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현난풍은 함장들을 향해 더욱 매서운 명령을 내렸다.
“신기전 발사!”
현난풍의 명령이 떨어지자 8대의 화자에서 일제히 굉음이 들리며 무수한 신기전이 날아갔다. 화살 끝의 작은 주머니에 모두 기름이나 터지는 화약이 들어 있었다.
펑! 펑! 화르륵! 화르륵!
비록 작은 주머니에 담긴 기름이나 화약이지만 목선인 왜구들의 배에는 치명적이다.
화공을 펼치자 작은 포구는 이내 뜨거운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배의 주변에 왜구들은 겁에 질려 급하게 내륙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으아악! 불이야!”
“불이야!”
사략선 8척에서 쏘는 화포들의 공격에 불과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모조리 불타고 말았다.
망원경으로 포구를 바라보던 현난풍은 표독스럽게 외쳤다.
“한 번 더 사격해!”
“넷!”
과과광! 쾅! 쾅!
사략선 8척에서 또다시 지자총통이 일제히 불을 품으며 매섭게 사격을 가했다. 그나마 불타고 있던 배들은 모조리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더욱 거세지며 완전히 재로 변하고 말았다.
망원경으로 포구를 자세하게 살피던 현난풍은 적선이 모조리 파괴되자 그제야 다시 명령을 내렸다.
“보타도로 이동해!”
“넷!”
일자형으로 포진했던 사략선들은 서서히 두 개의 선단을 이루며 동쪽으로 이동했다. 해안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먼 바다로 나오자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 보타도로 향했다.
이제 대진국의 국가정보원장을 통해 보내온 태왕폐하께서 지시한 임무가 모두 끝났다. 그래서 앞으로 보타도를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평소에는 무역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약탈하는 사략선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우선 보타도에서 거점을 잡고 관망을 해보자고.’
새롭게 구성된 선원들이라 아직은 사략선에 대해 잘 모른다. 또한 운항능력이나 또는 전투력이 미비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떤 적이 나타날지 모르니 신중하게 움직일 생각이다.
보타도에서 제주도의 대정항 그리고 하카타나 나가사키를 연결하는 북쪽의 황해나 남해 해역은 흑풍사략선단이 활동하는 곳이다.
그래서 현난풍에게 허락된 관할 구역은 장강 남쪽에서 멀리 규슈를 선으로 그은 남쪽 해역이다. 그곳에서는 어떤 배도 약탈이 가능하다.
‘장강 남쪽은 이제 내 구역이야.’
바다는 매우 위험해 항상 매우 조심해야 한다. 생각지 못한 곳에 암초가 있을 수 있으니 많은 경험도 필요하고 또한 항해술도 발달해야 된다.
‘앞으로 가야하는 항로는 해도도 정확하지 않다니 조심해야 해.’
이렇게 판단한 현난풍은 천천히 사략선을 이끌고 보타도로 들어갔다. 보타도의 남쪽 항구로 들어가 부두에 정박하고 선원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
처음 들어 왔을 때에는 무심하게 봤다. 그 때문에 잘 몰랐으나 상단주도 여자고 배에 많은 여자들이 선원으로 있어 놀란 것이다.
“어디 여인국이 있나?”
“그러게. 정말 이상하군. 배를 여자들이 몰고 다니고.”
아직 해녀들이 선장이나 조타수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보타도 사람들이 보기에 여자들이 너무 많다가 보니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사략선에서 내린 현난풍과 현장화는 보타도의 대상인들에게 접근해 교섭을 벌였다.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이때 마침 이곳까지 와있던 월녀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어머, 여기서 현풍 상단주를 만나게 되는군요.”
“누구?”
“저는 백두상단의 월녀라고 합니다.”
이런 말에 현난풍은 기겁하며 놀랐다. 대진국의 태왕이 제일 아낀다는 월녀 공주이며 조선과 왜 그리고 남경 지역의 해운업을 장악한 상단주이다. 더구나 생명의 은인이라 현난풍은 황급하게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머, 제 생명의 은인이신 공주님께서 여기까지 오셨군요.”
“그러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화물을 나르시려고요?”
“예, 제주도나 하카타까지 운송할 화물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렇게 하지요. 마침 제주도로 보낼 감귤나무의 묘목과 비단과 면포가 있는데 그것을 대정항까지 날라 주시죠. 운임은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녀는 남경 남쪽지역에서 구한 감귤나무의 품종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대규모로 묘목을 보내서 제주도에 감귤 농장의 규모를 늘릴 생각이다. 그래서 많은 묘목을 운송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자신은 개국을 선포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바로 봉황성으로 가려다 보니 화물을 다른 배로 보내려던 중이다.
월녀는 현난풍에게 계속해서 제주도와 보타도를 오갈 수 있는 물동량을 현난풍에게 제시하며 계약했다. 제주도에서는 주로 소금을 날라서 보타도록 가져가고 보타도에서는 비단, 면포, 말, 미곡을 나르는 운송계약을 한 것이다.
현난풍은 그 물건만 나르게 되면 자연히 선원들도 항해술이 늘고 차츰 남해 지역의 항로들도 익숙해진다고 판단해 계약하게 되었다. 소심한 성격은 아니지만 바다를 다닌다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아니 신중하게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어 현난풍은 당분간 사략선이 아닌 화물 운송업자와 같이 제주도와 보타도를 오가는 영업하게 되었다.
‘사략선이 8척이나 되니 잘만 운영하면 점차 큰 세력을 이룰 수 있어.’
현난풍은 제주도의 해녀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찾아 멀리 떠나볼 야무진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지만 잘하면 그런 곳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현난풍이 왜구들의 배들은 완전히 파괴하고 떠난 여동현의 포구.
