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고심하던 윤 대비는 과감하게 경원 대군이 대진국의 황족 방계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수렴청정을 포기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남동생인 윤원형을 대비전으로 불러 지시했다.
“내가 주상에게 경원 대군을 후계로 삼도록 설득할 것이니. 경원 대군이 황실 족보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어.”
“마마, 그러다 잘못하면 나중에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게 되옵니다.”
“그건 나중에 해결하고 우선 그렇게 추진하고 윤임부터 사사하도록 해.”
“넷!”
윤원형은 뭔가 꺼림직 했지만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윤 대비의 바람도 주상께서 강한 어조로 허락하지 않았다.
주상은 그리되면 반드시 정통성 문제가 생기고 조선 팔도는 대진국의 공격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아니 될 말이요. 경원 대군을 후계로 정할 경우는 반드시 대비 마마도 황실의 족보에 올라야 순조롭게 수렴청정을 하게 되니 꼭 들어가야 하오.”
“전하, 그런 문제는 나중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고 한창 소란스러운 윤임 대감의 탄핵 상소는 결정해 주시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 문제는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 대진국의 진명하 대사를 불러서 마지막으로 들어 보고 처리하겠소.”
주상은 한양에 상주하고 있는 진명하 대사를 불렀다. 편전에서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대사, 윤임 대감이 전에 태왕을 암살하려던 죄를 물으라고 하니 귀국의 생각은 어떠시오?”
진명하는 그런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없으니 이내 답했다.
“전하, 그 문제는 소신이 결정할 사안은 아니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대비마마께서도 문제가 있으니 윤임 대감을 사사하시면 대비마마도 그에 합당한 죄도 같이 물어야 하니 소신의 생각으로는 그 사건에 대한 처리는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셔야 하옵니다.”
“그렇군. 그런 문제가 또 남았어.”
진명하는 매우 예민한 문제라고 판단해 직답은 피했다. 그러나 분명히 암살을 벌일 사람은 윤임 이외에 또 있다고 그가 바로 대비라는 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론해 버렸다. 그렇게 함으로 나중에 이를 근거로 뭔가 얻을 것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상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당사자이신 태왕의 결정이 있어야 처리할 수 있다고 보이는군. 대비마마께서 벌인 하카타의 암살 미수 사건은 나중에 태왕께서 처리하도록 하면 되겠소.”
“전하, 그렇다면 혐의는 모두 인정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이미 태왕께서도 증거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으니 새삼 부인할 것도 없지 않소.”
이렇게 말하고 나서 주상은 그동안 보관해 두고 있던 증거품이나 조사 자료를 보여주고 나서 넘겼다.
“이것이 그 사건의 모든 증거품들이고 자료요. 태왕께서 오래전에 나에게 처리하라고 넘겼으나 차마 자식이 부모를 내칠 수는 없어 깊이 묻어 두고 있던 것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소신은 처음 알았습니다.”
“태왕께서 과인에게 처리를 맡긴 사건이지만 이제 과인이 죽게 되었으니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소. 대비마마께서 벌이신 하카타의 암살 미수 사건은 대진국의 결정에 따를 것이니 이제 증거 자료를 모조리 가지고 가시오.”
“알겠사옵니다.”
주상이 노리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일성록의 기록으로 남는 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외국 사신과 만나서 나눈 대화는 사초까지 남게 되니 단순한 대화가 아닌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써먹지 못했다. 그러나 태왕에게 보낸다면 최소한 자신의 아들을 살리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믿었다.
진명하는 다른 문제를 물었다.
“전하, 폐하께서 이번에 한양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던데 그건 어찌 하올지?”
“과인도 직접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내 처지가 이렇게 되니 만나야 눈물만 나올 것 같으니 만나고 싶지 않소. 그러니 그저 고마운 마음만 받겠다고 전하시오.”
“잘 알겠사옵니다. 속히 연락해서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만나봐야 별로 좋은 이야기도 안 나올 것 같아 피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자신의 계획을 듣고 반대하면 그것이 더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주상은 자신을 대진국의 족보로 올리는 조치를 내리게 되었다. 결국 방계로 원자인 정강 대군을 우선 태왕의 조카로 올리기로 했다.
“진 대사, 과인이 뭐를 대진국으로 보내면 되는 거요?”
“전하, 옥쇄를 찍어서 정식으로 문서를 넘겨주시면 되옵니다.”
“다른 조건은 없소?”
“있사옵니다. 너무 중대한 사안이라 대진국의 어전국무회의 방법과 같이 조선에서도 삼정승과 육조 판서들의 연명서가 들어 있어야 되옵니다.”
“알았소. 그럼 그렇게 해서 보내기로 하지.”
주상이 편전에서 이런 사실을 발표하자 일부는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윤 대비의 지시를 받은 윤원형이 찬성하자 주상의 의견대로 결정되었다. 대신들의 연명서가 적혀 있는 문서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조선은 완전히 명나라를 공식적으로 버리게 됐다. 대진국을 상국으로 따르고 앞으로 가능하면 모든 제도나 율법은 똑 같이 시행한다는 문서다.
더구나 조선의 왕통을 이을 원자를 태왕의 양자로 만드는 문서다. 전에 명나라와 체결된 외교 문서와는 전혀 의미가 달랐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조선은 이제 제후국도 되지 못하는 정도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제태국과 같이 위임 통치하는 봉토지와 비슷한 성격으로 외교 문서가 만들어졌다.
