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본시 산동 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라 물고기를 좋아한다. 멀리 섬나라인 왜인 정도는 아니더라도 화북 지역이나 다른 지방의 명나라 사람과는 달리 해산물을 좋아했다.
물론 그 이유야 주변이 모두 바다라 그곳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풍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다시 해적들이 출몰하자 그나마 바닷가에서 그물로 잡아서 판매되던 수산물조차 공급되지 않았다.
짭짤한 조기 한 마리 구경하기 힘들다. 구워서 먹으면 맛좋은 가자미 한 마리 구경 못하니 미칠 노릇이다. 더구나 좋아하는 조개도 너무 귀해졌고 새우는 그야 말로 품절 상태다.
흔하게 판매되던 멸치는 이제 금치로 변해 많은 돈을 주고 위해 항구에서 조금씩 공급되는 것을 사서 먹어야한다. 그래서 너무 아까워 멸치를 씹어 먹지 못하고 그저 빨아서 녹여 먹는 실정이다.
그나마 소금은 많이 공급되자 본시 가짜를 잘 만드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민물에서 나오는 피라미를 소금에 절여서 멸치라고 판매하는 상인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사람의 식습관이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수산물을 먹지 못하자 산동 지역의 제태국 사람들은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아니? 흔하게 먹고 살던 해산물도 먹지 못하게 하는 왕이 무슨 필요가 있어?”
“본래 장사꾼 출신이라 왕이란 가당치 않는 거야.”
물론 불만이야 수산물 한 가지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사소한 것부터 불만이 생기면 그것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는 법이다. 백성들이야 불만이 생겨도 왕이 억압하면 되지만 중간 계층인 지역의 호족들이나 군인들의 불만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동쪽의 위해도에 있는 해군사령관을 만나도 별로 좋은 답변을 듣지 못하자 결국 제태국의 어전에서 이 문제로 논의가 있었다.
“전하, 남쪽에서 침략하는 왜구들의 수가 무려 5000명으로 불어나 노략질을 무지막지하게 하니 백성들의 불만이 점점 고조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어디를 근거지로 삼고 활동하나?”
“그야, 남쪽에 있는 섬에서 활동하옵니다. 식량이나 보급은 조선에서 받기도 하는 것 같사옵니다. 그러니 조선에 영향력이 있는 대진국의 협조가 있어야 소탕이 가능하옵니다.”
아무리 허접한 왕이라지만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급하게 물었다.
“대진국의 해군이 왜구를 격퇴시키지 않는다고 하던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러니 사신단을 구성해 봉황성으로 보내야 될 것 같사옵니다.”
“좋소. 그동안 생산된 금괴를 모두 가지고 다녀오도록 하시오.”
“예이.”
이미 굴종해서 일방적인 무역도 하고 또한 그것으로 부족해 많은 금괴를 가져다주는 외교를 펼치는 처지라 버릇처럼 사신을 보내면 반드시 금괴를 보내야 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더구나 심양을 차지했으니 대진국은 이제는 너무 커져버린 강대국이다. 영토의 크기로 보아서는 산동의 제태국에 비해 수십배가 넘고 인구수에서도 상당히 많았다. 기술력이나 군사력은 더더구나 말할 필요가 없었다.
“태왕폐하께서 전에 천축국 출신 여자를 보냈을 때 쉽게 해군을 동원해줬으니 이번에도 미인을 보내는 것은 어떤가?”
“아주 좋은 생각이옵니다. 키가 크고 늘씬한 여자를 좋아하는 독특한 취향을 가졌으니 그런 여자를 구하기는 쉬울 겁니다.”
명나라는 여자가 얼굴이 다소 통통하고 키가 작고 다리도 짧고 발이 조막만해야 미인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태왕의 기준에는 여자가 키가 커야하고 눈이 동그랗고 말라깽이에 젖은 큰 여자를 좋아하는 특이한 성적 취미가 있다고 한다. 그런 여자란 여기서는 추녀라고 평하지는 않지만 별로 인기 없는 여자들이라 구하기가 쉬울 것 같았다.
“대신들은 관할 지역을 사그리 뒤져서 그런 여자를 찾아오시오.”
“예이.”
숫자도 많아야 된다고 판단해 이번에는 100명 정도를 보내볼 심산이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진국은 황제국으로 변했으니 그만한 숫자를 보내고 금괴도 많이 보내야 된다고 판단했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해군이 없으니 남의 나라 군대를 움직이려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산동지역에 있던 배를 만드는 기술자나 집을 지을 수 있는 기술자인 목수들은 이미 소리 없이 대진국으로 떠나 버렸다.
