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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88화 (388/519)

388화

언덕에 먼저 올라 거용관을 바라보며 포병장교는 가지고 온 화포들을 언덕 뒤의 다소 낮은 위치에 배치했다. 적이 화포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위장해 놓았다. 그리고 높은 고지를 지목하며 지시했다.

“여기에 넓게 포진지를 만드세요.”

“좋소.”

굳이 높은 위치를 택한 이유가 있었다. 적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포진지를 만들고 화포를 발사하면 더 먼 거리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몽골의 참모가 물었다.

“여기에 포진지를 설치하는 이유가 뭐요?”

“그건 화포의 성능이 같아도 위치에 따라 사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죠.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더구나 우리는 약간 전진도 가능하지만 적은 그렇지 못하니 화포의 위력은 천지차이로 날겁니다.”

“알았소. 포진지를 만들 위치를 정확하게 말해 주시오.”

똑 같은 성능을 가진 명나라 화포라 누가 더 높은 위치에 포진지를 만들고 포격하느냐에 따라 포병대의 위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적이 거용관 안으로 들어가 농성 중이니 급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여유롭게 비탈진 언덕에 포진지를 비롯해 태대포 전차를 앞으로 이동할 길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기마병인데 삽질을 시키네.”

“파라면 파야지. 이렇게 포진지를 구축하면 쉽게 거용관을 뚫을 수 있다고 하잖아.”

그동안 수없이 공격해본 거용관이지만 아직까지 뚫어 보지 못했다. 더 많은 군사가 있다면 다른 공성무기를 가져와 공격할 수 있지만 지금은 3만명의 기마병과 후방부대와 포병을 포함해 1만명뿐이다. 그러니 포병이 먼저 공격해 적을 분산시키고 성벽을 부수어야 거용관으로 진입이 가능했다.

“기마병이 5만명만 되면 저런 무기도 필요 없는데.”

거용관을 뚫기 위해서는 반드시 5만명 정도의 병사들이 필요했다. 물론 그중에 1만명 정도 기마병의 희생을 각오해야 된다. 그러니 총 3만명의 기마병이라 1만명을 희생시키고 거용관을 뚫어도 다음에 북경으로 진군하는 것이 문제다. 거용관을 뚫더라도 북경에는 또 다른 성이 있으니 병력은 최대한 희생을 줄여야 한다.

“칸, 태대포의 위력이 실제 장담하던 것과 같으면 대포가 1만명의 기마병 역할을 하겠군요.”

“한번 믿어 보자고. 아니면 다시 명나라와 협상해보고.”

알탄 칸은 만약 태대포 전차의 위력이 너무 시원치 않아 확실하게 속았다고 판정되면 명나라와 협상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공격 방향을 돌려 심양이나 또는 먼 장춘으로 진격할 생각이다.

1만명의 기마병은 혹시 명나라 기마병이 기습공격을 할까 염려되어 대기시켰다. 나머지 2만명과 포병들은 모두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거나 고르고 있었다. 농사를 지어본 일이 전혀 없는 몽골의 기마병이라 땅 파는 작업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포병장교가 한숨을 토했다.

‘어휴! 저것도 삽질이라고 하나? 큰 삽을 가지고 야전삽 정도의 흙을 파다니 미치겠어.’

몽골의 기마병들이 땅 파는 것이 느려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포병장교는 전에 공병대에서 근무했던 장교라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빨리 임무를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라 마음이 급했다.

“힘을 내서 파시오.”

“나, 힘쓰는 중이요.”

느리기는 했지만 2만명이 넘는 병사들이 달려들어 땅을 파고 있다. 답답해 보였지만 그래도 목표한 모양의 포진지가 구축되었다. 포진지가 구축되자 포병장교는 다음에는 태대포가 이동할 통로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성벽에서 500보정도 되는 언덕 아래까지 통로를 넓게 내시오. 깔판을 튼튼하게 깔면 내리막길이라 태대포전차의 이동이 수월할 거요.”

