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새로운 제도의 효과>
외무장관인 서계는 태왕께서 외교 문제를 일임하고 떠나자 실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무조건 사신들이 원하는 그대로 서로 수교를 한다고 모든 나라에 대사관을 만들 수는 없었다.
새로운 제도지만 분명 태왕께서 깊은 숨겨진 뜻이 있다고 판단했다. 모든 나라에 대해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해 한 나라에 대해서는 대사관을 설치해 대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외무차관과 만나 긴밀하게 협의하게 되었다.
“차관, 본시 외교에는 원교근공이 원칙이니 우선 신강(新疆)지역의 타타르 왕국에는 대사관을 만들기로 합시다.”
“그게 좋겠네요. 그곳은 소 황비마마의 친정인 나라니 대사관을 만들어도 문제가 없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진국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타타르 왕국에 대사관을 설치하고 대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외무부에서 결정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국무회의도 열어서 결의해야 되며 태왕께서 결제를 해주더라도 과연 대사로 누굴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서계는 조심스럽게 소피아 황비 처소에서 지내는 상궁인 허후화를 만나 자신의 결정에 대해 소피아 황비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누굴 보내야 할지 모르니 황비마마께서 결정을 해주시면 좋겠으니 전달을 해주시게.”
“아, 그건 이미 황비마마께서 결정했어요. 전부터 호위대장을 하던 연타발을 대사로 임명해 보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연타발은 전에는 타말로 불리다가 대진국과 비슷한 형태로 이름을 지어서 현재 대령으로 육군에서 근무하는 군인이다. 아직은 대사의 직급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알겠소. 그럼 그를 대사로 임명해 신강으로 보내기로 하지요.”
이렇게 대답하자 허후화는 황비의 의사를 또 다시 밝혔다.
“그곳은 이곳까지 너무 머니 황비마마께서는 봉황성에서 주재하는 타타르 왕국의 대사관을 만드는 비용을 내놓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세요.”
“알겠소. 그럼 국무회의에 안전으로 제출하고 바로 대사관 부지를 선정해 보겠소.”
하나하나가 새로운 제도라 모두 처음 시행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계는 일단 먼 나라인 타타르 왕국과는 대사급의 외교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확정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태왕께서 어찌 결정할지 몰라 지금과 똑 같이 무역대표부만 설치하기로 확정했다. 잘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란 태왕의 기본적인 지침을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권한을 행정청으로 넘겨주며 앞으로 어찌 국정을 끌어갈지 걱정하는 장관이나 총리들의 질문에 어찌 보면 하나마나한 대답인 지침을 내렸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니 전에 시행하던 제도를 그대로 따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경우 그런 비슷한 기능을 지닌 교역사무소가 많았다. 그래서 서계는 일단 기존의 교역사무소는 한양의 무역대표부의 지시를 받는 지소와 같은 형태로 존속시키는 방향으로 마무리했다.
몽골의 경우는 자마카 족장이 장악한 대흥안령산맥 서쪽의 지두우 지역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곳을 통해 타타르 왕국과 서신을 보내는 통로를 겸해 설치하게 된 것이다.
왜의 경우 너무 어지럽다고 판단해 전처럼 하카타, 나가사키, 시모노세키에 무역대표부를 존속시키기로 확정했다. 명나라의 경우도 남경, 북경, 보타도에 무역대표부를 두기로 했다. 이런 결정을 내리고 국무회의를 열어 각부 장관들이 각자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게 되었다.
행정청의 국무회의를 여는 소회의실에 각부 장관들이 모였다. 이황 국무총리는 중앙에 앉아 큰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새로 설치되는 체신청에 대해 건교부 장관께서 필요하신 부분을 말하세요.”
“넷! 지금까지 육군에서 관리하던 역참을 모두 건교부로 조직을 넘겨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참의 일부는 교통여행국에서 관리하고 일부는 체신청에서 관리해야 된다고 판단됩니다.”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장관들은 각자 다른 부처의 협조를 얻어야 할 사안을 놓고 회의를 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장관들은 타 부처 장관의 결정에 별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무장관이 결정한다는 무역대표부 설치가 거론되자 상황은 돌변했다.
