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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96화 (396/519)

396화

조선에서 외교권과 군사권을 대진국에게 넘기겠다고 하자 최인범은 그에 따라 새롭게 방어 전략을 짤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남쪽 조선이 연결되어 많은 군사를 그쪽에 주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대 배치가 별로 의미가 없도록 변했다.

오히려 제일 남쪽인 제주도가 방어를 위해 꼭 필요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로 변했다. 그러니 제주도에 필요한 군대를 주둔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조선의 주권 자체가 완전히 대진국으로 넘어온 상태가 아니라 무작정 군대를 이곳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순리적으로 이곳에 필요하다고 보는 군대를 보내야 한다.

‘제주도 주민들이 자칫하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어.’

그래서 일단 처음 생각한 그대로 제주도의 일부지역을 담로라는 행정구역으로 정하고 최소한의 군대만 주둔시키기로 했다.

먼저 제주도를 향해 출발했던 20척의 전함은 이미 목포에서 많은 소금을 싣고 대정 항구에 들렸다가 멀리 보타도로 떠났다. 그들은 제1함대 사령관이 이끄는 1전대의 함정 20척과 합류할 예정이다.

대정항에 도착한 최인범은 빠르게 필요한 조치를 내렸다. 현재 17척의 전함 중에서 5척을 하카타로 보내기로 했다. 홍도에서 다소 늦게 오는 전함 3척과 현재 대정항구에 정박해 있는 전함 2척을 대정 항구(모슬포)에 머물도록 지시했다.

“5척의 전함은 제주도 남쪽 해역을 지키도록 해. 북쪽은 제주 목사가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담당하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넷!”

“앞으로 전함 5척은 하카타에 주둔하며 규슈지역 서쪽 해역에서 초계활동을 하고. 필요 이상으로 동쪽이나 북쪽으로 가서 초계하지 마. 해군의 분견대의 주된 목적은 하카타(博多) 담로를 지키는 것이야.”

“명을 따르겠나이다.”

하카타(博多) 즉 박다는 밝다를 한자의 음만 차용해 표기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카타 담로 또는 광명(光明) 담로라고 칭하기로 했다.

이름이야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5척의 전함으로 구성된 해군의 분견대를 규슈의 하카타 항구와 제주도 대정 항구 그리고 보타도에도 주둔하게 지시한다는 것이다.

척수가 적은 이유는 주변국에 전함을 상대할 해군 함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카타의 경우 협력관계로 잘 맺어진 나가사키 영주가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오우치 가문이 대진국으로부터 쇼군칭호를 받아 아직은 매우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다.

‘양쪽이 동시에 짜고 배신하면 모를까 어느 한쪽의 힘으로 공격하지는 못해.’

해군과 육군에 대해 우선 필요한 조치를 하고 나자 잠시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하카다에서 오는 화물을 싣고 보타도로 가려다 보니 기다려야 한다.

보타도가 본국과 너무 떨어지다 보니 그곳에서 최소한 화약이나 포탄을 제조할 필요성이 있었다. 중요한 군수품이고 소모품이라 그곳에 공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화약의 주된 원료인 황을 그곳으로 가져갈 생각이다.

왜에서 생산되는 황은 모두 홍도를 경유해 단동으로 보내지고 있으니 태왕인 자신이 그 방향을 바꾸고 수량도 정해 줘야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남고 나름 새롭게 뭔가 구상해야 하니 머리도 식힐 겸 한라산으로 올라갈 생각을 했다.

‘한라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뭔가 정확하게 떠오르겠지.’

최인범은 과거 제주도의 한라산을 여러 번 등반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보좌관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정했다. 이제 태왕이 됐으니 한라산은 물론 제주도도 오기가 힘들다. 그 때문에 나름 한반도 끝자락에 있는 성산이라고 판단해 등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부대 주둔지를 비롯해 해군이 머물 위치도 잡아주고 나자 최인범은 이창수 경호실장에게 지시했다.

“실장, 우리 한라산 정상을 올라가보지.”

“제일 산꼭대기까지요?”

“보좌관이나 경호실 요원도 가고 싶은 사람만 준비를 해. 중간에 야영하게 되니 각자 준비를 철저히 하고.”

