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담로들의 건설>
격렬비열도를 떠나 홍도로 도착하자 바다는 풍랑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석양에는 섬전체가 붉게 보인다고 해 홍도라고 불리는 섬은 대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항구로 사용한다, 그 때문에 부두시설이 비교적 잘되어 있었다.
“빨리 입항해.”
“넷!”
부두에는 무역선과 어선들이 뒤엉켜 있었다. 많은 전함이 도착하자 무역선들은 빠르게 부두를 떠나고 있었다. 무슨 잘못이 있기 보다는 부두의 접안시설이 부족하니 서둘러 출항해 부두를 비우는 것이다.
하카타를 출발하는 무역선은 물론 제주도나 또는 보타도에서 단동으로 가는 항로는 모두 홍도를 거치고 있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삼는 이유는 조선과 어느 정도 떨어진 섬이라 조선 수군과 마찰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깃발을 달고는 다니지만 밤에는 식별이 어렵다. 날씨가 흐릴 경우에는 왜구의 배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어 먼 바다로 항해하는 항로를 택했다. 또한 홍도는 섬의 크기에 비해 항구로 사용할 좋은 여건이라 이곳을 택했다.
부두에 접안한 20척 대형함선들은 폭풍이 오는 것을 대비해서 단단히 고정시켰다. 전함에서 내린 육군들은 다들 다리를 후둘 후둘 떨고 있었다. 대부분 거친 파고 때문에 뱃멀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하루나 이틀을 지내야 한다니 조금 살겠어. 나는 배에서 토하다 죽는 줄 알았어.”
“폭풍이 지나야 떠날 생각 같아.”
“그래야 되지. 아무리 전함이 커도 바다에 나가면 조각배나 같잖아.”
“하긴.”
육군들은 그나마 전함에서 내려 땅을 내리자 살겠다는 표정들이다. 전함을 처음 볼때는 해군이 되고 싶었지만 뱃멀미를 하고 나서는 해군이 안 되길 천만다행이라는 기분들이다.
‘더 내려가면 지금보다 더 흔들린다니 해군들 월급이 육군보다 많은 이유를 알겠어.’
내륙 지역으로 둘러싸인 황해 바다와 달리 남쪽 바다는 풍랑이나 바람의 세기가 달랐다. 해군들은 이제부터는 미래를 장담하기 힘든 거친 바다와 싸워나가며 살아야 한다.
20척에 나누어 탄 육군들도 해군들과 협조해 배들을 고정시키고 나자 부두 근처에 있는 민가를 찾아갔다. 숙박이 가능한 시설이 전보다 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육군도 1000명이나 같이 왔으니 수용시설이 너무 모자랐다.
“폐하, 어디서 지내죠?”
“민가로 찾아가서 일단 지내도록 해. 피해를 주지는 않도록 조심하고.”
“넷!”
자신들이 지낼 숙소가 없는 육군들은 민가를 찾아가 지내기로 했다. 병사들이 민가로 찾아가자 태왕의 명령을 받은 장거정은 홍도의 촌장 만나 협의하고 있었다.
“촌장님, 부두 시설을 더 늘리지는 못합니까?”
“느릴 수는 있지만 섬에 인력이 별로 없어 힘듭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여기로 온 육군이 도와주면 부두시설을 늘릴 수는 있겠군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야 너무 좋지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홍도를 기점으로 주된 항로로 이용할 생각이다. 그래서 이곳의 부두 시설은 물론 숙박시설을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창고도 더 지어야 될 것 같아 협의하는 것이다.
다음날 거칠게 불던 풍랑이 멈추자 최인범은 지휘관들에게 명령했다.
“서쪽의 백사장과 연결되는 도로를 내고 그곳에 돌로 만든 수용시설을 짓도록 해.”
“넷!”
나중에 해수욕장으로 사용되면 방갈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줄지어 사각형으로 벙커들을 만들도록 결정한 것이다.
협상을 책임진 장거정은 촌장에게 당부했다.
