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복잡한 국제 관계>
대마불이 사략선 8척에 많은 물자를 싣고 대정항으로 들어서자 대정현감은 급하게 항구로 와서 반겼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한양에서 연락을 받았군요.”
“넷! 앞으로 여기서 활동하게 된다고 한양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조선 조정은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동안 종주국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던 명나라가 점차 몰락하고 북쪽에 강한 무력을 지닌 대진국이 나타났다.
그 때문에 명나라로 보내던 사신을 직접 보내지 못하고 그저 봉황성으로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종주국으로 대진국을 섬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조선 조정은 어느새 친명파와 친진파로 갈렸다. 친명파는 대부분 대윤으로 불리던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훈구대신들이고 친진파는 소윤인 윤원형의 무리들이다.
새로 대정현감으로 오게 된 오복준은 윤원형에게 빌붙어 벼슬을 얻었다. 전에 있던 현감은 윤원형이 한양으로 복귀하면서 파직되어 사라져 버렸다.
오복준은 굽실거리며 대마불이 가져온 많은 물건을 보며 물었다.
“소금도 많고 쌀도 많군요.”
“예, 이번에 여기서 농장도 운영하려고 조금 많이 가져왔습니다.”
“농장요?”
“예, 여기서 감귤과 사과 농장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대마불이 농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멀리 한양에 있는 월녀가 이곳에 감귤 농장과 사과 농장을 만들어 놓으라고 연락해서 이곳에 주둔하면서 잠시 그 틀을 잡기로 한 것이다.
바다에서 오래 생활하는 터라 선원들의 건강을 위해 과일을 재배해 공급하려다 보니 감귤 생산이 수익성도 좋다고 판단해 지시했다. 그리고 감귤 나무의 품종은 재래종도 있지만 멀리 명나라에서 이주시킨 묘목도 있고 왜에서도 가져온 신품종도 있었다.
이미 감귤나무의 묘목들이야 심어진 상태라 계속해서 관리해야 된다. 농장의 소유주인 월녀는 대마불에게 명나라에서 잡아온 포로들을 농장의 일꾼인 노비로 부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대진국의 노비로 서류를 만들어 넘기고 나자 대마불은 150명의 남녀 노비를 데리고 대정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농장으로 그들을 데려다 주었다.
농장 관리인은 전에 대마도를 병합할 때 전투를 벌이다 부상당한 유공자다. 서류를 넘겨받은 지상국은 의문이 생겨 물었다.
“여기에 정착하게 되면 앞으로 저들의 신분은 어찌 되는 거요?”
“저들이 혼인하면 자연히 노비에서 풀리면서 부부가 모두 대진국 사람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결국 제주도 사람과 이들이 혼인하면 모두 대진국 국민으로 변하게 되니 쉬우면서도 어려운 정착이라고 판단했다.
“한양에서 결정이 났습니까?”
“아닙니다. 그 때문에 아마 논의가 진행 중일 겁니다.”
대진국에서는 국적 취득 방법을 아주 복잡하게 운용한다. 조선영토에 4개의 교역소를 두더니 그곳과 연결된 사람들에게는 모두 대진국 국적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대진국 사람으로 변한 사람과 혼인하면 그 사람도 대진국 국적을 부여해 주었다.
그래서 생활이나 모든 사업을 조선에서 하면서도 대진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 무수히 늘어났다.
“아마도 윤원형 정랑께서 찬성하는 입장이니 쉽게 결말이 나서 이곳까지 통보될 거요.”
“그렇겠군요.”
이곳에서 대정현에서 귀양살이하던 윤원형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러자 윤 대비가 주상에게 울면서 사정해 결국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양으로 올라가자 얼마 지니지 않아 슬며시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놀랍게도 정5품의 이조 정랑으로 임명되어 조선의 정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품계는 떨어졌지만 화려한 부활이다.
