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최인범도 유구왕국 지역의 해도는 없었다. 대만을 비롯한 명나라 남해와 동해안의 남부 지역의 해도만 있었다. 전에 포르투갈의 범선에서 탈취한 해도를 자신의 기억과 부합되게 조금 보강한 정도다.
해도들을 모두 펼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유구왕국의 위치를 점으로 찍었다.
“유구왕국은 내 기억으로는 여기 정도일 거야. 네가 유구왕국을 직접 다녀온 항해 일지를 보고 정확한 위치를 따로 찍어 봐.”
“넷!”
항해일지에는 함선들이 출발한 방향이나 기타 이동한 거리 그리고 지형지물이 모두 적혀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도에 표시를 하다 보니 최인범이 대충 짐작한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 찍혔다.
“대충 비슷하니 그 근처를 유구왕국이라고 가정하고 규슈 남쪽과 이렇게 여러 개의 섬들로 연결되어 있어.”
“폐하! 그렇게 많은 섬들이 유구왕국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뿐 아니라. 유구 왕국에서는 이곳 대만이라는 큰 섬까지 이렇게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주변에는 다른 섬이 전혀 없으니 동왜에서 복건성이나 절강성 남쪽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징검다리처럼 섬을 이어가며 건너와 유구왕국을 거쳐야하는 거야.”
“그렇군요. 유구 왕국에서 저를 속였군요.”
“내가 대략 그려는 줬지만 그냥 눈짐작으로 그려주는 것이니 기회가 있으면 나가사키나 하카타로 가면서 정확한 해도를 만들도록 해.”
“알겠습니다.”
절강성의 북쪽은 이미 제1함대가 초계활동을 하고 있다. 두 사략선단은 절강성의 남쪽과 복건성 그리고 대만 지역까지 다니며 왜구를 포로로 잡던가. 또는 화물을 노획하라고 지시했다.
“아직은 서두를 일은 아니니 잠시 쉬고 있다가 움직이도록 해. 왜구의 배들이 모두 3-400척이란 정보도 있으니 앞으로 두 사략상단이 따로 움직이지 말고 서로 협력해서 움직여.”
“넷!”
“필요하면 어디고 점령해서 모항으로 사용하도록 해. 앞으로 화약이나 생필품은 주산도에 주둔하는 육군에게 공급 받도록 하고.
이런 지시에 대마불은 즉시 자신의 행선지를 결정했다.
“폐하, 소신은 마냥 기다리기 뭐하니 제주도를 가서 물건을 나르고 하카타를 거쳐 유구왕국까지 가는 섬들을 조사하겠나이다.”
“알았어. 가는 동안 위험 요소는 전혀 없으니 여기에 모든 화포를 내리고 화약이니 기타 무기도 내려놓고 다른 화물을 싣고 가도록 해.”
“넷!”
최인범은 이곳 주산군도에 있는 모든 소나 말을 제주도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감귤나무의 묘목도 대량으로 구입해 운반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제주도에 책임자로 천먹쇠 상단주가 있을 것이니 그에게 모두 인계하도록 해.”
“넷!”
여유 공간이 많은 사략선이지만 많은 짐을 싣기 위해서는 무거운 화포나 또는 화약 등을 내리면 그만큼 다른 짐을 실을 수 있었다. 유구 왕국으로 명나라 비단과 도자기를 팔고 대신 은괴를 가져왔다.
“대마불, 대정항으로 가면 신형 화포가 와 있을 것이니 은괴를 넘기고 사서 장착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전과 달리 이제는 모든 무기나 화약을 정상적으로 은괴를 주고 매입해야 된다. 이런 지시에 현난풍도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폐하, 소신도 신형으로 구입하고 싶사옵니다.”
“그만한 재물을 모았나?”
“예, 충분한지는 모르지만 은괴를 많이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구형 무기를 육군에 반납하고 모두 신형으로 새로 구입하도록 해.”
