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대진국이 개국을 선포한다고 잡은 2월 초하루는 사실 행정청 건물이 준공하는 날이다. 대진국은 전제국가지만 그렇다고 태왕이 모든 것은 좌지우지하지는 않는 형태의 정치체제로 변하고 있었다.
준공 행사에 앞서 이황 국무총리를 만난 최인범은 당부했다.
“앞으로 국무총리께서 두 분의 부총리나 각 부처의 장관들과 협의해 국정 전반을 책임지도록 하시오. 그리고 꼭 필요한 업무만 황궁으로 들어와 보고하도록 하세요.”
“명을 받들겠나이다.”
황궁 밖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지어진 행정청 건물이 별도로 생겼다. 행정청 건물이 준공되면서 황궁에서 근무하던 총리들도 모두 사무실을 옮기고 처음으로 업무를 보게 된다.
새로 이전된 행정청에는 많은 부처가 들어와 같이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공간이 부족한 부처는 비슷하게 지어진 대형 건물에서 업무를 보게 된다.
현대식인 건물로 모두 화강암과 구운 벽돌로 만들었다. 그래서 난방 시설은 석탄을 이용한 보일러를 놓아 중앙난방식이다. 근처에 맑은 온천수를 끌어와 쓰기 때문에 연료비는 많이 들지 않게 되었다.
사무실을 이전한 관리들은 신이 났다.
“이제는 춥거나 더운 일로 고생을 안하게 생겼어.”
“당연하지.”
이곳은 추운 지방이라 여름의 더위보다는 겨울에 추운 것이 제일 문제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건물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태왕은 앞으로 군사와 안보 그리고 외교 분야만 전담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정은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손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그런 통치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황실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가 보니 태왕의 영향을 심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행정청이 준공되는 것을 기회로 지금까지 황실에서 관리하던 염창 시의 염전들 중에서 반을 행정청의 재무부 로 넘기게 되었다.
“재무장관은 앞으로 염전을 관리하는 별도의 부서를 두고 항상 감독을 잘하시오.”
“넷!”
“앞으로 별로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나머지 시설의 반도 재무부로 넘길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알겠사옵니다.”
다른 민간인들이 운영하는 천일염을 생사하는 염전도 있다. 그 때문에 황실에서 관리하는 염전은 앞으로 전체의 1할 정도만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염전을 넘김으로 앞으로 군대 양성도 점차 국가예산 편성에 따라 국방부의 예산으로 충당하게 된다. 왕권 국가지만 황실의 재산과 국가의 재산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앞으로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거나 운영하는 무역업이나 또는 대형 목장들도 행정청으로 차츰 이전시킬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넷!”
이런 결정은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황실에서 관리하는 사업체의 규모가 너무 커지고 방만해 지다 보니 관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나중에는 명나라의 동창 조직처럼 변할 수 있어.’
자칫하면 국가 속에 또 다른 국가 기관이 있는 형태로 변할 위험성이 많다고 판단했다. 꼭 챙겨야 할 부분 이외에는 행정청 즉 국가 재산으로 넘기는 것이다.
이윽고 정오가 되자 최인범은 황궁에서 나와 마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행사장에는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사신들도 있고 관료나 또는 고급 장교들도 참석해 있었다. 특히 육군과 해군사관학교 학생들이 도열해 기다리고 있었다.
최인범이 가까이 다가가자 대대장 생도가 크게 외쳤다.
“태왕폐하께 받들어 총! 충성!”
“고생이 많았군. 자네가 첫 번째 졸업생인 정규 육사의 1기생이군.”
“넷!”
오늘 행사가 끝나면 이들은 이제 소위를 달고 최전방 지역에 배치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생도로써 마지막 행사이면서 졸업식을 이곳에서 하는 것이다.
아울러 최인범은 사관생도들에게는 소총을 기본 무기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물론 준사관학교의 경우도 소총으로 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예복을 입은 사관생도들의 복장은 현대의 생도들 모습과 거의 똑 같았다. 다른 것은 모자로 모두 가죽으로 만든 챙이 달린 형태다.
최인범은 흔히 해군 제독의 복장이라고 칭하는 하얀 제복을 입고 있었다.
황비들은 각자 출신지역의 전통복장을 약간 변형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이렇게 황비들의 차림을 다르게 한 이유는 다민족 국가지만 본시 그 민족이 지닌 전통은 존중해 준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 황비의 미모는 독특한 특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남쪽지역 출신인 정향 공주는 엷은 비단으로 만든 노린 덧옷을 입었다. 그리고 소피아는 비단옷에 호피나 표범가죽으로 만든 덧옷을 입었다. 설화는 하얀 백색인 백곰 가죽으로 만든 덧옷인 예복을 입고 있었다.
태왕도 하얀 옷을 입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녀가 제일 잘 어울리고 제일 웃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태왕께서는 여진족인 동화전을 제일 아끼시는 거야.”
그러나 그런 생각도 월녀가 최인범과 똑 같은 하얀 해군 제독과 같은 제복을 입고 나타나자 다들 마음이 변했다.
“와! 역시 공주님이 최고로군.”
“암! 월녀 공주님께서 황실 내명부의 최고 웃전이라는 것이 확실해.”
많은 사람들은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억측을 하고 있었다. 족내혼도 인정되는 황실법이고 또한 실제로 오누이도 아니다 보니 이런 저런 수군거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조선 출신들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법도 그렇고, 뭐로 봐도 제일 오래된 인영이고 공로도 제일 많잖아.”
“그야 그렇지. 하지만 태왕께서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잖아.”
