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86화 (386/519)

386화

태대포 전차라는 작명도 조금은 특이했다. 최인범은 대포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 화포라고 칭한다. 현미경도 크게 만든 이유도 꼭 기술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최인범은 두 번이나 많은 재물을 소모해 거창한 무기와 기구를 만든 기술자를 불러 슬며시 물었다.

“자네, 이름이 도대체 뭔가?”

“폐하, 소신은 왕대포라고 하옵니다.”

이런 대답에 최인범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태어난 고장도 그렇고 이름까지 왕대포(王大砲)라니 이게 다 그의 운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보아하니 렌즈가 커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망원경의 원리를 적용하고 또한 무조건 크게 만들어야 성능이 좋다고 생각해 복잡하게 만들다 보니 기구 자체가 커진 것이다.

그렇다고 현미경에 대해 세세한 부분을 아는 바가 없으니 더 이상 개발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크던 적던 이미 만들어 효과를 보고 있으니 나무랄 필요까지는 없었다.

‘나중에 불필요하면 차츰 개선되겠지.’

일일이 불필요한 점을 설명해 주기보다는 일단 이런 정도로 발전된 것으로 만족했다. 너무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도 사실 버거운 경우가 많다고 판단했다.

보건부는 국민건강을 챙기기 위해 만든 부서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현미경을 이용해 태왕의 건강관리를 위한 전담부서도 있었다. 어떤 숨겨진 과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정액을 수거해 정자의 활동을 살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흠!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인공 수정도 하겠군.’

최인범이 생각하는 인공수정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발상이 아니다.

대진국은 국가 발전을 위해 노동력이 필요하고 사람의 수는 너무 부족한 실정이라 축력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대가축인 소나 말들이 많아야 하고 우수한 품종으로 점차 개량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한 가축의 정액을 채취해 인공 수정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인공 수정에 대해 말해 줘야 하나?’

전에는 활용 가능한 기술이라면 무조건 알려주었지만 이제는 조금 신중해지고 있었다. 신중해진 이유는 너무 빠른 변화 때문이다. 어떤 시대고 빠른 변화는 반드시 후유증을 동반하게 된다.

그래도 가축들의 품종개량은 농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해 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앞으로 우수한 품종인 가축의 정액을 채취해서 인공 수정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시오.”

“폐하, 인공수정이라면?”

“사람의 손을 빌어 인공적으로 수태시키는 방법이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우선 돼지의 인공수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소에 대해서도 인공 수정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소의 경우는 철제로 만든 주입기를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긴 꼬챙이와 같이 생긴 정액주입기를 그려주면서 설명했다.

“이렇게 생긴 정액주입기를 들고 항문을 통해 손을 밀어 넣어서 잡고 자궁 입구를 벌리고 질을 통해 주입기로 정액을 주입하면 되니 한번 만들어서 사용해 보시오.”

“넷! 농산부와 협조해서 개발해 보겠습니다.”

“말의 경우는 인공수정 보다는 자연 교미 방식이 좋으니 그건 따로 연구할 필요가 없소. 대신 우수한 종마를 많이 확보해 품종개량을 해보시오.”

“넷!”

정액을 냉동시켜 나중에 녹여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기술격도 없어 그저 인공수정을 해도 수태가 된다는 사실만 알려주었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자 옆에 있는 자순 태감은 들으며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순은 평생 한이 스스로 자손을 보지 못한 다는 점이다. 그는 태왕께서 어쩌면 더 고급 의술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혹시, 나 같은 사람도 자손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사람이란 본시 모든 사물을 새로 접하면 자신과 연관 지어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순은 제일 먼저 자신의 후손 문제를 생각했다. 이윽고 그것을 넘어 잘하면 태왕의 자손도 인공수정 방법으로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가능은 하겠어.’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너무나 엄청난 문제라 함부로 발설하거나 또 시도하면 안 되는 큰일이라 이내 생각을 지웠다. 감히 태왕의 후손을 자신이 좌우지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느낀 것이다.

