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화
한편 태주 남쪽에 있는 온주(溫州)에는 100척의 왜구 배들이 침략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갑자기 떼 지어 온주 항구로 밀려든 왜구들은 무지막지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장검은 든 왜구들은 피에 굶주린 야차와 같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있었다.
“으아악!”
“으악!”
왜구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겁에 질려 천지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무리는 얼마 되지 못하고 왜구들의 장검에 죽어갔다.
요즈음 들어 왜구들 때문에 다소 불안한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왜구가 나타나지는 않아 평온했던 온주다. 그러나 갑자기 늘어난 왜구들의 침입에 온주는 도심 전체는 처절한 비명으로 가득했다.
더구나 훈도시만 입은 왜구들이 부녀자들을 마구 유린하자 도시 전체는 공포에 휩싸였다. 거리에는 어느새 정신이 돌아버린 상태로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여자들도 간간이 보였다.
“히이! 아가야!”
왜구의 손에 죽은 아이를 안고 넋이 나가서 돌아다니는 여자들도 보였다. 처음에 조금 대적하던 관군들은 세가 불리하자 모두 서쪽으로 달아났다.
“으아악! 으악!”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왜구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때로는 코만 자르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니 온주는 왜구들 때문에 지옥으로 변했다.
큰 성곽인 온주(溫州)는 별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왜구들에게 점령당했다. 온주 성을 점령한 왜구들은 관청은 물론 민가로 들어가 재물들을 약탈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남김없이 챙겼다. 남자들이야 모두 죽이거나 포로로 잡고 여자들이야 재물로 인식해 역시 포로로 잡았다.
퍽!
“빨리 가!”
장검으로 포로들의 등을 때리자 포로로 잡힌 사람들은 급하게 부두에 정박한 왜구들의 배로 이동했다. 대적할 무력이 전혀 없는 온주는 왜구들의 세상으로 변했다. 왜구들은 신이 나서 자신들이 타고 온 배에 약탈한 재물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금은보화는 당연히 우두머리가 타고 있는 안택선에 실었다. 원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나중에 나타나는 안택선 보다는 비교적 낮게 건조된 누각이 있는 선박이다.
“챙긴 재물이 많으니 돌아가면 한동안 놀고먹어도 살겠어.”
“당연하지.”
이들은 모두 나고야에서 출발한 왜구들로 수장은 하야시 영주다. 영주가 직접 출동했기 때문에 이번에 명나라의 남쪽을 침범한 왜구 무리들 중에 제일 규모가 크다.
이제는 영지인 나고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하야시는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챙길 짐을 모두 가지고 떠나자!”
“넷!”
하야시는 재물도 충분히 챙기고 많은 미녀들을 차지했으니 온주를 떠날 생각이다. 막 떠나려고 부두로 향하던 왜구들은 기절하듯이 놀랐다.
“헉! 저게 어떤 배야?”
처음 보는 커다란 배들이 온주 만에 나타났다. 그러자 온주에 있던 왜구들은 기겁해 놀라면서 온주 성 안으로 재빨리 도망쳤다.
참모는 같이 달려서 도망을 치며 영주인 하야시에게 물었다.
“영주님, 배를 타고 나가서 싸우지도 않고 무조건 도망가요?”
“죽기 싫으면 내말을 따라! 저들은 현풍 제독이 이끄는 대진국의 현풍함대야.”
“예? 깃발이 해골이 그려져 대진국과 다른데요?”
“그건 현난풍이 대진국의 해군과 구분하기 위해 새로 만든 깃발이지. 실제로는 모두 대진국의 지원을 받아 해군과 똑 같아.”
하야시 영주는 얼마 전 유구 왕국으로 다녀와 현난풍이 이끄는 현풍 사략선단의 실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배의 크기나 무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니 바다로 나가 싸운 다는 것은 자살 행위에 불과했다.
“그저 우리는 숨죽이고 숨어 있는 것이 최고야.”
“배의 재물은 어찌 하고요?”
“그건 다시 주변 고을을 다니며 털어야지.”
현난풍은 특이한 방법으로 재물을 챙겼다. 망원경으로 먼 바다에서 살피다가 왜구들이 육지로 들어가 약탈하면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육지와 가까운 섬에 숨어 있다가 약탈이 끝나면 갑자기 나타나고 있었다.
왜구들이 배에 승선해서 대적하면 무조건 화차를 발사해 모조리 불살라 버린다. 그러나 배를 버리고 내륙으로 도망치면 위협사격으로 돌탄을 배들 주변에 발사했다. 겁이 난 왜구들이 배에서 멀어지면 배로 접근해 약탈한 재물만 챙겨서 사라지고 있었다.
현난풍은 한번 공격한 왜구들을 더 이상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왜구들은 한번 털어온 재물은 현풍사략 함대에게 통관세처럼 뇌물로 넘겨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인식했다.
현난풍은 온주까지 오면서 그런 방식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래서 왜구들 사이에는 현난풍의 행동에 치를 떨면서고 승복하고 있었다.
“조선 속담에 도둑놈이 있어야 포졸도 먹고 산다니 우리도 그렇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야.”
“편하게 그리 생각하는 것이 좋지. 소문을 들으니 전에 그렇게 잘 협조하던 노무라가 그걸 못한다고 까불다가 박살이 났다고 하잖아.”
“자네도 노무라에 대한 소문을 들었나? 현난풍에게 버림받은 노무라는 열 받은 명나라 사람들에게 결국 잡혀서 사지가 어육이 되어 만두소로 넣어져 팔렸다고 하더군.”