그러니 이제 의지가 있더라도 새로 배를 건조해 수군을 만들 방법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태다. 그나마 나룻배가 낡아도 일반 목수가 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다에서 살던 어민은 대부분 내륙으로 들어와 광부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금광이나 은광 그리고 기타 광산업은 전보다는 발달해 많은 광물을 생산했다. 생산된 광물을 위해 항구로 보내 그곳에서 소금이나 쌀 그리고 일반 생필품을 구입해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한편 봉황성에서는 황궁 건립이 끝났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빨리 준공된 것이다. 중앙에는 당연히 황후가 지낼 교태전이 있고 서쪽인 서궁이 황비나 후궁들이 지낼 처소다.
황비들이 지낼 건물은 모두 춘화전(春花殿), 하화전(夏花殿), 추화전(秋花殿), 동화전(冬花殿)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설화는 자신의 이름과 어울린다고 해 동화전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소피아는 추화전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여전히 태왕과 동침을 못한 정향 대공주는 동궁에서 왕비 즉 비라는 직함으로 지내고 있었다.
황실 내명부의 품계는 황후, 황비, 귀비(정1품), 비(종1품), 빈(정2품), 귀인(정3품), 소의(종3품), 숙의(정4품), 소용(종4품)이다. 전에는 품계 따른 인원을 정하지 않았으나 황후는 1명, 황비는 4명, 귀비 1명, 비 3명, 빈 4명으로 그 아래도 모두 4명으로 정했다. 7단계라 총 28명에 황후를 포함해 29명의 부인을 둘 수 있도록 체계를 잡은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자 정향 대공주의 위상도 내려가고 정2품인 진 빈의 위상이야 작은 전각하나 차지할 정도로 추락했다. 그리고 직접 옆에서 부리는 궁녀의 수도 대폭 줄이는 변화가 있었다.
동화전에는 많은 상궁이나 궁녀들이 추운 겨울에 눈을 맞으며 떨고 있었다. 겨울 꽃이라는 의미가 담겨서 그런지 동화전에 머무는 아설화는 상궁과 궁녀들에게 냉기서린 매서운 호통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왕비가 하사해도 그렇지. 근검절약을 나라의 근본 바탕으로 삼는 태왕폐하의 지침을 어기고 비단옷을 철철이 해 입으면 되나? 그게 얼마나 낭비인지 모르나?”
“그게 아니로라.”
“앞으로 비단옷은 상궁은 10벌이 넘지 않도록 하고 궁녀는 3벌이 넘지 않도록 해.”
“예이.”
사실 상궁들이나 궁녀들은 나라의 큰 행사에서는 반드시 비단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행사의 종류마다 조금은 다른 복색으로 입어야 되는 의전 절차 때문에 꼭 필요한 비단옷이 몇 벌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궁이나 궁녀는 황제의 여자라는 특징이 있다. 그러니 언제라도 황제께서 자신의 처소에 들어오거나 또는 부를 경우에 입어야 하는 첫날밤을 치를 비단옷을 지니고 있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옷 10벌이나 3벌로 완전히 정하는 것은 평소에는 무명옷이나 입고 지내라는 뜻과 같았다.
설화는 황궁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황궁에서 지내는 여자들의 의복부터 검소하게 정했다. 궁인들의 수도 최소 단위로 줄이고 모두 봉황산성 근처의 별궁으로 보냈다. 그곳으로 보내진 여자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혼해서 완전히 궁으로 떠나게 된다.
일정기간 그곳에서 지내라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혹시 황제와 비밀리 접해서 용종을 잉태한 여자일 수 있다고 해서 몇 개월 그냥 놔두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황제가 좋아하는 궁녀를 홀대해서 내보내는 실수를 방지한다는 차원이다.
“궁인들은 고급 인력이니 모두 학교로 보내시오.”
“넷!”
황궁 출신인 여자들은 모조리 새로 생기는 학교의 교사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설화는 이런 지시를 내리고 자신이 먼저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
설화야 치렁치렁해 거추장스럽고 입으면 반드시 특별히 손질해야 하는 비단 옷 보다 입기 편하고 세탁하기 편한 무명옷이 좋았다. 특히 군복은 입거나 벗기 편하니 좋았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건 궁녀들은 소지하던 비단 옷을 팔고 무명옷을 사서 입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명옷이라고 해서 전처럼 하얀 색은 아니다. 염색업도 발달해 무명천도 색상이 다양하게 팔리니 원하는 색을 골라 해 입을 수는 있었다. 다만 기본적인 모양은 격식을 갖추어야 된다.
설화가 황궁에 들어오자 다소 무질서해 보이던 황궁의 내명부는 차츰 전과 다르게 기틀이 잡혀가고 있었다.
