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10척으로 늘어난 사략선을 이끌고 대마불은 빠르게 신안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서 여자들과 약탈한 재물을 넘겨주고 대신 소금을 사서 단동까지 갈 생각이다.
단동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사략선으로 운영하려면 화포도 장착해야 하고 선원들도 모집해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는 제주도의 대정현을 모항으로 삼아 당분간 활동해야 하니 필요한 군수품도 많이 운반해야 된다.
사략선으로 운항하지만 우선 필요한 노예노군을 확보하기 위해 급조해서 해안을 약탈했다. 하지만 해안으로 상륙해 공격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했다.
‘자칫해서 매복이라도 걸리면 전멸이야.’
태왕께서 먹거리도 없는 어촌을 공격하라고 사략선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니다.
본시 태왕의 목적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산동 반도의 제태국 동쪽과 남쪽 해안을 침공해 혼란을 일으켜 그들이 태산을 넘어 서쪽의 운하 지역을 공격하길 바라는 것이다.
‘대운하의 중간 부분이 제태국의 수중에 떨어지면 북경은 지금과는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급해 질 거야.’
대마불은 이미 태왕으로부터 사략선을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몇 단계로 진행하라고 지시받았다. 지금 산동지역의 해안을 약탈하는 현풍 사략선이나 자신이 이끌어 장물아비 노릇하는 흑풍 사략선단은 모두 그저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드디어 목적지인 신안에 도착하자 대마불은 선장들에게 지시했다.
“여기서 소금이 있는 한도에서 재물을 넘겨주도록 하고 여자도 넘겨주시오. 그리고 소금이 부족하면 목포군까지 갑시다.”
“넷!”
사략선단이지만 완전히 해군과 똑 같은 지휘체계가 서있는 상황이다. 신안은 봄에 소금 생산량이 많아서 그런지 충분하지는 않지만 재물이나 여자를 모조리 넘겨주게 되었다.
“모자라는 소금은 다음에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됐어, 보급품만 챙겨서 떠나자.”
어차피 단동으로 갔다가 사략선을 모두 완벽한 편제로 만들어 다시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외상으로 넘겨주었다. 이곳으로 와서 소금을 싣고 다음 목적지인 대정현으로 날라야 되니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대마불이 10척의 대형 배에 소금을 싣고 빠른 속도로 북상해 단동으로 향하는 중. 현난풍이 이끄는 현풍 사략선 2척은 청도(靑島) 항구 동쪽인 대복도(大福島)에 도착했다.
아직 청도 항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굳이 이곳 대복도(大福島)로 오게 된 이유는 노예노군 생활이 너무 힘이 들자 노군 중에서 두 놈이 중요한 정보를 똑 같이 토설했기 때문이다.
선장실에서 현난풍은 심복인 현장화와 심각한 표정으로 논의하고 있었다.
“마님, 제가 보기에는 그 정보는 믿을 만한 정보니 왜놈들을 보내 보죠.”
“아무래도 미심쩍어. 해안 가까이에 그런 좋은 은광이 있다는 것이.”
함정일 수도 있으니 현난풍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명정인 작은 조각배를 뭍으로 보내 사람을 납치해 정보가 확실한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큰 은광이 있다면 가까운 마을 사람이 모를 수가 없어. 그러니 사람을 납치해서 먼저 알아보자고.”
“넷!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아니야. 그런 일은 이제 부하들을 시켜.”
“넷!”
믿을 수 있는 심복이 많지 않으니 현장화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 함장을 시킬 예정인 네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
“함장을 시키려면 그만한 공로가 있어야 되니 그들을 정찰 보내. 앞으로는 우리도 직책을 확실하게 정하자고.”
“넷!”
현풍사략선도 함장은 지휘권을 가지고 배를 움직이는 별도의 선장이 있다. 지휘체계가 대진국의 해군과 비슷했다. 그래서 계급은 없고 직책만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현난풍은 해군의 장군은 제독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스스로 제독으로 정했다. 현장화는 자연히 부제독으로 명명하기로 결정되었다. 항상 마님이라고 부르니 어딘가 느낌이 허약해 보였다. 전에 윤원형의 첩으로 살던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 떠올라 바꾸기로 했다.
드디어 작은 조각배에 이계만, 임봉철, 유백선, 김이동이 올라타고 육지로 가게 되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현난풍은 현장화와 앞으로 늘어날 사략선 운영에 대해 논의했다.