자순이 골똘하게 뭔가 생각하자 최인범도 느낌이 이상해 한마디 던졌다.

“자순, 무슨 생각을 그리하나?”

이상한 생각을 하던 터라 그저 가볍게 던진 말에 자순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마치 자신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고 묻는 것 같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 학교에 가서 돌아보시지 않겠어요.”

“그러지.”

자순 태감은 어떻게 해서라도 후궁을 봐서라도 후계자가 빨리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어린 애들을 보면 태왕이 더 적극적으로 후손을 보는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자순 태감의 권유 때문에 최인범은 보건부의 연구소를 떠나 다음에는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다민족의 국민들을 하나의 국가라는 단위 속에서 같은 사상이나 또는 목표를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너무 중요했다. 특히 어릴 때부터 교육시켜야 효과가 좋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상궁 출신으로 시집간 여교장의 안내를 받아 교실로 가보게 되었다. 창문이 모두 창호지로 되어 있었다. 나무와 벽돌로 지은 마룻바닥인 교실에는 의외로 크고 작은 아이들이 같이 공부하고 있었다.

“너무 덩치가 다르군.”

“폐하, 덩치가 작은 아이들은 모두 조선출신과 건주여진 출신입니다. 그리고 덩치가 큰 아이들은 해서여진이나 명나라 출신이 많고요.”

“그런가? 아무래도 언어 문제 때문에 그런가 보군.”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한글이 쉬워도 습득하려면 조금 더딜 수밖에 없사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와 글이 중요했다. 대진국의 공용어인 한글이나 한어를 잘 구사하는 조선 출신이 현재 제일 빠르게 적응해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학교는 월반 제도가 있어 우수한 학생은 남보다 빠르게 졸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조기 졸업자는 대부분 조선출신이나 건주 여진 출신들이다.

“체육 시간에 하는 무술지도는 잘 됩니까?”

“넷! 아직 체육 교사가 배치되지 않아 근처의 부대에서 장교가 와서 지도하고 있사옵니다.”

“짐이 국방부에 지시를 내릴 것이니 학교에서 부족한 교사는 장교를 적절하게 활용하도록 하시오.”

“넷!”

최인범은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학교와 대학교도 방문했다. 대부분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사람은 조선 출신들이 제일 많았다.

그 다음은 건주여진 출신들로 그중에서도 대부분 아설화를 추종하는 무리가 선두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적응이 빠른 이유는 아설화가 집중적으로 언어나 글 그리고 기타 새로운 교육에 힘을 썼기 때문이다.

최인범이 보급한 한글은 분명 현재 조선에서 사용하는 훈민정음과는 상당히 다르다. 자음과 모음 그리고 사물을 칭하는 용어 자체도 다르다. 그래서 한글과 한어라고도 칭하지만 때로는 진어(眞語)라고도 부르고 있었다.

대학교의 도서관에 들린 최인범은 대학교의 국사 교과서를 넘겨보며 자순 태감에게 물었다.

“이 국사 교과서 발간에 자순도 참여했나?”

“넷! 그리고 아 황비님도 참여해 만든 교과서입니다.”

“황비가 이런 쪽에 관심이 많군.”

“그렇습니다. 역사서나 교과서 출판에는 반드시 아 황비님께서 관여하시고 계십니다.”

아설화는 진즉에 남편인 최인범을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설화는 조선, 부여, 고구려, 여진의 건국신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대진국의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건국(建國)설화가 새롭게 탄생했다.

태왕은 하늘에서 백두산의 천지로 내려와 한반도와 요동을 돌아다니며 사람이 살기 좋은 터를 살폈다. 그러다 한반도 출신인 호랑이 족들과 백두산 주변에 사는 곰 족인 무리 3000명에게 새로운 언어와 글을 가르쳐 진인(眞人)으로 만들고 드디어 대진국을 세우게 됐다고 적혀 있었다.

