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73화 (373/519)

373화

밖으로 나가 월녀를 데리고 오려던 상선이 돌아와 보고했다.

“전하, 월녀 공주님은 지금 한양에 계시지 않사옵니다. 멀리 왜의 하카타로 장사를 떠났다고 하옵니다.”

“언제 돌아온다고 하던가?”

“떠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한참은 지나야 다시 돌아올 것 같다고 하옵니다.”

고심해서 결정한 일인데 막상 자신의 결심을 태왕께 전할 적임자가 마땅치 않았다. 주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흠! 그렇다면 대진국으로 누굴 보내나?”

주상이 고민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상선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전하, 여흥부원군을 보내는 것은?”

여흥부원군은 중전의 부친인 민천복으로 그는 대마도 도호부사를 끝내고 현직에서 물러나 한양에 머물고 있었다. 본시 부원군이란 임금의 장인이나 또는 정1품 관료에게 내리던 작호다. 부원군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규율이 있지만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민천복은 대마도 도호부사를 끝으로 전혀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한강 남쪽에 거처를 마련하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가 그러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친족들이 대부분 대진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민천복은 자칫 정계에 몸을 담으면 구설수에 올려 중전인 딸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해 자중하는 것이다.

“상선, 조용히 사는 부원군을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전하, 부원군은 태왕폐하와 인연이 있으니 보내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아니요. 상선은 더 이상 부원군을 거론하지 마세요.”

민천복은 오래전 단양군수할 때 최인범에게 구함을 받은 인연으로 항상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었다. 주상이 충분히 비밀스러운 서찰을 주어 대진국으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주상은 상선이 여흥부원군을 거론하자 더 이상 서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런 일이 대궐에서 벌어지는 동안 한양의 저잣거리에서 요상한 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윤과부 즉 윤 대비를 조사해야 된다는 상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대비 마마께서 하카타 난동 사건의 배후란 말인가?”

“설마?”

“이미 증거가 확실하고 또한 주상전하께서도 아시는 일이고 태왕폐하께서 오래 전에 밝혀냈다는 거야.”

상소에는 윤임 대감도 대진국의 태왕을 암살하려고 했지만 윤 대비도 그런 사건을 하카타에서 벌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대궐에서 나온 면포로 이미 증거가 있다고 했다.

주상은 수면 아래로 숨겨 놓았던 하카타에서 벌어진 사무라이들의 난동 사건이 표면으로 나타나자 한숨을 토했다.

“후우! 어찌 그런 사건까지 지금 표면에 나타나는 것인지.”

“전하, 그 사건으로 왜에서도 항의가 들어오고 있사옵니다.”

“뭐라?”

“왜의 하카타에 있는 대상인들이 나서서 수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니 반드시 배후인 대비마마를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항의 서한을 보냈사옵니다.”

이렇게 되자 소윤파는 윤임을 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윤임을 사사한다면 윤 대비도 자진하거나 또는 폐위되어 궁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윤임 사사에 대한 상소는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문제가 논쟁거리로 생겼다. 대윤에서 이번에는 새로운 논리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과부재혼법은 본시 처음 시행할 때 왕실에서 솔선수범을 보인다고 약속하니 대비마마부터 그리해야 되는 겁니다.”

“옳소. 그것이 타당한 조치요.”

대윤이 드디어 끝을 모르는 정파 싸움에서 진검 승부를 하자고 덤비는 것이다. 그러자 소윤은 이에 대응해 형사취수제를 들고 나왔다.

“형사취수제는 본시 우리 조상들도 쓰던 고유의 혼인 풍습이니 받아들이는 것이 좋소.”

“그렇습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요.”

조선 조정에서는 정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형사취수제와 과부재혼법을 놓고 심하게 격론이 오가고 있었다.

조선은 어느새 대진국을 종주국으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망조가 들어버린 명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선도 어느새 성리학 대신 북학이란 실학이 득세하고 있었다. 사대부를 비롯한 선비들 사이에 보편적인 학문으로 점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에서 조금이라도 깨어 있는 인물들은 비록 대진국으로 이주를 하지 않더라도 봉황성으로 가서 그곳에서 목격한 여행기를 적어 널리 알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회 분위기는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양 남쪽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오늘도 바둑을 두며 소일하는 민천복은 이번에 봉황성을 다녀온 주세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세붕은 봉황성을 다녀와 보고서를 올리고 나서 홍문관 부제학(정3품)의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곳에 가서 직접 살펴보니 조선은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는 국력에 맥이 탁 풀려 벼슬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자네까지 벼슬을 안 하면 누가 하나?”

“부원군 대감. 이미 대세는 크게 기울었어요. 벌써 함경도나 평안도의 백성들은 한양의 조정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허!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닌가?”

“대감, 큰일이야 확실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편이 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벼슬한다는 것은 제 자신이 부끄럽죠. 그래서 물러났습니다.”

민천복은 걱정이 많았다. 격동기에 접어든 조선의 왕실과 연을 맺었으니 중전으로 있는 딸이 제일 걱정인 것이다.

‘후우! 내가 더 적극적으로 반대했어야 했는데.’

중전이 된 딸을 최인범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했던 지난 일이 자꾸만 미련으로 남았다. 죽어가는 사위인 주상을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되는 후회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본시 자기중심이라 어쩔 수 없이 후회되고 있었다.

바둑은 두던 주세붕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신이 나서 외쳤다.

“와! 죽었던 대마가 다시 살았습니다.”

“그렇군, 내가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죽었던 대마를 살려 줬어.”

