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과부재혼법과 형사취수제의 논쟁>
조선이 연말에 시끄러운 것은 반달 전에 봉황성에서 벌어진 사건의 여파다.
설화가 봉황성에서 내명부를 비롯해 별궁에 대한 질서를 잡아 가고 있는 가운데. 조선에 있어야 할 진명하 대사가 황궁으로 찾아 왔었다.
자순태감이 조심스럽게 설화에게 보고했다.
“대행마마, 한양에서 조선 친선사절들과 같이 진명하 대사가 찾아 왔사옵니다.”
“그래, 그럼 들라 하시오.”
“예이.”
이미 태왕으로부터 많은 권리를 위임 받은 설화는 황실의 최고어른으로 조정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의 답을 결정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태왕은 그녀를 군단장을 해임하고 새롭게 내려진 직책은 임시직인 국무총리 대행이다. 그래서 그녀는 대행마마라고 칭하기도 한다.
황실 내의 동궁에 국무총리 대행의 집무실이 꾸며졌다. 나중에 황태자 정해지면 사용될 공간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처인 서궁이 아닌 동궁을 택한 이유는 여인들만 사는 서궁으로 남자들이 출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을 확실하게 지킨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자순 태감은 내시부 장관이면서 역시 임시로 대행마마의 비서실장을 겸하고 있었다.
집무실로 들어온 친선사절들은 커다란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는 집무실을 보고 매우 놀랐다.
‘어쩌지? 여기서 절해야 하는데.’
신발을 그냥 신고 다니는 구조라 엎어져 절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래서 주춤거렸다. 그러자 자순 태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보낸 예법이 적힌 서책을 전혀 보시지 않았군요. 친선사절들께서는 그냥 가볍게 허리만 숙여 인사하시며 됩니다.”
“아!”
친선사절들은 급하게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여 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순의 안내로 바로 옆방으로 가서 긴 책상이 놓은 곳으로 가서 앉았다.
그곳에도 중앙에 약간 높게 큰 의자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설화는 보던 업무의 결재를 빨리 끝내고 국무회의실로 사용하는 회의실로 와서 중앙의 의자에 앉으며 권했다.
“사절들께서는 편하게 앉으세요.”
“에이.”
좌석 배치가 권위는 있지만 과거 명나라나 조선의 옥좌가 놓인 근정전과는 사뭇 다른 구조다. 물론 태왕의 집무실이야 이와는 다르지만 조금은 권위를 낮추는 구조고 예법을 택하고 있었다.
“조선과의 사소한 문제는 진 대사께서 알아서 하시면 되는데 왜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마마, 소신이 결정하기 어려운 황실의 문제이옵니다. 그리고 조선 왕실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오게 됐사옵니다.”
“뜬 구름 잡지 말고 용건만 정확하게 말씀하세요.”
“예이!”
진명하는 이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조선에서는 얼마 전에 명나라로 몰래 사신을 보내 세자책봉을 윤허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가정제는 이미 조선의 국왕에 대한 책봉이나 세자 책봉 문제는 대진국 태왕에게 권리를 넘겼다고 하면서 세자 책봉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설화는 이런 말에 즉시 알 수 있었다. 명나라도 어느새 조선을 포기하고 대진국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 확실했다. 심양의 점령은 주변국에 큰 충격이고 여파가 아주 심했다.
진명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마, 그래서 조선에서는 세자 책봉을 내락 받으려고 찾아 온 겁니다.”
“그렇군요. 그건 나중에 정식으로 사신만 오면 되는데 내락을 받으려고 하니 번거롭게 일을 처리하는 군요. 조선국왕은 아들이 하나뿐이니 내가 보기에 별로 문제가 없는데요. 조선에서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원하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진명하는 무슨 이유인지 슬며시 나이가 어림을 강조했다.
“마마, 원자가 너무 어리지 않사옵니까?”
이런 말에 설화는 눈을 반짝 빛냈다. 분명 남의 일을 말하지만 돌려서 생각하면 아진태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로 들렸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군.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
세상의 일이란 남의 일이 내일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설화는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했다.
“보위를 이를 때 나이가 어리면 조선은 왕실의 어른인 대비나 왕대비가 수렴 첨정하는 제도가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요. 더구나 어차피 현 주상의 이복형제인 경원대군도 나이가 어리기는 마찬가지지 않나요? 장자 세습의 원칙을 따라서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는 것이 타당하죠. 현재 조선 국왕의 의도가 원자가 보위를 이어가길 원하니 더더구나 그게 순리라고 봅니다.”
사실 설화는 조선에서 어떤 사람이 임금이 되던 별로 상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명하의 말에 간단히 처리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말했다.
‘감히 어딜 넘보고.’
천손이신 태왕의 아들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후계자를 시켜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니 곁가지에 불과한 아진태를 염두에 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어디 걸리기만 해. 목을 잘라버릴 것이니.’
대진국의 경우도 참작해 설화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장자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더구나 현재 조선의 국왕은 태왕폐하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라 당연히 그의 아들은 태왕의 조카가 되기 때문에 승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시원스럽게 답해주자 친선사절로 오게 된 주세붕이 이내 다른 문제를 거론했다.
“마마, 본시 대진국의 태왕 폐하와 저희 주상께서 의형제를 맺었으니 대진국 황실에서 조선의 왕실에도 적당한 직함을 내려 주는 것이 좋지 않은지요.”