“흑풍 사략선단이 홍도에서 제주도의 대정현으로 모항을 옮긴다면 앞으로 우리도 계속 남쪽으로 약탈할 자리를 옮겨야 되겠지?”
“그렇습니다. 제독님. 앞으로는 제태국이 해안 지역에 병력을 배치할 수 있습니다.”
산동지역은 이미 대진국에서 초토화 작전을 펼쳐 해안에 변변한 시설이나 부유한 마을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은 이미 다들 내륙 깊숙하게 옮겨 털만한 곳이 없었다.
남쪽은 아직은 해안에 털어 먹은 부유한 어촌이나 작은 고을이 많았다. 그러니 위험을 감수하고 깊숙하게 내륙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부제독, 재물을 많이 넘겨주더라도 대마불이 가지고 있는 해도와 망원경을 구해야 되겠어.”
“아, 그렇군요. 다음에 그것을 팔아달라고 사정이라도 해봐야 되겠습니다.”
“부제독, 태왕께서는 우리를 이용해 구형인 무기를 장사하는 것 같아.”
“그거야 당연하죠. 태왕폐하는 소문대로 재물에 관해서는 아주 지독한 분입니다. 후하게 선심을 쓰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를 이용해 허접한 무기를 비싸게 팔고 있습니다.”
설사 그것을 안다고 해서 원망하거나 또는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대진국의 태왕이 직접 관리하는 흑풍 사략선단에 비하면 허접한 무기들이다. 하지만 명나라나 또는 조선의 해군이나 육군의 화포에 뒤지지 않으니 그런 정도 무기만 보유하고 있으면 충분했다.
큰 실수만 저지르지 않으면 충분히 큰 재물을 모을 수 있었다. 태왕이 신형 사략선 2척을 넘겨주는 바람에 어느새 사략선 2척은 온전하게 자신의 소유가 됐으니 큰 부를 빨리 이룬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2척을 더 넘겨주고 그것도 외상으로 준다니 앞으로 자신은 승승장구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대진국과 조선이 사이가 벌어지면 조선도 약탈 대상으로 변하니 미래는 어찌 변해도 자신은 잘 나갈 것으로 믿었다.
문제는 노군으로 시작해 이제는 해병 대원처럼 써먹은 왜놈들이다. 노군인 노예들을 빼고 나면 함선의 구성원으로 그놈들이 제일 많다는 점이다.
“그놈들은 더 늘리지 않도록 하지.”
“예, 지금 200명을 넷으로 나누면 1척당 50명이니 함부로 선상 반란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노군 중에도 일부는 쇠사슬을 풀어 심복을 늘려 보지.”
“넷!”
아무리 잘나가도 졸지에 선상 반란이라도 나면 치명적이다. 1개의 노당 5명의 노군 중에서 2명 정도는 일반 선원들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전속력으로 돌진할 때 이외에는 3명의 노군으로 충분하다. 또한 바람이 좋을 경우 노군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시간을 다투고 목적지로 가야하는 처지가 아니니 그런 방법이 좋아 보였다.
앞으로 운용에 대해 하나하나 점검하며 기다리는 중. 드디어 뭍으로 갔던 네 명의 심복들이 돌아왔다.
“왜 납치를 안 하고?”
“굳이 납치할 필요도 없었어요. 저희들이 간 마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은광해서 일하더군요.”
은광은 해안에서 약 10리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지키는 병사들이 약 100명 정도라니 왜인들을 모두 보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왜놈들이 키는 작아도 칼질은 잘하니 충분해.”
이윽고 2척의 사략선은 조심스럽게 숨어 있던 대복도(大福島)를 벗어나 해안가에 접안했다. 왜인들은 네 명의 함장들의 인솔 하에 빠르게 달렸다. 일부 선원들도 같이 갔다.
이윽고 숲속에 은광이 보이고 작은 광산 마을이 보였다. 워낙 중요한 작전이라 현난풍과 현장화도 같이 이곳으로 왔다. 이번만 위험해도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로 했다. 대복도(大福島)를 거쳐서 왔으니 잘하면 대복이 터질 수 있다.
‘뭔가 보여 줘야 다른 놈들도 기어오르지 못해.’