“알았소.”

“2인 1조로 한 사람은 방패를 들고 날아오는 화살에 대비하시오.”

비탈진 언덕에서부터 비스듬히 태대포 전차가 이동할 넓은 통로를 만들었다.

이때 만리장성의 관문인 거용관 안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였다.

쾅! 쾅! 쉬이익! 쉬익!

“조심하시오.”

많은 포탄이 날아 왔지만 몽골 병사들이 작업하는 장소의 100보 앞 정도에 떨어졌다. 명나라의 화포는 의외로 거용관의 후미에 포진된 것 같았다. 포병장교는 다부진 목소리로 몽골의 포병에게 명령했다.

“파괴되지 않은 포탄을 수거해.”

“넷!”

앞으로 포격전만 계속할 예정이라 포탄을 최대한 모아 두는 것이 좋았다. 적의 포탄이 점점 더 멀리 날아오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에서 화포를 앞으로 전진시킨 것 같았다.

“우리도 화포를 쏩시다.”

“아닙니다. 적이 아직도 우리가 화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으니 기다리세요.”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요?”

몽골 기병들은 초조해서 같이 화포를 사용하자고 권했으나 포병장교는 내내 기다렸다. 적이 최대한 가깝게 화포들을 성벽 가까이로 이동시켜 놓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태대포 전차의 경우 구경은 크고 위력이 있으나 사거리는 의외로 짧았다. 구경은 크고 포신이 조금 짧아서 유효사거리가 1000보를 넘지 않았다. 그리고 500보 정도까지 접근해서 발사해야 성벽을 부술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쾅! 쾅! 쾅!

요란하게 쏘던 명나라의 화포가 잠시 사격을 멈추었다.

“아마, 화포를 식히는 중 같으니 빨리 공사하시오.”

“넷!”

명나라의 포병이 쉬는 동안에 빠르게 포진지도 만들고 태대포전차가 이동할 통로도 어느 정도 만들어졌다. 포진지는 거용관에서 1200보 정도에 설치하고 더 전진해 800보 정도에도 만들었다. 포사격으로 성벽 가까이에 설치한 명나라 화포를 파괴하면 앞으로 나가서 공격할 생각이다.

이윽고 두 곳의 포진지가 모두 완성되고 이어서 통로도 어느 정도 만들어지자 포병장교는 명령했다.

“뒤에 숨겨 놓은 화포를 빨리 가져와 방렬해.”

“넷!”

언덕의 뒤에 낮은 위치에 숨겨 놓은 화포와 화차를 일시에 가져와 언덕의 포진지에 빼곡하게 배치했다.

“발사!”

쾅! 과쾅! 콰광! 쾅! 쉬이이익! 쉬이익!

많은 화포와 화차가 거의 동시에 뜨거운 불을 매섭게 품었다. 그러자 하늘은 수많은 포탄들로 까맣게 변했다.

‘헉! 화포가 있다니?’

거욕관의 성벽 위에서 이런 모습을 바보던 명나라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은 다들 기겁했다. 몽골군이 화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가 공격을 당하자 당황했다.

펑! 펑! 펑!

자신들은 주로 돌탄을 사용하지만 몽골군의 포병은 철탄을 사용하니 사거리도 길고 위력도 강했다.

바직. 쾅! 와자작! 쾅!

“으악!”

“악!”

과쾅!

수많은 철탄들은 명나라의 화포들을 노리고 정확하게 날아왔다. 화포들을 뒤로 물리지 못한 명나라 화포나 포수들 수없이 날아오는 포탄에 하나둘 부서지거나 또는 죽어갔다. 때로는 발사하려던 화포에 충격이 가해져 화포가 폭발해 버리기도 했다.

“크악!”

펑!

“으아악!”

명나라의 포병부대는 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포를 운반하던 우마차들도 모조리 부서졌다. 말들도 미쳐 날뛰면서 사방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쉬이익! 쉬이익! 펑! 펑! 펑!

