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배와 같이 생겼다고 해 주산도(舟山島)라고 부리는 섬은 수만명이 인부로 들어와 해안선을 따라 도로를 내고 중간 중간에 포진지를 만들었다.
최인범은 이곳을 마치 대련항의 비사성처럼 요새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일하는 인부들이야 자신들이 건설하는 곳이 나중에 포진지로 사용되는지 모르고 있다. 그저 경치 좋은 해안도로를 내고 중간 중간에 누각을 세우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모두 건설이 끝나면 앞으로 여기는 구경거리가 많겠어.”
“산에는 모두 높은 전망대도 있잖아.”
더구나 높은 산에는 어김없이 높이 쌓아 올린 관측소가 들어서 있었다. 그런 시설은 모두 돛대와 같이 보였다. 최인범은 이곳 주산도를 마치 불침전함과 같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해안에는 이곳에 부족한 부두 시설도 새로 만들었다. 기타 육군의 정규사단 병력이 주둔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숙영시설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홍도와 같이 평소에는 민간인이나 군대에서 비축 창고나 또는 건조대 증으로 사용할 석재로 만든 사각형의 건물들이다. 별로 어려운 공법도 아니라 해안이나 산에 흔히 보이는 돌과 석회를 이용해 건축했다.
와글와글.
무려 수만명이나 인부가 영파 항구지역에서 넘어와 일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목표로 하는 시설들은 빠르게 준동되었다. 훈련을 하지 않는 해군들이나 육군도 같이 참여하기 때문에 진행 속도는 더욱 빨랐다.
“여기로 본토에서 주민을 이주시키려나? 왜 많이 만들지?”
“그렇지는 않고 여기서 근무하면 혼인시켜 정착시키기 위해 집을 많이 세운다고 하더군.”
“정말?”
이런 이야기가 떠돌자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해졌다. 해군은 바다에서 오래 생활해야 하니 힘들다. 육군의 경우도 먼 타지로 와서 근무하게 되니 낙담하다가 다들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이다.
최인범은 목표대로 이곳을 주산담로(舟山擔魯)로 정했다. 그 때문에 행정기관도 필요하지만 당장 최고 책임자인 총통도 필요했다. 그래서 제1함대 김신완 사령관에게 지시했다.
“사령관은 이곳에서 임시총통을 하시오.”
“폐하, 임시라면 언제까지?”
“그건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군정체제로 주산군도 전체를 지금처럼 관리하면 될 거요. 나중에 정식으로 총통이 오게 되니 그때까지 업무를 보며 됩니다.”
“명을 따르겠나이다.”
이곳은 하카타 담로와는 다른 곳이라 대진국에서 직접 관리들을 보내야 된다. 그래서 행정조직은 기본적으로 시 단위와 같게 만들어 관료들을 보낼 예정이다. 현재는 군인들뿐이라 제1함대 사령관이 장교들과 같이 행정 업무도 담당하게 조치를 내렸다.
이런 임명과 더불어 김신완 사령관에게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을 아예 정착시키는 방법을 지시했다.
“명나라에는 여자들을 사고파는 경우가 많으니 육군에 소속된 병사들이 원하는 경우 그런 여자를 사서 혼인시키도록 하시오. 되도록 연고가 없는 여자가 더 좋을 겁니다.”
“폐하, 해군은 해당이 안 되나요?”
“해군은 아직 임지가 확정되지도 않았고 되도록 조선의 중부지방 출신을 아내로 맺어지도록 해볼 생각이니 당분간은 그대로 두세요.”
“넷, 잘 알겠습니다.”
해군까지 명나라 출신들과 혼인하게 되면 자칫 주산군도가 자신의 목적과 다르게 나중에 독립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되도록 조선의 중부지방 출신인 여자와 혼인을 주선해보려는 것이다.
제주도나 남해안 출신이 아니고 중부지방을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현난정이 이끄는 선원들이 그쪽 출신이기 때문이다. 서로 합심하면 반란 세력이 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해 인구 구성원을 다양하게 하려는 것이다.
‘태왕이 되고 보니 내가 별 이상한 걱정도 다 하게 되는군.’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다. 자신의 의도를 발설하지 않으면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원칙만 그리 정하고 실제로야 나라에서 혼인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으니 각자 알아서 혼인하게 될 것이다.
