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84화 (384/519)

384화

월녀의 조치는 볼 것 없이 국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이지함 국방장관은 너무 좋아서 크게 환호했다.

“역시, 공주님이 최고야. 허! 허! 완전히 일당백만 대군이군.”

최인범도 싫어할 하등 이유가 없는 협상이라 만족해서 결재를 해주었다. 산동반도에 대해 어찌 처리해야 되는지 고민 중이었으나 그런 고민을 월녀가 단번에 해결해 버렸다.

최인범의 입장에는 산동반도는 일종에 계륵이었다. 먹자니 먹을 것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지정학적으로 아주 고약한 곳이다. 그러나 월녀가 취한 방식이라면 위해도라는 거점을 확실하게 보호하면서 때로는 대륙 전체를 요리할 유리한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북경의 명나라가 조금만 요상한 짓을 벌이면 제태국을 이용해 대륙을 둘로 완전히 갈라버릴 수 있었다. 더구나 대운하를 완전히 차단해 버리면 북경은 다시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가지고 놀기가 적당하게 만들어 놨어.’

최인범은 굳이 원나라나 금나라 그리고 이 시대에는 없지만 청나라처럼 한족(漢族)에 흡수되는 그런 형태를 원치 않았다. 사람 수만 많아서 먹여 살리기 힘든 나라의 백성을 모두 끌어안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크기의 영토를 차지해 최강의 나라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너무 비대해진 나라는 결국 사분오열로 갈라지고 백성들의 삶만 고달프다. 전혀 다른 형태의 국가를 건설할 생각인 것이다. 후세를 생각해도 지금 차지한 영토의 북쪽에 해당하는 시베리아의 동쪽 지역만 차지하면 이후에 나타날 어떤 강대국보다 강한 나라로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태왕의 결제를 받고 나오며 서계는 느끼는 점이 아주 많았다. 이제야 태왕께서 만들려는 나라가 어떤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전통방식의 점령통치가 아닌 경제력으로 은근히 지배하는 그런 제후국에 해당하는 식민지로 주변국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외교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야.’

서계는 월녀가 취한 향동을 보고 한 수를 단단히 배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외국의 사신을 대해야 할지 기본적인 개념이 바로 서게 되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돼.’

자신은 국방장관의 지적대로 모든 외교를 명나라 중심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의 중심은 바로 대진국으로 판단하고 대진국이 추구하는 역사성에 중점을 두어 외교술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빨리 역사서부터 다시 공부해야 되겠어.’

서계도 점차 자신이 대륙의 한(漢)족이 아니고 비로써 한(韓)족으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한편 월녀를 만난 제태국의 사신은 그나마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고 해서 신이 났다.

‘됐어, 이런 정도 성과면 충분해.’

외교관들은 때로는 자신이 지닌 비밀을 일부러 발설하는 경우가 있었다. 제태국의 사신은 이런 대진국의 결정에 속으로 만족했다.

‘잘하면 이번 협상으로 명나라가 우릴 함부로 공격하지 않게 됐어.’

분명 산동성을 대진국 태왕의 봉토지라고 발표했다. 그러니 태왕은 자신의 땅을 다른 나라에서 침범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큰 재물을 항상 가져다 줘야하는 희생은 있었지만 제태국도 이번 협상으로 얻은 것은 있었다.

‘난세에는 처신을 잘해야 해.’

대륙이 크게 요동치는 지금은 분명 난세로 접어들었다.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일정기간은 제태국이 존속할 근거나 보호막은 생겼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슬며시 협상한 내용을 명나라 사신에게 흘러가도록 했다. 그러자 짐작한 그대로 명나라 사신은 기겁하며 급하게 북경으로 떠났다. 눈치를 보아하니 산동성의 서쪽에 주둔중인 군사를 뒤로 완전히 물릴 것 같았다.

신이나자 조금은 기가 살게 된 제태국의 빠르게 봉황성에 산업조사대표부를 만들었다. 그런 조치를 취하고 나서 해양부 장관을 만나 새로운 협상을 시작했다.

“장관님, 산동지역에서 대진국으로 보낼 조세 수익을 늘리려면 산동지역에서도 앞으로 수산업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야 당연하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획량을 정확하게 파악할 뭔가 자료가 필요하지 않나요?”

“장관님, 그럼 앞으로 이렇게 하시면 되죠. 위해도를 중심으로 수산물을 거래하던 방법을 약간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좋은 방법이 있소?”

