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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97화 (397/519)

397화

한라산 정상에서 한없이 남쪽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 태왕을 옆에서 바라보며 장거정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저리 골똘하게 하시지?’

이렇게 생각하며 장거정은 태왕이 시행한다는 담로 제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대륙의 경우 통상 직접 점령한 영토와 주변국을 침략해 굴복시키고 제후국으로 삼는 것이 통치 방법이다.

그러나 태왕의 경우 전혀 새로운 방식의 통치제도인 담로를 두기로 했다. 그렇게 때문에 명나라에서 살았던 장거정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명령에 따라 행정구역을 정하기는 하지만 조금 이상한 방식이야.’

장거정이 이상하다고 판단하지만 최인범이야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제도다.

이미 식민지에 대한 개념을 잘 알고 있다. 어떤 특정한 지역을 수백년간 조차해 사용하는 제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담로제도를 택한 것이다.

큰 영토를 차지하는 식민지 제도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다수를 이루는 이민족은 결국 독립하게 된다. 그 때문에 차라리 방어가 쉽고 또한 중요한 무역거점만 차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넓은 지역보다는 작은 항구만 차지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야.’

압도적인 힘으로 누르지 못하는 큰 영토를 가진 식민지란 나중에는 본국과 결별하게 된다. 그 때문에 전쟁을 벌인다는 역사적 사실을 잘 알기에 본국과 연결되어야 살수가 있는 정도의 담로만 만들기로 했다.

해외로 진출하려면 바다를 통하는 수밖에 없으니 담로야 항상 무역항일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이런 생각을 하다 결국 정난정이나 대마불에게 앞으로 어떤 임무를 줄지 결정했다.

‘두 사람에게 앞으로 담로를 건설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겠어.’

태왕의 몸으로 멀리까지 해외 원정을 떠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후계자도 없는 지금 너무 먼 해외까지 함대를 이끌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자신은 영토와 접한 주변지역만 새로 개척하는 업무를 하고 두 사람을 멀리 보내기로 했다.

‘그 방법이 제일 효율적이야.’

이런 결정을 하자 최인범은 천천히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하자.”

“넷!”

하산을 하면서도 앞으로 새로 개척되는 영토를 어떻게 처리할지 명확하게 통치방법을 떠올리며 하나 둘 결정했다.

이윽고 철쭉이 가득한 넓은 지역을 지나며 이곳에 노루가 많다는 점을 기억했다. 최인범은 제주도에 사슴이나 노루가 많았던 기억을 떠올려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한라산에 사슴을 많이 풀어 놔야 되겠어.”

갑자기 사슴을 말하자 장거정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폐하, 사슴을 키우시려고요?”

“제주도는 사슴이 자랄 좋은 여건을 가진 곳이 많으니 그 사업도 해볼 만하지. 녹각을 생산해서 한약재료로 명나라에 팔아도 되고.”

사슴이야 그냥 산이나 들에서 잡는 야생동물이고 가끔 애완용으로 기르는 정도로 이해하는 주변사람들은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별 것을 다 기르시려고 하시네.’

제주도는 농사를 짓기는 어렵고 또한 일정하게 구역을 정하기가 좋은 오름이 많았다. 오름이란 기생화산 또는 측화산이라고 부르는 작은 분화구가 있는 지형을 말한다.

이곳 제주도를 담로들을 총괄해 관리할 지역으로 발전시키려면 우선 제주도 자체를 개발할 필요성이 있었다.

소총인 화승총을 보급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활은 아주 중요한 무기다. 그리고 신기전 등 화약을 이용한 무기들도 있으니 반드시 화살을 많이 생산해야 된다.

‘필기도구인 팬으로 사용도 되고 장식용이나 화살의 재료로 필요하니 제주도에는 대대적으로 꿩을 사육하는 것이 좋겠어.’

이미 꿩을 인공부화를 해 대규모로 사육이 가능하니 제주도에서 방사해볼 생각이다. 개체수가 너무 많아지면 그때는 병사들을 동원해 사냥하면 되니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망건이나 탕건은 조선뿐 아니라 대진국에서도 유명한 특산품이다.

조선이야 아직도 상투를 틀기 때문에 당연히 인기가 좋았다. 대진국은 비록 상투가 사라졌지만 관료들이 관모로 탕건을 쓰는 복장이라 여전히 많이 판매되고 있었다.

‘제주도에 인구가 더 많이 유입되고 가축의 수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좋겠군.’

다른 곳에 비해 말의 수는 많지만 소의 수가 적다고 판단했다. 외부에서 소도 많이 들여와 사육해볼 생각이다. 개체수를 늘리려면 우선 소가 많은 명나라에서 들여오는 것이 제일 좋았다.

‘송아지를 많이 사오는 수밖에 없군.’

제주도 발전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구상하며 하산했다. 하산함과 동시에 감귤 농장과 고구마와 감자 재배지를 돌아보고 농장 관리인을 만나자 강조했다.

“앞으로 감귤 농장을 확대하고 호밀 생산도 적극적으로 확대하도록 해야 되겠어.”

“폐하, 그렇게 하려면 묘목을 남경지역에서 대규모로 사와야 됩니다.”

“그건 보타도로 가서 해결해 줄 것이니 감귤 농장을 만든 토지를 개간해서 최대한 확보해 놓도록 해.”

“넷!”

호밀이나 보리의 생산에 대해서도 추가로 지시했다.