이조정랑은 좌랑과 함께 인사행정을 담당하여 전랑(銓郞)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들은 삼사(三司) 관직의 임명동의권인 통청권(通淸權)과 자신의 후임자를 추천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어 권한이 막강했다.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면서 절치부심하던 윤원형은 미친척하는 수법으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더니 드디어 다시 조선 정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정신이 똑 바른 상태는 아니다. 전보다 더 잔악해지거나 심계가 깊어지고 때로는 돌발적인 행동을 보여 다소 괴팍하게 변했다.
주상은 윤 대비의 눈물어린 간절한 부탁도 있었지만 정국이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쏠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조좌랑에는 윤임 패거리로 임명하고 친진파로 분리되는 윤원형을 이조 정랑으로 임명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었다.
조선 조정은 지금까지의 종주국이던 명나라에게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었다. 또 새로운 세력인 대진국에게 섭섭하게 할 수는 없었다. 주산은 개인적으로 의형제인 최인범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가운데 대진국의 영향력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나게 불어나 버렸다. 더구나 대진국은 조선을 가운데에 놓고 왜의 하카타와 서부지역을 거의 장악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을 지녔다.
대진국의 등장으로 조선은 변화가 많았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전보다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대마불은 데리고 온 노비들을 인계하고 나자 대정 항구로 돌아와 현감에게 부탁했다.
“앞으로 여기에 창고가 늘어나야 되니 창고를 새로 지으시오. 창고의 사용료는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공사를 시작하죠.”
“그리고 무역선들이 이곳을 이용하게 되니 부두 시설도 늘려야 합니다.”
대마불이 도착함과 동시에 대정현에도 교역소가 설치되어 이곳에서 많은 물건들이 왜나 남경으로 운반된다. 물론 이곳에서 나주나 또는 남해안의 진해나 부산포로 물건이 운반되기도 한다.
굳이 불리한 이곳을 무역소로 활용하려는 이유는 바로 명나라 해안을 침탈해 약탈해 오는 재물을 세탁할 필요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방법으로 홍도나 나주를 이용할 경우 나중에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육지와 떨어져 있어 조금은 폐쇄된 지역인 제주도에서 장물들을 정상적으로 교역되는 물품과 뒤섞어서 세탁해 반출시킬 요량이다.
대마불은 대정항에 어느 정도 기틀을 다지게 조치를 취하고 선원들을 모집했다.
“무엇하는 선원입니까?”
“그야 격군도 있고 일반 선원도 있죠.”
대마불은 제주도 출신들을 채용해서 결국 사략선 8척에서 근무하는 격군까지 교체했다. 자연히 노비이던 명나라 출신 격군은 감귤이나 사과 농장 그리고 이곳에서 대규모로 재배하는 감자나 고구마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미 조선에 감자나 고구마가 보급되었다. 하지만 그 수가 다소 미미했지만 농장에서 대량재배를 시작해 널리 보급할 요량이다.
제주도 남쪽인 마라도와 가파도 지역을 수시로 운항하며 함포사격 훈련을 끝내고 나자 대마불은 드디어 8척의 사략선을 몰고 명나라의 보타도로 향했다.
제주도에서 터를 잡기는 했지만 현난풍과 조유해 장물을 받으려면 명나라와 가까운 섬에 전진기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 때문에 명나라에서 흔히 극해지처라고 부르던 주산군도 내의 보타도를 거점을 삼기로 결정한 것이다.
해상 훈련 때문에 부두에 야적해 두었던 많은 천일염을 다시 싣고 떠나자 함장이 궁금해서 물었다.
“제독님, 소금을 팔고 뭐를 사오려고요?”
“이번에는 명나라로 가면 말을 많이 사와야 되겠어.”
“제주도에 말 목장도 만들려고요?”
“그래야 될 것 같아.”
북쪽에도 말이 많이 필요하지만 제주도도 말을 키울 여건이 좋으니 말 목장을 운영해 필요할 경우 대진국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방법이야 제주도에서 말을 키워 적당히 조선 조정으로 넘기고 현물 교환 방식으로 함경도 지역의 말을 대진국으로 보내 볼 생각이다.