“넷!”

장거정은 태왕께서 같이 한라산 등반하자는 말에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폐하, 전설로 알려진 삼신산을 태왕 폐하와 같이 오르다니 꿈만 같사옵니다.”

“그래? 아직도 진시황제의 전설을 믿는 모양이군.”

“그러하옵니다. 전설이란 때로는 사실이 약간 변조되어 민간에서 전래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장거정이 말하는 삼신산(三神山)이란 대륙의 동쪽에 있다는 신선이 산다는 산을 말한다.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는 가장 신선설에 열을 올려 자주 삼신산을 탐험시켰다. 진시황의 명령으로 방사 서불(徐市)이 소년과 소녀 수천 명을 이끌고 배를 타고 떠났는데 결국 동쪽으로 가서 행방불명되었다는 사건은 유명했다.

물론 제주도에도 그런 영향으로 여러 가지 전설이 남아 있었다.

태왕을 모시고 명나라에서는 삼신산이라고 알려진 한라산을 오르자 감회가 새롭던지 따라가면서 장거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전에 폐하께서 대진국의 영토는 사해를 품어야 된다고 했사온데 그곳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온지요?”

“그 이야기를 기억하나?”

“예, 폐하께서 칭하시는 사해란 어디를 말씀하시는지요.”

“동해란 조선의 동쪽을 칭하는 것이고 서해란 대륙에서 칭하는 항해나 발해를 말하며. 남해는 지금 올라가고 있는 한라산 남쪽의 해역을 말하는 것이야.”

“폐하, 그렇다면 북해는 또 어디를 칭하옵니까?”

“북해는 아마도 설명해줘도 잘 모를 거야. 아! 지구본을 봤어?”

“넷!”

“그럼 대략 위치를 알겠군. 북해는 몽골 위쪽에 있는 바다와 같이 넓은 호수를 칭하기도 하고 또 더 위로 올라가면 얼음으로 덮여 있는 북극해를 칭하는 거지.”

이런 대답에 장거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쪽은 사람이 전혀 살수 없는 추운지방인데 굳이 사람이 살기 좋은 명나라 대신 그곳을 대진국의 영토로 삼는다니 너무 이상했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보자 최인범은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영토란 어떤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는 정확한 답을 누구도 내릴 수 없어. 쉽게 말해 너무 좁으면 기본적으로 인구가 적어서 덩치가 너무 큰 나라에 자주 침략을 당해.”

“폐하, 인구가 많고 영토가 넓으면 강한 나라가 아닌가요?”

“그거야 통상적인 개념이고. 필요 이상으로 영토가 넓으면 대륙의 역대 왕조들처럼 제 나라 영토를 통치하지 못하고 이민족에게 수없이 점령당해 통치 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자주 벌어지지. 그러니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백성들이 살면서 자신들이 통치하면 그것이 제일 좋은 영토를 가진 나라지.”

“아! 그렇군요.”

이런 영토나 나라에 대한 개념이야 현대적이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현대에서도 영토가 넓으면 그만큼 자원이 많으니 강대국이 될 여지는 많았다. 그러나 영토가 넓으면 지킬 곳도 상대적으로 너무 넓어지니 많은 군대를 보유해야 되니 그 또한 문제가 많다.

최인범이 판단하는 영토란 쉽게 차지하면서 나중에 또 별로 지키기 어렵지 않은 곳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기가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남들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미국처럼 지구촌의 나라를 모두 상대해 시비하거나 걱정하며 사는 것도 별로야.’

미국처럼 요란하지 않으며 강한 나라면 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훗날까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지역을 이참에 차지해 놓을 심산이다. 더구나 그곳이 자원의 보고라 특히 그쪽을 선호했다.

자원도 없고 작은 영토만 가진 한국이란 나라도 빠르게 성장했다. 강한 나라로 성장한 경험이 있으니 한민족(韓民族)의 저력을 믿었다.

‘기회는 내가 만들 거야.’