“이 사람아, 세상사란 본시 오빠 동생하며 다정하게 부르다가 여보 당신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이런 말에 다른 관리가 한마디 했다.
“그래서 자네는 고종 사촌인지 누구와 정분이 나서 여기로 도망쳤나?”
“예끼, 이 사람 보게 고종사촌이라니 고종사촌의 사촌 누이동생이라니까 그러네. 나하고 10촌이나 돼.”
아무튼 조선과 비슷한 나라는 확실지만 다른 점도 너무도 많은 나라다. 그러나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보다 발전된 제도나 사람을 중시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다.
최인범은 행정청의 준공식장에 월녀 공주와 황비들과 같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대진국이 세계의 중심국가임을 당당하게 선포했다. 나라의 건국이념을 홍익인간으로 결정했다. 비록 전쟁포로들의 경우 신분제도가 있어 노비로 살게 되지만 그 이외의 모든 국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등하다고 선포했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발표를 대왕께서 직접 하게 되자 행사장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백성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태왕폐하! 만세!”
신분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주변국들에게는 충격적인 발표다. 환호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며 조선에서 사신으로 온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큰일이야. 이런 소식이 조선팔도로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어렵게 됐군요. 공개적으로 남녀노소가 모두 평등하다고 만천하를 상대로 선포를 해버렸으니.”
조선 뿐 아니라 주변국 모두가 평등사상 때문에 모두 큰 소란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내용을 타국에 강요하겠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새로운 나라 그리고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만천하로 널리 알리는 최인범은 자신감에 차있었다. 이제는 명나라나 조선을 벗어나 전 세계를 향해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한 고비를 겨우 넘겼군.’
기왕에 시작된 새로운 삶이니 나라를 백성들이 원하는 그런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태왕이라고 해서 백성들의 전부를 잘 살게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성공할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먼저 행정청 준공 행사가 끝나고 사관생도들의 졸업식도 있었다.
처음으로 외국 사신들 앞에서 소총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저게 화승총이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고 하더군.”
“조금 특이한 무기군. 하지만 위력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네.”
“그야 나중에 보면 알겠지.”
행사가 모두 끝나고 나자 최인범은 행정청의 국무총리 집무실로 가게 되었다.
집무실에서 준공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온 사신들을 만나고 있었다. 최인범은 참석한 사신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표했다.
“앞으로 대진국과 교류하고 싶은 나라는 봉황성에 대사관을 두도록 하시오. 물론 대진국도 똑 같이 그대들의 나라에 대사관을 설치하고 대사를 파견하게 될 것이오.”
“폐하, 대사관이란 정확하게 뭐를 뜻하는 것인가요?”
명나라에서 찾아온 왕승 태감이 조심스럽게 이렇게 묻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계 외무장관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양쪽 국가가 모두 똑 같이 설치하는 상설기구입니다. 서로 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이라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대사를 비롯한 직원들은 모두 면책 특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본국과 소식을 주고받거나 어떤 지침을 받을 경우는 특별히 외교행랑이란 별도의 우편물로 취급해 검열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서로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의 경우만 쌍방이 외교관 활동을 하는 대사관을 설치하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서로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국가 간에만 대사관을 두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영사관이나 또는 일반적인 무역대표부를 두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진국에서 수교를 맺은 나라만 대사관을 두겠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형태로 주변국에 대해 독립국으로 인정하느냐 않느냐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헉! 완전히 제후국으로 삼겠다는 뜻이나 비슷하네.’
아직은 대사관이란 개념 자체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다가 보니 다들 이런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편 제도를 처음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최인범은 행정부가 생기고 필요한 말들이 충분히 들어오게 되자 역참제도를 조금 다르게 개선했다.
건설부를 건교부 즉 건설교통부로 바꾸어 산하 기관으로 체신청을 역참과 같이 운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주민이 많은 대진국 국민들 사이에 서로 서신 교환이 쉽게 해주기로 했다.
체신청의 경우 역참 시설을 이용해 정기적으로 하루에 4번씩 고을과 고을을 연결하는 역마차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반 우편물이나 일반 공문은 이제 파발 대신으로 역마차의 우편행랑을 통해 정기적으로 이송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등기 속달 제도의 경우는 마차가 아닌 파발을 이용해 속달 행랑으로 급한 공문서나 속달우편물의 경우 일반 우편보다 2배 정도 빠르게 전달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물론 우편배달부가 가가호호 방문해 배달해주는 제도까지는 도입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읍면 소재지의 우체국에서 본인들이 찾아오면 받아 갈 수 있도록 했다.
속달등기우편의 경우는 반드시 우편배달부가 본인을 찾아서 전달하게 된다. 중요한 우편물이 아닐 경우 읍면 소재지로 5일 장날이면 거의 나오는 이장이나 또는 편지를 보낼 마을에 근처에 사는 관리를 통해 전달하는 제도를 사용하게 된다.
각국의 사신들은 최인범의 이런 발표에 머리가 복잡했다. 명나라는 대사관을 설치하자고 말하려다 망설였다. 자칫하면 대진국을 명나라보다 위에 있는 상국으로 예우하게 될까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타타르 왕국, 제태국, 조선, 몽골 그리고 왜의 사신들은 빠르게 요구했다.
“폐하, 대사관을 설치하도록 윤허해 주옵소서.”
“아! 그 문제는 외무부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서 국무회의를 거쳐 의결을 하고 나중에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하니 지금 답할 수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외무장관과 협의부터 하세요.”
이렇게 조치를 내리고 나자 최인범은 서둘러 황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어차피 행정청에 국정을 맡길 생각이라 간섭하기 싫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