그러자 주세붕은 뜬금없이 한마디 던졌다.

“태왕폐하께서는 본시 바둑의 고수라 죽었던 대마를 살리는 묘수가 아마 많을 겁니다. 그러니 부원군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가?”

“예, 제 생각이 틀림이 없으니 편하게 마음먹고 사세요.”

“자네는 벼슬을 관두고 어디서 지낼 생각인가?”

주세붕은 즉시 답했다.

“저야 멀리 유람이나 떠날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멀리 제주도로 가볼 생각입니다. 그곳이 살만하면 거기서 지낼 생각이고요.”

“자내가 참으로 부럽군. 자네처럼 나도 훌훌 털고 유람이나 다니면 좋은데.”

“그렇다면 같이 가시죠.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같이 가시면서 저녁에는 주막에서 바둑도 두면 좋겠네요. 뭐 벼슬하자는 것도 아니니 누가 뭐라겠어요.”

이런 대화를 나누던 주세붕과 민천복은 이날 이후 한양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같이 멀리 부여를 거쳐 제주도로 유람을 떠난 것이다.

부여로 가는 이유는 그곳에 형인 민만복이 있기 때문이다. 민만복도 바둑을 좋아하니 만나서 같이 유람을 떠나려는 것이다. 민천복은 한양을 떠나며 나라에서 부원군이라고 내린 많은 노비를 모조리 풀어주는 조치를 취했다.

한양의 저잣거리에서는 공공연하게 이제 조선 왕조를 끝내고 대진국과 완전히 합치는 것이 좋다는 의견들이 대두되고 있었다.

“합쳐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잖아. 말이나 글도 똑 같고.”

“아무렴. 주상전하께서 대진국의 태왕폐하와 의형제니 서로 만나서 적당히 협상해서 대진국과 합치자고 하면 그것으로 모두 해결된다고.”

“어차피 시원치 않은 왕족들이니 그편이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지.”

백성들 사이에는 이런 의견들이 심하게 떠돌고 있었다. 이미 조선에서는 새로운 물결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나라 자체가 존립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있는 셈이다.

누군가 깃발을 들고 북으로 가서 합치자고 크게 외치면 백성들을 얼씨구나 하고 따라 나설 판국이다. 조선은 사회의 전체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곳도 있었다. 여전히 한양의 조정에서는 두 정파 간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해관계로 그런 문제와는 다소 상관이 없는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조선 조정이 대진국과의 관계와 허약한 국왕의 건강 때문에 소란스럽게 두 정파가 심하게 다투는 중이다. 멀리 명나라의 북경에서도 대진국 때문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편 북경의 자금성에서는 가정제가 여전히 아편에 취해 흐릿한 눈으로 건청궁에서 대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요동에서 벌어진 것이다.

“건주본위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앞으로 어찌하면 좋소.”

“폐하, 산해관에 군사들이 많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그 많은 은자를 모조리 대진국에서 차지해 버렸다는 거요?”

“그러하옵니다. 그래서 심양에 큰 사찰을 짓고 있다고 하옵니다.”

나름 이이제이 수법을 사용하기 위해 건주 본위로 많은 은자를 보냈는데 결과는 적에게 엄청난 재물을 가져다 준 꼴이다. 열불이 날 일이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많은 재물이 허공에 날리고 말았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가정제가 사라진 은자에 대해 자꾸 말하자 왕승은 슬슬 눈치를 봤다. 사실은 건주본위로 보내라는 은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차지에 그중에 반은 왕 황후에게 뇌물로 넘겨줬기 때문이다.

‘이성량이 죽었기에 다행이야. 사로 잡혀서 은자에 대해 토설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아무리 나라가 엉망이라도 엄청난 공금을 중간에 착복한 자신을 그냥 놔두지는 않으니 왕승 태감으로는 이성량이 죽어 버린 것이 행운이었다. 가정제는 힘으로 견딜 재간은 없으니 협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문하고 있었다.

“대진국으로 사신을 보내는 것은 어떻겠소?”

이런 물음에 왕승이 얼른 다서며 답했다.

“폐하, 소신이 목숨을 걸고 대진국을 다녀오겠습니다.”

“왕승 태감이 어려운 걸음하겠다고 하니 다녀오도록 하시오.”

“에이!”

가정제는 몽롱한 가운데에서도 습관적으로 국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진짜 속으로야 귀찮기만 한 업무지만 그래도 황제니 겉으로 걱정이라도 하는 척은 해야 한다.

황실의 내탕금인 많은 은자를 건주본위로 보냈는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몰살을 당해버렸다. 그러니 가정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황실 재정이 완전히 바닥난 가정제는 뭔가 묘수를 내야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요즈음 북경에서 떠도는 이상한 소문을 가지고 묘안을 냈다. 당사자인 왕 황후가 제안한 방법이다.

“요즈음 북경에서 황실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많이 떠도니 동창에서는 그런 무도한 반역도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해.”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런 헛소리를 떠드는 백성이나 관료는 반역죄에 해당하니 모조리 잡아들여. 그리고 죄인들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고 반역죄의 처벌 기준에 따라 9촌까지 모조리 연좌제를 적용해 노비로 만들라.”

“예이!”

듣기 싫은 소문도 잠재우고 또한 텅텅 비어버린 황실의 내탕금을 채울 요량으로 이런 명령을 동창에게 내렸다. 동창으로야 이런 사건을 취급하다 보면 떨어지는 콩고물이 많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자금성 내에서 호의호식하던 백삼수에게도 운명의 사건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또한 대진국의 발달된 기술력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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