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황궁의 중궁에 있는 집무실에서 국방부에서 올라온 장군들의 진급 서류에 결재해주고 나자 최인범은 이지함 국방장관에게 물었다.
“제태국의 사신이 뭐를 요구하던가?”
“산동 반도 남쪽의 왜구를 소탕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외무장관의 협조 공문에 초계 활동비로 금괴를 가져와서 해주기로 약속했답니다. 그리고 비공식으로는 산동에서 많은 미녀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옵니다.”
“금괴와 미인을 보내?”
“넷! 금괴는 모두 해군 함정 건조자금으로 투입되고 산동 출신의 미녀들은 모조리 봉황산성의 별궁으로 보냈다고 하더군요.”
이런 보고에 최인범은 이미 잘 아는 내용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총리대행이 이미 처리해서 외부장관이 나에게 따로 보고를 안 한 것 같군.”
“폐하, 산동에서 오게 된 미녀들 때문인가 봅니다.”
“흠! 산동에서 오게 된 미녀들이 동비의 눈에 거슬릴 정도로 예쁜 모양이군. 그런 이야기를 전혀 나에게 안하는 것을 보면.”
미녀들 문제야 대내궁 안에서 처리해야 된다.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는 국사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제태국에서 정식으로 사신을 보내 초계활동을 해달라는 군비도 보냈으니 대진국에서는 해군을 움직여 줘야 타당했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군대를 움직여야 해.’
이미 왜구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정보원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정식으로 금괴를 외무부에서 받고 소탕 작전을 해준다고 약속했으니 위해 기지에 있는 제 3함대 소속의 해군들을 움직여 초계 활동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왜구들의 수가 너무 늘었어. 이쯤해서 처리해야 돼.’
왜구들을 처리해 버리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명령했다.
“국방장관, 제3함대 사령관에서 산동 반도 남쪽에서 초계활동을 시작하라고 명해.”
“넷!”
“단 한척의 왜구들 배가 남아 있지 않도록 모조리 격침시키라고 명령하시오. 혹시 잡게 되는 포로가 있으면 모두 염창의 포로수용소로 보내고.”
“명을 받들겠나이다.”
강하게 대답한 이지함 국방장관은 조심스럽게 흑룡시에서 기마병이 양성된다는 정보에 대해 보고했다.
“폐하, 6군단장이 국방부에 보고도 없이 흑룡시에서 야인 여진 출신들로 3개 기마사단을 만들고 있사옵니다. 혹시 아시는지요? 헌병대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아, 그건 내가 지시해 3만명의 제 8기병군단을 만들라고 한 것이니 당분간 국방장관은 모른 척 하세요. 그 기마군단은 앞으로 제7기병군단과 같이 유사시 최전방으로 투입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 기병사단이 완전히 구성되어야 어떤 식으로라도 대진국은 군대를 움직일 것이니 국방장관만 아시고요. 그러니 다른 사단들도 그때까지는 완전히 편성도 끝내고 훈련이나 장비 보급도 끝내 놓아야 됩니다.”
“넷!”
최인범이 황궁에서 지내며 업무를 보게 되자 대진국은 빠르게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밤에는 대내궁의 서궁으로 어김없이 찾아가고 있었다. 그동안 은근히 후계를 걱정하던 각료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제야 나라가 정상으로 되는 기분이 드는군.”
“그렇습니다. 당장 후계자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이쯤해서 태자를 보셔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나라가 튼실해 지는 것이지요.”
왕조시대에 군왕의 임무 중 가장 큰 것이 후손을 보아서 후계자를 양성해 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그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계자가 없으면 이상한 사건들도 벌어지고 반역의 무리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후계자가 있다는 것은 나중에도 계속 안정적으로 나라가 발전된다는 보장이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국가 대사다.
“잘 못하면 우리도 명나라 꼴로 변할 수 있어.”
“그렇지는 않지만 후계자가 빨리 태어나야 좋지.”