‘결국 내가 살아 있는 귀신이라는 뜻이네.’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나 대학교 그리고 황실이나 국가의 어떤 기관에 비치된 역사서도 똑 같이 적혀 있었다. 다만 초등학교는 조금 단순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첨가될 뿐이다. 기존적인 골격은 하나도 다르지 않게 적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과서나 역사 기록에 최인범은 천제(天帝)의 아들인 살아있는 신(神)인 것이다. 조선의 풍기 지역의 사람들은 호랑이 부족으로 표현하고 백두산의 이도백하에서 처음 터를 잡은 부하들은 곰 부족이라고 표현했다.

아패록이 이끌던 부족은 본시 호랑이도 숭배하지만 그보다 곰을 더 높이 숭배하는 부족이다. 그래서 설화는 그런 내용을 단군설화와 접합해 새로운 역사서를 만든 것이다.

‘결국 대진국은 한반도 출신과 건주 여진이 주축이라는 의미도 담겼어.’

설화가 주도한 대진죽의 역사 교육은 최인범을 하늘에 계신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단정해 전 국민을 상대로 세뇌시키고 있었다. 그런 방식의 다소 황당한 역사 교육에 일부 명나라 출신 사학자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아설화는 자신이 그렇게 굳게 믿기 때문에 그 부분에 관해서는 단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역사서를 살펴보던 최인범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도 호랑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군.”

“그 역사서는 군인들에게 보내는 정훈서적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호랑이 여자를 만나야 자손을 보기가 쉽다고 하옵니다.”

“뭐라? 호랑이 여자를 만나야 된다고?”

“넷!”

결국 호랑이 여자란 한반도 출신인 여자를 만나야 자손을 보게 된다는 의미다. 참으로 이상한 논리로 국민들을 상대로 교육한다고 느껴졌다.

‘호랑이 여자란 꼭 월녀를 두고 하는 말 같군.’

월녀는 아직도 시집을 안가고 있고 갈 생각도 안하다 보니 차츰 그녀가 황후 후보라고 떠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소문을 퍼트리는 부류야 당연히 조선의 노비나 서민 출신들이다. 조선의 양반 출신들은 황후 후보로 정향 공주를 지지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명나라 잔재가 그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인범은 역사서를 보며 갑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생각했다. 자신은 갑자기 이상한 현상으로 새로운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 때문에 설화의 이런 논리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인범은 이런 식의 역사 교육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지시했다.

“자순, 다음에 역사서를 새로 만들 때는 사실에 입각해 기록하도록 해.”

“넷!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사실은 설명하기가 난해하니 그 부분은 폐하께서 직접 설명을 해줘야 바꿀 수 있사옵니다.”

“뭐라?”

자순의 이런 질문에 최인범은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자신도 잘 모르니 설명해줄 수도 없고 또 아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하면 안 되는 중요한 비밀이다.

‘별수 없이 설화가 주장하는 논리를 따르는 수밖에 없군.’

자순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지함의 말을 전했다.

“폐하, 국방장관께서는 신토불이라고 해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또는 식물도 처음 태어난 지역의 농산물이 제일 좋다고 하옵니다. 물론 사람간의 인연도 그렇고요.”

“국방장관은 요즈음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왜 그런 쪽에 관심이 많지?”

“폐하, 쉽게 해결되어 폐하께 보고 드리지 않은 사항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군부대의 병사들이 집단으로 설사하고 몸들이 비실비실하는 사태가 발생해 비상이 결렸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걸 왜 보고를 안 해?

“폐하, 국방부에서 조사해 보니 전염병은 아니고 서로 너무 다른 지역에서 모인 병사들이다 보니 물맛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달라 병사들이 배탈도 나고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건 이후로 국방장관께서는 그런 쪽에 관심을 두는 것 같사옵니다.”

군대라는 특징 때문에 똑 같이 급식하다가 보니 아무래도 식습관이 달라 벌어진 사건 같았다. 급격한 변화로 대진국 내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물론 주변국도 대진국의 개국으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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