는 행동 같았다.
‘무슨 속셈이지? 벌써 전쟁을 끝내려고 하나?’
최인범은 일단 대금정산을 한다니 받아 놓고 나서 다음에 왜와 협력해 벌일 상륙 지점을 결정하는 전략회의를 하게 되었다.
최인범은 병력이나 선박을 더 모아서 멀리 떨어진 오바마를 공격하라고 권했다.
“오바마 영지를 공격해 점령하면 북쪽과 남쪽에서 수도가 있는 교토를 협공하기 좋으니 오우치 육군도 그쪽을 공격해 보시오.”
이런 권유에 오우치 요시오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폐하, 저희는 가까운 구하마마로 가서 점령할 생각입니다.”
“이상하군요. 어차피 어느 정도 전쟁을 끝내려면 수도인 교토를 점령해야 되는데 전혀 엉뚱한 곳을 최종 목표로 삼다니요.”
최인범은 요시타카의 의중이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본시 전쟁이란 최종적으로 수뇌부가 있는 수도를 점령해야 되는데 천황이 머무는 교토를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전력이 약해서 그럽니까? 무기가 필요하면 공급해 주죠.”
“아닙니다.”
같이 공격하면 충분히 오바마를 점령해 전략적으로 좋은 상황인데 요시타카는 더 이상 동쪽으로 전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최인범은 이번에 수도인 교토까지 점령할 정도까지 협조해줄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우치 요시타카가 원치 않으니 더 이상 권할 수 없었다.
“좋소. 그런 정도만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오.”
“감사합니다.”
전략 회의를 끝내고 나서 요시타카가 돌아갔다. 최인범은 측근인 두 비서관을 만나 요시타카의 의중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다.
“척 비서관, 자네가 보기에 요시타카의 의중은 뭐라고 보나?”
“폐하, 왜인들은 제가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음흉합니다. 요시타카는 수도인 교토를 무력으로 제압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천황을 잡아서 죽이고 싶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자네도 그렇게 느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오우치 요시타카의 행동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다. 너무 넓은 지역을 통치하기에 자신들의 세력이 약해서 조심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인범이 판단하기에는 오우치 요시타카는 규슈 지역에 태왕의 세력이 강해지자 표면으로만 천황과 결별한 모양새를 취하고 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흠! 왜인들은 믿을 것이 못되는 종족이라더니 결국 나를 이용해 자신의 세력만 적당히 넓힐 생각이었군. 여전히 천황을 따르는 무리야.’
이렇게 판단되자 최인범은 더 이상 오우치 요시타카를 도와줄 마음이 사라졌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도와 줄 필요가 없었다. 또한 더 이상 오우치 요시타카의 세력이 커지면 배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본토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도 많으니 이쯤해서 왜에 대한 공략을 끝내기로 했다. 본시 왜의 혼슈 지역을 병합할 마음이 없으니 이런 정도로 끝내는 것도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왜는 이제 쉽게 통일하기 어려운 정도로 동서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계속해서 동서로 나뉘어 박 터지게 싸우도록 놔두는 수밖에 없군.”
요시타카의 행동이 다소 이상해지자 최인범은 처음으로 규슈를 합병해 버릴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규슈에는 이미 하카타 담로를 건설해 놓은 상태라 합병하기는 수월했다.
문제는 합병하게 되면 그곳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느냐가 큰 문제다. 그러나 아직 조선도 완전히 합병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무리하게 규슈의 합병을 추진할 이유는 없었다.
‘규슈 합병은 나중으로 미루어야 되겠어.’
규슈를 합병하기 보다는 홋카이도나 사할린 지역으로 병력을 보내 합병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결심을 하자 최인범은 비서관들에게 명령했다.
“나는 전함을 2척만 이끌고 연해 시로 돌아갈 것이니 두 비서관은 왜선들을 구미하마 지역에 안전하게 상륙시켜주고 바로 홋카이도로 가서 병합하도록 해.”
“넷!”
“북쪽으로 이동하며 중간에 만나는 어선들이나 큰 항구 도시들은 모조리 파괴해 버리고.”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왜에서 생산되는 은이나 기타 광물 그리고 황 이외에는 별로 필요한 것이 없었다. 왜에서 계속 이주민을 받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의 여자들은 키가 작고 얼굴도 사실 별로야. 이빨도 앞으로 툭 튀어나와서 보기도 싫고. 차라리 인구가 많은 남명지역에서 헌강왕과 적당히 타협해 계속해서 소주 미인을 데리고 오는 편이 좋겠어.’
과거 한반도에서 넘어와 나라를 세운 왜지만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규슈 지역은 그나마 한반도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나 얼굴의 모습이 조선인들과 제일 많이 닮아 있었다.
‘남쪽으로는 규슈 정도만 차지하면 충분해.’
만주, 한반도, 규슈, 홋카이도, 사할린을 온전하게 차지하면 자연히 세력이 확대되어 유구 왕국이나 알레스카 지역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런 정도의 영토라면 미래를 봐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아직 합병시키지 않은 북쪽 지역은 인구도 적어 정치적인 집단들이 없었다. 8척의 전함만 이끌고 가도 충분히 합병이 가능했다.
최인범은 지도를 펴놓고 두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홋카이도와 사할린까지 이번에 합병시키고 연해 시로 돌아오도록 해.”
“넷!”
최인범은 전함 2척에 실린 화약을 다른 전함에 인계하고 최소한의 화약이나 탄약만 실었다. 오우치 가문에서 넘겨준 은괴와 금괴들만 싣고 돗토리를 떠나게 되었다.