사략선은 모두 대진국의 미래를 위해 멀리 원정을 보내는 경우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인범은 그들에게 최대한 신형 무기를 줘서 떠나보내려는 것이다. 이제는 이들 앞에는 어떤 적이 생길지 미래를 알 수가 없으니 최선의 배려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내려놓은 무기는 모두 남경의 헌강왕에게 팔아먹을 요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형무기도 고물가격이 아닌 조금 낮은 가격으로 쳐서 회수하고 추가되는 은괴만 받고 신형 무기를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이런 조치를 해주자 현난풍은 고마워했다.
“폐하, 감사합니다.”
“급하게 떠나지 말고 이곳에서 기지를 건설하는 방법을 잘 배우고 떠나도록 하시오.”
“예이.”
이제는 멀리 떠나 적당한 곳에 자신들의 거점을 만들고 활동해야 된다. 그러니 그저 단순하게 지금처럼 무역이나 하다가 왜나 또는 명나라의 어선이나 또는 밀수선을 잡아 재물만 약탈하면서 지낼 수는 없었다. 배워야 할 것도 많으니 현난풍은 주산도로 가게 되었다.
주산도로 넘어가 보던 현난풍은 매우 놀랐다. 명나라 사람들이 새벽이면 수없이 많은 조각배를 타고 주산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폐하, 저들은 뭐죠?”
“주산도로 와서 해안도로나 기타 항구시설과 해안포 진지나 건물을 짓기 위해 오는 인부들이야.”
“인부요?”
최인범이 무작정 해안을 봉쇄한 것은 아니다. 소금이나 해산물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려 주산도에 비축한 소금이나 수산물을 넘겨주고 인부를 부리고 있었다.
‘어머, 이런 이유 때문에 함포를 그쪽에서 연습을 했던 거야.’
현난풍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최인범이 흘리듯이 설명했다.
“아무리 재물이 쉽게 생긴다고 해도 재물이란 언제까지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절약이 가능한 부분은 항상 절약해야지.”
“잘 알겠습니다.”
해안 봉쇄 작전으로 이미 가격이 2-3배로 올랐다. 그 때문에 전에 부리던 인건비의 반만 주면 얼마든지 명나라 인부를 불러 기지를 건설하거나 필요한 시설을 건설할 수 있었다.
인부만 싸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주산도의 나무는 그대로 두고 최대한 내륙에서 건축 재료를 싸게 구입하고 있었다. 배나 건물을 수리하는 나무들까지 모조리 외부에서 구입하는 이유는 나무도 비축물자의 하나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석탄도 그중에 하나다. 주산군도에 주둔하게 되는 군인들이나 또는 같이 살게 되는 섬사람들은 앞으로는 새로운 난방 시설을 사용하니 석탄도 비축해야 된다.
최인범은 장거정에게 지시했다.
“현 상단주에게 담로의 행정이나 군사 조직표를 넘겨 줘. 그리고 기본 적인 법령도 모조리 챙겨줘 가지고 가서 앞으로 담로를 만드는데 참고하라고.”
“넷!”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 참고 자료는 있어야 하니 보고 선택하라는 깊은 의미가 있었다.
현난풍은 그런 담로의 조직표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난방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더운 지방으로 간다고 해도 밤이나 또는 추운 해변에서 지내려면 난방 시설은 필요하다.
배에서도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고 숯이나 나무 보다는 석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 단장은 화약이나 무기를 사지만 나중에는 그런 난방 시설도 대량으로 사갈 요량으로 물었다.
“폐하, 다음에 여기로 오면 저런 시설을 저에게 판매할 수 있사옵니까?”
“돈만 내면 얼마든지 팔도록 지시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해. 대신 명나라나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도록 기술을 유출시키면 안 되니 그 점은 명심하고.”
“감사합니다.”
최인범은 넌지시 물었다.
“현 상단주, 전함이 욕심나지는 않나?”