태왕이 서궁으로 다닌다고 해서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중궁에 있는 교태전이 아직도 비어 있으니 조금은 그 때문에 말들이 있었다.
새로 황후를 맞이해야 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또는 어떤 황비가 황후 자리에 오를지 궁금해서 그 문제로 술렁이는 경우가 많았다.
“왕자를 먼저 낳으면 황후가 될까?”
“지금으로 봐서는 그게 제일 확률이 높지.”
“그러면 대내궁에서 암투가 벌어지는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억측은 삼가게. 내가 보기에는 태왕께서 그런 일은 용납하지 않을 거야.”
“그게 어디 태왕폐하의 뜻대로 되나?”
이런 염려를 하지만 며칠을 춘화전에서 지내던 태왕은 밤에는 순서에 따른다는 듯이 움직였다. 추화전과 동화전에도 들리고 가끔은 매화전의 진유향도 만나고 있었다.
그래서 완전히 토사구팽이라고 취급받던 진유향도 그런대로 자신의 위치는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다 가기 때문에 그녀는 확실하게 3명의 황비와는 위상이 달랐다.
왕조 국가의 황실에서 사는 여자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최인범은 외국의 사신들이 오는 2월 초까지는 황궁에서 지낼 생각이다. 낮에는 국정을 돌보고 밤에는 네 여자를 찾아다니는 업무로 무척 바빴다.
매일 같이 여자를 바꾸며 접하다 보니 조금은 진기가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다.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워낙 여자와 자주 접하지 않다가 요즈음은 자주 접하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이러다 큰일이 나지.’
최인범은 멀리 떠날 수는 없어 황궁에서 벗어나 슬며시 별궁으로 향하게 되었다. 별궁에는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동물원이 있으니 그곳을 구경도 하고 운영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공주, 나와 같이 별궁에 가지.”
“아니옵니다. 폐하, 저는 황궁에 있겠사옵니다.”
“왜 그곳을 가기가 싫소?”
“그건 아니옵고. 두 분 황비마마께서 2월 초만 지나면 봉황성을 떠난다고 하시니 제가 황궁을 지켜야 하니 제가 배울 것이 많아서 그렇죠.”
소피아와 아설화는 2월 초가 되면 각자 자신들이 하고자하는 일을 위해 황궁에서 떠날 생각이었다. 소피아는 대련으로 가서 무역업을 지휘할 생각이다. 아설화의 경우는 멀리 북쪽의 대흥도로 가서 몽골과 교역을 직접 챙기고 싶어 떠나려는 것이다.
그녀들이 따나려는 이유 중 하나는 태왕도 2월 초가 되면 또 다시 외유를 나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최인범이 자신들이 아닌 후궁을 새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알았소. 그럼 혼자 다녀오지요.”
최인범은 정향 공주가 같이 안 간다고 하자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급하게 별궁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황비들이 원하는 후궁을 맞이하는 것에는 관심은 없었다. 별궁에서 지내는 많은 미녀들은 앞으로 모조리 시집을 보낸다고 지침을 내렸다.
최인범은 별궁 옆의 동물원에 있는 각종 동물들을 보살피며 지내고 있었다.
한편 최인범이 별궁에서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멀리 산동 반도 남쪽의 해변에서는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홍도를 거점으로 삼아 왜구들을 지원해 주고 있던 현난풍은 국가정보원에서 보내온 소식을 왜구의 우두머리인 노무라에게 전하게 됐다. 그녀는 산동 반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에서 노무라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노무라 영주, 앞으로 대진국에서 해군을 보내 소탕작전을 펼칠 것 같으니 산동 반도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떤가?”
이런 말에 노무라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응수했다.
“아니, 언제까지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이오? 앞으로 우리는 독자적으로 행동할 것이요.”
“뭐요? 독자적으로 행동을 하다니. 그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요?”
“왜? 우리에게 조선의 서쪽을 가지 말리는 거요? 앞으로 우리는 우리들 마음대로 명나라나 조선을 가리지 않고 활동할 생각이니 그렇게 아시오.”
