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72화 (372/519)

372화

주상의 아들인 정강대군(精剛大君)를 대진국에서 세자로 인정해 책봉을 해준다니 윤임 일파는 좋기는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어째 윤임 대감의 사사가 선결 조건과 같이 느껴지는군.”

“자네도 그리 느꼈나? 나도 그런데.”

대윤파의 수장인 윤임 대감을 노골적으로 싫어하자 대윤파 내부에서도 분열이 발생했다. 이미 환갑도 넘었으니 나라를 위해서 윤임이 자진하는 것도 좋다는 의견들이 대두된 것이다.

“윤 대감도 그런 정도면 살만큼 살았잖아. 그러니 이쯤해서 차라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끓는 것도 좋지. 암살을 여러 번 모의한 죄는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이 사람 보게. 사람은 늙을수록 생명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한 법이라고. 남의 말이라고 함부로 하지 마.”

“대진국에서 나중에 그 문제로 시비를 걸고 군사를 동원해 처내려오면 어찌하려고. 지금이야 주상전하께서 살아계시니 그렇지. 돌아가신 이후로는 분명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아. 더구나 고래로 부터 북방의 강한 나라는 조선을 그냥 놔두지는 않았다고 반드시 시빗거리를 만들어 처내려오지. 그래야 대륙을 점령하기 쉽다고 판단하는 거지.”

“그런 외침이 있다면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힘을 길러서 막아야지. 그게 겁난다고 산 사람을 억지로 자진하라면 쓰나.”

“자네는 그냥 탁상공론만 하는군. 이 사람아 대진국에 가서 구경을 해봐. 오금이 저리는 엄청난 군대야. 심양의 5만명의 군사가 불과 한나절도 못 되서 몰살을 당했어.”

“허! 허풍이 너무 심하군. 그곳에 그만한 군사는 없었다고.”

대윤파가 서로 이견이 갈리는 중에 소윤은 이번에도 빠르고 순발력 있게 대처했다. 소윤인 윤원형 일파는 적극적으로 대진국이 원하는 대로 윤임을 빨리 사사해 버리고 대진국에서 책봉을 받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분명 경원대군이 왕위를 이어야 된다고 주장하던 무리들이 갑자기 돌변한 이유는 대진국의 의도를 이번에도 빨리 따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정파 싸움이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실기한 대윤파는 윤임을 사사해야 하는 조건도 있어 결국 소윤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본시 오랑캐인 여진 출신인 대진국의 황당한 황실법을 따르는 것은 미개한 민족을 따르는 것이나 반대해야 합니다. 아니?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한다니 그런 패륜행위가 말이나 됩니까? 더구나 일반 백성들이나 사대부는 과부재혼법이 강제조항은 아니지만 황실에 속한 여자는 황제의 명령에 싫어도 과부가 되면 혼인해야 된다고 하던데 그건 있을 수 없는 법이죠.”

“그렇소, 그런 법을 우리가 따를 수 없소.”

대진국 황실에서는 황실에 속한 황족이 너무 적다가 보니 족내혼을 비롯해 과부혼인법을 강제 조항으로 포함시켜놓고 있었다.

황족의 여자는 사실 대부분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족한 황족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대진국의 황실 법에 속해서 황족의 방계에 들어가는 문제도 간단치 않았다.

방계지만 현재 주상에게는 아들만 딱 하나가 있고 부인도 왕후 한명 뿐이다. 실제로 황실의 방계로 들어가야 별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윤파들은 이점을 두고 고심하고 있었다.

“현재 주상전하부터 황실에 속한 방계로 들어가면 영원히 경원대군은 왕위를 이을 수 없으니 그건 안 됩니다. 자칫하면 나라를 송두리째 대진국에게 바치는 꼴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군. 정강대군이 죽으면 대가 끝나니 대진국에서 그것을 핑계로 조선 땅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쳐들어 올 수도 있겠어.”

“그러니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원 대군을 왕위로 올리기를 원하는 소윤파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대진국 황실의 방계로 집어넣으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 답답하니 어떤 관료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대비 마마께서는 아직도 달거리를 하시나?”

“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하려고 그런 황망한 말을 묻나?”