“폐하, 욕심이야 나죠. 하지만 워낙 비싼 배 같아서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전함을 넘겨주면 운항할 선원들은 있고?”
태왕의 물음에 현난풍은 자신 있게 답했다.
“넷! 선원은 모두 충분하옵니다. 노군도 이미 선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 현 상단주는 꿈이 많은 모양이야. 노군들까지 선원 교육을 시켰으니.”
“모두 폐하께서 저에게 주신 남쪽의 해도 때문이죠.”
최인범은 조잡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해도도 복사해서 넘겨주었다. 그리고 지구본도 넘겨줘서 현난풍에게 동남아시아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사실 동남아시아에 비하면 단순하다. 거대한 명나라가 있고 유구와 왜가 있고 조선이 있는 정도다. 사략함을 유지하려면 주변에 많은 왕국들이 있어 복잡해야 그런 틈에서 뭔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난풍은 태왕이 넘겨준 해도를 보고 나름 동남아이사나 멀리 유럽으로 가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멀리 유럽까지 가보고 싶은 이유는 그곳은 이곳 보다 더 많은 도시도 있고 인구도 많으니 부유한 도시도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함을 가지고 가면 더 멀리 안전하게 갈 수 있어.’
사람이란 본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좋은 장비를 보게 되면 소유하고 싶은 충동이야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최인범은 슬며시 제안했다.
“지금은 재물이 없겠지만 재물만 모아지고 이곳으로 가져오면 전함도 판매하도록 하지. 많이는 모르지만 12대 정도까지는 판매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가니 그렇게 알고 열심히 해보도록 해.”
“감사합니다.”
최인범은 전함의 일부를 사략선단에게 넘길 요량으로 다소 많은 수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 여차하면 자신이 직접 왜구를 소탕하고 유구왕국을 공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두개의 사략선단이 빠르게 발전해 잘 운영되고 있으니 굳이 자신이 직접 그런 군사적인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남쪽지역까지 영토로 만들 욕심을 부리는 것은 오히려 대륙을 차지하는 것보다 부담만 커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라산 등산을 하며 구상했던 생각 그대로 더 이상 남쪽으로 진출하는 문제는 두 사략선단의 단장들에게 맡길 요량이다.
그저 함대만 몰고 가면 저절로 영토로 변할 북해도나 사할린 지역도 있다. 자신은 그쪽 방면으로 진출해 영토를 확장할생각이다.
물건도 팔아먹기 위해서는 뭔가 보여줘야 확실하다. 그래서 최인범은 조용히 말했다.
“재물이 없으니 그냥은 넘길 수 없고 전에 가지고 있던 사략선 4척을 넘기고 대신 전함으로 2척을 가지고 가는 것은 어떤가?”
“폐하, 그렇게 해도 되옵니까?”
“물론 필요하다면 사략선은 다시 인수해 갈수도 있고. 아니면 사략선은 모두 반납하고 전함으로 교체도 가능해. 그러니 잘 선택해.”
“폐하, 바꾸어 가져가겠습니다.”
최인범이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전함은 먼 바다에서 활동하기 좋은 함정이기 때문이다. 작은 섬들이 많은 주산 군도에서는 판옥선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혹시 남쪽에서 서양의 법선들이 대규모로 쳐들어 올 때를 생각해 전함을 가지고 왔다.
전함을 현난풍에게 넘긴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해군 전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보타도에 규모가 조금 작은 사략선인 전투함을 배치해 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군비도 절감해야 하니 교체하는 것이 좋아.’
최인범의 이런 결정으로 현난풍은 제주도 해녀 출신들인 선원들로 구성된 2척의 전함을 인수해 우선 적응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리 함선의 기본 구조가 비슷하더라도 크기가 다르고 전함에 장착된 무기도 조금 변했다. 전투를 벌이는 방법도 새로 익혀야 된다. 현난풍은 해녀출신 선원들과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받으며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름 자신만의 해상 왕국을 꿈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