왜구의 우두머리인 노무라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었다. 이미 자신들이 보유한 해적함의 수가 200척에 달했다. 더구나 부하들도 1만명에 육박하자 전 같이 고분고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노무라의 응수에 현난풍은 어이가 없었다.
‘이놈 봐라! 완전히 겁을 상실했군.’
진즉에 하는 싹수가 노랗더니 결국 세가 불어나자 이제는 독자적으로 산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노무라가 현난풍을 조금 허술하게 판단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에는 사략선에 화포들이 많았으나 그 수를 반으로 줄였다. 그 이유는 새로 4척의 사략선을 인수하며 포수도 줄고 기본적인 선원들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화포 대금도 많이 들지만 자신들에게 대적한 어떤 함정도 황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장력을 낮춘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보급품을 싣고 장기간 해상에서 머물며 노무라를 감시하거나 그들에게 보급품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무라는 사략선이 크기에 비해 무장력이 약하고 격군도 없다는 점을 착안해 결별하고 나서 기회에 사략선을 차지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접전만 벌어지면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더구나 현난풍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였다. 제주도에서 해녀로 사는 여자들을 모아서 자신이 타고 다니는 선원들 중에 군사라고 보는 포수나 또는 기타 선원으로 채용했다.
그녀는 노무라가 바치는 뇌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략선의 선원으로 해녀를 채용해 가끔은 그녀들을 시켜 물질을 하고 있었다. 홍도를 비롯해 흑산도 그리고 격렬비열도나 또는 명나라의 동해안 지역의 섬에서 노무라를 기다리는 동안 수산물 채취로 재물을 모으고 있었다.
대부분 어부들이 조업을 못하게 되자 동해안의 어떤 섬으로 가도 해녀들이 채취할 수산물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주로 진주조개를 잡거나 또는 전복을 채취하는 것이다. 해녀들이 바다와 친숙해 물질이야 잘하지만 검을 다루지는 못하고 배도 잘 운항하지 못하니 노무라는 자신들의 무력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결별한다고 선언하자 현난풍은 몸씨 당황한 표정으로 사정하듯이 말했다.
“노무라 영주, 그러지 말고 서로 잘해 봅시다. 이제 와서 이러면 곤란하지 않소?”
약한 모습으로 사정하자 기가 강성해진 노무라는 더 다부지게 말했다.
“이쯤해서 해어집시다. 그리고 앞으로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래도 그간 좋게 지낸 사이니 다시 만나면 너무 섭섭하게 대하지는 맙시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현난풍은 다시 한 번 노무라에게 강조했다.
“노무라 영주, 그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알려주는 것이니 산동 반도에서 활동은 중단하고 강소성 쪽으로 이동하세요. 분명히 대진국의 해군이 초계활동을 시작할 것이니까요.”
“고맙소. 참고는 하죠.”
결국 두 사람은 그간 계산을 미루었던 재물을 꼼꼼히 다져서 정산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노무라와 헤어진 현난풍은 즉시 8척의 사략선을 이끌고 멀리 남쪽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대정항을 모항으로 삼고 움직여야 되겠어.’
대정항으로 향하는 현난풍은 이미 정보원장으로 얻은 정보 때문에 더 이상 황해에서의 활동은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제 왜구들의 뒤를 봐주는 활동을 접고 더 남쪽에서 본격적으로 사략선으로 활동할 생각이다. 무역도 병행해야 되니 위치를 잘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길목을 잘 잡아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군.’
그러나 그런 일은 나중에 문제다. 당장은 대정항으로 가서 화포를 다시 채우고 선원도 구해서 무장 상태를 대폭 보강할 생각이다.
‘전과는 달라져야 해.’
어차피 자신을 배신한 노무라 일당을 그대로 놔둘 현난풍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왜구를 완전히 처치해 버릴 무서운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본시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잡아먹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