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도망치던 철령위 병사들은 다들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천지 사방에 적들이 완전히 포위한 상태라 도망칠 구멍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넓은 길림 평야는 그야말로 호구로 변해 있었다.
“완전히 포위됐어.”
드디어 9사단의 병력이 도착해 남쪽에서 100문의 화포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하늘이 까맣게 날아온 포탄의 위력으로 해서여진의 기마병들 사기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쾅! 콰광!
“으악!”
“칵!”
“살려줘!”
요란한 포격소리가 들리면 이어서 병사들이 죽거나 부상당하며 처절하게 비명을 토했다. 완전히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어 죽어가는 것이다.
또한 이미 3할 이상의 병사들이나 말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한 상태다. 해서여진의 군대는 후위에서 사격하는 금일여가 장악한 화포로만 공격당한 것이 아니다.
최인범의 뒤를 따라 다소 늦게 이동한 예비사단의 포병대가 도착해 매섭게 무수한 포탄을 날렸다. 3곳에서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해서여진족의 병사들은 하나둘 항복했다.
“항복!”
“살려주시오!”
항복한 병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빠르게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최인범은 옆에 있은 설화에게 명령했다.
“난전으로 변했으니 군단장은 여기서 포로를 감시하시오.”
“넷!”
군단장이지만 아내라 최인범은 설화에게 위험하지 않은 임무를 부여했다. 지금으로는 이것이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최선의 배려다.
‘이번 전투만 끝내면 봉황성으로 가라고 해야 되겠어.’
이제 나라의 기틀이 잡힌 상황이라 설화를 위험한 전장으로 돌아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황궁의 질서를 잡으려면 설화가 봉황성에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판단했다.
잠시 혼란한 전투 상황으로 변하자 해서여진의 기마병들 중에 철령위에 속한 일부 기마병들은 빠르게 결정했다. 지휘관인 부족장이 크게 외쳤다.
“퇴각하라! 퇴각! 최대한 빨리 퇴각해!”
그들은 이제 완전히 포위되어 사지로 변한 전장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급하게 심양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9사단의 보병들이 매복해 있었다. 앞이 탁 막혀 버리자 다시 방향을 틀며 급하게 외쳤다.
“퇴각하라!”
“후퇴!”
많은 지휘관들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하지만 철령위의 부족장인 지휘관은 아직도 건재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주변에서 죽어가는 호위 병사들이 토해낸 피로 온몸이 붉게 물들었다.
부족장인 지휘관을 살리려고 호위병들이 몸으로 포탄이나 화살의 공격을 막아냈다. 은자에 눈에 어두워 멀리 원정을 나온 것이 큰 실수다. 지휘관은 속으로 한숨을 토했다.
‘내가 재물에 눈이 멀어 너무 어리석었어.’
명나라에서 제공한 새로운 무기인 대진국의 화차(火車)와 유사한 무기인 가화전차(架火戰車)나 화궤공적차(火櫃攻敵車) 등의 위력만 믿고 덤빈 것이 화근이다.
‘포병의 취약점도 너무 몰랐어.’
처음으로 보유한 명나라 제품인 신기한 신무기라 운용방법도 잘 몰랐다. 기습적으로 대진국의 기마병들에게 공격당해 모조리 탈취 당하고 보니 오히려 적에게 큰 화력만 제공한 꼴이다.
‘참으로 황당하군. 우리의 무기로 우리가 죽다니.’
전술이나 전략 사기 군 장비 등에서 완전히 대진국에게 패했다. 아끼던 심복부하들을 거의 잃게 되자 분노와 자책을 했다.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마구 뒤엉켜서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다. 어디로 가서 숨어 실컷 울음이라도 터트리고 싶었다.
‘이렇게 한 번에 완전히 망하다니.’
도저히 대진국의 군대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부족장은 남은 기마병들을 이끌고 북쪽을 향해 퇴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철령위 기마병들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북쪽에서 달려오는 엄청난 기마병들의 보자 다리에서 힘이 완전히 풀려 버렸다.
털썩!
“끝났어!”
대진국의 기마병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며 날리는 화살이 하늘을 검게 만들자 도망치는 것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다. 휴식 없이 이쪽저쪽으로 달리던 말들은 이미 기력이 거의 소진해 빠르게 달릴 수 없었다.
“말이 지쳐서 도망칠 수도 없군.”
“족장님, 여기서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탈출해야 합니다.”
“아니야. 우리는 완전히 패했어. 항복해.”
“족장님!”
이미 도망칠 여력조차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지휘관인 부족장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무기를 버려!”
“넷!”
일부 참모들이나 기마병들은 항복하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이미 부족장이 항복한다고 검을 내려놓고 활을 땅에 던졌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자 부하들도 하는 수 없이 같은 동작을 취하며 항복의사를 표했다.
“항복!”
“살려 주시오.”
이리저리 도망치던 철령위의 기마병들이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그러자 무섭게 돌진하던 금일여가 이끄는 기마병들이 속도를 줄였다. 천천히 다가온 금일여는 항복한 철령위 병사들의 무장을 완전히 해제시켰다.
지휘관인 부족장의 무장을 해제시키다가 의외로 나이가 어리자 매우 놀라며 물었다.
“네가 부족장이냐?”
“그렇다. 얼마 전에 부친이 돌아가셔서 철령위 지휘첨사를 물려받았다.”
“그렇군. 그런데 어린놈의 말투가 영 마음에 안 드는군.”
금일여는 지휘첨사 인장을 회수하고 투구나 갑옷을 모조리 벗겼다. 이제부터는 모두 전쟁포로가 되어 태왕의 결정에 이들의 운명이 정해진다.
