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다소 높은 언덕에 올라 망원경을 꺼내 적진을 살폈다. 해서여진인 적들은 다섯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4개는 해서여진의 깃발이고 하나는 철령위 깃발이다. 철령위의 깃발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철령위는 건주본위가 있는 심양 북쪽에 위치한 별도의 위(衛)다. 그곳의 지휘첨사는 조선에서 이주한 이씨들이 세습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잠시 철령위에 대해 생각했다.
‘흠! 이여송의 할아비 정도가 왔을 수 있겠군.’
원 역사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을 돕기 위해 파병된 명나라 장수인 이여송은 철령위를 세습한 장군이다. 이여송의 아비는 요동 총병을 하던 이성량이다.
일부 역사서에는 훌륭한 장군들이라고 하지만 이여송이나 이성량은 모두 전쟁에서 민간인을 살해하고 목을 얻어 전적으로 올렸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철령위를 세습하는 이씨들에 대해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성량도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할 거야.’
철령위의 군대가 이곳으로 왔다면 화포를 보유할 수 있다. 또한 신기전을 날리는 화차도 보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철령위는 명나라와 교류가 많았다. 수시로 뇌물 형식으로 많은 은자를 받거나 무기들을 지원받아 상당히 다양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자신의 구상대로면 철령위 병사들은 심양을 지원하기 위해 그대로 있거나 또는 북경으로 이동해야 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철령위 병사들이 먼 이곳 길림에 와있었다. 뭔가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
최인범은 옆에 대기하고 있는 금일여를 보며 지시했다.
“금 사단장. 네가 직접 척계광과 같이 정찰을 다녀와.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고 북쪽으로 돌아서 가.”
“넷!”
적의 전력을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어 금일여를 정찰 보냈다. 그와 척계광은 망원경을 지니고 있으니 적진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살필 수 있었다.
척계광과 금일여를 정찰 보내며 시간을 끄는 이유는 아직 철씨 3형제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착해야 제 9사단의 이동 상황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길림의 해서여진을 기준해 동쪽에는 최인범, 남서쪽에는 하후돈이 이끄는 제9사단이 협공할 계획이다. 이윽고 적의 후미로 정찰을 갔던 금일여와 척계광이 돌아왔다. 척계관이 막대기를 들고 땅에 그림으로 자세하게 그려가며 설명했다.
“폐하, 기마군 뒤쪽에 포병이 있사옵니다. 예측하신 그대로 화차도 있고요.”
“화포와 화차가 많던가?”
“넷! 화포는 20대 정도고 화차는 100대 정도가 있었습니다.”
화차가 100대라면 거의 동시에 1만발 정도의 화살이 날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최인범은 급하게 물었다.
“어떤 종류인가?”
“폐하, 신기전을 50발 정도 날린 화차입니다.”
“알았어. 명나라는 화차가 조금 위력이 약하군.”
조선이나 대진국의 경우는 화차에 100발의 신기전을 장착한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보유한 화차는 화살의 수도 적고 사거리도 짧은 구형이다. 그러나 동시에 5000발의 화살이 날아오면 만만치 않은 전력이라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다.
“금 사단장, 후방으로 가서 보니 기마병을 몰고 포병을 격퇴시킬 수 있겠나?”
“넷! 충분합니다. 포병은 보초를 포함해도 불과 2000명에 불과합니다.”
“금 사단장은 부하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이동해. 거리가 가까우니 내가 신호를 보내면 동시에 포병 부대를 공격하고.”
“넷!”
이어서 척계광에게 지시했다.
“척 소령은 포병대 병사들을 차출해서 데리고 가. 금 사단장이 포병을 격퇴하면 화포와 화차를 탈취해서 공격하고.”
“넷!”
명령을 받은 금일여는 휘하 기병대 5천명을 데리고 서둘러 북쪽으로 떠났다. 그의 뒤를 척계광이 1000명 보병을 이끌고 급하게 달려서 따라가고 있었다.
적들도 척후병을 가동하고 있으니 어쩌면 우군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대비하기 위해 부대를 다시 배치해 진용을 갖추기 전에 기습공격을 해야 된다.
“철씨 삼형제가 조금 늦군.”
북쪽으로 이동한 금일여나 빈손인 포병인 척계광이 목표지점에 도착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더 이상 미루면 자칫 공격할 좋은 기회를 잃을 수도 있었다.
최인범은 황금빛 갑옷을 챙겨 입으며 설화에게 명령했다.
“군단장, 이번에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고 포병대만 분쇄해 장악하는 작전이니 내가 2천명만 데리고 돌진할 것이오. 군단장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시오.”
“넷!”
최인범은 근접경호원 300명과 기마병 2천명만 이끌고 출전 준비를 했다.
“필요한 무기 이외에는 모두 내려놔.”
“넷!”
기마병들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보급품이나 둥에 진 배낭을 자신소유인 다른 말 등에 올려놓았다. 한필은 짐말처럼 이용하고 한필은 안장을 채워놓고 활동개만 안장에 걸려 있었다. 재차 돌격할 경우 말을 바꿔 타고 돌진할 준비를 미리 하는 것이다.
최인범도 흑풍풍을 타고 적혈풍은 준비를 끝내자 고삐를 설화에게 넘겨주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적혈풍을 보내시오.”
“넷!”
공격할 준비를 모두 끝낸 최인범은 경호실장에게 명령했다.
“신호를 보내.”
