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정상적인 사고력을 가진 군주라면 지금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명나라의 가정제는 완전히 미쳐버려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르니 변수가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는 미친 가정제가 자신을 돕는 식으로 일을 자주 저질렀다. 그 틈을 이용해 대진국은 빠르게 영토를 확장했다.
‘이제는 돌발 상황 보다는 안정적인 발전이 필요한 시기야.’
대진국도 정상적인 국가로 변했으니 돌발적인 변수보다는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명나라가 움직여야 나라가 빨리 안정되게 생겼다.
이제는 대진국도 즉흥적으로 대규모로 군사를 움직이거나 또는 다른 나라와 무역해서는 안 되게 나라의 경제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다.
‘나라가 너무 커지면 점차 굼뜰 수밖에 없어.’
아직은 새로 개발할 지역도 많고 발전 가능성도 높아 역동적이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한계에 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주민 문제도 차츰 체계가 잡혀서 올 사람은 다 온 것도 같았다. 또한 앞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이주민을 전처럼 마구 받아 들여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혼하(渾河) 강변에 있는 심양은 주변에 하천이나 호수가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지역이 홍수가 잦은 지형이다. 이곳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치수사업이 먼저 되어야 된다.
최인범은 심양으로 모든 장차관들을 불렀다. 수도인 봉황성과 같이 큰 규모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되기 때문이다.
먼저 정한배 건설부 장관에게 국방부와 협조해서 혼하와 연결된 서쪽에 위치한 지류하천을 준설해서 제방공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수심이 낮아진 서쪽 하천을 준설해서 배들이 운항할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운하를 만들고 우측에는 제방을 겸한 10미터 높이의 토성을 판축공법으로 축조하시오.”
“넷!”
“그리고 제방 안쪽에도 낮은 지형에는 아예 호수를 파서 그 토사는 주변의 낮은 지형을 높이며 도로를 새로 개설하는 복토 작업을 하세요.”
최인범은 이런 지시와 더불어 이곳 심양에 봉황성과 똑 같은 정도의 관공서를 건축하도록 지시했다. 지금은 봉황성과 같은 시설을 하면 다소 거창해 보일지 모르지만 후일을 생각해서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 지역이 발전하게 되면 그런 정도 규모의 관청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태왕이 구상하는 신도시 지역이 너무 방대하자 법무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혹시 이곳으로 황궁을 옮기려고 하시는지요?”
“아닙니다. 아직 그런 생각은 없고 하고 싶지도 않으며 이전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앞으로 이곳에 기본적인 도시 기반이 잡히면 직할시로 승격시킬 생각이니 그렇게 아시오.”
“알겠습니다.”
직할시로 승격을 시킨다는 결정에 각료들은 이곳에 별궁을 지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에 태왕께서는 황제국은 5경을 두어야 한다는 내무장관의 건의에 확실하게 답해 주었다. 5경에는 반드시 황궁의 별궁을 지어서 자신이 가끔 지낼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했다.
‘관공서가 이렇게 크면 별궁은 황궁과 크기가 비슷해야 되겠어.’
이제 추워지는 겨울이지만 공사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심양에서 계속 머물며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나무를 패거나 또는 삽질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 태왕을 바라보는 병사들은 다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왕폐하께서 직접 삽을 들고 일하시니 요령피우기는 틀렸어.”
“누가 아니라나. 이것 군대가 좋다고 하더니 매일 같이 날만 새면 삽 들고 땅만 파니 노무자도 완전히 최하급의 노무자야.”
“어휴! 삽질은 오히려 공병대가 더 안하네.”
“그들이야 다들 기술자니 그렇지.”
대규모로 새롭게 계획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도로의 크기가 자신들이 생각하던 규모보다 크다는 사실에 다들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도로를 이렇게 크게 내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그것을 낸들 알겠나? 폐하께서 다 생각이 있으니 그리 하시는 것이겠지.”
도로를 개설하고 하수도 시설을 하고 주택지와 도로를 구분했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크기의 도로 양쪽은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공여해 작물을 심도록 지시했다.