장관들이 하나같이 용어나 또는 설치 장소에 대해 자세하게 묻는 것이다.
“북경보다는 천진이 더 좋지 않소?”
“내가 보기에는 산해관도 좋아 보이는데.”
이런 의견들이 오가는 중에 잠자코 듣고 있던 국방장관인 이지함이 이의를 걸며 격하게 항의했다.
“외무장관께서는 왜 그리 단순하세요. 명나라 출신임을 은근히 표하시는 겁니까?”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다 보니 태왕께서 어떤 자리에서든지 출신지를 들먹이며 서로 논쟁하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다. 그것을 잘 아는 이지함의 이런 항의에 서계는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국방장관, 태왕의 지침을 잊었어요? 왜 출신지까지 들먹이는 거요? 본인이 뭔가 잘못했으면 그 내용만 지적하시면 될 일인데요.”
“정말 큰일입니다. 외교를 전담하시는 외무장관께서 아직도 명나라에서 살던 중화사상이란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외무장관께서 어떤 큰 실수를 한 것인지 느끼지 못하다니요.”
“정확하게 지적해 주시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묻지요. 외무장관께서는 보타도를 포함한 주산군도가 과연 명나라 땅이라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역사적으로 봐도 주산군도는 항상 극해지처라고 해서 대륙에 있던 역대 조정들도 모두 번외국이라고 칭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곳은 명나라 땅이 결코 아닙니다. 설사 전에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었더라도 이미 그곳은 명나라에서 태왕폐하께 전에 넘겨준 땅이 아니오?”
이런 설명을 듣자 서계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 그렇군요.”
“어떤 나라가 자신의 영토에 외국과 무역하는 무역대표부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답니까? 전에는 단순하게 교역하기 위해 설치한 교역사무소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니 무역대표부란 명칭을 정확하게 사용해야 된다고 봅니다. 조선이나 몽골 그리고 왜에 설치한다는 무역대표부는 모두 종전과 같이 교역사무소로 칭해야 된다고 봅니다.”
결국 이지함의 주장은 조선에 대해서도 무역대표부가 아닌 교역사무소라고만 칭해 독립국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한 것이다. 명나라의 교역사무소나 제태국 또는 왜의 3개 지역이나 몽골의 지두우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지함의 지적도 있고 모르면 그대로 존속하라는 태왕의 기본 지침도 있었다. 결국 외무부에서는 타타르 왕국에 대사관을 설치하기로 확정하고 국무회의를 끝내고 말았다. 이런 국무회의 내용은 누군가 발설한 것인지 봉황성으로 찾아온 사신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태국의 사신은 이런 소식을 듣자 정말 큰일이 났다.
전에 분명히 산동성 지역을 태왕의 봉토지로 준다고 가정제가 확정해 놓았으니 언제 그런 내용을 가지고 대진국에서 시비를 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야.”
“그러내요. 대놓고 말을 안 하지만 그런 연고권을 가지고 시비를 걸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겠네요.”
간간히 나타나는 왜구도 감당하지 못하고 빌빌 거리는 나라의 군세로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대진국과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걱정이 커지고 있었다.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전단계라고 판단되는 무역대표부도 설치하기로 승낙 받지 못하고 돌아가면 왕에게 문책을 받게 생겼다.
그래서 제태국의 사신은 급하게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손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뇌물이 통하지 않는 나라니 별다른 대책이 나올 수가 없었다.
‘미치겠군. 뇌물을 줄 수도 없는 나라라 진짜로 외교 활동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
결국 생각다 못한 사신은 봉황산성 옆의 별궁에 있는 월녀 공주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녀도 만나보고 자신들이 보낸 많은 미녀들 중에 태왕과 선이 다는 여자가 혹시 있을까 해서다.
별궁에서 동물원의 애완동물들이나 특이한 동물들을 보살피며 지내던 월녀는 제태국의 사신이 찾아오자 응접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저를 찾은 이유가 뭐죠?”
“공주님, 제태국을 한번만 봐주세요.”
“무슨 뜻인지 모르니 자세하게 설명해 보세요.”
제태국 사신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무역대표부를 도성인 유방시에 설치해 주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월녀는 한마디 던졌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요.”
