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자신들은 겨우 수십명이 탈 수 있는 나룻배에 지나지 않지만 아주 큰 판옥선 수십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판옥선들은 일제히 함포를 발사했다.
쾅! 과광!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많은 포탄들이 날아왔다. 제일 싸구려인 돌로 만든 포탄이다.
퍽! 와지직! 풍덩! 풍덩!
“포탄이다!”
무수한 포탄이 날아오자 사공들은 겁에 질렸다.
급하게 강변으로 배를 몰고 가다가 포탄이 날아오자 빠르게 강물로 뛰어 들었다. 다들 수영할 줄 아니까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도망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룻배들은 빠르게 침몰했다.
“으악! 살려줘!”
수영을 못하는 병사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깊은 수심이라 배들이 파괴되며 침몰되자 병사들은 급하게 뛰어내려 일부는 수영해서 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수영이야 조금 할 줄 알지만 무거운 갑옷을 입은 이성량은 강으로 뛰어들 수 없었다.
‘갑옷 입고 들어가면 죽어.’
이미 옆에 있던 부하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었으니 다들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져버렸다. 혼자 남게 된 이성량은 급하게 무거운 갑옷을 벗고 건주본위 지휘첨사의 인장도 강물 속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강물로 뛰어들어 달아나려다가 그만 멈추고 말았다.
‘헉! 다 죽이네.’
두두두두. 사각!
“으악!”
“으악!”
강변으로 겨우 올라간 부하들이나 사공들은 어느새 추적해온 대진국의 기마병들에게 모조리 죽어가고 있었다. 항복도 필요 없고 모조리 사살되고 있는 것이다.
망원경으로 이성량이나 그의 부하들이 저지른 만행을 목격하자 대진국 병사들은 분노했다. 비록 태왕께서 몰살시키라고 명령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군사들에 대한 명령이다. 민간인을 살해하라는 명령은 아니기 때문에 이성량의 무리의 행위에 분노했다.
“저런 놈들은 포로로 만들 필요도 없어. 모조리 죽여!”
“넷!”
명나라 출신 지휘관들은 특히 더 분노했다. 이제는 명나라와 결별해 새로운 나라에서 지휘관으로 있지만 그래도 같은 동족인 민간인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하자 흥분한 것이다.
“포로는 필요 없다. 다 죽여.”
“와! 죽여라!”
강변에서는 기마병들이 매섭게 공격해 일방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이성량은 급하게 갑옷만 벗고 배의 물건들 틈에서 숨어 있었다. 화포를 쏘던 대진국의 판옥선들이 사격을 멈추었다.
‘숨어 있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치자고.’
그는 숨어 있다가 도망칠 요량으로 옷을 홀라당 벗고 얼굴에 흙을 발랐다. 평범한 신분으로 위장해야 도망치기가 쉽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제1함대의 판옥선은 함포 사격으로 겁을 주어 배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판옥선들은 천천히 나룻배들이 있는 강변으로 다가갔다.
이미 배에 타고 있던 적들은 모두 강변으로 도망쳐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 굳이 많은 물건이 실린 배를 침몰시킬 까닭이 없는 것이다.
제1함대의 함대장인 김신완은 태왕으로부터 심양공격에 적의 퇴로인 훈하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발해를 통해 대요하를 거슬러 올라와 훈하를 따라 심양에 도착했다.
“까딱 했으면 큰 실수를 할 뻔했군.”
“다행이 적기에 도착했습니다.”
30척의 판옥선으로 구성된 제1함대가 다소 약간 늦게 도착한 이유는 판옥선에는 많은 화포와 포탄들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련 항구에 있었던 명나라 제품인 화포나 포탄 그리고 화약을 무겁게 싣고 오느라고 늦었다.
김신완 함대장은 판옥선을 강변에 접안하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격군들은 모두 적선으로 가서 실려 있는 물품을 확인해서 보고해. 그리고 혹시 배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패잔병을 소탕하고.”
“넷!”
명령을 받은 격군들은 단창이나 장검을 들고 빠르게 조를 이루어 나룻배인 적선에 올라 물건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간간히 숨어 있는 사공이나 또는 패잔병을 사로잡았다.
“살려 주시오.”
해군들은 늦게 오느라 적군들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무장을 해제시키고 강변에 모아 두었다.
이때 다소 느긋하게 움직이는 격군이 있었다. 그는 서두르는 사람보다 다소 늦게 움직이며 투덜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제일 힘든 격군을 시키나?”
강을 거슬러 오느라 힘들게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느긋하게 움직이는 격군은 졸지에 이성량을 임의로 놔주었다고 해서 이병으로 강등된 척계량이다.
그가 대련으로 와서 근무하게 된 임무가 해군의 격군이다. 낮은 계급들이 하는 업무고 형벌을 받는 중이라 격군으로 배치된 것이다.
격군으로 근무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금처럼 약간의 불만은 있었다. 하지만 지엄하신 주군과 밀약한 처지라 이성량을 놓아준 사연은 아직까지 토설하지 않았다.
천천히 배를 살피며 품목을 적어가던 척계량은 물건들 틈에서 숨어 있는 이성량을 만났다.
“어! 이놈 봐라. 살려고 별짓을 다하는군.”
“헉!”
서로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한사람은 상대방 때문에 강등되어 힘들게 격군 노릇을 하고 있다. 한사람은 많은 재물을 뇌물로 받아먹어 탈취해간 철천지원수다. 이성량은 위장했지만 이미 정체가 탄로 난 처지라 도망치기는 틀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옆에 숨겨 놓은 장검을 빼들고 매섭게 덤벼들었다.
“원수 놈! 죽어!”