조선왕국은 개국 시작부터 강대국의 힘에 눌려 그저 명맥만 유지했다고 판단했다. 자신은 이미 민족의 오랜 숙원인 요동이나 만주 전 지역을 차지했다. 그러니 앞으로 한민족을 주축으로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은 강대국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명나라 출신인 서계나 또는 장거정에게 자신의 심중을 그대로 밝히지는 않지만 이미 명나라를 이루는 한족(漢族)에 대해 나름 복안도 있었다.

‘적당한 크기로 몇 조각으로 완전히 잘라 버리는 거야.’

최인범은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 한라산 서쪽에 있는 존자암으로 향했다. 사람이 전혀 찾지 않는 곳이라 이동하기 힘이 들었다. 한라산에서 약초를 캐며 사는 심마니를 만나 안내를 받아 도착했다. 섬인데 이런 깊은 산중이 있다는 것이 장거정은 무척 신기한 것 같았다. 하긴 대륙에는 큰 섬이 별로 없으니 그런 것 같았다.

노스님과 동자승이 기거하는 존자암의 옆에서 야영 준비를 하자 장거정은 너무 이상해 물었다.

“폐하, 암자로 들어가 쉬시는 것이.”

“아니야. 그러면 민패를 끼치는 거지. 나는 항상 이렇게 지내서 불편하지 않아.”

이런 대답에 장거정은 오늘에야 왜 태왕을 모시게 되면 다들 맹종하거나 극도의 충성심을 보이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사소한 것이지만 가능하면 백성들에게 피해를 안주고 부하들과 똑 같이 지내는 것이 진정한 제왕이야.’

단순하게 남보다 무력이 강하고 또 머리가 우수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오늘의 태왕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다.

이론적으로 제왕이란 항상 백성의 삶을 존중하고 아끼며 살아야 한다고 떠들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처음 창업 때는 설사 그렇게 해서 인심을 얻었더라도 제왕에 오르면 돌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태왕은 처음과 지금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태왕 폐하는 역시 대단한 분이야.’

장거정이 그것을 금방 아는 이유는 주변의 경호원들은 태왕이 직접 천막을 쳐도 누구하나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할 일만 하고 태왕이 천막을 치는 것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매번 야영하면 저리 행동하시기 때문에 경호원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야.’

장거정은 태왕의 또 다른 모습을 오늘에야 다시 발견한 것이다.

각자 친 소형 천막에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산을 오르게 되었다. 날씨가 쾌청했지만 태왕은 커다란 배낭에 야영준비를 하고 떠나고 있었다.

영실기암을 지나 드디어 넓게 펼쳐진 철쭉 길을 지나게 되었다. 최인범은 그곳에 있는 옹달샘을 쉽게 찾았다. 그러자 장거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전에 여길 와 보신 적이 있사옵니까?”

“여러 번 올라왔었지.”

이런 대답에 장거정은 그저 그런 가 했지만 이창수 경호실장은 기겁하며 놀랐다. 자신이 알기로 태왕폐하께서 한라산을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옹달샘도 잘 아는 것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데 너무 이상해.’

최인범의 이런 사소한 실수들 때문에 설화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제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최인범은 빠르게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의 급경사에 이르렀다. 여전히 제일 앞서서 힘차게 가고 있는 태왕의 모습에 보좌관은 물론 경호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폐하께서는 지치지도 않으신가봐.’

쉽게 정상에 오른 최인범은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내려다 봤다. 자신이 전생에 봐왔던 때보다 훨씬 물이 많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흐뭇했다.

‘아직은 물이 많아 너무 보기가 좋군.’

늦게 사람들이 올라와 감탄사를 토했다.

“와! 멋지다.”

최인범은 한라산에 오른 이후에 문뜩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드디어 자신은 한라산에서 백두산을 아우르고 그것을 넘어서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한 큰 나라를 건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조선이 온전하게 대진국에 흡수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군사와 외교권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이 의도하는 그대로 조선은 변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너무 서두를 이유가 없어.’

자신이 필요한 것은 조선의 백성들이지 기득권자인 사대부나 왕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필요한 자원이나 물자는 앞으로 조선에서 북쪽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인적 자원도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판단했다.

‘억지로 북쪽지역에 데리고 갈 이유가 없어.’

최인범은 한라산 정상에서 앉아 나름 앞날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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