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화
사위와 장인이란 사이지만 서로 야망을 가졌으니 필요한 경우 등을 질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가능하면 협조를 하는 편이 좋지만 국익이나 미래를 생각하면 냉정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다.
‘섭섭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어.’
최인범은 자신에게 많은 사람의 운명이 달렸고 한민족의 미래가 달렸다고 판단하니 사소한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10척의 전함은 동남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해 드디어 보타도에 도착했다. 망원경으로 보타도 남쪽의 항구를 살피던 함장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폐하! 전함들이 한 척도 보이지 않사옵니다.”
“뭐요?”
먼저 도착한 40척의 전함이 한척도 보이지 않는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해상작전을 펼쳐도 일시에 모든 함선이 항구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남쪽의 신라초 쪽으로 이동해 다시 망원경으로 자세하게 살폈다. 그러자 함정들은 모두 서쪽 해안에 정박해 있었다. 일시에 많은 대형함정이 들어오게 되자 접안시설이 부족해 그쪽에 정박한 것 같았다.
‘에이, 공연히 놀랐어.’
천천히 서쪽의 부두로 향하자 보타도의 서쪽 주산도 해안에서 큰 함성이 들렸다.
“만세! 태왕폐하 만세!”
망원경으로 살피니 모두 대진국의 육군들이다. 그들은 해변에서 포진지를 구축하다가 태왕을 상징하는 쌍봉황 깃발을 보자 태왕께서 도착한 것을 알고 환영한 것이다.
보타도 서항으로 들어가 접안을 끝내고 나자 기다리고 있던 제1함대 김신완 사령관이 거수경례를 하며 보고했다.
“폐하, 육군은 모두 주산도에서 주둔하게 됐사옵니다.”
“무슨 이유로?”
“보타도에 주둔하기는 병사들 수도 많고 보타도는 해군들만 사용하기에도 터가 너무 부족합니다.”
김신완 사령관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1000명의 육군이 보타도에 같이 있는 것보다 외부의 침입로인 주산도에 주둔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산군도 내에서 제일 큰 섬이다. 대략 제주도의 2-3 정도 크기다. 또한 명나라의 영파 항구와 마주해 명나라에서 공격하려면 반드시 그쪽을 통해 공격해야 되기 때문에 방어시설을 그쪽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설명을 듣자 잘한 조치 같아 만족해서 답해 주었다.
“사령관이 아주 잘 결정했군요. 보타도는 사실 너무 좁아요.”
“폐하, 주산군도의 많은 주민들이 이주를 원하옵니다.”
“어디로 이주한다고요?”
“제주도입니다.”
“뭐요? 왜 하필 제주도로 간다는 겁니까?”
주산군도 사람들이 제주도로 이주하려는 이유는 명나라가 매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명나라도 서서히 남북으로 갈라지게 생겨 심하게 분열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북쪽에서 대진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또한 주산군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확정해 버렸다. 그리고 많은 함정을 이곳으로 보냈다. 자칫하면 근처에서 명나라와 대진국 사이에 대규모로 전쟁이 터질지 몰라 떠나려는 것이다.
주산군도의 섬사람들은 본시 오래 본토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명나라 국민이라는 어떤 의무감이나 소속감도 없었다. 그저 바다에서 수산물을 사서 영파에 팔고 간혹 왜나 조선 그리고 멀리 서양에서 들어오는 무역선과 밀무역을 하며 살아 왔다.
장사에는 일찍 눈을 뜨고 이재에는 밝으나 어떤 소속감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주산군도가 대진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두고 나름 주판알을 튀긴 것이다.
‘조선은 아직 온전하게 합병이 되지 않아 조금 불안하고 북쪽도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 제주도가 제일 안전하다고 판단해 약삭빠르게 대처하는군.’
이곳에서 살다가는 전쟁에 휘말릴까 염려해 멀리 제주도로 이주할 요량이다. 제주도는 이곳에서는 아주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일어난 현상이다.
이런 설명을 듣자 최인범은 지시를 내렸다.
“주산군도의 섬사람들이 원하면 모두 제주도로 보내도록 해요. 그렇다고 특혜는 없으니 그 점을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또한 화교마을을 만드는 것도 안 되니 이주하려면 그런 점도 참고하라고 전해요.”
“넷! 전달하고 바로 떠나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최인범은 자신들의 땅을 버리고 떠나려는 섬사람들을 이곳 주민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섬사람들 생각처럼 만약 전쟁이라도 터지면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전투를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주를 원하면 제주도로 이주시키고 대신 제주도나 남해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켜요.”
“넷!”
많은 사람이 이주를 원해도 최인범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곳에서 주둔시키게 되는 병사들을 명나라 여자들과 혼인시킬 생각이라 이주민이 있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조선도 마찬가지지만 명나라는 노예제도인 노비제도가 아주 엄격하게 시행되는 나라다. 그러니 노비인 여자들을 사서 혼인하게 된다면 인구도 늘고 좋았다. 차라리 그런 노비출신 여자들이 도망칠 궁리만 사는 기존의 섬사람들 보다 대진국을 향해 더욱 충성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기 토박이들은 그래도 명나라에 가까운 성향이니 많이 이주할수록 더 좋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이 제주도로 이주한다고 해서 총인구의 구성원 비율이 걱정할 정도로 높아지지는 않으니 상관없었다.
“사령관, 오늘부터 주산군도의 모든 섬들은 조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도록 해요.”
“넷!”
