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흥무2년 을사왜변>
장거정의 활동으로 항주에서 주산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우수한 도공과 화공들이 오자 최인범은 그들을 일단 제주도로 보내기로 했다.
“장 비서관, 전함 30척에 사람들을 싣고 제주도를 다녀와.”
“넷!”
“제주도에 도착하면 장 비서관은 돌아오지 말고 조선의 한양과 봉황으로 연락해서 제주를 도(道)로 승격시키고 제주목은 제주직할시로 변경해.”
“폐하, 다른 곳은 어찌 나누죠?”
“대정현을 군으로 만들고 동쪽도 성산군으로 나누도록 해.”
“넷!”
제주도를 담로와 같이 운영하려던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카타를 비롯해 주산 담로를 원활하게 통치하려면 제주도를 정식 행정구역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도지사는 본국에서 임명해 보내도록 조치를 취하고 나머지는 기존의 관료를 대진국의 관료로 임명하도록 해.”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기존의 관료를 그대로 임용하는 이유는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완전히 대진국의 행정구역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기점으로 차츰 조선도 대진국과 똑 같은 행정조직으로 만들 생각이다.
일종에 시범지역과 같이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주도부터 흡수하려는 것이다.
최인범은 약간 서두르고 있었다.
“준비되는 데로 바로 떠나도록 해.”
“넷!”
다른 것은 문제가 되자 않으나 살아 있는 송아지와 묘목은 빨리 보내야 한다. 그 때문에 제주도를 다녀오라고 명령했다. 더구나 남경에서 보내기로 한 여자들도 늘어 3천명이나 되자 그들을 모두 이곳에 정착시킬 수 없었다.
김신완 사령관과 상의한 결과 여자들은 1천명을 남기고 2천명은 제주도로 보내기로 했다. 그 외에도 새로 이주해온 기술자들과 가족들도 1천명이 있기 때문에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도 운송하려면 배가 많이 필요했다.
“화포를 내리고 격군을 모두 하선시킨 뒤 이주민을 싣고 떠나도록 해.”
“넷!”
격군과 화포를 내리면 3천명을 싣고 화물까지 충분히 운반할 수 있었다. 전함은 대정항으로 가서 그곳으로 가져왔을 화포나 화차로 다시 무장하고 제주도에서 2천명 정도를 이주시키기로 했다.
이곳에서 살던 섬사람들로 제주도로 이주한다고 무역선을 타고 떠났다. 전쟁이 터질까 염려해 떠난 사람들의 수가 무려 5천명이나 되었다. 그 때문에 전에는 유인도이던 작은 섬들이 졸지에 무인도로 변한 곳도 많았다.
남경의 사신과 협상하자 주산담로에 발동된 조업금지령이 해제했다. 해제됨과 동시에 전과 달라진 내용이 있었다. 어민들은 모든 수산물을 주산남항으로 가져와 경매 방식으로 판매해야 된다. 이제 육지는 타국으로 온전히 구분됐기 때문에 가깝다고 해서 판매할 수 없었다.
주산남항에 있는 수산물경매시장에서는 처음 사용하는 경매라는 방식과 화폐로 대금결제를 해주자 어민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돈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쌀과 소금으로 바꾸죠?”
“저쪽 창고로 가서 돈을 내고 바꾸시오.”
“나중에 바꾸어도 되지요?”
“그렇소. 담로청에서 관리하는 창고니 언제든지 똑 같은 수량과 바꿀 수 있소.”
“알겠습니다.”
대진국의 화폐인 대진통보(大眞通寶)를 이곳에서도 유통시키고 있었다. 화폐단위는 원(圓)으로 1, 5, 10, 50, 100, 500 원(圓)의 6종류의 철제 화폐를 발행하고 1000원(圓) 부터는 은화다. 화폐가치는 관청에서 1원이면 미곡 1홉을 바꿀 수 있어 1000원(圓)이 미곡 1가마다.