“가축을 이용해 많은 밭을 개간하고.”

“넷! 호밀은 말을 기르기 위해서 길러야 되겠군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약한 새로운 술을 만들어야 하니 호밀이나 보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면 좋지. 그러니 우수한 품종의 파종에 신경 쓰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최인범이 생각하는 새로운 술은 맥주다. 물론 제조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주를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별로 어렵지 않게 만들 것으로 판단했다.

장거리를 이동할 경우 맥주는 선원들에게 좋은 음료수가 된다. 물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과일도 그들에게 공급해 줄 필요성도 있었다. 그러자면 사과밭도 있어야 한다. 최인범은 이곳 제주도를 나름 발전시킬 복안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수를 운반하기 위한 시설도 항구지역에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대정항을 해군기지로 만들려다 보니 너무 장소가 협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어선이나 무역선도 늘어나는데 해군이 같이 사용하기는 어렵겠어.’

남쪽지역의 항구의 경우 태풍 등으로 여러 가지 불리한 점들이 많았다. 이곳에 주둔할 전함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더 안전한 부두 시설이 있어야 한다. 중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로 방파제를 건설해 선착장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그 때문에 최대한 자연 조건이 좋은 곳에 항구를 추가로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나중에 북쪽의 제주항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최인범은 대정항을 중심으로 많은 시설을 하도록 지시했다. 제주까지 연결하는 해안도로를 확장하거나 또는 부두에 창고 시설을 대폭 늘리도록 했다.

드디어 하카타에서 황을 싣고 백두상단 소속인 많은 무역선들이 대정항에 도착했다.

무역선단을 인솔하는 사람이 천먹쇠라 최인범은 너무 반가웠다.

“너를 여기서 만나는 구나.”

“폐하,”

천먹쇠는 너무 반가워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약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 왜 울고 그래? 고생이 심하냐?”

“아닙니다. 너무 반가워서요.”

“네 아내는 지금도 풍기에 살고?”

“넷! 일 년에 두어 번 부산포에서 만나는 정도입니다.”

하카타의 소식이 궁금해 물었다.

“하카타는 특별한 일은 없고?”

“폐하, 하카타 항구도 전에 비해 변한 것은 있어요. 소문에 불과하지만 동왜 지역의 영주들이 대규모로 선단을 구성해 유구왕국 쪽으로 진출했다고 하옵니다.”

“대규모라니? 배가 얼마나 많은데 대규모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300척이나 400척이나 그쪽 항로를 통해서 명나라와 교역한다고 하옵니다.”

동왜가 그런 정도의 배를 건조했다는 것은 그동안 그들이 얼마나 절치부심해 해군력을 길렀는지 알 것 같았다.

‘흠! 어째 조용하더니 예상한 그대로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었군.’

동왜가 많은 배를 동원해 남쪽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첩보를 듣자 판단했다. 동왜에서 3-400척이나 되는 무역선을 가동할 정도로 힘이 강한 곳이 아니다. 그러니 명나라와 교역이란 그저 허울뿐이고 그쪽으로 가서 노략질하는 왜구로 활동한다고 판단했다.

‘왜놈들이 여전히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군.’

결국 자신이 예상한 그대로 동왜의 영주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하길 기다리고 동왜가 조선이나 명과 교류할 길을 막아 놓고 있었다.

최인범은 왜구들을 소탕할 생각이라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를 책임자로 선정하고 빨리 떠나야 된다. 그 때문에 즉시 천먹쇠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 아내를 이곳 대정항으로 이사시켜. 앞으로는 너도 꼭 배를 타고 다니지 말고 대정항구 근처에서 거주하며 상단 업무를 하도록 해.”

“넷!”

“앞으로 여러 가지 농장의 규모를 늘릴 것이니 네가 책임지고 관리해.”

“알겠습니다.”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많은 농장들의 관리 책임자로 적당한 인물을 찾던 중이다.

최인범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은 천먹쇠를 이곳 책임자로 선정했다. 지금은 무역업에 종사하지만 한때는 풍기의 농장을 관리했으니 관리자로 제일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축사는 모두 풍기 시설을 참고해 짓도록 해.”

“넷!”

천먹쇠를 책임자로 선정하자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제주도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최인범은 10척의 전함에 천먹쇠가 가져온 황을 옮기고 나서 지시했다.

“앞으로 백두 상단에서 들여오는 황의 3할은 대정 항구로 가져오고.”

“알겠습니다.”

“단동으로 연락해서 화약제조 기술자를 보내라고 할 것이니 그가 오면 협조를 잘해.”

“넷!”

필요한 조치를 모두 끝내고 나자 10척의 전함은 서서히 대정항을 떠났다. 기수를 남쪽의 마라도 쪽으로 향하자 최인범은 이어도를 떠올리며 그에 대해 함장에게 물었다.

“함장! 이어도는 해도에 정확하게 표시해 놨나?”

“넷!”

“우리도 대형 함선이라 홀수가 깊어 위험하니 조심하도록.”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어도는 바다 밑에 4-5미터에 숨겨진 암초라 파고가 높으면 나타난다. 그 때문에 파랑도라고 알려진 곳이다. 제주도에서 보타도로 가는 항로에 있는 암초기 때문에 최인범은 강조했다.

보타도로 가서 왜구를 소탕하기 전에 헌강왕을 만날 생각이다. 그냥은 왜구를 소탕해줄 생각이 없고 최대한 뭔가 얻어낼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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