화살에서 연기를 품으며 매섭게 날아오더니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명나라 포병들이 가지고 있던 화약통에 불이 붙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과과광! 과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거용관에서 검은 구름이 일어나자 포병장교는 매섭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앞의 포진지로 전진해.”

“넷!”

명령에 따라 포병대는 빠르게 400보를 전진해 그곳에 있는 포진지에 화포를 방열했다. 준비가 끝나자 다시 요란하게 사격을 가했다. 이제는 거용관 안은 모두 화포 사거리 내로 들어온 것이다.

무차별로 화포에서 사격을 가했다. 이어서 화차도 전진해 발사하게 되자 거용관에서는 검은 구름이 피워 오르며 이곳저곳이 불타올랐다. 연기를 품으며 불에 타고 있는 거용관 안에서는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이때가 태대포전차를 전진시킬 기회라 포병장교는 급하게 명령했다.

“전차 앞으로!”

18대의 태대포전차는 일제히 비탈진 언덕에서 밀려 빠르게 접근했다. 간간히 활을 쏘아 전진을 막아 보려 했지만 철갑을 두른 전차라 안전하게 목표에 도달했다.

이윽고 500보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포병장교는 포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차포, 발사!”

쿠왕! 쿠왕! 쿠왕!

엄청난 폭음과 함께 18대의 전차에서 일제히 포탄이 날아갔다. 무거운 철탄의 공격에 거용관의 웅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웅성이 무너지자 안에 성문이 보였다. 빠르게 다시 장전한 태대포전차는 또다시 성문을 향해 발사했다.

쿠왕! 쿠왕! 쿠왕!

동시에 발사된 철탄으로 성문이나 성문 위에 세워진 누각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난공불낙을 자랑하던 거용관의 높은 성벽은 태대포 전차의 공격으로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와! 성벽이 무너졌다! 와!”

이미 태대포 전차를 완전히 파괴하라는 명명을 받은 포병장교는 계속해서 사격을 명했다. 그러자 3발을 발사한 태대포 전차들이 큰 폭음과 함께 부서지고 말았다. 간혹 어떤 대포는 포탄이 앞으로 발사됐지만 그 반동으로 태대포 전차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후! 이제 내 임무는 모두 끝났군.’

포병장교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남은 신기전이 있으면 모조리 소모해.”

“넷!”

발사장치인 화차는 명나라 제품이지만 화살은 대진국에서 만든 신기전이다. 그래서 일부의 신기전에는 폭약이 터지거나 또는 기름주머니가 달렸던 것이다. 첨단 무기인 신기전을 적이 될지 모르는 몽골군에게 넘겨줄 이유가 없으니 모조리 소모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신기전까지 모조리 거용관으로 날리고 나자 포병장교는 알탄 칸에게 다가가 말했다.

“칸! 우린 떠나겠습니다. 약속한 그대로 임무는 완수했으니 본국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승리자로 북경으로 같이 가지 않소?”

“아닙니다. 태왕 폐하께서 저에게 하명하신 임무는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 북경이나 자금성의 공격은 칸께서 마음대로 결정하셔도 됩니다.”

포병장교는 이렇게 말하고 부하들과 같이 말에 올라 바르게 북쪽으로 향했다. 이제 멀리 돌아서 대진국으로 복귀해야 하니 그는 여러 필의 말을 여유롭게 끌고 사라졌다. 포병장교가 멀리 사라지자 그제야 온전한 정신이 들어왔다는 듯이 알탄 칸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

“와! 와! 돌격!”

포병이나 후방 부대원을 제외하고 3만명의 기마병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거용관을 향해 돌진했다. 이미 거용관에 있던 명나라 군사들은 급하게 북경으로 후퇴하는 중이다.

명나라는 몽골의 기마병들 공격으로 북경이 위기에 처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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