“평소에는 창고로 쓰거나 또는 지붕을 건조대로 써도 됩니다. 물론 군의 비축 시설은 접근할 수 없으니 그런 점을 유념하세요. 화약 창고도 있으니 민간인 접근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시설은 섬사람들이 평소에 사용해도 되나요?”
“그렇습니다.”
이곳 홍도 근해에는 홍어, 전복, 우럭도 많이 나오는 청정해역이다. 또한 미역도 많고 더덕이나 고구마도 많이 나오는 곳이라 창고나 건조대가 많으면 그만큼 살기가 좋아진다.
평소에는 민간인이 사용하지만 유사시에는 군인들이 거주한 막사로 쓸 수 있도록 했다. 부두는 많은 병사들이 동원되어 섬사람들과 같이 접안 시설을 늘리고 또는 큰 비축창고도 지었다. 함선에는 유사시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자재들이 많아 그것을 이용해 건축하는 것이다.
최인범은 이외에도 마치 등대와 같은 전망대를 겸한 관측소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런 시설의 기초 공사가 모두 끝나자 함대의 전함 3척의 함장들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3척의 함선은 홍도 파견 분견대로 여기서 임시로 주둔하도록 해.”
“넷!”
“평소에는 초계 활동을 주로 하면서 조업하다가 문제가 생긴 어선들의 구난 활동도 하고. 그리로 여기에 주둔할 3함대 소속의 판옥선들이 도착하면 제주도 대정항으로 이동해.”
“명을 받들겠나이다.”
해군 이외에 소총병과 해안포병으로 구성된 200명도 이곳에 상주하도록 지시했다. 임시로 임명된 홍도 파견 분견대장에게 해야 할 임무에 대해 지시했다.
“앞으로 근처에 나타나는 외국 선박에 대해서는 꼭 확인하도록 해. 뒤에 오는 분견장에게도 인계를 확실하게 해서 앞으로 계속 서쪽 해안에는 숙영시설을 늘리라고 해.”
“넷!”
동쪽의 내륙 지역이야 조선의 수군이 알아서 지키겠지만 이곳은 대진국 해군에서 직접 관리할 생각이다. 워낙 중요한 항로라 제 3함대 소속의 함선을 주둔시키기로 했다. 이미 조선에서 군사지휘권을 태왕인 자신에게 넘겼다. 그 때문에 이런 결정을 조선과 따로 협의할 필요가 없었다.
조선에서는 홍도 같은 작은 섬에 대해서 아직은 별로 관심도 없고 가끔 귀양처로 사용하는 정도다. 여전히 바다나 섬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거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여기도 앞으로 담로라고 칭하나요?”
“아니. 여긴 중요한 곳이지만 담로라고 칭하기는 너무 규모가 작아.”
“아, 그렇군요.”
홍도는 너무 좁은 지역이 아니라 담로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거의 비슷한 형태의 군사기지를 만든 것이다. 이곳에는 학교와 보건소도 지어 놓기로 했다.
“장기간 운항하다 보면 무역선이나 함정에서 환자가 생겨 부득이 하선할 경우도 있으니 치료시설인 보건소를 크게 건설해 놓도록 해.”
“넷!”
홍도는 경치가 좋은 곳이라 보건소를 크게 지어서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는 해군 전용의 별장지대로 이용할 생각이다. 필요한 물자야 많은 무역선이 오가니 충분히 조달할 여건은 된다.
보름동안 홍도에서 보내며 시설 공사를 하다가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이제 제주도의 대정항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나머지 병사들 800명이 주둔하게 된다.
이제 조선의 전 영토가 대진국의 영토와 비슷해진 상황이라 한반도 전체를 방어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아직 주권 자체가 넘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지고 있으니 조선을 방어할 책임이 있다. 또한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거점에 소규모로 군대를 주둔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제주도 대정항에 도착하자 대정현감은 정신없이 달려와 땅바닥에 엎어져 절했다.
“폐하!”
“우리 대진국은 그런 인사법이 없으니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
대정항에 도착하자 800명의 육군은 화포도 내리고 모든 장비를 내렸다. 이곳에 주둔하는 병사들은 제 26보병사단으로 제주도에 사단사령부가 있다. 하카타에 1천명의 연대가 주둔하고 멀리 주산군도의 보타도에 1천명의 연대가 주둔하게 된다.
