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자금성 밖에서 수재를 만나 애정행각을 벌이던 조 귀비가 서궁으로 들어오자 상궁의 보고를 받았다.
“마마, 제조상궁과 감찰상궁이 사라졌사옵니다. 그리고 감찰부의 시녀들도 사라지고요.”
“뭐? 몇 명이나?”
“20명이나 되옵니다. 모두 백수와 알고 지내던 여자들이옵니다.”
이런 놀라운 보고를 받자 조 귀비는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황후가 그 여자들을 처치해 버린 것 같았다. 자칫하면 자신도 황후의 손에 죽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왕 황후의 경우 생긴 것은 학자 딸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마음이 고와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게 아니다. 냉혹하고 매서운 여자다.
제조상궁이란 태감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실세 중에 실세다. 그리고 감찰 상궁이나 감찰부 시녀들도 막강한 힘을 지녔다. 그런 여자들을 일시에 제거해 버리는 황후의 조치에 조 귀비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자금성에서 나가지 말아야 되겠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습관적으로 가산 옆의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상궁이나 시녀를 처리한 것인지 궁금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지하 감옥의 문을 열던 조 귀비는 화들짝 놀랐다. 놀란 이유는 수많은 여자들의 머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직 머리를 치우지 않은 것은 상궁이나 시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으아악!”
너무 놀란 조 귀비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감옥 안에 붉은 피가 가득히 눈에 들어오자 그만 옆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마마!”
놀란 상궁이 급하게 조 귀비를 부축하다가 또 다시 놀라고 말았다.
“어머나! 피가!”
조 귀비의 다리사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 임신한 몸으로 너무 놀라 유산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상궁은 시녀들과 같이 급하게 조 귀비를 처소로 옮기고 나서 왕 황후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마마, 귀비 마마께서 지하 감옥으로 가서 살피다가 너무 놀라 졸도하시며 유산한 것 같사옵니다.”
상궁의 보고에 왕 황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조 귀비는 왜 그런 험악한 곳을 찾아 가서 보고 그래. 더구나 조 귀비는 아직 잉태했다는 보고도 없었는데.”
“마마, 그건 귀비 마마는 아직 잉태한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그런 모양 같사옵니다.”
“빨리 어의를 보내.”
어의를 보내라고 명령하면서 왕 황후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 않게 조 귀비가 임신했고 더구나 놀라 낙태를 해버렸으니 그녀로는 좋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바보 같이 그것도 모르고 남자를 만나러 다녀?’
지금은 서로 밀착해 협조하는 사이다. 하지만 그런 사이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황제는 둘이 하는 자리가 아니니 조 귀비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낳을 아이와 경쟁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둘 다 아들을 낳을 경우지만 아무튼 잠정적인 경쟁 상대다. 조 귀비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자신에게는 행복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호호! 아주 잘 됐어.’
이 사건 이후로 자금성에서는 상궁이나 시녀들의 외부출입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 귀비는 낙태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다. 그렇게 되자 왕 황후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듯이 높아지고 있었다.
한편 대요하의 상류인 혼수 옆에 있는 심양에서는 건설로 매우 소란스러웠다. 추운 겨울에 많은 병사나 민간인들이 동원되어 운하와 제방 공사가 한창이다.
최인범은 심양을 발전시키기 위해 해군에 제 4함대를 창설하도록 지시해 대요하의 하구에 위치한 영구시를 해군기지로 만들도록 했다. 그러자 빠르게 제4함대를 구성할 함정들이 심양까지 왔다. 많은 보급품이나 건설 장비 그리고 기계설비들이 도착했다.
육로로 이동하기 어려운 큰 기계장비들이 도착하자 심양에도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게 된다. 앞으로 심양을 중심으로 발전시키려면 군대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발전시켜야 되니 서두르고 있었다.
‘해군을 빨리 육성시켜야 해운으로 물자들을 이동시키기가 좋아.’