“예, 청도와 등주에도 수산물 경매시장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그곳에는 재태국의 유방 시로 오게 되는 산업조사대표부 직원이 상주하게 되면 정확한 수산물의 생산량을 알 수 있으니까요.”

해양부 장관으로는 수산물 생산량을 확대할 필요성도 있고 또한 선박도 팔아야 되는 입장이다. 그래서 쉽게 결정을 내려 주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수산물의 보호를 위해 남획을 금지해야 됩니다. 일단 모든 어선은 단동에서 건조한 배를 사서 신고하고 조업하도록 하시죠. 수산물 경매시장은 위해, 청도, 등주에 개설하기로 하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먼 바다로 나갈 큰 배를 판다는 것도 아니고 작은 어선들이다. 또한 먼 바다로 나갈 수 없도록 규정을 두고 조업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그나마 천만 다행으로 제태국은 사신의 노력으로 전보다는 조금을 살기가 좋아진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외교관들 사이에 알려지자 조선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되는 거야?’

제태국처럼 완전히 봉토지로 정해 매년 엄청난 규모의 조공을 바칠 수 없는 노릇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독립국가라고 선언하자니 전보다 더 천지사방이 적국으로 변해 버렸으니 그것도 어려웠다. 명나라는 이제 있으나 마나한 별 볼 일 없는 나라다.

조선사신은 자신이 쉽게 협상할 위치도 아니고 국가의 장래가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조선사신은 그저 전과 똑 같이 교역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에 만족하고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서 주상께 보고를 드리고 조정 중론으로 결정하도록 할 생각이다.

한편 왜에서 오게 된 오우치 가문의 사신은 바짝 달아올랐다. 잘하면 제태국처럼 매년 조공을 바치고 별도의 왕국으로 인정받을 길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례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인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오우치 가문에서 온 사신은 무리하게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

“규슈도 포함한 별도의 왕국으로 인정해 주시오. 그러면 은광에서 생산되는 모든 은괴를 드리겠습니다.”

이런 요구에 서계는 단오하게 거절했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미 규슈는 태왕폐하께서 직접 관리하는 땅인데요. 두 번 다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마시오.”

“뭐요? 규슈가 이미 태왕폐하의 봉토지라고요?”

서계는 이미 왜와 조선의 과거 역사를 통달해 있었다. 그래서 능숙하게 응수했다.

“그렇소. 그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요? 당신들 스스로 이미 그 지역을 지배하는 태대장군인 다이쇼군이라고 칭하고 있었지 않았소. 사신으로 오는 외교관이 그런 사실도 모르고 왔다는 겁니까?”

‘헉! 그것도 이미 아네.’

서계가 토하는 발들은 역시 한 대목도 틀린 말들이 아니다.

이미 태왕께서는 명나라에서 파견했던 왜의 정복자다. 그래서 왜인들 스스로 그런 점을 인정해 규슈나 서왜 지역에서 지배자라고 인정했다.

또한 그 때문에 서왜는 조선의 대마도나 부산포 그리고 단동으로 와서 무역할 수 있는 주인장을 발급 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요즈음에는 하카타를 통해 보타도까지 오가는 무역선도 운항하는 처지다.

이제 와서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명분에서 크게 어긋나게 된다. 그래도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판단한 사신이 슬며시 항의했다.

“그거야 서로 좋게 무역하기 위해 그리 결정된 것이죠. 그런 다이쇼군이란 호칭이 꼭 규슈의 지배자란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괴변이네요. 본시 그대들이 지내는 서왜 지역은 백제시대에 담로로 시작된 지역이 아니오. 더구나 오우치 가문은 백제의 임성태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처지가 아니요? 그런데 우리 대진국은 조선에 있던 백제의 정통성도 이어가니 당연히 서왜 지역도 연고권이 있소. 규슈 섬 지역이야 백제 후손들이 주로 사니 더구나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있소.”

“그건 너무 억지가 아닙니까?”

서계는 아주 강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

“억지라뇨? 당신은 황궁 옆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가서 보지도 못했소? 거기에 백제시대의 고대 유물이 그렇게 많은 이유를 아직도 정녕 모른단 말이요?”

“가보니 고대 백제시대의 유물이 많기는 하더군요.”