현물교환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이곳에서는 많은 미곡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화폐의 유통을 늘리고 또한 물가도 안정시키기 위해 고정적으로 교환해주고 있었다. 관청의 창고에서 교환할 경우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있으나 이곳에서는 수수료가 전혀 없었다. 새로 시작된 곳이라 일종에 세금감면을 해주는 것이다.
최인범이 제주를 직할시로 만드는 이유는 직할시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직할시에서 화폐를 발행해 하카타를 비롯해 이곳 주산까지 공급하도록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다.
근해에서 어민들이 조업을 시작하고 주산남항의 수산물 경매시장이 활기차게 돌아가자 항주나 영파도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경매시장으로 모아진 수산물은 해군의 전투함으로 항주와 영파 항구로 보내고 있었다.
전함에서 내린 600문이 넘는 화포는 일단 창고에 반이 비축되고 300문은 주산도나 보타도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결국 주산도에 주둔하는 1000명의 육군은 모두 해안포대의 포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육군의 병사들은 다들 신이 났다.
“근무 성적이 좋으면 장가를 보내주는 것이 포상이라네.”
“그러냐? 그럼 나는 장가를 가겠네. 전에 화승총 사격에서 5등했으니까.”
“그런 것도 해당이 되냐? 5등인데.”
“당연하지.”
거저 생기는 것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그래서 최인범은 사령관에게 지시해 육군들 중에 뭔가 포상을 받을 만한 실적이 보이면 혼인시키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해군들이 불만을 표했다.
“우린 뭐야? 고생은 더하는데.”
“우리 해군은 자주 근무지가 바뀌니 제주도에서 혼인을 시켜준다고 하네.”
“아! 거기가 사령부가 있어서 그렇게 하려는 것 같군.”
해군이라고 모두 함정을 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는 육군과 같이 소주나 항주미인들과 혼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인범은 사령관이야 총통의 업무로 정신이 없어 12척의 전함을 직접 지휘해 왜구 소탕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사략선을 운영하는 현난풍은 자신의 지시에 따라 저장성의 남쪽에 있는 온주 남쪽에서만 활동을 한다. 그 때문에 그 위는 자신이 왜구를 소탕해 줘야 한다.
해군들을 모아 놓고 최인범은 약속했다.
“이번 소탕작전에서 공이 많은 병사는 포상할 계획이나 다들 최선을 다하도록 해.”
“와! 만세! 태왕폐하 만세!”
포상이야 당연히 장가를 보내 준다는 의미라 다들 신이 났다. 여기에 남게 된 여자들도 혼인하면 많은 혜택이 오니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하면 살기 좋지만 놀면 어려운 대진국이라 소주미안이라고 불리는 여자들도 주산도로 와서 직업을 가졌다. 주로 수산물경매시장 옆에 있는 가공공장에서 근무한다.
어물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소금으로 저리는 공정에서 일하는 두 미녀가 작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소총을 잘 쏘는 남자가 좋은데. 들리는 소문에는 소총을 잘 쏘면 제주도에서 꿩 사냥만 하면서도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
“겨우 사냥꾼에게 시집을 가려고? 나는 화포를 잘 쏘는 병사가 좋아 보이던데. 본시 남자라면 허접한 소총 보다 그래도 큰 화포로 펑펑 내지르는 것이 좋지.”
“어머! 너 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호호! 알아들었냐?”
소주나 항주에서 오게 된 미녀들이 모두 양가집에서 오지는 않았다. 일부는 부모가 버리기는 뭐해 잘 살라고 보내기도 했지만 일부는 기방에 팔렸다가 오게 된 여자들도 있었다.
여자들은 새로운 곳에서 살기 때문에 과거의 행적이야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남자를 너무 잘 아는 부류도 있고 또 서로 과거를 잘 아는 친한 사이도 있었다.
두 여자는 기방에서 있다가 이주했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되었다.
“사내들은 등신들 같이 모두 숫처녀를 원하니 너는 무슨 좋은 방법이 있냐?”