다만 주변머리가 없거나 혹은 고아나 다름없어 혼인하기 어려운 병사들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계회대로 혼인을 시킬 요량이다.
장거정과 척계광 그리고 강사상이 합류해 주산담로의 행정조직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협조하자 빠른 진척을 보였다.
사실 군정체제로 당분간 유지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나중에 민간 관료가 오면 근무할 관청만 만들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필요할 호구 조사나 법에 대한 절차만 갖추는 것이다.
담로의 총통은 대진국의 도지사처럼 행정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 사법, 재정을 통괄하기 때문에 조선의 관찰사와 비슷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담로로 확정된 주산군도는 점차 변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난풍은 전함을 인수해 해상훈련을 하다가 보니 욕심이 생겼다. 본시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집념이 남다른 성품이다.
새로 인수한 전함은 전에 보유하고 있던 전투함에 비해 너무 차이나는 함정이다. 안전성이나 또는 항해 능력 그리고 적재 능력이 전혀 다른 우수한 함정이라 욕심이 났다. 그래서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 태왕을 찾아와 사정했다.
“폐하, 기왕에 전함을 넘겨주실 생각이시면 이번에 8척을 넘겨주세요. 반드시 빠른 시기에 전함 구입대금은 벌어서 가져오겠습니다.”
“지금 4척도 너무 무리라고 보는데 꼭 8척이나 필요한 거요?”
“그러하옵니다. 충성을 다하겠사오니 8척을 넘겨주셨으면 하옵니다.”
자신을 대신해 사실상 남쪽으로 진출하기 때문에 들어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혹시 현난풍이 딴마음을 먹을지 모르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미 믿기로 결정했다.
‘헌강왕과 협상을 빨리 매듭지으려면 현난풍이 빨리 왜구를 소탕해 주는 것이 좋아.’
결국 추가로 전함 4대를 넘겨주고 대금은 최대한 빠르시기에 갚는 다고 약속하게 되었다.
“반드시 올해를 넘기기 전에 전함 대금을 이곳으로 가져 오시오.”
“넷!”
육지인 수로도 진입할 수도 있어서 전투함급인 사략선을 회수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어 현풍 사략선단은 전함 8척에 전투함 4척인 선단이 구성되었다.
현풍 사략선단은 엄청난 규모로 커진 것이다. 아직은 격군이 모자라지만 그건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명나라 사람이나 왜구를 잡아서 모두 노예로 삼아 격군으로 쓸 요량이다.
현난풍은 이제는 막강한 함대를 이끌게 되었다. 이런 정도 함대라면 어떤 나라로 가도 큰 힘을 발휘할 정도가 됐다.
현난풍은 재빠르게 난풍 사략선단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전에는 항상 화물을 싣고 항구를 떠났지만 이번에는 화약이나 무기만 가득 싣고 떠났다. 그녀는 남쪽에서 한창 활동 중인 동왜의 영주들이 참여한 왜구들인 무역선을 소탕해 재물을 챙길 생각이다.
전함을 타고 떠나며 현난풍은 현장화에게 호언장담했다.
“부제독, 남쪽으로 가기만 하면 털어먹은 왜구들이 많으니 빨리 가지.”
“제독님, 왜구들이 녹녹치 않을 건데요.”
“다 요령 것 털어 먹는 방법이 있으니 염려하지 마.”
최인범은 현난풍에게 전함을 넘겨주며 왜구를 털어서 재물을 챙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현풍 사략선단은 이제 본격적으로 해적을 노리는 해적단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현풍 사략선단이 보타도를 떠나고 먼 남쪽으로 향하자 남경에서 헌강왕이 보내 사신이 도착했다.
남경 관할인 항주와 영파의 항구가 봉쇄되자 봉쇄를 풀어달라고 찾아왔다. 그리고 절강성이나 복건성 지역에도 왜구들이 대량으로 출몰하자 소탕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폐하, 왜구들이 너무 많아 소탕하기 힘드니 그것을 해주셨으면 하옵니다.”
“원한다면 해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해군 병사들이 너무 오래 배를 타고 다니느라 심신이 지쳐서 당장 해드리기는 곤란합니다.”
“폐하, 왜구만 소탕되면 남경도 새로 독립할 생각입니다.”