중요한 항구를 담로라는 특별한 행정구역으로 만들고 해군에 이어 육군도 주둔시키기로 했다. 대부분 한정된 공간에 만들게 된 행정조직이라 많은 군대를 보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직접 통솔하는 군대가 주둔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해 연대를 주둔시키기로 했다.
대정현감은 군인들도 내리고 화포도 내리자 매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장거정이 나서며 설명해 주었다.
“조만간 조정에서 제주 목사에게 소식이 올 겁니다. 앞으로 조선의 모든 군사권이나 외교권은 대진국에서 가지게 되니 너무 놀랄 필요는 없소.”
“아, 그렇군요.”
“그렇다고 제주도 전체를 대진국에서 방어해 주는 것은 아니니 그 점도 유념하세요. 어디까지나 우리는 월녀 공주님이 벌린 사업장이나 대정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주둔하는 부대니 그렇게 아세요.”
“잘 알겠습니다.”
장거정의 설명처럼 대정항이 중요한 이유는 무역항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는 월녀가 건설한 대규모 목장도 있고 감귤 농장도 있다. 또한 현풍이나 흑풍 사략선단의 선원들 가족들이 집단을 이루고 살고 있으니 매우 중요한 곳이다.
대정항 주변의 농장이나 모든 시설은 한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최인범은 대정항에서 가까운 한라 목장으로 가서 살폈다. 주로 남명에서 가져온 우수한 말들이 넓은 초지를 이용해 기르고 있었다.
“토종과는 상당히 다르군.”
“그렇습니다. 덩치도 크고 힘도 좋지만 몽골 말과 달리 지구력이 허약한 것이 험입니다.”
흔히 후세에 경마장에서 널리 사용하는 아랍 말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무튼 몽골 말과는 다소 다른 특징을 보였다. 그래서 목부에게 물었다.
“제주말과 교잡해 생산되는 교잡종의 품종은 어떤가?”
“가끔 시원치 않은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우수한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교잡종을 주로 생산할 계획입니다.”
“추위에 견디는 것은 어떤가?”
“넷! 그것도 교잡종의 단점입니다. 추운 지방으로 가면 더운 지방에서 살던 말들이라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럼 북쪽에서는 사용하기 힘들고 조선의 남쪽이나 왜에서만 우수하다는 정도로군.”
“넷!”
최인범은 이번에는 데리고 오지 않았지만 흑혈풍이나 적혈풍이 진짜 명마라는 느낌이 들었다. 두 필의 말은 모두 어디로 가서도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침 한라감귤농장이나 한라목장이 송악산 쪽에 있자 최인범은 부대 주둔지를 송악산 북쪽으로 정했다. 제주도에서는 제일 남쪽에 위치해 있다. 약간 높은 곳이라 송악산에 관축소를 세우면 남쪽이나 서쪽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위치다. 더구나 해발 400미터 정도 되는 산방산도 근처에 있으니 그곳에도 관측소를 세우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제일 남쪽인 송악산과 산방산에 관축소를 건설하도록 해. 부대 주둔지는 두 관측소 안쪽에 건설하고.”
“넷!”
대정항구인 모슬포 지역에는 조선의 관청이 있으니 부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주둔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해군들이 사용할 시설은 부두에 있어야하니 너무 많은 군대가 밀집해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장거정은 행정을 책임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여기는 앞으로 탐라 담로라고 칭하나요?”
“아니야. 탐라라는 의미도 담로에서 시작된 명칭이니 그보다는 이곳 목장이나 시설이 모두 한라로 사용하니 한라 담로라고 칭하도록 해.”
“폐하, 담로의 총통은 누구로 결정하죠?”
“일단은 공석으로 놔둬.”
“넷!”
이곳에 대진국 해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보타도와 대정항, 하카타 항구로 연결되는 항로는 완전히 나라에서 접수한 셈이다. 지금까지 여기를 기점으로 활동하던 사략상단이 자칫 무용지물이 될 상황에 처해 버렸다.
‘ 두 개의 사략함대를 앞으로 어디로 보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