획! 휘릭! 휙!
척계광은 이성량이 딴 짓을 하며 반드시 척살해 버리라는 선참 후결의 명령도 이미 받았다. 그 때문에 장검을 들고 대적하며 이성량의 목을 노렸다. 몇 번 검을 부닥쳐 보자 이성량의 무술 실력이나 힘을 알 것 같았다.
‘너무 허접한 놈이야.’
챙! 챙! 챙!
척계량은 전보다 힘이 더 좋아졌다. 한창 힘을 길러지는 젊은 나이에 격군으로 근무하다 보니 완력이 많이 증가한 것이다. 힘차게 몇 번 검을 마주치다가 이성량은 갑자기 검을 버리고 손을 모아 비비며 사정했다.
“항복! 살려주시오.”
검술 실력이나 또 힘에서 너무 딸리자 항복해서 목숨을 구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척계광은 은근히 벼르고 있던 터라 용서가 없었다.
획!
“컥!”
툭!
살기위해 별짓을 다하던 이성량은 결국 척계광의 장검에 목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척계광은 그제야 큰 소리로 외쳤다.
“적장 이성량을 죽였다!”
“뭐? 그놈이 이성량이야?”
적장이면 당연히 고급 갑옷을 입어야 하는데 비단 속옷만 입고 있으니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척계광이 이성량을 놓아 주어 이병으로 강등되어 형벌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격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척 이병이 그렇다면 사실일거야. 아마 갑옷을 벗어버린 것 같군.”
“그러네. 너무 추하게 살다가 결국 여기서 죽었어.”
척계량은 함대장에게 이성량의 목을 받치고 말했다.
“이성량이 틀림없지만 갑옷이 없으니 갑옷을 찾겠습니다.”
“그럴 필요가 뭐 있나?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다른 사람도 이성량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니 소금에 절여서 가져가면 되지 않나?”
“아닙니다. 공연한 오해를 받기는 싫습니다. 함대장님, 저에게 격군 50명만 부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강에서 갑옷을 찾아보겠습니다.”
결국 척계량은 이성량이 숨어 있던 배를 수색하고 강물 속으로 격군을 보내 강바닥을 수색했다.
“내가 포상금을 받으면 나누워 줄 것이니 잘 찾아보시오.”
“그럼 더 좋죠.”
탁한 탁류가 흐른 강물 속에서 갑옷을 찾는 작업이 쉬울 수가 없었다. 50명이 동원해 찾지 못하자 100명이 동원되어 수색했다. 많은 사람을 동원하자 결국 이성량이 버린 갑옷과 그가 지니고 있던 건주본위 지휘첨사의 인장을 찾게 되었다.
“함대장님, 인장을 찾았습니다.”
“갑옷이 문제가 아니라 인장 때문에 찾은 것이군.”
“그렇습니다. 이것을 찾아야 건주 본위를 태왕폐하께서 온전하게 차지하는 것이 되옵니다.”
“수고 많았어.”
척계광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번에 절실하게 느꼈다. 조선과 여진 출신이 정계나 군부의 주축이다 보니 위기에 처한 자신을 변호해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서계가 나서서 사연이 있을 것 같다고 변명해주어 이병으로 강등되고 끝났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신은 거액의 뇌물을 받고 이성량을 놓아준 인물로만 기록되고 참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는 더 철저해야 되고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이번의 건이야 죽게 되는 경우에 처하면 결국 태왕께서 나서서 구해 주시겠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 앞으로는 더 조심하고 공연히 앞장설 생각은 없었다.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태왕의 신임을 받아 시기하는 무리가 너무 많아.’
이런 생각을 하지만 또한 자신이 너무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남을 탓하기보다 척계광은 스스로의 잘못이 많다고 자책했다. 그래서 일단 이성량을 죽이고 나자 본래 격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척계광을 바라보며 동료인 격군들은 놀랐다.
“본래 지휘관이란 저래야 되는데. 이성량과는 참으로 비교가 되네.”
“이 사람아, 비할 사람을 가지고 서로 비교해야지. 자기편의 목을 잘라서 공적을 올리려는 놈과 어찌 척 소령과 같나?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
이성량을 죽이고 인장까지 차지하게 되자 심양 공략은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제1함대의 판옥선들은 빠르게 심양 근처의 선착장에 정박해 많은 화포와 화차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대련의 비사성이나 또는 다른 지역에 있던 무기들과 조선에서 넘어왔던 무기들을 모조리 수거해 몽골로 보내기로 해서 가져왔으니 이곳에서 하역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최인범은 적장인 이성량을 죽인 척계광을 불러 본래 계급인 소령으로 올렸다. 또다시 염전에서 포로들을 관리하는 교도소장으로 보내게 되었다. 적장을 죽였으니 포상금도 넉넉하게 주었다.
“척 소령,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아니옵니다. 폐하, 그동안 고생보다는 배운 것이 많았사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군. 어떤가? 검술을 펼치기가 전보다 수월하지?”
이말 한마디에 척계광은 태왕께서 이미 다 알고 있고 자신에게 일부러 노군 시킨 것을 알았다. 무예란 힘이 동반되지 않으면 사실 화려한 춤사위에 불과하다는 것은 느낀 것이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척 소령, 그동안 힘든 일을 많이 해봤으니 남들의 힘든 사정도 잘 알 것이야. 앞으로 교도소로 가서 그 경험을 참고해 죄수들을 잘 다루어 보도록 해.”
“넷!”
포상금을 받은 척계광은 100명의 격군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여전히 격군으로 근무하며 임지로 떠나고 있었다. 제 1함대도 단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염창 시까지 같이 가면서 계속 근력을 기르기 위해 훈련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