육로보다는 수로를 통한 물동량의 이동이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육군 중강에 이어 해군의 경우도 각 함대별로 편제가 새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요하와 대요하를 완전히 장악하려면 지금 보유한 함정의 수로는 어림없다고 판단했다. 수로도 길고 또한 너무 굴곡이 심해 필요한 배들이 많아야 된다.
각료들에게 지시했다.
“해군도 증강할 생각이니 각 부처는 서로 협조해서 해군 증강에 힘써 주시오.”
“넷!”
해군 함정의 건조야 해양부에서 하지만 거기에 소요되는 무기나 기타 장비는 다른 부처에서 조달할 필요성이 있어 작료들에게 동시에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태왕의 이런 결정으로 4개 함대 사령부를 두게 되었다.
하나의 함대사령부에는 전투함이 6척, 같은 크기로 본시 화물선으로 불리다가 보급함이라고 명명된 함선이 12척, 판옥선이 18척, 판옥선으로 개조되지 않은 같은 크기의 조운선이 24척으로 구성된다.
각 함대별로 3개전대로 구성되어 전대는 전투함 2척, 화물선 4척, 판옥선 6척, 조운선 8척으로 총 20척을 보유한다. 그래서 각 함대사령관은 소장으로 임명하고 전대장의 경우 상령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함장의 경우 소령과 대위가 하게 된다.
“국방부 장관은 제 4함대와 같은 편제로 각 함대를 만들도록 하시오.”
“넷!”
“제일 급한 곳인 제4함대는 이미 구성됐으니 다음은 대련의 제 2함대사령부, 그 다음에는 위해의 제3함대 사령부 마지막으로 단동의 제 1함대 사령부 순서로 똑 같은 함정 수를 보유하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유비무환이라고 전쟁을 철저히 대비해야 된다. 비록 명나라가 힘은 없다고 하지만 대륙을 차지한 저력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두어 모든 군대를 배치해야 된다.
“육군도 해군과 마찬가지로 서쪽과 북쪽으로 먼저 구성하고 마지막으로 조선쪽을 보강하시오.”
“넷!”
이런 명령에 따라 육군도 명나라가 침공할 수 있는 방향인 서쪽을 최우선으로 배치하게 된다. 다음에는 몽골의 의식한 북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과 접경지역에 부대배치나 장비를 공급하기로 결정되었다.
제 4함대 사령관으로 결정된 신일섭은 본시 육군으로 복무하다가 새로 해군에 편입된 군인이다. 본시 의주에서 명나라와 장사를 해 이곳 요하지역의 지리에 잘 안다는 점이 발탁의 배경이다.
“제 4함대 사령관은 보유한 해군의 해상작전훈련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육군에서 하는 방어선 구축에 협조해 주시오.”
“넷!”
“그리고 2함대 사령부에서 영구의 해군기지까지 운반해 오는 보급품이나 군사 장비를 나르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시오.”
“명을 따르겠나이다.”
군수품은 조달청에서 관리하는 품목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해군에서 그런 보급품을 운반하기 위해 전투함만 아니라 화물선을 많이 포함시킨 것이다.
전투함이나 판옥선은 모두 무장 상태는 같았다. 그러나 보급함이나 조운선의 겨우 무장이 거의 없는 상태라 사실 화물선의 역할만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전투함이나 판옥선과 같이 이동하게 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개 전단의 20척씩 이동하기로 정해졌다.
“얼마나 해군의 함정들이 심양으로 빨리 물자를 운반해 오느냐가 지역 발전이나 요동 지역의 안정을 이루는 관건이니 최선을 다해 주시오.”
“넷!”
심양도 직할시로 결정되었다. 그 때문에 앞으로 이곳에서 화폐도 만들고 각종 군 장비의 생산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물론 민간인들의 생산시설도 들어서게 된다.
아직은 이곳 심양이나 영구 해군기지는 이렇다 할 생산시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주로 모든 물자는 대련항이나 봉황성에서 운반해 와야 한다. 봉황성에서 생산된 물자의 경우는 육로를 통해 운반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자는 모두 배를 이용해 이동시키게 된다.