하야시 영주는 그런 점을 잘 아니 온주에서 턴 재물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열이 나도 꾹 참아야 해. 여기서 전투를 벌이면 우린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영영 막힌다고. 배가 없는 우리는 결국 노무라 신세와 같이 돼.”
“그렇군요.”
“서로 같이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니 딱히 억울하다고 할 필요는 없어.”
“그렇군요.”
현난풍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방법이 최선이다. 함대 함끼리 포격전을 벌이면 유리하다. 하지만 왜구와 접근전이나 또는 육지로 상륙하는 작전은 자신들이 매우 불리한 점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태왕께서 제시해준 지금의 방법을 택해 왜구들이 약탈한 재물의 반을 차지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잠시 뒤에 8척의 전함에서 함포사격이 시작되었다.
쾅! 쾅! 콰광! 쾅!
하야시는 함포 사격이 시작되자 놀랐다. 전에 경험한 함포의 위력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너무 멀어서 잘 몰랐는데 배도 전 보다 더 커져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으로 들어와 숨기를 잘했지. 배의 척수만 믿고 전투를 벌였으면 오늘이 너와 나의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어.”
“그러네요.”
함포를 발사하던 배들 중에서 그나마 작은 전투함 4척이 하야시가 타고 온 안택선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안택선에 들어 있던 재물들을 모조리 챙겼다.
부제독인 현장화가 왜의 지휘선인 안택선에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여자들을 챙기고 남자들도 격군으로 필요하니 데리고 가.”
“넷!”
100척이나 되는 함정에 실린 재물이라 옮기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왜구들 손에 구한 포로들에게 현장화가 크게 외쳤다.
“우리와 같이 가면 원하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정착시킬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가족은 어떻게 하죠?”
“난리 통에 가족들 소식이 두절 됐으니 따로 살라는 거요. 나중에 가족을 찾으면 이주시켜도 되고.”
“감사합니다.”
그나마 왜로 끌려가게 생겼던 남녀 포로들은 현장화가 한 약속 때문에 부지런히 재물을 옮겼다. 아직도 성안에 왜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남고 싶지 않았다.
현정화는 원하는 사람은 왜구가 없는 먼 대진국으로도 보내 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포로들은 왜로 끌려가 평생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현난풍의 무리에 합류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왜구라면 지긋지긋하니 멀리 떠나자고.’
대략 몇 년에 한 번씩은 꼭 왜구들이 노략질을 벌인다. 물론 이번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온주(溫州)에 도착해 대규모의 왜구를 만나 큰 재물을 챙긴 현난풍은 12척으로 구성된 현풍 함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이번 한 번의 탈취 작전으로 많은 재물을 챙기자 태왕께 넘겨줄 전함 대금으로 충분했다. 온주가 왜구들에게 얼마나 철저하게 약탈당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태왕께서 보타도를 떠나기 전에 전함을 더 달라고 해야 돼.”
“제독님, 또 전함을 차지하시려고요?”
“그래야지. 나중에는 전함을 달라고 하기 어려워.”
“그렇겠네요.”
뛰어난 머리를 지닌 현난풍은 태왕의 의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내세워 왜와 남명이 결탁하는 것도 방해하고 양쪽 모두를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임을 눈치 챘다.
“8척의 전함을 인수해도 배를 운항할 선원은 충분하겠지?”
“넷! 배를 운항할 선원이야 충분합니다. 하지만 포수나 다른 선원은 너무 부족합니다.”
“그거야 새로 합류한 명나라 사람을 선원으로 교육시키면 되지.”
지금이야 자신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필요할 때 태왕과 협상을 잘해서 한척이라도 더 차지해볼 요량이다.
‘노무라만 토사구팽이 아니야. 나도 그리 될 수 있어.’
태왕은 분명 많은 전함을 자신에게 넘길 의사는 분명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약탈한 재물을 모조리 탈취당한 하야시는 현풍 함대가 떠나자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의 재물은 거의 털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빨리 약탈을 하고 명나라를 떠날 계획이다.
“빨리 승선해 남쪽으로 가자.”
“넷!”
하야시는 100척이나 되는 배들을 이끌고 온주를 떠나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남쪽에 있는 복주다. 어찌 보면 복주가 이곳보다 재물이 많은 곳이니 그곳을 털고 재빨리 명나라를 떠나면 현풍 사략함대를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다를 가득 매운 하야시의 함대는 남쪽으로 가다가 드디어 복주에 도착하게 되었다.
복주(福州)는 바다와 접해 있지만 강을 따라 조금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곳이다. 그래서 하야시는 접안하기 좋은 양항이 있는 북쪽 지역으로 서서히 접근했다. 좁은 해협에 있는 항구로 수많은 왜구들이 나타나자 이곳에 있던 어선들은 놀라서 급하게 도망쳤다.
하야시 영주는 참모에게 지시했다.
“여기는 수심이 낮은 곳이고 처음 와보는 해역이니 천천히 운행해.”
“넷!”
수심이나 지형을 잘 모르는 해역을 항해하려면 조심할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만약 실수라도 해서 암초에 걸려 조금이라도 배들이 부서지면 수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런 왜구들의 조심성 때문에 시간을 벌게 된 복주(福州) 외곽에 사는 어민들은 작은 어선들을 이용해 모두 강을 따라 서쪽으로 도망쳤다.
이럼 모습을 살피던 참모가 하야시에게 물었다.
“영주님, 저들이 모두 복주 성으로 도망치면 나중에 복주를 공격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우선 이곳 부두부터 점령부터 하고 나서 복주를 생각해. 복주도 별로 군대가 강하지 않으니 쳐들어가서 함락하면 되니까.”
내륙 항구로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이곳에는 강의 하상이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침저선인 배들로 함부로 들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