황궁의 서문에는 슬픈 이별이 있었다. 진 빈은 어린 아들인 아진태를 멀리 떠나보내게 되자 서문까지 와서 작별하고 있었다. 진 빈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아들의 두 손을 꼭 잡고 서러워했다.
“왕자, 왕자가 가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사나, 흑흑! 더구나 어린 네가 어려운 도지사 업무를 하게 된다니 큰일이구나.”
“어마마마, 너무 염려 마세요. 저야 그냥 말이나 돌보면 되는데요.”
“황궁에서 유일한 왕자인 네가 말이나 돌보는 목부가 되다니 이런 법은 없어. 흑흑!”
진 빈은 여전히 야무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소리를 함부로 토하고 있었다. 그래도 남동생이 멀리 떠나니 배웅하러 왔던 설화가 사늘하게 응수했다.
“진 빈! 아들이 그렇게 좋으면 같이 가는 것도 좋아요. 진 빈이 좋으면 그렇게 해요.”
“예? 저도 떠나라고요?”
“내가 보기에 진 빈은 폐하보다는 아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소원을 들어 주고 싶군요.”
노골적으로 황궁에서 떠나라니 기가 막혔다. 아무리 아들이 좋기로 태왕의 품이 그리운 처지로 같이 떠날 수는 없었다. 같이 떠나라는 말에 기겁한 진유향은 급하게 아들의 등을 떠밀면서 말했다.
“어서 가! 건강하게 지내고.”
“예.”
아진태는 황궁에서 나와 서문 밖에서 기다리는 양돌쇠와 통화에서 오게 된 기술자들이나 이주민들과 같이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이제 황궁에서 지내는 궁녀들이나 후궁은 일체 외부로 출입이 금지되었다. 황궁을 출입할 수 있는 출입패는 황비는 마패형태인 원형으로 10개씩만 소지했다. 필요한 경우 상궁이나 궁녀에게 넘겨주어 움직인다. 출입패인 마패 하나에 5명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니 본인도 소지해야 되니 본인 이외에 9무리인 45명만 밖으로 출입이 가능하게 체계를 잡았다. 설화는 출입패를 모두 자신의 호위무사인 궁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귀비나 비는 2개로 그 아래는 밖으로 나갈 출입패가 없었다. 그러니 밖으로 출타하려면 반드시 황제, 황후, 황비의 허락을 받거나 그도 아니면 귀비나 비의 출입패를 빌려서 출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 빈은 이런 황궁 출입 제한 조치에 기가 막혔다.
“완전히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군.”
“마마, 아무래도 동황비 마마께서 마마를 배척하려고 작정하신 것 같사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동화전으로 찾아가 조심스럽게 설화에게 항의했다.
“황비마마, 저에게도 출입할 패는 줘야 하지 않나요?”
“왜요? 절에 가서 불공이라도 드리려고요?”
“예, 그러려고요.”
그러자 답은 말하지 않고 옆에 있는 부하인 상궁에게 지시를 내렸다.
“최 상궁, 네가 지금 북경에서 떠도는 요상한 소문을 말해 줘라. 아무래도 진 빈이 그런 소문을 듣지 못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 같으니.”
“예.”
대답한 건장한 체구인 상궁이 갑자기 손을 오므려 뻐꾸기소리를 내며 기이한 노래를 불렀다.
“뻐꾹! 뻐꾹! 만나면 녹아나는 임이 오는 소리! 뻐꾹! 뻐꾹! 아들 만들러 절로 가서 스님 만나는 소리!”
“이게 무슨 이상한 노래지?”
“마마, 이건 북경에서 한창 유행되어 떠도는 노래이옵니다.”
조선으로 따지면 씨내리하기 위해 명나라 황궁의 여자들이 기이한 행실을 보여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노래라고 설명해 주었다.
상궁의 설명이 끝나자 설화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 빈, 이제 내가 왜 황실 여자의 출입을 통제하는 줄 정확하게 알았어요? 자칫하면 우리 대진국의 황실도 명나라 황실처럼 이상한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니 진 빈은 더 이상 항의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주장하면 무슨 죄라도 뒤집어씌워 완전히 내칠 기세라는 것을 알았다.
‘단단히 벼르고 있어. 내 주변에서 남자가 스치기만 해도 정분이 났다고 내치려고 벼르는 거야. 이번에는 그냥 경고하는 것이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제 황궁에 제일 어른인 설화가 기거하기 때문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그러나 아직 한해가 무사히 지나기는 멀었다는 듯이 멀리 조선의 한양에서 아주 큰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이제 대국으로 변한 대진국 때문에 조선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