떠날 사람을 떠나게 하려면 당분간 살기가 어렵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이런 지시를 내렸다. 세상에는 불만이 많은 사람은 항상 제일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많으니 그들부터 떠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주산 군도는 2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지역이라 조업을 금지시키고 단속하는 업무에 많은 함정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제 1함대의 40척의 함정들은 모두 항구를 떠나 인근의 섬들로 향했다. 일단 섬의 주민들에게 공지는 하고 다음에 단속해야 된다.
“사령관, 조업 금지령을 어기면 무조선 재산은 몰수하고 영파로 추방한다고 하세요.”
“넷!”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자 최인범은 주산도에 주둔 중인 육군에서 화약제조 기술을 가진 장교들을 모두 불렀다. 모인사람이 불과 10명도 되지 않지만 그들에게 지시했다.
“이번에 가지고 온 황으로 화약을 제조하도록 해.”
“넷!”
“폭발 실험해서 성능이 기준에 미달되면 모두 명나라에 판매할 것이니 처음부터 양산체제로 시설을 만들어 제조하도록 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0척은 주산 군도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해금조치를 취했다. 최인범은 정거정에게 이곳에 담로의 행정 조직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척계광과 협조해서 담로의 행정 조직과 방어 부대 조직을 만들도록 해.”
“넷!”
제주도에서 가져온 황도 내리고 격군들도 하선하고 선원과 포수들만 승선시키고 영파 항구로 향했다. 영파를 가로 지르는 용강(甬江) 하구 쪽에 있는 금당도(金塘島) 앞 무인도를 향해 함포 사격을 명령했다.
“각 포별로 한발씩 순서에 의해 발사해.”
“넷!”
10척의 전함에서 한발씩 교대로 쏘더라도 거의 동시에 10발의 함포가 발사된다. 다소 조용하던 해안에서 함포 소리가 요란했다.
쾅! 콰광! 쾅!
해안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무인도를 향해 함포를 발사했다. 우렁찬 함포소리가 들리자 영파 항구의 주민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경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함포를 발사하자 전쟁이라도 터졌다고 판단해 일부는 피난 보따리를 싸고 있었다.
“드디어 전쟁이야.”
“빨리 멀리 도망가자고.”
영파 항의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들고 함대는 하루 종일 간간히 쉬어가면서 함포를 발사했다.
다음날 10척의 전함은 북쪽으로 이동했다. 항주만 입구에 있는 백탑도로 가서도 함포 사격을 실시했다.
쾅! 콰광! 쾅!
절강성의 주도 항주는 대운하의 종착점으로 상당히 번화한 곳이다. 그런 항주의 입구에서 함포사격을 가하자 항주를 비롯한 인근 도시들은 큰 혼란이 일어났다.
“드디어 대진국에서 함대를 이끌고 침공을 시작하는 것 같아.”
“설마, 태왕은 헌강왕 전하의 사위인데.”
“무슨 소리야. 나라 간에 전쟁이 터지는 것은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하긴 같은 나라 안에서도 권력을 두고 형제가 살벌하게 칼부림하며 박 터지게 싸우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지.”
영파에 이어 항주의 주민들도 전쟁이 터진다고 판단해 피난 보따리를 싸고 매우 소란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보따리를 들고 도시를 떠나갈 무렵에 최인범은 함장에게 지시했다.
“보타도의 서쪽 항구로 귀환해.”
“넷!”
두 개의 항구 도시를 완전히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함대는 태연하게 보타도의 서항으로 돌아왔다. 하선한 최인범은 제1함대 사령관에게 지시했다.
“아무래도 해군의 함포 사격이 정확해 보이지 않아요. 사격 훈련을 더 해야 되니 이제부터는 두 개 지점에 전함 5척씩 교대로 사격훈련을 실시하도록 하시오.”
“넷!”
총 50척의 전함이 10일에 한 번씩 5척이 동원되어 오전에는 영파 앞바다. 오후에는 항주 만에서 함포사격훈련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작전 명령은 사실 이 시대는 잘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전술인 항구 봉쇄작전이다.
이런 항구 봉쇄작전을 펼치며 주산군도의 모든 섬에서 조업을 중단해 버리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두 개의 항구로 들어오던 그나마 수산물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더구나 보타도를 통해 섬의 주민들이 날라 오던 소금공급도 중단되었다. 봉쇄작전의 영향은 빠른 속도로 절강성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기도 전에 소금과 수산물 공급의 전면 중단이란 사태로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조치를 하고 최인범은 사략선단을 이끌고 보타도의 남항 도착한 대마불과 현난풍을 만나고 있었다.
최인범은 대마불에게 조용히 물었다.
“대 상단주, 그동안 어디를 다녀온 거지?”
“폐하, 유구왕국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뭐 특별한 일은 없고?”
“넷! 동왜에서 유구왕국으로 침범한다는 소문이 있어 확인해 보니 아직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중간에서 다른 항로를 이용해 멀리 남쪽으로 진출한 것 같습니다.”
이런 대마불의 대답에 최인범은 의문을 표했다.
“유구 왕국을 거치지 않고는 더 남쪽으로 이동하기는 어려운데. 대마불 너 해도는 가지고 있냐?”
“예, 하지만 유구왕국이나 다른 섬이 그려진 해도는 없습니다.”
이런 대답에 최인범은 아차 싶었다. 정보를 너무 공개하면 곤란하다고 판단해 유구왕국이 대략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었다. 그래도 잘 찾아가 다행이라고 판단했더니 영악한 유규 왕국에게 속고 돌아왔다.
“가지고 있는 지도와 해도를 모조리 가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