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화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이 죽어가자 심양성 안에서는 몇 무리로 나뉘어 격론이 오갔다. 이미 군사의 수로 보아 대진국은 자신들보다 2배가 넘는다. 더구나 포위만하고 사거리가 긴 화포로 공격하니 대항할 어떤 수단이 없었다.
“죽으나 사나 성문을 열고 나가서 싸웁시다.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는 없소.”
“어디로 공격한다는 거요?”
“제일 군사들이 적어 보이는 북쪽을 공격합시다. 그곳에 태왕이 있는 것 같으니 그쪽을 공격합시다.”
성문을 열고 공격하자는 패는 모두 여진출신들이다. 그들은 부모나 형제가 대진국과 전투에게 죽은 원한이 있으니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명나라 출신인 상인들이나 또는 봉황성에서 쫓겨난 무리들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북경으로 도망치거나 조양으로 도망가면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린 서쪽을 통해 북경으로 떠나겠소. 배도 있으니 혼하를 넘어 북경으로 돌아갈 대책은 있으니 우릴 막지 마시오.”
“배의 수가 한정되어 모두 같이 갈 수 없지 않소?”
“각자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 아니요?”
이대로 있다가는 성안에서 그대로 전멸 당하게 생겼다. 서로 입장이 다른 무리들이라 의견들은 심하게 갈렸다. 건주본위의 지휘첨사로 임명된 이성량은 이미 지휘관으로 위세를 부리지도 못했다.
모조리 죽게 생기자 그의 지도력은 완전히 바닥을 보였다. 격론이 오가게 되자 결국 이성량은 공격하자고 주장하는 여진족들에게 지시했다.
“좋소. 그럼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나가서 싸워보시오. 그래서 승기를 잡으면 우리도 뒤따라 공격할 거요.”
“꼭 약속을 지키시오.”
“같이 죽게 됐으니 당연히 지키죠.”
많은 격론이 오가다가 결국 대부분 여진족으로 구성된 1만명의 기병대가 선봉대로 나서게 됐다. 북문을 열고 태왕이 포진한 철령위 쪽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공격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해 기마병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한편 최인범은 포병들의 교육을 겸해 화포를 이용해 심양성을 공격했다. 포격전을 지휘하다가 모든 화차를 북쪽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모든 화차를 북쪽으로 이동해.”
“넷!”
야인여진족 중에서 무서운 화력을 보이는 포병에 매료되어 포병교육을 받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그 때문에 북쪽 진용의 병사들 수가 줄어서 전력을 보강할 필요성이 있었다.
북쪽의 망루와 약간 떨어진 거리에 화차를 배치했다. 곡사화기라 적에 발견하기 어려운 낮은 지형을 통해 몰래 이동시킨 것이다. 준비가 모두 끝나고 400대의 화차에 신기전을 모두 장착해 놓았다.
망루에 올라 적진을 망원경으로 살피자 적들이 드디어 말에 올라 북쪽 문으로 모여 들었다.
“드디어 문을 열고 공격할 심산이군.”
“폐하, 저희는 언제 공격하죠?”
“화차 공격이 끝나면 양쪽에서 교차하며 쓸어버려.”
“넷!”
철씨 삼형제는 망루에서 내려와 급하게 양쪽에 포진된 기마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쪽에 3000명씩 총 6000명에 불과한 기병들이다.
이윽고 심양성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와글와글.
수많은 기마병들이 무기를 들고 심양성에서 나와 조금 전진해 그런대로 진용을 갖추었다. 그렇게 되자 최인범이 있는 망루와의 가리가 1킬로미터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래도 최인범은 관망만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공격 대형을 갖춘 여진족들이 괴성을 지르며 매섭게 돌진했다.
“돌격!”
“와! 돌격!”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동시에 망루에서 붉은 깃발이 펄럭였다. 그러자 망루 바로 위쪽의 약간 낮은 곳에 포진한 400대의 화차가 일제히 불을 품었다.