굳이 구분한다면 먼 고려시대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살던 시절과 같이 복속하게 되는 비슷한 외교문서가 작성되었다. 조선은 왕권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권과 군사지휘권을 넘겨준 것이다.
이런 문서를 만들어 진명하에게 넘겨주자 그가 오히려 놀랄 지경이다.
“전하, 이렇게 해도 되옵니까?”
“그렇소. 그러니 이 문서를 빨리 태왕폐하께 보내시오.”
“잘 알겠사옵니다.”
윤 대비의 명령에 주상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들어주고 윤임을 사사하는 일을 추진하라고 했기 때문에 윤원형은 그대로 따른 것이다.
편전으로 찾아온 윤원형은 주상이 요구하는 조건의 외교문서와 황실에 속하는 문제가 해결됐으니 윤임을 사사하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전하, 윤임 대감의 일은 어찌 하시려는지요.”
“알았소. 사림들의 요구도 그렇게 많고 조정 중신들의 대다수 의견이 그렇다면 윤임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합시다. 죄목은 상국인 대진국의 태왕을 암살하려고 한 반역죄를 물어 사사하도록 하시오.”
“에이!”
“그 사람 이외에는 연루자가 없으니 윤임만 사사하는 것으로 끝내도록 하시오.”
“예이!”
끝끝내 버티던 주상은 드디어 윤임에게 사약을 내리라는 하교를 내리게 되었다. 자신이 바라던 그대로 정강대군은 이제 황실의 방계로 들어가게 되어 조선에서는 그 누구도 그를 해할 수는 없게 만든 것이다.
‘아우가 내 아들을 죽이면 그거야 운명이지.’
그리고 아내인 중전에게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했다고 판단했다. 선택이야 결국 중전이 하겠지만 일단은 법적으로 문제를 모조리 해결했다고 판단했다.
‘병들어 골골하는 남편보다는 하루를 같이 살아도 건강한 사람과 살아보는 것도 좋지.’
주상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판단하다 보니 길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을 과감하게 추진해 버렸다.
주상이 윤임을 사사하라고 했지만 조선 중신을 그냥 죽일 수는 없다며 문초해야 된다며 조정에서 들고 일어났다. 기회에 윤임 일파를 완전히 몰살을 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자 주상은 서찰을 써서 선전관에게 넘겨주며 지시했다.
“윤임에게 이 서찰을 전해주고 마지막을 확인하도록 해.”
“넷!”
강원도 영월의 산골에서 조용히 지내던 윤임은 주상의 서찰을 받자 통곡했다.
서찰에는 주상을 보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외삼촌으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공로가 있고 그 고마움을 갚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점이 항상 미안함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벗어나기 어려운 큰 굴래가 되었다고 글을 써 보냈다.
“마마, 소신은 전하께 큰 죄만 짓고 떠나는 군요.”
한참 울던 윤임은 주상이 보낸 서찰 안에 들어 있는 비상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끓어 버렸다. 어떤 죄를 자복하거나 또는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그동안 태왕이 살려준 것도 잘 알고 이제 나이도 있으니 자신의 운명이 어디까지인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윤임이 죽고 나자 주상은 약속한 그대로 경원대군을 왕세제로 삼는다고 발표를 했다.
“정강 대군이 너무 어리니 경원 대군을 왕세제로 삼으니 그리 아시오.”
“전하, 앞으로 정사는 누가?”
“삼정승께서 당분간 처리해 주시오.”
“예이.”
힘든 결정을 하느라 심신이 더 피곤해진 주상은 이날 이후 편전에도 나오지 못하고 침전에서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윤임이 죽자 이제는 제 세상을 만난 윤원형이나 윤 대비다. 두 사람은 대비전에서 만나 주상이 죽으면 누굴 어떤 벼슬로 올리지만 검토하고 있었다.
“동생, 동생은 이참이 이조판서를 하지.”
“마마, 정말 감사하옵니다.”
윤임이 죽자 대윤파로 분리되던 사람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자 재빠르게 움직였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일부는 윤원형에게 뇌물을 주어 빌 붇기도 하고 일부는 대진국으로 급하게 이주했다.
“그리 가면 구석진 고을에서 선생을 해도 먹고는 산다니 떠나자고.”
“좋지. 여기에 있다가 죽는 것 보다야 났지.”
떠나려다 보니 혼자 갈 수는 없다. 식솔도 데리고 가야하고 친척도 같이 떠나게 되었다.
“여기서 가슴 졸이며 사는 것 보다 그쪽이 좋아.”
“나도 같이 가세.”
“자네는 왜?”
“나야 뭐 여기서 더 이상 살 기분이 안 나서 떠나고 싶다네.”
앞으로 윤원형이 수십년은 권세를 부리게 생겼으니 배알이 틀려서 떠나려는 사람도 있었다.
대진국으로 이주해가도 전과 달리 별 혜택은 없었다. 그래도 노력하면 살 길은 있다고 판단했다, 노비를 모조리 팔고 전답도 팔아 치우고 재산을 정리해 떠나 버렸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가자 새로 이주한 그들은 모두 아주 먼지역인 흑룡강으로 보내졌다.
“그 곳으로 가서 학교 교사와 교장을 하시오.”
“알았소.”
갑자기 이주민들이 늘자 인구수가 적은 그곳으로 보냈다. 또한 일부는 동쪽의 연해주 지역으로 보내 정착시켰다.
이 무렵. 최인범은 제 1함대를 이끌고 산동반도를 떠나 황해도 끝의 백령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