“그것을 봤다면 알 것이 아니요. 우리 대진국은 진즉부터 백제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나라요. 그리고 백제의 출발국인 부여와 고구려도 이어가는 것이고. 더구나 봉황성의 상징인 봉황대향로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의 유물인지도 사신은 전혀 모른다는 거요?”

“알죠! 그러니 저희도 뭔가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까?”

“뭐를 해달라니요. 지금까지 해준 것도 다 갚지 못하면서요. 서왜의 오우치 가문은 지금 하는 교역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주인장을 모조리 반납하세요.”

이런 요구에 서왜의 사신은 파랗게 질려 버렸다. 주인장을 회수해 버리면 서왜는 완전히 몰락의 길을 들어서게 생겼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러시면 우린 어쩌라고요?”

“그거야. 서왜에서 알아서 결정한 사안이죠. 정이나 살기가 어려우면 전처럼 조선을 왜구들이 침탈하는 해적질로 살던지 마음대로 하시오.”

이런 대화를 하고 나자 서계는 느닷없이 강소성에서 한창 날뛰고 있는 왜구의 정체에 대해 거론했다.

“아니, 교역하라고 주인장을 발급해 주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감히 왜구를 홍도로 실어 날라 폐하의 봉토지인 산동 지역을 약탈하게 하다니요. 그게 말이나 되는 짓이요?”

“그건 우리도 잘 모르는 사건입니다.”

“모르긴 뭘 모른다는 거요? 본관이 알아보니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한 주인선을 타고 조선의 홍도로 와서 왜구로 합류했다고 하던데요. 더구나 산동에서 약탈한 재물을 시모노세키로 가져간 증거도 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이렇게 지적하자 서왜의 사신은 답변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전부가 사실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사실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얻어는 가야하니 서왜의 사신은 사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저희들 실수니 보상으로 은괴를 보내 드리지요. 하지만 저희도 백제 후손으로 조상이 같으니 뭔가 배려를 해주세요.”

“알았소. 그럼 절충안을 찾아봅시다.”

절충안을 찾아본다고 했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 오우치 가문이 원하고 태왕께서 인정한 사실이 있어 적당한 직책을 부여했다.

결국 서왜의 사신은 대진국의 태왕으로부터 서왜의 오우치 가문에게 혼수 지역을 위탁 통치하라는 쇼군이란 칭호를 받아서 돌아가게 되었다. 대신 은광에서 나오는 은괴의 3할을 매년 하카타를 통해 보내기로 약속을 받았다.

오우치 가문만 쇼군 칭호를 받은 것은 아니다. 나가사키 영주도 쇼군이란 칭호가 하사되어 하카타를 제외한 규슈 지역의 지배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나가사키 영주의 경우는 많은 황을 매년 보내는 형식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하지만 왜왕이 보낸 사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왜왕에게는 실질적인 행정적이나 군사적인 힘도 없고 경제력인 재물도 없다가 보니 전처럼 지내라고 돌려보낸 것이다.

“아무리 제사만 지내는 칭호라고 하지만 왜에서 사용하는 천황이라는 칭호가 별로 좋지 않으니 역사서를 비롯해 모두 고치기 전에는 인정하기 어려우니 알아서 하시오.”

“넷! 돌아가서 잘 정리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이런 대진국의 결정으로 왜의 경우도 규슈와 서왜, 동왜가 완전히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 외무부에서는 하카타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히 태왕의 직할령인 담로(擔魯) 지역으로 확정했다. 임시총통제를 도입해 2년 임기의 임시총통을 8명의 대상인들이 돌아가며 하는 체제를 인정해 주었다. 이 때문에 전국(戰國)시대인 왜는 크게 나누어 네 조각으로 갈라져버린 것이다.

“담로라 함은 고대백제의 통치방식을 택한 것이군요.”

“그렇소. 앞으로 주산군도도 직할령인 담로도시인 지역으로 확정할 것이니 그렇게 아세요.”

대진국은 드디어 무역거점에는 태왕이나 또는 황족이 직접 관리하는 담로(擔魯)지역을 두기로 한 것이다. 이는 방어하기 좋은 항구를 차지해 무역을 통해 이득을 취하기 위한 통치 방식이다.

산동의 위해항구도 처음에는 그렇게 통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본토와 워낙 가까운 지역이고 바다로 진출할 중요한 거점이라 직접 지방도(地方道)인 행정기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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