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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387화 (387/519)

387화

최인범은 봉황성 남쪽에 있는 봉황사를 찾았다. 이곳에 봉안된 왕미령의 납골당을 찾은 것이다. 봉황사는 이미 큰 규모로 건축이 끝나 있었다.

종교에 대해 어떤 규제도 없지만 특이한 것은 스님이라도 모두 군에서 의무복무를 해야 된다는 점이다. 살생을 금하는 교리 때문에 처음에는 약간의 반발도 있었다. 국방부에서는 그들에게 군종이라는 병과를 만들어 약간의 배려는 했다.

봉황사로 들어가 납골당을 찾아 가자 담당으로 보이는 30대로 보이는 스님이 엉겁결에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아미타불!”

거수경례를 하고 급하게 손을 마주해 아미타불을 중얼거리는 스님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풋!”

아마도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고 군기가 드센 부대에서 근무한 것 같았다. 근무 조건이야 좋지만 수도방어사령부는 유달리 군기가 드세기로 유명했다. 사단장이나 훈련소장을 하던 배도치는 이제 수도방어사령부 사령관인 중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왈짜패에 불과한 배도치가 중장에 오른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평생 살면서 12번은 바뀐다고 하더니 배도치도 많이 변했어.”

누구보다도 먼저 최인범과 접한 배도치나 그의 부하들은 이제 모두 고급 장교로 변했다. 명나라로 따라 갔던 부하들의 경우는 이미 장관을 하고 있으니 배도치의 이런 성장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잠시 지난 일을 떠올리는 중에 봉황사로 많은 여승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뭐지? 왜 여승들이 저렇게 많아?”

최인범은 들어오는 여승들의 얼굴이 하나 같이 곱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승이 못 생기라는 법이야 없지만 유독 얼굴들이 곱다는 것이 이채롭게 보였다.

태왕이 여승들에게 관심을 표하자 자순을 급하게 주지스님을 만나 알아보고 돌아와 보고했다.

“폐하, 여승들은 모두 조선의 정업원에 있던 왕족이나 또는 궁녀들이라고 하옵니다. 조선왕실에서 정업원을 완전히 폐지했다고 하옵니다.”

“뭐? 폐지했으면 거기서 살 일이지 왜 여기로 와?”

정업원은 왕실에 속하던 여자들이 홀로 남게 되면 정업원으로 들어가 여승으로 평생을 외롭게 살게 된다. 조선에서는 과부들의 재혼을 금지하고 있으니 주로 불문에 귀의해 사는 것으로 생을 끝냈다.

“폐하,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옵니다. 일부는 불문에서 스님으로 살고 일부는 재혼하기 위해 오게 됐다고 하옵니다.”

정업원의 여승들을 집단으로 보낸 것은 여전히 조선에서는 재혼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천민에 속하는 여승으로 산다는 것도 여의치 않아 주상의 명령으로 집단으로 이주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대진국의 요구 때문에 나이가 많은 상궁들이나 또는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궁녀들을 많이 보냈다. 대진국은 고급인력인 궁녀들을 모두 학교의 교사로 채용해 잘 활용하고 있었다.

대진국은 과부의 재혼이 허락된다는 법이 있다. 하지만 꼭 재혼하라는 법이야 없으니 정업원의 여승들이 지내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다. 재혼 여부는 본인의 선택 사항인 것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이주해온 궁녀라는 여자들이 너무 많았다. 앞장선 여자들은 머리를 박박 밀었지만 뒤에 따라오는 여자들은 아직 머리를 깍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도대체 조선의 왕실에서는 무슨 일이 터졌기에 이렇게 많은 궁녀들이 오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이상하군.”

의문이 풀리지 않아 계속 여승들을 바라보고 있자 자순 태감은 급하게 여승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보고했다.

“폐하, 조선에서는 정업원 뿐만 아니라 왕궁에 있던 궁녀들을 대부분 이곳으로 보냈다고 하옵니다.”

“뭐라? 왕궁의 궁녀들까지?”