이런 지시에 그제야 병사들이나 주민들은 이해했다. 도시가 발전하면 도로의 폭을 넓혀야 하니 미리 그런 곳에는 건물을 건설하지 않도록 해서 나중에 철거하는 부작용을 방지하려고 토지의 용도를 미리 정해 놓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규모 도로 건설을 위해 새로운 작업도구인 건설 장비들이 새롭게 개발되어 도착했다. 커다란 철제 원통에 물을 넣어 도로로 만드는 지역을 다지는 기구도 보였다. 써레처럼 생긴 기구를 달고 도로를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도 했다. 그리고 철제로 만들어진 여러 개의 도르래를 이용한 기중기 같은 것도 보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각종 공사가 시작되자 차츰 변화되는 도시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점점 추워지는 동토의 땅에서 신도시 건설로 뜨거운 열기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심양을 대진국에서 점령한 사실은 주변국으로 널리 알려졌다.
초원에 부는 찬바람을 타고 심양의 점령 사실은 제일 먼저 이웃한 곳인 몽골로 알려졌다. 초원에서 대형 파오를 치고 겨울을 보내던 알탄 칸은 심복 부장인 소부족장인 자마카 찾아와 많은 화포와 포탄 그리고 신기한 무기인 화차를 바치자 놀랐다.
“어디서 난 화포들인가?”
“대진국에서 말을 주고 교환한 것입니다.”
“말을 몇 필이나 주고?”
“지금 가져온 무기나 탄약 화약이 1만필에 해당하는 수량입니다.”
“그렇게 싸게 거래했어?”
“넷!”
거래 조건을 말하자 알탄 칸은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져온 화포만 보유해도 상당히 전력이 향상되는데 계속해서 말과 화포를 교환한다고 하자 놀랐다.
흔하디흔한 말 1만필을 주고 신무기를 샀으니 이번 거래는 아주 큰 이득이 남는 거래다. 이 무기만 가지고 있으면 몽골의 수많은 부족을 완전히 자신의 휘하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진국이 이런 무기를 쉽게 넘겨줄 정도로 강한가?”
“넷! 그들은 명나라와는 비할 수 없는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사옵니다. 화포는 주로 명나라 제품으로 아마도 모두 명나라와 전투를 벌이면서 노획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 새것입니다.”
“알았네, 무기 대금으로 말 12000필을 넘겨주지.”
“감사합니다. 칸!”
휘하의 부하라고 해서 공짜로 받을 수는 없었다. 그도 한 부족을 다스리는 소족장이니 물건대금은 줘야 된다. 그래야 그도 먹고 살고 계속해서 충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어 무력을 동원해 격퇴시키고 자마카의 부족을 완전히 복속시킬 경우는 말을 그냥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하 관계라도 대금을 지불하고 거래해야 된다.
“자마카, 다른 부족과 거래하는 것은 아니겠지?”
“넷! 칸, 저는 칸께만 충성하고 거래하옵니다.”
“알았어. 물건대금으로 12000필을 가져가고 다음번 물품 대금으로 추가해서 3만6천필을 가지고 가도록 해. 대신 선불로 사는 것이니 최대한 빨리 무기를 가져오고.”
“넷!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화포를 차지하자 알탄 칸은 마음이 변하고 있었다.
‘이제 명나라와 협상은 필요 없어. 가서 마구 털어버리면 돼.’
알탄 칸은 사실 명나라로 침공해 압박함으로 협상을 벌여 화포나 기타 필요한 생필품을 교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진국에서 그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니 이제는 명나라와 벌이는 대외정책의 기본 방침을 바꿀 때가 되었다.
화포만 충분히 보유한다면 난공불락이라는 거용관을 뚫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하는 만큼 화포를 보내 준다고 하던가?”
“넷! 대신 말을 많이 보내달라고 하옵니다. 기본이 5만필이고 여유가 있다면 5만필을 더 보내도 된다고 하옵니다.”
“알았어. 그럼 계속해서 거래를 해보도록 해.”
“넷!”