“경원대군 마마를 대진국 황실의 족보에 올려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아 너무 답답하니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데.”

여전히 유학을 숭상하는 조선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조선의 경우 전에는 과부재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법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과부도 얼마든지 재혼이 가능하게 법이 바뀌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에서는 여러 가지 제안사항을 두었다. 과부는 출산이 가능한 40세가 넘어도 재혼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반드시 달거리하는 여자만 시집을 갈 수 있다고 했다.

재혼해서 자식을 낳을 수 없으면 가지 마라는 뜻이다. 유학에 찌든 사람들은 과부들의 재혼을 심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그런 법 이외에 많은 제약을 만들어 재혼을 막고 있었다.

결국 모법(母法)은 완전히 풀어놓고 세부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하위 시행 법령을 만들어 재혼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재혼하려면 달거리한 증거물을 관청으로 3달치를 관아로 가져와 보여야 한다는 식이다. 그 짓까지 하면서 재혼하려는 여자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윤파는 어떻게 해서라도 윤 대비 소생인 경원대군을 대진국의 황실 족보에 방계로 올려야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제 40대 중반인 윤 대비를 어떻게 재혼하는 형식으로 대진국과 엮어보려고 하다 보니 달거리 말이 불쑥 튀어 나온 것이다.

그녀가 서류상으로 대진국의 누군가와 혼인하는 형태가 되면 그녀의 소생인 경원대군이나 공주들도 모두 황족의 방계가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다들 기겁한 말이라 그만 질문만 하고 끝났다. 하지만 윤임을 사사하라는 주장으로 궁지에 물린 대윤파가 이런 귀한 정보를 얻자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서 한양의 저잣거리에는 이런 요상한 동요가 떠돌았다.

“윤과부마마은(尹寡婦??隱) 남몰래 서방을 사귀어 두고(他密只嫁良置古) 반야사을(般若寺乙) 밤에 뭘 안고 가다(夜矣 ?[卯]乙抱遣去如).”

이는 본시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불렀다는 ‘서동요 (薯童謠)’를 약간 변조해 윤 대비를 조롱하기 위한 동요다.

-서동요(薯童謠)는 본시 善化公主主隱 他 密只 嫁良 置古薯童房乙 夜矣 卯乙 抱遣 去如 (선화공주주은 타 밀지 가양 치고 서동방을 야의 묘을 포견 거여)다.

이런 노래가 유행되는 이유는 윤 대비가 자주 서대문 밖의 반야사로 나가기 때문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윤 대비는 여전히 아들이 왕이 되길 고대해 자주 반야사로 가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그런 윤 대비와 윤형원이 어린 정강 대군이 보위로 오르게 하는 것을 찬성한 이유가 있었다.

어린 아이에 불과한 정강대군이 왕위를 이으면 당연히 수렴청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되면 자연히 왕실의 제일 어른인 윤 대비가 그 임무를 맡게 된다. 아들인 경원 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것 보다 10년은 더 오래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비전에 들어온 윤원형은 기세가 등등해서 말했다.

“대비 마마, 우리는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일이니 반드시 대진국의 황실과 연을 맺어야 하옵니다.”

“그래, 이번에 반드시 윤임을 사사하고 그리 되도록 해보자.”

“염려 마세요. 지금 한양으로 와있는 진명하 대사를 자주 만나 설득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확정되지 않았으니 민비에게 책봉서를 주지 마라고요.”

“암 그래야지. 민비가 책봉서를 받으면 자칫 수렴청정을 그 여자가 할 수도 있어. 그러니 그런 불행한 사태는 반드시 막아야 해.”

수렴청정의 경우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왕이 20세가 되어 친정을 펼칠 수 있을 때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소윤파들은 대진국의 아설화 황비가 정강대군이 보위를 이어야 된다고 의사표시를 하자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이다. 그러자 대윤파는 이에 대응해서 자주 대궐을 나가서 조선에서 금지하는 불교를 믿는 윤 대비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반격을 가하는 것이다.

왕실 어른으로 행실이 다소 이상하니 재혼시켜서 대궐에서 내보내야 된다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한양은 그 때문에 저잣거리에서 별 수상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었다.