“넷! 조선의 왕은 이제 얼마 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신의 손으로 최소한의 궁녀만 남기고 모조리 이곳으로 보냈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많은 죄수들을 방면했다고 하옵니다.”

“흠! 그런 정도로 병이 깊은가?”

조선에서는 군왕의 병이 깊어지면 궁녀들을 풀어주거나 또는 옥에 가두어 두던 죄수들을 풀어주는 일이 많았다. 이는 그들의 소원을 풀어줌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달랜다는 의미가 있었다. 또한 가뭄이 심하게 들거나 또는 홍수피해가 심한 경우에도 감옥을 비우는 일이 있었다.

‘결국 맺은 원한을 풀어서 하늘의 노여움을 달랜다는 뜻이야.’

때로는 나라의 경사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인범은 정업원의 여승들이 이곳에 오는 것을 계기로 조금은 마음에서 변화가 생겼다.

‘그래 세상은 때로는 변수가 있어야 살만한 거야. 이번 기회에 특사 제도를 만들어 봐야 되겠어.’

법이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또한 준엄해야 된다. 그러나 인간사에 어디 법대로 살 수는 없으니 법에도 관용이 있는 것이다. 특사를 남발하면 곤란하지만 그래도 뭔가 법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그저 궁여들이 불쌍해 죽기 전에 풀어주는 행동이라고만 판단했다. 조선 국왕이 이렇게 조치하는 행동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한다는 것은 전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왕이란 백성들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다독여야 된다는 느낌만 생겨 자순에게 슬며시 물었다.

“대진국의 형법에서 제일 억울하다고 하는 범죄가 무엇인가?”

“폐하, 본시 죄수들이야 자신이 지은 죄보다 항상 형량이 무겁다고 주장하옵니다. 소신이 보기에는 대진국의 법은 주변국에 비해 사실 너무 약하옵니다.”

“뭐라? 약하다고?”

“그러하옵니다. 소신 생각으로는 더 강한 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아 보이옵니다.”

자순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대진국의 경우 태형이 거의 사라지고 주로 벌금형이나 또는 강제노역형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흉악법도 사형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자순 태감처럼 강한 법을 시행하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도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이 없으니 더욱 그렇다.

둘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장거정이 슬며시 건의했다.

“폐하, 새로 만든 도로교통법 때문에 지금 건교부에서 매우 곤란한 일이 생겼사옵니다.”

“뭐가 곤란한 점이 생겨?”

“폐하, 마부는 상당히 실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특수한 직업이옵니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이 역마차의 마부에게 너무 불리한 법이라고 해서 마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들었습니다. 건교부에서 역마차를 운행하는데 차질이 생겨 육군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군.”

“폐하, 그러니 뭔가 법을 보완해야 하옵니다.”

천천히 모는 1두 마차도 그렇지만 4두 마차를 끄는 마부는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마부를 할 수 있었다. 여러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보는 기술은 쉽게 익혀지지도 않는다. 사실 기마술을 익히기보다 마차를 모는 마부 기술 습득이 더 어렵고 힘들다.

장거정의 건의에 최인범은 현재의 도로교통법에 추가해서 새로운 법을 만들게 되었다. 업무(공무) 중 과실치사나 상해죄라고 해서 사람이 죽더라도 기존 형량을 반으로 줄이는 감형 기준을 새로 만든 것이다.

“보좌관, 그런 정보면 문제가 없겠지?”

“예, 적절하게 피해자나 피의자 모두 이해할 수준이 된다고 판단됩니다.”

세밀한 법이야 모르지만 사실 생활에 직결된 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빠르게 새로운 법을 결정해 주었다.

태왕께서 법을 자주 바꾸게 되자 죽어나는 사람들은 법무부나 사법부 그리고 경찰들이다.

‘이거 새로운 법이 너무 많아 법 공부를 안 하면 내가 감옥에 가게 생겼어.’

법을 잘못 적용해 과한 형을 판결하거나 또는 물렁하게 법을 적용하면 근무태만죄이 적용된다. 그런 벌로 강제노역을 한 달간 하는 법도 있으니 개정된 법조항은 신속하게 숙지해야 된다.