과과광! 과광광! 쉬쉬식! 쉬쉬식!
화차에 장착된 신기전이 깃발 신호와 함께 돌진하는 여진족을 향해 날아갔다. 400대의 화차에서 거의 동시에 4만발의 화살이 날아가자 하늘은 검으며 연기로 하얗게 변했다.
“헉!”
수많은 화살들이 날아오자 급하게 방패를 들어 막아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몸 가까이 날아오던 화살에 달린 폭약이 터져버린 것이다.
펑! 펑! 펑!
“으아악!”
“으악!”
일부는 터지는 화약이 달린 신기전이다. 그러다 보니 방패는 물론 어떤 방어 수단도 소용없었다. 더구나 화약이 터지며 연기가 품어 나와 퍼지자 완전히 안개 속으로 돌진하는 형국으로 변했다.
획!
“컥!”
그나마 제일 앞으로 달려가 망루가까이로 접근했던 기마병들은 망루에서 날아온 화살에 죽어갔다. 최인범이나 또는 경호원들이 쏘는 화살과 단창 투척에 꼬치가 되어 처절하게 죽어 버렸다.
바람으로 화약 연기가 조금 사라지자 양쪽에서 동시에 철씨 3형제가 교차해 적진을 셋으로 가르며 빠르게 돌진했다.
“돌격!”
두두두두. 사각!
“컥!”
“으악!”
이미 전열이 흐트러진 여진족들은 측면에서 달려드는 대진국 기마병들의 공격에 처참하게 죽어갔다. 대진국의 기마병들은 서로 교차하듯이 빠른 속도로 적의 진용을 가르고 지나갔다.
“후퇴! 후퇴!”
여진족들은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해 생존자들을 급하게 북문 쪽으로 달아났다. 이미 북문이야 닫혀 있지만 본능적으로 우군이 있는 성문 쪽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두두두두 우르르.
말에서 떨어진 병사들도 뛰어서 달아나고 말을 탄 기마병들도 정신없이 뒤로 돌아 도망쳤다.
과과광! 과광광! 쉬쉬식! 쉬쉬식!
이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달아나는 여진족들의 등 쪽으로 또다시 무수한 신기전이 날아 왔다.
“크악!”
“악!”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 피할 수도 없이 그대로 죽어갔다. 화차를 운용하는 포병들은 우군인 기마병들이 적진을 세 조각으로 가르고 지나가는 순간. 새롭게 신기전을 화차에 장착하고 다시 발사한 것이다.
쉬이익! 펑! 펑!
신기전에 달긴 화약들이 터지자 이번에는 아주 매운 냄새가 눈을 아리게 했다. 조선인에 비해 매운 맛이 익숙하지 않은 명나라 사람들 때문에 개발된 무기다. 신기전에는 고춧가루가 담긴 작은 물고기 부레가 화약과 같이 달려 있었다.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터지는 부레라 하늘로 날아오르면서도 터지기도 하고 화약이 터지면서 동시에 터졌다.
“아이고! 눈이야!”
“엣 취!”
히이잉! 히잉! 폴짝! 폴짝!
유독 매운 고춧가루라 사람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말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워 미쳐버렸다. 대부분의 말들이 제자리높이뛰기를 하며 날뛰었다.
본시 동물은 연기에 상당히 취약했다. 화약 냄새도 아주 독하고 매운 고춧가루에 더구나 매캐한 연기까지 더해지자 말들은 미쳐서 날뛰었다.
또다시 대진국의 화차 공격으로 여진족들은 전열이 흐트러져 우왕좌왕 했다. 바람으로 다시 연기가 사라지자 양쪽에서 대진국의 기마병들이 돌진했다.
“와! 돌격!”
“돌격!”
눈도 쓰라리고 매워 정신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돌진한 대진국의 기마병이 휘두르는 반월도나 장검에 남아 있던 여진족들은 무참하게 죽어버렸다.