여동현까지 침입해 약탈을 끝내고 포구로 돌아온 왜구들은 놀랐다. 자신들이 타고 떠날 배가 단 한척의 없이 모조리 불탄 모습에 너무 참담했다. 까맣게 타버린 재만 보이고 철탄인 포탄만 보였다. 분명 현난풍이 이끄는 사략선이 공격하고 떠난 것이 확실했다.
노무라는 넋이 빠져서 신음을 토했다.
“지독한 년이야. 배를 모조리 파괴해 버리다니.”
“영주님, 이제 어쩌죠? 명나라에는 쓸 만한 배가 전혀 없는데요.”
그동안 모은 배들도 아주 힘들게 모았다. 이미 산동반도에서는 더 이상 큰 배를 건조할 선박제조기술자가 없었다. 오래전에 만든 배를 탈취하고 조선의 조운선이나 또는 어선을 홍도까지 가서 어렵고 구했었다.
재물이 있어도 배가 없으니 조선이나 왜로 갈 수도 없다. 더구나 자신들을 추적해서 명나라 군대가 해안으로 오게 되면 그대로 포위되어 죽게 생겼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노무라는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해안에서 꾸물거리지 말고 내륙으로 들어가자.”
“어찌 하시려고요?”
“내륙으로 들어가서 왜구가 아닌 홍건적으로 행세하자.”
“홍건적요?”
홍건적이란 본시 원에 대항해 시작된 농민 반란군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게 되어 불린 명칭이다. 홍건적을 이끌고 주원장이 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도적의 무리들은 그래도 주민들이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홍건적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노무라는 자신들이 왜구가 아닌 홍건적으로 위장해서 적당한 곳에서 터를 잡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무리 고심해도 별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현난풍과 척을 진 것이 후회될 뿐이다.
“배가 없으니 왜로는 돌아가기 힘들어.”
“알겠습니다. 그럼 그 준비부터 해야 되겠네요.”
왜구들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홍건적으로 위장해 내륙 깊숙한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작은 목장에 있는 말 100필을 탈취하게 되어 단순한 산적이 아닌 말을 많이 보유한 마적으로 차츰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무리의 반은 사라져 버렸다.
“영주님, 명나라 출신들은 모두 달아났습니다.”
“뭐라?”
명나라 출신들은 워낙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 왜구를 따라다니며 졸병 생활을 하기보다는 독자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들은 진짜 홍건적으로 변한 것이다. 아무래도 해안보다는 내륙지역이 활동하기 좋다고 판단한 노무라 일당은 점점 내륙으로 들어갔다.
후일의 일이지만 노무라 일당은 강소성을 비롯해 멀리 하남성까지 약탈하며 이동하게 되었다. 이제 퇴로도 완전히 사라진 그들은 악심을 품고 명나라 사람을 마구 죽이며 떠돌아다니는 잔악한 행위를 하며 지내게 됐다.
한편 월녀는 많은 선물과 비단을 그리고 구리를 가지고 보타도를 떠나 바로 단동으로 오게 되었다. 긴 항해였지만 격군도 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왔다.
월녀는 화포 개발을 책임지는 관료를 만나 남경에서 사가지고 온 구리를 넘겨주었다.
“앞으로는 주석은 필요가 없다고요?”
“넷! 주석은 요동 지역에서도 많이 나오고 특히 새로 개발된 간동도의 광산에서 많이 생산해 충분히 공급 받고 있사옵니다. 앞으로 구리도 충분히 생산될 수 있다고 하옵니다.”
“다행이군요.”
대진국은 차츰 해외에서 주석이나 구리를 구입해 오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필요한 수요량을 충당할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더구나 기술력이 발달해 고급비단도 생산이 가능하니 앞으로는 완제품인 비단보다는 원사나 누에꼬치를 사오는 것이 좋도록 변하고 있었다.
월녀는 다행이 개국을 선포하기 며칠 전에 도착했다. 그래서 말을 타고 서둘러 봉황산성 옆에 있는 별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물원으로 보낼 새로운 동물을 가져와 그곳으로 보내야 한다.
말을 타고 이동하며 같이 가는 관료에게 물었다.
“이번에 어디 어디서 사신이 왔나요?”
“조선, 명나라, 왜, 제태국, 타타르왕국, 몽골의 알탄 칸, 그리고 남경에서도 사신이 왔습니다.”
조선이나 제태국 몽골은 당연히 와야 하는 사신들이다. 하지만 명나라가 북경과 남경으로 나뉘어 사신을 보냈다니 의외다. 그리고 왜에서 사신을 보냈다니 누가 보냈는지 궁금해 물었다.
“왜는 어디서 온 사신이죠?”
“모두 세 곳에서 보냈습니다.”
“세 곳요?”
“넷! 오우치 영주도 보내고 교토의 일왕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규슈의 나가사키 영주도 보냈고요.”
“그들을 사신이라고 칭하기는 곤란하지 않아요?”
“공주마마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독자적으로 왕국을 건설할 생각으로 사신을 보내 대진국으로부터 왕이란 작위를 받으려고 찾아 온 것입니다.”
“뭐요? 나가사키 영주도 독립하려고 사신을 보냈다고요?”
“그렇습니다.”
대진국이 요동지역에 강한 나라로 등장하자 이제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그 여파로 심하게 분열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명나라는 이미 서쪽에는 타타르 왕국이 있고 제태국과 남명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왜의 경우는 규슈, 서왜. 동왜로 갈라지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드디어 대륙이나 한반도 왜 그리고 멀리 중앙아시아까지 크게 요동치는 파급 효과가 발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