태왕의 명령을 받은 4명의 경호원들이 신호용으로 사용하는 화살인 효시를 하늘 높이 날렸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마치 피리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4발의 효시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북쪽에 대기하고 있던 금일여가 기마병들에게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전속력으로 돌격!”
두두두두.
“와!”
“와!”
돌격명령을 받은 기마 5000명은 빠르게 산자락의 숲에서 튀어나와 철영위의 포병대가 있는 개활지로 내달렸다. 처음에는 약간 무질서하게 개활지로 나타나던 기마병들은 빠르게 대형을 갖추었다.
“와! 와!”
“돌격!”
“모조리 죽여!”
개활지로 나오면서 기마병들은 전통적인 공격 방식대로 먼저 화살을 두 발씩 하늘 높이 날렸다. 그리고 활을 옆구리에 챙기고 나자 반월도를 들고 포병대를 향해 매섭고 빠르게 돌진했다.
쉬이익! 쉬이익!
“으악!”
“컥!”
“적이다!”
수많은 화살이 포병대에게 날아가자 철영위의 포병부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후미에서 갑자기 많은 화살까지 날아오자 포병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금일여가 이끄는 기마병들은 빠른 속도로 포병대에 다가가 무차별로 포병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삭! 휙!
“으아악!”
“악!”
기마병들이 휘두르는 반월도에 적들은 힘없이 죽어갔다.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고 붉은 피들이 튀기고 있었다. 죽어가는 철령위 병사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런 병사들도 가차 없이 목을 베고 있었다. 기습공격으로 당황했던 철령위의 포병대원들은 장창을 들고 일부가 대항했다. 하지만 워낙 기마병들의 수가 많아 병력에서도 딸리고 무방비 상태인 후방에서 기습적으로 공격해 일방적으로 죽어갔다.
기마병은 개활지에서 만난 포병대에게는 제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해서여진의 포병대는 아주 빠르게 무너지고 말았다. 포병대를 완전히 제압한 금일여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전열을 정비해.”
“넷!”
이와 동시에 후방에 있던 척계광이 빈손인 포병 대원들에게 다부지게 명령했다.
“속히. 화포에 포탄을 장착해.”
“넷!”
포병들은 빠르게 화포나 화차에 포탄과 화살을 장착하고 새롭게 포진시키고 있었다. 적의 화포나 화차지만 발사원리야 같으니 대진국의 포병들이 사용하는 대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한편 최인범은 동쪽에서 2000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후퇴! 신호를 보내.”
명령에 따라 다시 하늘로 4발의 효시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러자 적을 향해 돌진하던 2000명의 기마병들은 급하게 말을 멈추고 뒤로돌아 설화가 기다리는 본진을 향해 잽싸게 퇴각했다. 태왕이 입고 있는 갑옷은 황금빛이 나서 쉽게 적에게 발견되었다.
“태왕이다! 잡아라!”
두두두두.
황금빛 갑옷을 보자 해서여진족의 진용에서 3개 부대로 갈라져 맹렬하게 추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추적하지도 못하고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석제인 포탄과 무수한 화살 그리고 화약의 힘으로 날아오는 신기전에 죽어 갔다.
“크악!”
“컥!”
갑옷이나 방패야 모두 전방을 방어하기 위한 장비다. 그러니 갑자기 자신들이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나 포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적이다!”
“으악!”
“으악!”
자신들을 지원하기로 했던 포병대에서 공격하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상황을 알아 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큰 목소리 이렇게 외치는 놈도 있었다.
“철령위가 우릴 배신했어. 죽일 놈들. 은자만 처먹고.”
아마도 철령위 군사들은 해주여진이 준 은자를 받고 이곳으로 이동해 지원하기로 약속한 것 같았다.
적진으로 돌진하다가 유인계만 쓰고 최인범은 본진으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는 설화에게 돌아온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빠르게 말을 바꿔 탔다. 적혈풍에 오른 최인범이 설화에게 말했다.
“돌격합시다.”
“넷!”
최인범은 설화와 같이 이제 5천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이미 척계광이 장악한 화포나 화차의 공격으로 해서여진의 수많은 기마병들이 죽어 버렸다. 혼란스러운 해사여진의 기마병들을 향해 중심을 가르는 전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의 뒤에는 설화가 이끄는 3000명의 기마병이 따르고 있었다.
두두두두.
“와! 와!”
요란하게 함성을 지르며 5천명의 기마병들이 2대의 화살을 날리며 돌진했다. 이미 전열이 무너진 해서여진의 중심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최인범과 설화가 선두에서 나란히 달리며 돌진하자 기마병들은 사기가 충천했다. 지도자가 선두에서 뛰어난 무술로 적진을 가르니 그 뒤를 따르는 기마병들도 더 용감해졌다.
“태왕을 위해!”
“폐하를 따라서!”
숨을 쉴 겨를도 없이 재차 공격을 당한 해서여진의 기마병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허둥대며 전열을 갖추려고 지휘관들이 부하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빨리 대형을········.”
그러나 또 다시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탄 때문에 해서여진의 기마대는 여전히 우왕좌왕 했다.
쉬이익! 펑!
“으악!”
“으악!”
단순한 철탄도 날아오지만 때로는 터지는 포탄도 날아왔다. 무수한 화살과 포탄이 날아와 해서여진의 기마병이나 말을 살상하고 있었다. 해서여진의 진용은 완전히 무질서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포탄이 날아온 방향을 알자 해서여진군의 지휘관들은 겁에 질려 크게 외쳤다.
“남쪽도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