왜구들만 소탕하면 독립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의 말이다. 아마 왜구 소탕을 핑계로 군사를 모아놓고 독립을 선언하려는 계획 같았다. 이미 예측한 일이지만 최인범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독립을 해요?”
“폐하, 그렇사옵니다. 북경의 명나라는 이제 끝났다고 봅니다. 만리장성도 알탄 칸에게 허물어진 상황이라 더 이상 그들을 믿을 수 없어 헌강왕 전하께서는 독자적으로 나라를 경영하실 생각이십니다.”
“그거야 그대들의 생각이고. 아무튼 병사들이 진지를 만들거나 관청을 건축하느라 너무 피곤해 불만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해적 소탕작전은 조금 지나야 가능합니다.”
이렇게 슬며시 거절하고 정향 공주가 보낸 표범새끼만 철망에 넣어 넘겨주었다.
“내가 남경을 직접 갈 수 없으니 공주가 보낸 선물이나 가지고 돌아가세요.”
“폐하, 전비는 충분히 드릴 것이니 부탁드립니다.”
결국 전비를 부담한다고 말하자 최인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지시를 내렸다.
“군사 문제는 척계광이 담당하니 그와 잘 협의해 보시오.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좋은 방도가 있는지 모르니.”
“알겠사옵니다.”
태왕이나 되어 재물을 가지고 사신과 직접 흥정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슬며시 척계광에게 떠넘겨 버렸다. 자신이 나서기 보다는 척계광이 나서야 더 많이 우려낼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척계광을 만난 사신은 협상하게 되었다. 척계광은 사신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우리가 해안에서 소탕 작전을 펼쳐도 왜구들이 배를 버리고 내륙으로 도망치면 대책이 없어요. 그러니 남경에서도 무기를 구입해서 그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당장 무기를 만들기는 곤란한데요.”
“우리가 육군을 보내지는 못해도 필요한 무기는 판매해 드릴 있습니다. 그 무기로 왜구를 육지에서 몰아내도록 하세요. 바다에서는 저희가 책임질 것이니까요.”
“알았소.”
척계광은 먼저 구형인 무기를 팔기로 협의가 끝나자 다음 요구 사항을 말했다.
“군사들의 불만이 많으니 그들을 위로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나요?”
“병사들이야 다들 젊으니 혼인하는 것이 제일 큰 위로가 되죠. 그렇다고 하룻밤을 지내는 식은 폐하께서 불허하시니 혼인시키면 제일 좋을 겁니다.”
“대상은 어떤 여자죠?”
“뭐, 신분이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미인이 많다는 항주나 소주가 가까우니 인물은 조금 봐야 합니다.”
“좋습니다. 몇 명이나 필요한지요?”
“대략 1천명이면 될 겁니다. 노비도 상관없고 구입해야 된다면 소금이나 수산물로 계산해드리죠.”
항주나 소주 그리고 영파 지역에서 혼란이 일어나 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그러자 부모들이 버리거나 또는 파는 어린 여자들이 많았다. 그냥 여자를 보내달라고 요구해도 들어 줘야할 판국인데 대금을 지불한다고 하자 사신은 이내 답했다.
“2000명이라도 보내드리죠.”
“좋습니다. 너무 어리면 곤란하니 그 점을 참작해서 보내도록 하세요.”
결국 척계광은 태왕의 의도대로 많은 여자들을 주산군도로 데려오고 대신 소금이나 수산물을 보내주었다. 무기대금의 경우 전처럼 각종 광석이나 또는 금은보화 그리고 비단이나 또는 소를 가져다주기로 했다. 또한 남경지역의 쌀과 콩 그리고 감귤나무의 묘목과 사과나무의 묘목도 대량으로 들여왔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정거정은 태왕의 명령으로 항주로 들어가 은밀하게 도공들을 만나고 있었다.
“여기서 살기 힘들 것이니 이주하는 것이 어떻소?”
“대진국으로 가면 잘 살게 해줍니까?”
“그렇소. 대진국은 기술자를 우대하는 나라요. 태왕께서 이곳으로 왔으니 기회에 같이 가면 도공으로 살기 좋은 여건을 마련해 줄 거요.”
항주에는 명나라에서 자랑하는 고급 백자를 만드는 우수한 도공들이 많았다. 장거정이 항주를 다녀온 이후로 많은 도공들이 보타도로 넘어왔다. 그들 이외에 우수한 화공들도 덩달아 대진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배를 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