여자로 사략선단을 이끌다 보니 부하들 중에 지도자인 자신들을 허수로 보고 간혹 기어오르려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 본보기로 전투에 참여했다. 지도자이란 반드시 뭔가 부하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해적질하는 처지니 보란 듯이 직접 지휘에 많은 재물을 얻는 큰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달려오느라 다들 지쳐 있는 상태라 한동안 숲에서 숨을 죽이고 쉬었다. 이윽고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싶어 현난풍은 검을 뽑아 높이 들고 외쳤다.
“공격!”
“와! 와! 죽여라!”
갑자기 벌거벗은 왜구들이 장검을 들고 떼로 나타나자 병사들은 당황했다. 적의 숫자도 잘 모르자 수비하던 병사들이 급하게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후다닥!
“사람 살려!”
겁에 질린 두 놈이 먼저 도망치자 남은 놈들도 덩달아 도망치는 것이다. 이미 전열이 흐트러진 그나마 남아 있던 병사들은 왜인들의 장검에 힘없이 죽어갔다.
획!
“크악!”
“끼옷!”
획!
“컥!”
왜인들은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날렵하게 병사들을 죽였다. 잠시 지나자 전투는 끝나고 사방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우선 은괴를 모아둔 창고로 가서 은괴부터 챙겨 선원들에게 짊어지게 했다. 은괴는 상당히 많았다. 원하던 그대로 대복이 터진 것이다. 은광에서 일하는 200명의 광부 중에는 노약자들도 많았다.
“젊은 광부는 따로 분리해.”
“넷!”
은광에서 일하는 인부를 젊고 건강한 놈들은 따로 모았다. 둘로 구분된 광부들은 다들 공포에 질려 있었다. 두려워서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덜덜 떨었다.
더구나 죽은 병사들의 목을 다시 찔러서 확인 사살하는 벌거숭이인 왜인들의 잔악한 모습에 더욱 공포에 질렸다. 난생 처음 보는 괴이한 모습이라 악마와 같이 보이는 것 같았다. 대부분 내륙에서 살다가 이곳에서 노비신분인 광부로 살아 왜구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부제독은 먼저 철수해.”
“넷! 제독님.”
명령을 받은 현장화가 남은 선원들과 같이 따로 분리된 80명의 젊은 광부들을 독촉해 해변으로 내달렸다. 노비 신분인 젊은 광부들은 모두 짐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현난풍은 남은 늙은 광부들을 모조리 인솔해 다소 천천히 해변을 향했다. 늙은 광부들은 이미 죽어버린 병사들의 무기나 갑옷 들을 그리고 철제품들을 무더기로 들고 있었다.
“제독님, 뭐 하러 저런 늙은 놈들까지 데려가죠?”
“짐을 나르잖아.”
철제품은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챙길 것은 최대한 챙겨가기 위해 포로인 광부들을 이용해 운반했다. 언제까지 태왕에게서 허접한 무기를 비싸게 살 수는 없으니 철을 가지고 가서 필요한 장비도 만들고 무기도 만들 요량이다.
“빨리 이동해. 도망간 놈들이 다른 놈을 불러올지 모르니까.”
“넷!”
드디어 해변에 도착하자 현난풍은 큰 목소리로 부제독인 현장화에게 지시했다.
“부제독, 젊은 광부들을 끌고 저쪽의 어촌을 털어서 와!”
“넷!”
현장화는 젊은 광부들과 선원들을 인솔해 주변의 어촌 마을로 내달렸다. 어촌 마을로 달려가 어선과 초옥들을 불을 지르고 재물들을 약탈했다. 맨몸으로 달려들어도 반항하는 마을 사람들은 전혀 없었다.
이미 노비 신분이던 젊은 광부들은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알았다. 자신들이 직접 어촌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약탈했으니 이제는 정상적으로 살기는 틀렸다. 무리에 합류해서 이제 부터는 죽으나 사나 해적으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노비인 광부로 사는 것보다 어쩌면 나을 수 있었다.
현장화 부제독이 80명의 젊은 광부들을 동원해 어촌을 털고 사략선으로 돌아왔다. 현난풍은 그제야 사략선에 올라 크게 외쳤다.
“철수!”
명령을 받은 사략선은 빠른 속도로 노를 저어 먼 바다로 사라졌다.
졸지에 살아남은 늙은 광부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다들 사방으로 흩어졌다. 노비신분으로 광부로 가서 살고 싶지 않으니 다를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