특히 염창 시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대부분 대련으로 이동된다. 그래서 일부는 명나라로 수출하고 일부는 비축하고 일부는 영구의 해군기지로 보내져 심양으로 이동되기 때문에 물동량이 많았다.
아직 요하는 완전히 장악된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보다 안전한 수로인 대요하를 통해 모든 물자는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심양에서 지내던 최인범은 필요한 조치를 내리고 영구 시로 오게 되었다.
대요하 하구에 위치한 영구지역은 늪지도 넓어 갈대가 무성한 곳들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갈대를 이용한 공산품 생산을 영구 시장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시장, 이곳에서 많이 있는 갈대를 이용해 종이를 생산하시오.”
“넷!”
갈대를 원료로 만들게 되는 종이의 경우 닥나무를 이용해 생산하는 한지에 비해 다소 질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교육을 위해서 서책이나 공책으로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종이 생산을 독려하는 것이다.
물론 이곳 영구 뿐 아니라 주변의 대요하 주변은 모두 종이를 생산할 갈대가 많으니 종이를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특히 영구 지역에 대규모로 공장을 건립하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영구 시장은 최대한 종이 생산량을 늘리도록 하시오. 앞으로 종이 수요는 계속 늘어나니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 종이 공장만 잘 운영해도 시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거요.”
“명심해서 잘 발전시켜 보겠습니다.”
종이는 학교공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각종 공예품을 만들지 위해서도 필요했다. 또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면 종이 수요량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연료 수급에 제일 원활한 영구 시에 큰 종이 공장을 건립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이미 추운 겨울이라 하천은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그래서 각종 건설 공사가 다소 더디더라도 지금부터 서두르면 내년 봄이면 충분히 가동된다. 더구나 몽골에서 말이 10만필이나 일시에 들어와 서부지역에 투입되자 각종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흠! 2차분 10만필이 들어오게 되면 이곳은 여름이 되기 전에 큰 공사는 대충 마무리 되겠어.’
제일 좋은 조건을 지닌 지형부터 개발을 시작하게 되니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감자를 재배할 토지는 다른 작물 재배지역보다는 조금 열악해도 되니 큰 문제는 없었다.
한창 영구시에서 각종 건설 공사를 둘러보고 있는 중에 전령이 급하게 찾아왔다.
“폐하. 봉황성으로 제태국의 사신이 찾아왔사옵니다.”
“사신이 왔으면 외무장관이 처리하면 되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연락을 하나?”
“폐하, 전하고 달리 정식으로 사신을 보내 폐하를 만나길 원하옵니다. 그러니 봉황성으로 돌아가셔야 될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도 사신단이 오고 있사옵니다.”
제태국과 조선에서 동시에 사신이 왔다고 보고를 받게 되자 최인범은 이번 기회에 개국을 정식으로 선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령에게 지시했다.
“봉황성으로 돌아가 정식으로 개국을 선포한다고 전해. 개국 선포일은 신년 이월 초하루로 정해서 준비하고.”
“넷!”
“그리고 주변국에서 찾아온 사신은 개국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만난다고 해.”
“알겠습니다.”
개국을 선포하기로 결정하자 전령을 빠르게 봉황성으로 돌아갔다. 그와 더불어 개국 선포식에는 각 도지사와 군단장을 참석하라고 전령들을 보내게 되었다.
당연히 대련에 있는 소피아에게도 연락하게 되고 조선에 있는 월녀 공주에게도 연락하도록 지시했다. 앞으로 한 달 남은 시간이라 준비하려면 바쁘다.
‘꼭 참석할 사람에게 연락되어 참석하게 될지 모르겠어.’
아직도 미비한 점이 많다고 판단되어 조금 서두르는 감은 있었다. 하지만 주변국에서 정식으로 사신을 보내는 상황이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었다. 연말이 되어가니 최인범은 서둘러 말을 몰아 봉황성으로 떠나게 되었다. 돌아가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