마포 나루의 주막에서는 전국을 떠도는 상인들이 앉아서 농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요즈음 떠도는 한양의 소문을 나름 평하고 있었다.

“윤 과부가 중하고 자주 잔다고도 하는군.”

“그거야 당연하지. 중은 힘이 엄청나게 좋잖아.”

“윤과부는 입도 커서 더 그럴 거야.”

“암!”

중들은 힘이 좋다고 평하는 이유도 근거는 있었기 때문이다. 최인범이 인삼을 처음으로 풍기에서 재배하며 보급을 권장한 곳이 중들이 사는 깊은 산중의 사찰이다. 그래서 일반인들 보다 조금 빠르게 전국의 사찰에서는 인삼을 대부분 재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님들은 인삼을 판매해 사찰에서 필요한 재정도 충당하고 먹기도 한다. 그 때문에 중들의 힘이 조금은 전보다 좋아진 경향은 있었다.

대궐로 들어가 윤 대비를 만나고 나자 윤원형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진국 황실의 방계로 조선 왕실이 편입되길 원했다.

“당연히 이미 망조가 들어 버린 명나라 대신 대진국을 따르는 것이 순리요.”

“그렇습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를 따르는 겁니다.”

더구나 소윤파들이 판단하기에 과부 재혼법이나 형사취수제도 별로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현재의 주상이 죽으면 민비도 과부가 된다. 더구나 그녀는 아주 젊기 때문에 더더구나 재혼해야 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중전과 같이 정강대군도 멀리 보내는 거야.’

한편 대궐 안에서는 약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주상의 병이 깊어지자 덩달아 중전도 아프니 약을 달이기에 정신들이 없었다.

주상은 이제 병석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처지다. 그러니 소윤과 대윤이 심하게 다투자 걱정이 많았다. 옆에서 병간호를 하는 중전을 보며 걱정했다.

“중전, 이 노릇을 어찌하오. 과인이 죽으면 저 어린 자식의 앞날이 너무 걱정이요.”

“전하! 흑! 흑!”

드센 윤 대비에 비해 여린 민 중전이라 그것도 걱정이다. 자칫하면 과거 세조께서 일으키신 계유정난과 같이 어린 아들이 윤 대비의 손에 죽은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다.

권력이란 참으로 냉혹한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주상은 자신이 너무 일찍 병들어 죽게 된다는 사실이 중전이나 어린 아들에게 미안했다. 힘없이 누워있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주상은 삶이 얼마 남지 않자 자식에 대한 애착심이 매우 강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어린 왕자는 명대로 살게 해주고 싶었다. 더구나 자신이 단명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중전, 울지만 말고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 되지 않겠소.”

“전하, 차라리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명 하옵소서. 그리되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과인도 그러고 싶지만 대진국에서 반드시 적장자의 승계가 원칙이라고 하니 그것도 소용이 없지 않소?”

몸은 죽음이 다가오지 별로 대책이 없어 고심하던 주상은 중대한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자신이 죽은 이후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대진국의 태왕이라고 판단해 상선에게 지시를 내렸다.

“상선, 내 긴밀하게 태왕께 보낼 서찰이 있으니 누굴 통하면 제일 좋겠나?”

“전하, 그렇게 중요하신 서찰이라면 한양에 있는 월녀 공주 마마가 제일 적임자이옵니다.”

“그렇군. 그럼 나가서 월녀 공주를 대궐로 불러 오시오.”

조선에서 주상이 병석에 들어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소윤과 대윤의 정파 싸움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조선 조정은 이제 고성이 심하게 오갈 정도로 다투고 있었다.

소윤파는 전국의 유생들을 통해 윤임을 사사하라는 상소를 올리도록 뒤에서 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상께서는 차마 그리는 못하고 시간만 질질 끌고 있었다.

윤임을 죽이고 살리고 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문 앞으로 닥친 아들인 정강대군의 생명을 보호하고 싶은 욕망만 가득했다.

‘방법을 찾아야 해.’

그래서 생각다 못한 주상은 월녀를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를 통해 비밀 서찰을 의형제인 최인범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우라면 좋은 방법을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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