“있지. 그런 거야 별거 아니야.”
살자고 하는 짓이다. 기왕이면 숫처녀와 결혼한다고 좋아할 남자를 기분 나쁘게 할 이유는 없었다. 특히 남자들의 묘한 속성을 잘 아는 경험 많은 여자들은 신혼 첫날을 나름 철저하게 대비했다.
기방 출신 여자들은 수산경매시장에서 건어물로 만들 생선을 다듬으며 매일 같이 어물의 부레를 가지고 각종 실험을 하고 있었다. 목적에 부합되려면 건들기만 해도 터져야 하는데 부레가 의외로 질기고 잘 터지지 않아 은근히 고민이다.
“이건 길쭉하고 상당히 질기니 나중에 다른 용도로 사용해도 되겠어.”
“무슨 용도?”
“이것을 끼우면 임신을 안 하니 임신을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거지.”
“아하, 그것도 좋겠네. 젊고 예쁜 우리가 무조건 주구장창 아이만 낳을 수는 없으니 좋은 방법이야.”
들어오는 물고기 종류도 많다보니 두 여자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부레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은밀하지만 여자들 사이에는 비밀 아닌 비밀로 널리 확산되었다.
이런 철저한 준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무슨 ‘숫처녀가 기다 아니다.’하는 다툼이 있거나 어떤 말썽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비밀을 최인범은 이미 알고 있고 처음으로 방법을 고안해 여자 군의관을 통해 여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중령인 여자 군의관은 전에 조선왕실에서 내의녀로 지냈다. 의술이 너무 뛰어나서 보건비서관으로 주치의를 겸하는 보직에 발탁되었다.
아무리 인물도 좋고 뭐도 좋지만 성병이 있으면 안 되니 여자 군의관이 철저하게 검사해서 이주시켰다. 여자 군의관이야 처음에 미녀들의 숫처녀 여부를 검사해 여자들의 과거 행실을 너무 잘 안다. 태왕께서 여자들 중에 골라서 후궁이나 궁녀로 데려 가려는 줄 알고 나름 정확하게 검사했었다.
40대 후반인 여자군의관은 과거 중종이 매우 아끼던 사실이 있어 혹시 대장금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이름은 한민옥이다.
보타도의 서항을 떠나 먼 바다로 나온 12척의 함대는 모두 3개 분견대로 나뉘었다. 하나는 무조건 해안선을 따라가고 하나는 해안의 섬을 수색하며 남행하고 있었다.
제일 먼 바다에 위치한 전함에 승선한 최인범은 보건비서관인 한민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비서관, 그대는 몇 번이나 제왕절개 수술을 성공한 거요?”
“짐승이야 10번 정도고 사람이야 5번 정도 해봤습니다. 다행이 실패한 경우는 없었고요.”
“어려운 수술인데. 실력이 좋군요.”
“그렇지 않아요. 저보다 능력이 좋은 의사들이 많아요.”
대진국은 의사와 의원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의사는 보통 신의학이라는 분야야 종사하고 의원은 구의학에 종사하고 있었다. 한민옥 비서관은 신구의학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민옥은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폐하, 세상에는 자손을 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요?”
“인류가 지속되는 이유는 딱 하나는 생존력입니다. 성인이 되면 자손을 봐서 후대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옵니다.”
“알았소. 그대가 권하는 대로 보약을 먹어보지.”
“바로 준비해 올리겠사옵니다.”
한민옥은 태황으로 후계자를 보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고 거창하게 인류의 생존을 들먹이고 있었다. 또한 자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며 계속 망원경으로 해안 지역을 살피던 최인범이 함장에게 지시했다.
“함장, 정선해.”
“넷!”
쾅! 콰광! 쾅!
멀리 태주(台州)가 보이는 섬 주변에서 함포 소리가 나고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드디어 전함들이 왜구를 발견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을사왜변의 소탕작전이 전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