“공주님, 부탁드립니다.”
자꾸만 매달려 사정하자 월녀는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본래 산동성은 태왕폐하께서 대부마도위 시절부터 봉토지로 받은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태왕폐하께서 뭐를 해주고 말고가 있나요? 그냥 지금처럼 제태국 국왕께서 산동성에서 사는 백성들을 잘 먹이고 편하게 지내게 하시면 되는 거죠. 폐하께서는 아직 산동성에 특별히 신경 쓸 시간이 없어요. 나중에 한가해지면 무슨 필요한 조치를 내리시겠죠.”
결론적으로 산동성은 진즉부터 태왕의 봉토지지만 관리하기가 번거로워 그냥 제태국 국왕에게 잠시 관리를 맡기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자 사신은 그간 태왕에게 뇌물로 바친 금괴며 은괴들을 거론하며 사정했다. 이런 말에 월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태왕께 드린 재물이 모두 뇌물이라뇨? 아니 봉토지를 소유한 사람에게 관리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소출의 일정액은 매년 가져다 줘야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그게 아니오라?”
“폐하께서 뒤로 뇌물을 먹고 왜구를 물리치다니요? 관리자가 자신의 땅도 지키지 못해 너무 엉망이면 땅 주인이 때로는 도와주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매번 해군이 산동반도를 초계 활동해 주는데 아직도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시다니 듣고 있는 제가 더 오히려 이상하군요. 그래서 위해 항구에 해군기지를 만들어 둔 것이고요. 그러니 제태국에서도 문제만 생기면 매번 도와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까?”
사신은 이런 월녀의 응수에 할 말이 없었다.
‘논리로 따져도 틀린 말은 아니군.’
어떤 땅이고 연고권자는 항상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제태국은 아직까지 기존의 연고권자인 명나라부터도 나라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명나라부터 봉토지라고 하사 받은 태왕으로부터도 정식으로 나라로 인정을 받거나 어떤 내용을 위임받은 사실이 없었다.
아무리 명분이 전혀 필요 없는 힘의 논리 즉 군사력이나 국력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해도 연고권이나 명분은 항상 필요한 법이다.
그런 면에서 재진국의 태왕은 완벽할 정도로 모든 명분을 구비했다. 여진족의 족장으로부터 형제라고 해서 부인까지 넘겨받았다. 가정제로부터 대부마도위에 건주총감의 벼슬도 받고 봉황성과 대련지역을 봉토지로 받았다. 그리고 산동성도 마찬가지로 봉토지로 하사 받았다. 대진국의 태왕은 그런 대외적인 명분이 확실하게 있었기에 명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구나 이제 정식으로 나라라고 선포하며 정통성의 뿌리를 원나라와 금나라를 포함시킬 정도로 치밀했다. 그에 비해 제택국은 그저 힘만 앞세워 나라로 선포하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중이다.
사신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독립국가라고 선언하고 대진국과 척을 지어 결별하고 망해 버리던가? 아니면 매년 일정 금액을 봉토지 사용료라고 납부해 연명하는 선택을 해야 된다.
“공주님, 그럼 앞으로 제태국에서 나오는 소출의 일정량을 보내오면 계속해서 그냥 놔두신다는 겁니까?”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런 소리를 새삼스럽게 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재물의 액수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신은 제태국의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의 반을 정기적으로 위해 시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본시 봉토지의 사용료는 그리 비싸지는 않다. 하지만 농토도 사용료를 내야 되니 광산의 소출량에 대한 5할을 보내야 되는 정도로 협상을 끝냈다.
“결정이 되었으니 그럼 도성에 대표부를 보내야 되겠군요.”
“대표부라면?”
“산업조사대표부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산동성의 정확한 소출에 대해 알지요.”
“알겠습니다.”
제태국은 이렇게 해서 대사관이나 무역대표부가 아닌 산업조사대표부를 유방 시에 유치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봉황성에는 상호간에 경제협력을 한다는 명목으로 똑 같이 산업조사대표부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결정을 듣게 된 외무장관인 서계는 너무 기가 막혔다. 말 몇 마디로 산동성 전체를 날름해 버린 놀라운 사건이기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