한편 돗토리에서 머무는 오우치 요시타카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대진국의 해군을 이용해 영지를 넓히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늘어나는 영토의 해안 도시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자 실익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교토에 있는 천황이 다급해지자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 자신을 쇼군으로 임명하겠다고 협상했다. 천황이 실권은 없지만 그가 주는 쇼군의 직책은 사실 막강한 명분을 부여한다.
“여기서 전쟁을 끝내고 천황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어.”
“쇼군, 만약 이런 사실이 외부로 퍼지면 태왕께서 화를 내실 수도 있사옵니다.”
“그야 그렇지만 태왕도 별로 화를 내지는 않을 거야. 내가 보기에 태왕께서도 왜의 통일을 원치는 않으니 적당히 눈 감을 것으로 봐.”
“그렇군요.”
오우치 요시타카가 태왕의 의중을 확실하게 눈치 챈 것은 동해와 접한 북쪽을 집중해서 공략했기 때문이다. 만약 왜의 통일을 달성시킬 의도가 있다면 남쪽의 오사카는 물론 나고야 등지를 공격했을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대진국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았다. 대진국은 한반도를 합병하고 동해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취하는 군사적인 활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실익이 적은 전쟁을 일단 끝낼 생각이다.
“전쟁을 끝내고 은광의 생산량을 늘리면 자연히 우리세력이 커지니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좋아.”
“알겠습니다.”
오우치 요시타카가 이런 판단을 하고 전쟁을 끝낼 생각이지만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상황은 변하고 있었다.
한편 척계광은 돗토리에서 많은 왜선들을 인솔해 떠났다. 무방비 상태인 구미하마 만에서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펼쳤다. 대진국의 전함들은 왜인들이 넘겨준 식량이나 소를 싣고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미 초토화 작전은 명령받은 척계광은 함장들에게 지시했다.
“전에 산동 반도에서 펼치던 작전과 같이 시행하도록 해.”
“넷!”
4척의 전함들로 나누어 척계광은 해안선을 따라가면서 작전을 펼쳤다. 군사들이 보이지 않으면 구명정을 타고 격군들이 해안에 상륙해 갈대밭이나 또는 산에 불을 지르는 방법으로 해안과 접한 어촌들을 무지박지하게 공격했다.
강사상 비서관은 아무런 무력이 없는 작은 섬들에 상륙했다. 섬사람들이 보유한 기름이나 식량 그리고 가축과 어물을 완전히 수거해가며 사람이 살지 못하는 무인도로 만들었다.
오바마 만으로 진입한 4척의 전함은 해변 가까이에 도착했다. 입구가 좁은 만으로 전함이 들어오자 오바마에서도 반격작전을 펼쳤다. 작은 어선에 화약을 싣고 불을 질러 돌진하고 있었다. 방심하다가 처음으로 당하는 화공 작전에 척계광은 순간 당황했다.
‘흠! 너무 방심했어.’
척계광은 커다란 돛이 달린 20척의 작은 어선들이 전함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자 크게 외쳤다.
“전 함대! 함포 발사!”
“발사!”
쾅! 쾅! 콰광! 쾅! 쾅! 콰광!
정신없이 함포를 쏘지만 작은 배를 명중한다는 것은 힘이 들었다. 화약과 기름을 가득 싣고 달려드는 것이 분명했다. 그냥 한 대씩 노리고 함포를 발사하다가는 전함이 당하게 생겼다.
척계광은 급하게 외쳤다.
“전 함대 전방에 화망으로 사격!”
“화망 사격!”
그와 동시에 격군들이 석궁으로 발사되는 불화살이 빠르게 화망을 구성할 목표 지점으로 신호를 날렸다.
쉬익! 펑! 펑!
작은 어선들이 달려드는 중간 지점에서 폭음과 함께 화약이 터지며 빨간 연기가 피워 올랐다. 그러자 산발적으로 사격하던 함포들은 일제히 화망의 표시가 된 목표점을 향해 무차별로 사격을 가했다.
쾅! 쾅! 콰광! 쾅! 쾅! 콰광!
매섭게 쏘는 함포 사격으로 전함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던 작은 어선들이 하나 둘 중간에서 커다란 폭음과 함께 폭발해 침몰했다.
펑! 펑! 펑!
“기름이다!”
어선들이 폭발하며 좁은 만에 무수한 기름이 바다에 품어졌다. 적들은 작은 어선에 화약도 실었지만 많은 기름을 싣고 있었다. 순간 좁은 해역에 거세게 불길이 일어났다.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로 척계광은 매우 당황했다. 이대로 좁은 오바마 만에 있다가는 불길로 전함들이 당하게 생겼다.
“후퇴! 후퇴!”
둥둥둥! 둥둥둥!
척계광은 빠르게 후퇴 신호를 보내고 기수를 돌려 북쪽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해전에서 처음으로 후퇴했다. 급하게 북쪽으로 후퇴해 적의 반격을 피한 척계광은 크게 외쳤다.
“기수를 돌려 천자총통으로 공격해.”
“넷!”
오바마 영지의 외곽을 향해 사거리가 긴 천자총통을 발사해 화공을 펼쳤다. 함포 사격과 더불어 화차에서는 수많은 신기전을 날렸다.
쾅! 쾅! 과광! 쉬이익! 쉬익!
화약 냄새가 가득한 가운데 작은 영지인 오바마 인근 산에는 순간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산에서 시작된 불길이 거세지며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전함들은 빠르게 먼 바다로 나와 섬을 초토화하는 강사상이 이끄는 전함들과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