사각!
“크악!”
삭!
“윽!”
두 번이나 빠르게 돌진하던 기마병들은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활을 들었다.
“조별로 저격!”
“넷!”
이제는 그나마 살아남은 여진족을 활로 공격해 사살했다. 5명이 한조가 되어 1명을 향해 동시에 화살을 날리니 살아남은 여진족은 없었다.
살려두면 두고두고 처치 곤란한 반란할 무리들이라고 판단해 이미 태왕께서는 몰살을 지시했다. 그 때문에 하나도 남김없이 사살했다.
여진족이 죽은 자리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어느새 까마귀가 까맣게 날아왔다. 1만명의 여진족인 기마병들이 전멸당한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1각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전멸당해 버렸다.
한편 심양성의 망루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량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겁에 질린 이성량은 빠르게 부하들에게 외쳤다.
“철수!”
“넷!”
심양에는 화포공격으로 죽거나 중상을 당해 총 4만명이 남았었다. 그중에 1만명의 기마병이 몰살을 당했으니 부녀자와 민간인을 모두 포함해도 3만명에 불과했다.
자신의 휘하인 병사들 1만명이 그나마 전력의 전부다. 나머지는 이미 군복을 벗고 민간 신분으로 도망치는 중이다. 전력의 열세로 심양성에서 더 이상 버티지도 못하고 싸우더라도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성량은 드디어 심양성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급하게 서문을 나선 이성량은 부하들에게 광기어린 놀라운 명령을 내렸다.
“모조리 죽여!”
“넷!”
이성량은 도망칠 배가 부족하고 또 이대로 명나라로 돌아가면 문책을 받아 죽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심양성을 벗어나자 먼저 탈출을 시도한 명나라 출신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다.
“수급은 모조리 챙겨.”
“알겠습니다.”
졸지에 뒤에서 나타난 이성량의 부하들이 먼저 탈출한 사람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였다. 그리고 남자들의 머리는 싹둑 잘라서 옆구리에 차고 있었다. 수급은 적과 교전에서는 반드시 챙겨야 하는 공적에 대한 증거다.
“전장에서 도망치는 놈은 즉결처분이니 한 놈도 남기지 마!”
끔찍한 명령을 내리는 이성량은 그래도 입으로는 전장에서 도망치니 즉결처분한다고 외쳤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같은 편을 모조리 죽여서 살인 멸구할 생각이다.
한편 망루에서 작전을 지휘하며 심양성을 망원경으로 살피던 최인범은 가늘게 신음을 토했다.
“으음! 이성량이 결국 죽을 구멍을 찾아가는군.”
다른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이성량의 잔악한 행위를 바라보며 매우 놀랐다. 하지만 최인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역사서에 쓰여 있는 그대로 이성량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틀린 역사서도 있지만 정확한 역사서도 많다는 느낌만 들었다.
혼하의 선작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이미 배들에는 많은 짐이 실려 있고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옆구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수급을 차고 광기가 어려 달려오는 병사들을 보며 놀랐다.
“으악!”
“왜 우리를?”
“죽어!”
선착장에서 배에 올라 떠나려던 사람들은 이성량의 명령에 모조리 죽어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과 부하들인 1만명만 남기고 모조리 죽인 것이다. 선착장에는 물론 탁류가 흐르는 혼하의 강물은 죽은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이성량은 배에 오르고 나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전공의 증거인 수많은 수급도 넉넉하게 챙겼다. 더구나 그런대로 배에는 많은 재물이 살려 있었다.
이성량은 조양(朝陽)으로 가서 살아날 방법을 나름 구상중이다.
‘조양으로 가서 수급을 보여주고 배에 실린 재물을 뇌물로 넘겨주면 무사하게 될 거야.’
이렇게 느긋하게 생각하며 혼하의 하류로 향하던 이성량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