자마카는 알탄 칸을 속이고 있었다. 거래 총량을 반으로 줄여서 보고한 것이다.
더구나 설화가 제시한 가죽제품인 군화나 기타 물건을 만들어 거래한다는 내용은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 아무리 칸이라고 하지만 모두 까발릴 필요는 없었다.
이제 자신도 화포나 기타 우수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대진국이라는 강력한 나라인 교역통로가 생겼다. 그러니 독자적으로 부족의 세력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굳이 그런 내용까지는 칸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어.’
인간이란 누구나 더 큰 권력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직 알탄 칸에게 반발해 독자적인 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회가 생기면 따로 독립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사실 최인범은 인간의 이런 더 큰 권력을 탐하는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직접 알탄 칸이 아닌 다른 소부족과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다. 몽골에 대해 슬며시 이간책을 펼치고 있었다.
대진국의 입장에서는 사실 이미 망조의 조짐이 보이는 명나라 보다 기마병이 많고 초원으로 서로 연결된 몽골의 알탄 칸이 더 위협적인 존재다. 명나라는 요택과 요하라는 천연의 방어선이자 국경선이 명확하고 방어할 대책이 있지만 몽골은 전혀 달랐다.
하천이 있지만 거의 초지로 서로 연결된 구역이 많았다. 그래서 몽골 부족들이 갑자기 서진하게 되면 어디서 막아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그래서 최인범은 굳이 장춘 지역을 개발하고 정규 군단을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마카는 최대한 빨리 화포를 가져온다고 하면서 5만필이나 되는 말을 알탄 칸에게서 인수해 신속하게 동진했다. 모두 우수한 군마에 해당되니 최인범과 약속한 거래인 10만필은 금방 채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부족의 망아지를 사서 마릿수만 채우면 이번 한 번 이동에 1차분 운반이 끝나겠군.”
“족장님, 그럼 우리도 화포를 반은 차지하게 되겠네요.”
“그렇지.”
자마카의 이런 결정으로 몽골에는 다시 새로운 강력한 부족이 생기고 있었다. 2차분인 10만필에 해당하는 무기는 혼자서 독차지할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 알탄 칸보다 더 강한 부족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10만필만 더 거래하면 우리는 세력을 이룰 수 있어.”
“그렇군요.”
원나라가 망하고 나서 수많은 소부족으로 나뉜 몽골은 현재 큰 세력을 이루는 부족은 둘이었다.
서쪽 신장지역의 소피아 아버지가 왕으로 있는 타타르 왕국. 만리장성을 이루는 음산산맥 북쪽의 초원지대에서 지내는 알탄 칸이 이끄는 부족이다. 그리고 대흥안령산맥 북쪽에 자마카가 이끄는 새로운 힘을 지닌 부족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요동의 중심인 심양을 대진국에서 차지했다. 그동안 계속 세력을 확장하더니 결국 요동 전체가 대진국 영토로 변했다. 주변국들이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좋았던 사이가 차츰 틀어져 버린 제태국으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기겁했다. 그들은 많은 금괴를 가지고 위해의 해군기지로 찾아왔다.
임방경 제2함대 사령관을 만나자 산동반도의 남쪽에서 초계활동을 다시 해달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왜구들 때문에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왜구들은 이미 사라졌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왜구들의 수가 무려 5천명이 넘습니다. 배들도 100척은 되고요.”
“지난번 소탕 작전으로 모조리 사라졌던 왜구들이 갑자기 그렇게 많아졌다니 너무 이상하군요. 우리도 이곳에 1개 전대만 있어 다른 곳의 초계활동은 어렵습니다.”
제 3함대 소속인 20척 판옥선은 새로 창설된 제 4함대 소속으로 변해 발해와 요하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 내용을 밝힐 필요는 없으니 어렵다고만 하는 것이다.
임방경은 왜구들이 산동반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야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모른척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정보원장으로부터 특별히 태왕폐하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왜구들에 대한 초계활동을 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아닌 정보원장의 연락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바로 왜구들의 배후인 2개의 사략선단에 대한 관리는 국가정보원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