“아, 황족의 방계로 기록을 해달라는 뜻이군요.”
“그러하옵니다.”
대진국의 황실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러니 방계라면 조선의 왕실을 끌어안아도 좋다고 판단해 쉽게 답해 주었다. 족내혼을 채택하니 조선 왕실을 통해 공주들을 후궁을 받아들여 정통성을 이어가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것도 별로 어렵지는 않군요. 하지만 황실의 법과 조선 왕실의 법이 달라 나중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은데요. 황법은 지엄하니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도 좋다면 해주기는 하죠.”
이건 조선 왕실과 달리 형사취사제와 족내혼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무튼 방계라면 좋다고 판단한 설화는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결정된 내용은 전에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하사하던 조선국왕이란 칭호를 그대로 정해주었다. 그리고 민비에게는 왕후라고 칭해 대진국의 황비와 귀비 사이라고 판단되는 정도의 품계로 정해주었다. 조선왕후의 경우 정1품이 아닌 무품이라고 정해준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락에 불과했다. 하지만 황후가 아직은 없으니 황실 내명부 최고의 위치인 황비 자격으로 내명부의 품계를 정할 수는 있었다.
조선국왕 왕후라는 칭호는 빈비에게 정해서 서류를 작성해 진명하에게 넘겨주며 지시했다.
“진 대사는 조선으로 돌아가서 조선 왕실이 우리의 황실 내명부 법을 확실하게 따른다고 확정되면 이 책봉서를 민비에게 전하세요.”
“넷!”
“만약 그게 아니면 다시 가져와야 합니다.”
“명을 다르겠나이다.”
설화는 마지막에 느닷없이 조금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주세붕에게 물었다.
“윤임이란 분은 아직도 살아 계세요?”
“마마, 혹시 주상전하의 외숙부를 말씀하시는지요?”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기본적인 양심이 전혀 없군요.”
주세붕은 속으로 기겁하면서도 태연하게 물었다.
“마마, 무슨 말씀인지요?”
“친선사절이면 여기로 오시려면 그런 정도는 아셔야죠. 윤임이란 분은 감히 태왕폐하를 여러 차례 암살하려고 시도하더니 정작 자신은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 있으니까 문제가 있지요.”
“그분은 이미 정계를 떠났어요.”
“그거야 다 눈 가리고 아옹이죠. 두 나라의 친선을 위하고 좋게 지내려면 한다면 그분이 스스로 어찌 처신해야 되는지 알만도 한데요. 더구나 내가 알기로는 여전히 뒤에서 명나라와 선을 데려고 하고 태왕을 모해 하니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아요.”
“마마, 조선이 어찌 처리하는 것이.”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야하니 주세붕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설화는 약간 짜증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해 주었다.
“그걸 꼭 내가 입으로 말해야 조선의 대신들이나 친선사절이 아시나요? 폐하께서 속이야 무척 좋지 않으시지만 의형이신 조선의 주상을 봐서 그냥 놔두는 것인 줄만 아세요. 제가 속이 너무 좁은 아녀자라 그런지 모르지만 저 같으면 벌써 사단이 나도 몇 번 났을 겁니다.”
“·········,”
“조선도 잘 판단하세요. 폐하께서는 기억력이 좋아서 인지 모르지만 쉽게 과거 일을 잊는 분이 아니세요.”
“알겠습니다.”
상대방의 의도는 윤임이 알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다.
‘단단히 벼르고 있어.’
하긴 남편을 여러 번 죽이려는 사람을 아내가 좋게 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법이니 그냥 소홀하게 넘길 일은 분명 아니었다.
‘돌아가서 이 문제는 공론화해야 되겠어.’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조선으로 진명하는 먼저 돌아갔다. 친선사절로 왔던 주세붕도 며칠 동안 머물면서 봉황성을 돌아보고 있었다.
직접 돌아본 봉황성은 활기도 넘치지만 왕궁도 크고 또한 위용도 거대해 보였다. 더구나 이미 북학이라고 불리는 실학자로 변한 주세붕이다. 그의 눈에는 이곳이야 말로 자신이 꿈꾸던 그런 나라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르지만 전혀 다르지 않은 조선의 땅이 분명해.’
훈민정음이나 조선어를 한글과 한어라고 부르며 공통 글자와 언어로 사용하고 대부분 풍습도 조선과 거의 비슷했다. 그러니 조선도 변하게 되면 이렇게 변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태왕을 조선에서 부마도위로 잡았으면 어땠을까?’
태왕이 그냥 눌러 있었다면 과연 드넓은 요동을 차지했을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당파싸움으로 벌써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니 오히려 잘 됐다고 판단했다.
비록 자신이 몸담고 있는 나라가 아니야 조금을 마음이 착잡하지만 누구고 와서 살고 싶으면 조선 사람은 와서 살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어 떠났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아설화 황비를 만나고 오게 된 주세붕의 봉황성 견문 보고서에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대진국이 조선의 종주국이라고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원자를 세자로 책봉한다는 것은 내락을 받았다.
주세붕의 보고서에는 윤임일파가 기겁할 무서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설화 황비가 윤임대감이 살아 있음을 노골적으로 불평했으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문제가 너무 크군. 결국 윤임 대감께서 자진해야 된다는 뜻이 아닌가?”
“허! 듣고 보니 그렇군.”
대진국의 황실 내명부 법을 좋다고 수용하자니 형사취수제와 족내혼 그리고 과부재혼법이 문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