불과 한 시각도 되지 않은 시간에 해서여진과 철령위의 기마병 3만명이 거의 전멸한 것이다. 물론 부상자도 많이 있으니 전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너무 허망하게 패배했다. 그래도 퇴각을 명령했던 철령위 병사들은 비교적 많이 살아남아 포로로 3000명이 잡혔다.
“네 이름은?”
“철령위 지휘첨사인 이성량이다.”
젖비린내가 나는 어린놈이 부족장이라는 말과 여전히 당당하게 외치는 태도에 금일여는 은근히 호기심이 생겨 명령했다.
“너만 나를 따라와.”
태왕께서 나이가 어리고 용감해 보이는 부하들을 주변에 거두고 있다. 금일여는 그런 것을 잘 아니 이성량을 태왕에게 데리고 가서 보여줄 요량이다.
‘잘하면 저 놈을 살아날지도 모르겠군.’
해서여진을 병합하기로 결정했을 때 최인범은 부족장들은 모조리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을 이용하기 보다는 완전히 제거해 화근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일부가 농사를 짓고 사는 건주여진과는 성정들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정책을 결정한 것이다. 그들은 언제고 반란을 일으킬 여지가 많다고 판단되는 거의 순수한 유목민들이기 때문이다.
길림 평야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주력군은 패배를 했지만 도망친 병사들이 다시 모여 반격을 펼치기도 하니 전투는 지속됐다.
더구나 유목민이지만 그래도 길림은 큰 마을을 이루기 때문에 마을의 가옥들을 수색하는 작전도 펼치고 있었다. 무엇 보다도 해서여진의 부족장들이 가지고 있을 재물을 확보해야 된다.
최인범은 금일여에게 지시했다.
“금 사령관은 앞으로 여기서 군단장을 해야 하니 최대한 빨리 항복한 포로들을 병사로 다시 재편성해. 그리고 사로잡힌 부족장들의 집으로 군사들을 보내서 재물과 가족을 데리고 와!”
“넷!”
“반항하면 즉결처분으로 효수하고 항복하면 그대로 살려서 이리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금일여는 자신 휘하의 기마병 5천명은 5개 조로 나누어 빠르게 주변으로 떠났다. 여러 개 부족으로 나뉜 해서여진이라 부족장들의 근거지를 공격하기 위해서다.
이제 9사단과 설화가 이끄는 기마병만 길림에 남게 되어 어수선한 전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포로들도 따로 모으고 사상자를 모아 확인 작업을 했다.
최인범은 넓은 전쟁터를 흑혈풍을 타고 천천히 돌아보며 가끔 지시했다.
“부상자를 치료해. 일체 약탈을 금하고.”
“넷!”
부득이하게 군사를 동원해 해서여진족을 병합(倂合)했지만 앞으로 대진국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백성들이다. 이곳도 발전시켜야 하니 파괴행위는 국력만 낭비하는 반역 행위다.
다각다각.
해서여진족이 무기를 완전히 버리고 항복하자 대진국의 9사단의 병사들도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부대를 재편성했다. 전과를 보고 하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다른 부족장들과 포로로 잡혀 있는 이성량은 매우 놀라고 있었다. 군기가 바로선 대진국의 기마병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우! 내가 대진국에 대해서 너무 몰랐어. 화포 공격이나 기습공격이 아니었더라도 저런 정도로 군기가 바른 기마병들이라면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대진국의 기마병들은 자신들이 타는 말과는 다르게 더 튼튼하고 강해 보였다. 그리고 기마병들은 오래 훈련한 느낌이 강하게 들도록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더구나 이미 부마도위에 군왕으로 봉해지고 거대한 나라를 건설한 태왕과 그의 아내인 설화가 직접 전투에 참여했으니 질 수밖에 없는 전투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왕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계획하신 작전이야.’
이제야 왜 요란하게 많은 해군 함정이 대련으로 갔는지 이해되었다.
‘성동격서로 완전히 속인거야.’
해주여진도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다만 건주여진족들이 군대를 빠르게 돈화로 집결시킨다는 정보만 들어 격퇴를 하려고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통화에 주둔한 기마병까지 동원해 포위공격을 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무서운 분이군.’
대진국의 군대는 지금까지 보던 군대와는 전혀 달랐다. 입고 있는 군복도 다르고 소지하고 있는 무기들도 전혀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그들이 가진 장비는 그야말로 상상하지도 못하던 괴상한 물건들이다.
반월도, 강궁, 그리고 단창으로 무장한 기마병들은 특이한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항복하는 처지에도 대진국의 기마병들이 입고 있는 갑옷에 본능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무슨 갑옷이 저렇지?’
방탄조끼처럼 만들어진 새로운 갑옷이다. 자신들이 입고 있던 쇠자갑옷과는 전혀 달랐다. 대진국의 기마병들은 여러 겹의 면으로 만든 면갑과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태왕의 지시로 기마병은 물론 대진국의 모든 군인들이나 기마병들에게 지급되는 기본적인 방어 장비다.
하루가 지나자 길림지역은 어느 정도 평온해졌다. 물론 포로들이 잡혀있는 곳은 아직은 미래를 전혀 모르니 참담한 상황이다. 하지만 주변 마을로 갔던 금일여가 부족장들의 가족과 많은 재물을 가져오자 전쟁은 완전히 끝나고 있었다.
숲으로 도망친 해서여진의 병사들도 숲에서 나와 항복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항복하면 살려주고 모두 무죄로 방면한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죽이기보다 살리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
“항복할 테니 제발 살려주시오.”
“숲에서 포진한 부하들을 모조리 데리고 와.”
“예.”
숲속으로 달아났던 해서여진의 잔당들까지 모조리 항복했다. 최인범은 그들을 모두 개활지로 모이도록 금일여에게 지시했다.
“포로와 부상자를 근처에 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