최인범이 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낮에는 자주 황궁을 떠나 주변의 관공서를 들려 현장에서 지도감독을 했다. 관료들은 매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폐하께서 찾아올지 몰라 간도 떨리고 오금이 너무 저려서 근무하기 어렵군. 차라리 지방도로 가서 근무하는 것이 좋겠어.”

“지은 죄가 없는데 왜 떨려? 나는 근무를 잘한다고 제주도 감귤도 한 상자나 받았는데.”

최인범은 제주도에서 월녀가 운영하는 감귤 농장에서 생산된 감귤을 현장지도를 하며 가끔 관료에게 선물로 넘겨주고 있었다.

너무 많이 보낸 감귤이라 오래 보관하기가 힘들다. 빠르게 소모하기 위한 방편이다. 최인범이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멀리 북경 북쪽의 초원에서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몽골의 초원 지대와 음산산맥에서 길게 동서로 이어가는 만리장성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다. 초원에는 거대한 태대포전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전차가 너무 무겁다 보니 겨울에는 눈을 이용해 이동했다. 땅이 녹은 봄이라 이동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결국 땅에는 새로운 도구가 깔렸다.

파견된 포병장교는 구멍이 숭숭 뚫린 긴 철판을 긴급하게 운송해와 바퀴 자리에 깔면서 말했다.

“이제 움직여 보시오.”

포병장교의 말에 알탄 칸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밀고 당겨서 이동시켜.”

“넷!”

철판은 최인범이 늪지대가 많은 요하 지역을 개발하며 만든 건축 장비다. 철강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사실 상당히 어렵게 만들었다.

모두 1000개를 고가로 사와서 태대포전차를 이동하는 발판으로 써먹고 있었다.

“이건 나중에 어찌 사용하면 되나?”

“그야 양을 대량으로 키우는 방목장 옆에 사육장의 울타리로 쓰면 적당하죠.”

“아하, 그렇군.”

재활용할 방법이 있으니 덜 억울했다. 이래저래 알탄 칸이 대진국에게 넘겨준 말의 수가 벌써 20만 필에 달한다.

태대포전차는 너무 무거워 소 100마리가 끌기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달려들어 밀고 당겨서 이동했다.

‘이거야 말로 애물단지가 다름이 없어.’

알탄 칸은 너무 무거운 무기를 샀다는 것을 후회했다. 아무래도 대진국의 태왕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대금으로 많은 말을 넘겨줬으니 무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금 진창인 지역을 어렵게 통과한 알탄 칸이 포병 장교에게 물었다.

“태대포 전차의 성능은 확실한 거지?”

“넷! 무거워서 그렇지 성능은 확실합니다.”

“만약 그게 아니면 그대의 목을 달아나는 줄 알아.”

“압니다.”

드디어 멀리 만리장성이 보이는 초원 끝에 도착하자 알탄 칸은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

“넷!”

겨용관으로 가는 길목에도 명나라 군대가 포진되어 있다. 또한 명나라 사람들이 사는 작은 마을도 있었다. 알탄 칸은 먼저 그런 곳을 기마병이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와! 와!”

두두두두.

수많은 기마병이 마을을 향해 달려들었다. 놀란 명나라 사람들은 재빨리 남쪽으로 달아났다. 주변에 주둔하던 군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만리장성 지역을 공격하는 알탄 칸이 나타나면 무조건 거용관으로 후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공격과 동시에 도망치자 쉽게 만리장성 북쪽은 완전히 알탄 칸 수중으로 떨어졌다. 이때부터 포병 장교는 만리장성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을 말해 주었다.

“조금 높은 언덕에 태대포 전차와 화포를 설치해야 합니다. 깔판을 깔고 미끄러져 조금 빠르게 내려가 사거리 내로 접근해서 사격해야 됩니다.”

명나라도 많은 화포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무거운 전차를 지금처럼 천천히 끌고 가다가는 화포 공격에 모조리 부서지게 생겨 이런 작전을 고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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