그런 국가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제주도에서 말을 많이 키우면 왜나 조선의 일반인들에게도 팔아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니 시작하려는 것이다.
대정항구를 떠난 8척의 사략선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측풍을 타고 빠르게 대륙의 장강 쪽으로 향했다.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피던 대마불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어라! 왜 바다에 어선들이 저리 많지?”
“제독님, 격침시키죠.”
명나라는 오래 해금 정책을 펼쳐 근해에서 어부들이 조금씩 조업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 많은 어선들이 주산 군도 앞 바다에서 조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북경의 영향력이 줄고 산동이나 또는 강소성에서 왜구들이 활동해 수산물 가격이 오르자 주산 군도에서는 기회에 어선을 늘려 다소 먼 바다고 나와 조업하는 것 같았다.
“함대 깃발을 올려!”
“넷!”
사략선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대진국의 남해 원양함대다. 그렇기 때문에 명나라 조정에서 대진국의 태왕에게 부여한 황해, 발해, 동해에 대한 해상통제권은 여전히 유효했다. 내용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여전히 바다를 통제하는 해군도독의 직책을 지니고 있었다.
대진국의 남해 함대라는 표시를 올리자 어민들은 저런 큰 배는 관선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해상통제권을 가진 대진국 군함이라는 것도 느꼈다.
‘설마, 우릴 공격이야 안하겠지.’
처음에는 그저 단순하게 호기심을 표하던 명나라의 어부들이 매우 놀랐다. 처음 보는 커다란 배에서 무서운 함포를 쏘았기 때문이다.
쾅!
큰 함포소리가 울리고 근처에 물기둥이 일자 명나라 어민들이 급하게 섬을 향해 도망쳤다. 겁에 질려 도망치는 가운데 드디어 함포는 어선을 향해 직접 함포를 쏘았다.
쾅! 콰광! 쾅!
어부들은 정확하게 어선을 향해 포탄들이 날아오자 급하게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함포소리가 요란하더니 20여척의 어선들은 순간이 파괴되거나 또는 침몰했다.
철썩! 파지직! 파지직!
“으아악!”
풍덩! 풍덩!
이어서 사략선들은 빠르게 어선들이 모인 해역으로 달려들었다.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작은 배들이야 충돌과 동시에 파괴되고 침몰 당했다. 어부들은 바다에서 급하게 헤엄을 치며 동료들의 구조를 기다렸다.
“살려줘!”
어선들이 침몰되자 명나라의 어부들은 부서진 나무 조각을 부여잡고 크게 외쳤다.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살려줘!”
“사람 살려!”
어선단의 중앙을 관통해 지나가는 거대한 사략선 8척을 바라보며 명나라의 어부들을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던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너무 크고 빨랐다. 전에는 전혀 들어보지도 보지 못한 약간은 괴이한 모습이다. 또한 빠르게 섬 사이를 지나서 사라지니 더욱 놀랐다.
그나마 변두리에 있어 피해를 보지 않은 어선들은 물에 빠진 동료들을 급하게 구했다. 동료들을 구한 어민들은 돛을 올려 빠르게 섬으로 도망쳤다.
그나마 죽은 사람은 없이 섬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한숨을 토했다.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단속하니 앞으로는 어부로 살기도 어렵겠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
“육지로 이사 가서 살아야지.”
겨우 남은 배에 몸을 의지하여 살아남은 어부들은 두려움으로 덜덜 떨었다.
“아무래도 전처럼 장강에서 물고기나 잡아야 되겠어.”
대마불은 자신들이 주산 군도에서 장물을 거래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수 있는 어민들을 모조리 사라지게 하려고 공격한 것이다. 더구나 명나라를 혼란시킬 목적으로 파견된 처지라 이런 공격도 남경을 궁지로 몰아넣는 방법이다.
‘이제 명나라의 남경도 제주도에서 생산된 건어물을 비싼 돈 주고 사먹어야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