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이제 행정부나 군사적인 문제는 정상으로 가동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부하들에게 지시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점검할 생각이다.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았어.’
생각지 않게 가정제가 자꾸만 높은 작위를 주게 되어 너무 빠르게 자신의 주변이 변했다.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지금까지 벌인 사업이나 정책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때라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황궁을 나설 준비를 하며 두 여자 문제가 떠올라 자순 태감에게 조용히 지시했다.
“정향 대공주에게 별궁으로 같이 가도록 연락하시오. 그리고 아진태 왕자도 부르고.”
“넷!”
“말을 타고 이동하니 간단하게 차려입으라고 하시오. 가다가 사냥할 생각이니 그렇게 전하면 될 거요.”
“잘 알겠사옵니다. 빨리 모시고 오도록 하겠나이다.”
이런 지시를 받자 자순 태감은 이내 표정이 환해지며 급하게 달려갔다. 그는 정향 대공주께서 너무 홀대 받아 은근히 걱정하던 터라 이번 여행을 계기로 잘 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자순 태감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 때문에 조금 섭섭했을 거야.’
가마를 타고 가면 이동 속도도 느리고 많은 사람을 대동해야하기 때문에 번잡스럽다.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그녀의 심복에게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정향 공주나 진유향에게 무슨 딴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뭔가 행정부에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그런 일이 터졌다. 기회에 두 장관을 약간 한직으로 보낸 것이다. 외교부나 국방부 장관의 권한을 강화하려다 보니 진명화나 장전중으로는 부족했다.
진명하는 역적이라고 낙인이 찍혀 명나라에서는 정상적인 외교 활동을 펴기가 곤란했다. 앞으로 군대의 고급장교인 영관급 인사까지 국방부에서 담당해야 하니 장전중에게 그런 막강한 권한을 줄 수 없었다.
‘능력이나 충성심으로 봐도 이지함이 그 자리가 적당해.’
정향 대공주를 꺼리는 이유는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고 아주 단순했다.
전에 월녀가 남경에서 예측한 그대로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어리다는 느낌이 강해 그동안 꺼렸던 것이다. 일단 두 여자에게 배려하는 차원에서 데리고 가려는 것이다. 같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전에 느낀 감정이 조금은 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혹시 정향을 너무 좋아해서 연애 감정을 느끼고 싶은 걸까?’
최인범의 마음속에는 정향을 조금은 아끼고 싶다는 은근한 내막이 숨어 있었다. 하나 같이 연애이나 애절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틈도 없이 접했다. 엉겁결에 아내가 되고 보니 어쩌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긴 것이다.
‘너무 아끼다 도망간다는 소리도 있는데.’
잠시 이런 생각을 하던 최인범은 가려고 하는 국방과학기술원에서 벌이는 연구에 머리가 쏠렸다.
‘연구들은 잘하고 있나 모르겠어.’
국방과학기술원은 한참 여러 가지 새로운 물건들을 많은 연구원들이 분야별로 연구하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이용한 난방시설이다.
대진국은 추운 북부지역이다 보니 겨울이 길고 유난히 춥기 때문에 난방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온돌 방식으로는 주로 나무를 연료로 사용한다. 그 때문에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석탄을 이용해 난방시설을 만들어 보급할 생각이다.
‘난방 시설만 잘 보급해도 백성들의 삶의 질이 천지차이로 달라져.’
나무는 건축 자재로 사용하고 용도가 다양했다. 흔하게 나오는 석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효율성이 높았다. 아직은 노천 상태인 석탄광산도 많으니 충분히 경제성이 보장된다.
굳이 보일러 시설을 연구하는 곳에 정향 대공주를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동물원 때문이다. 남쪽의 더운 지방에서 살던 동물들의 경우 반드시 난방시설을 해서 겨울철에는 보호해야 한다.
잠시 뒤에 연락을 받은 정향 대공주가 승마복을 입고 말을 타고 나타났다. 대진국은 이미 군복이 현대화되어 여자들이 입는 승마복도 군복과 비슷해 바지와 조끼차림이다.
“폐하, 부르셨사옵니까?”
“그렇소, 우리 잠깐 여행을 겸해 별궁을 가봅시다.”
하얀 비단으로 만든 바지와 상의에 빨간 조끼를 입었다. 금으로 장식한 단추를 달고 견장에는 금빛 수술도 달려 영락없이 유럽의 해군제독의 복장이다.
‘흠! 보기가 좋군.’
대진국은 명나라나 조선과는 여자들이 사회 활동하는 자체가 달랐다. 이미 여자들도 군인으로 활동하고 간호병이나 보급병, 경호원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왕비인 소피아나 또는 아설화가 주변의 호위병 일부가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황궁에는 명나라에서 사온 고아출신인 궁녀들이 모두 군사훈련을 받아 황궁 수비대원으로 근무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도 모두 군인이 되는 형태는 아니고 일부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된다.
정향 대공주는 여자다 보니 치장은 다소 요란하고 매우 화려했다. 옆에 찬 검도 상당히 얇은 형태로 황금빛 장식으로 번득였다.
하얀 백마를 탄 모습이라 그녀의 미모는 더욱 돋보였다. 더구나 치렁치렁하게 늘인 긴 생머리가 바람에 나풀거리니 늘씬한 몸매가 화려하게 빛나 보였다.
이창수 경호실장과 경호원들이 처음 보는 정향 대공주의 이런 모습에 넋이 나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칙칙한 국장색이나 검은 색의 군복을 입은 여자들이야 자주 봤지만 이런 화려한 모습은 처음이라 놀란 것이다.
‘와! 예쁘시네.’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약간 벌어져 바라보니 들어보나 마나 이런 감탄사를 속으로 토하는 것 같았다.
‘녀석들 눈은 있어서.’
정향 대공주가 다가오고 아진태는 비슷하지만 남색 조끼를 입어 약간 달랐다. 그런 모습을 위아래로 살피다가 아진태에게 짧게 말했다.
“아진태 왕자! 가자!”
“넷!”
두 여자를 동시에 데리고 가기는 뭐해 진유향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다.
최인범은 흑혈풍을 타고 뒤에 적혈풍을 달고 앞장섰다.
다각 다각.
최인범이 항상 두 마리의 말을 몰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말들이 매우 우수하다고 하지만 장거리를 가려면 체중이 무겁고 항상 무기를 많이 소지하니 말에게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또한 야외로 나가면 사냥하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야영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기나 야영에 필요한 개인장구를 두 마리 말에 나누어 싣고 다닌다, 전과 달리 경호원들이 대형 파오를 지을 조립식 장비들은 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서 숙영할 기본 장구는 꼭 휴대하고 있었다.
“충성!”
남대문에 도착하자 위병장교와 위병들이 크게 구호를 외치며 거수경례를 했다.
이윽고 황궁을 나와 남대문을 지나 10미터 폭의 돌다리를 지나서 봉황산성 쪽으로 이동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낮은 산자락에 있는 국방과학기술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주변에 군부대가 주둔하며 지키는 군사보호지역이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홍성철과 장주환이 급하게 인사했다.
“폐하, 감축 드리옵니다.”
“갑자기 무슨 감축?”
그러자 홍성철이 정향 대공주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마도 정향 대공주를 품에 안았으니 같이 다닌다고 판단해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최인범은 피식 웃으며 그런 행동을 뭐라 지적하지 않고 급하게 물었다.
“온도계를 만들었다고?”
“넷! 폐하, 생각보다 만들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방안이나 사람의 체온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은을 이용한 온도계를 만들도록 지시한 이유는 체온측정보다는 이미 잘 운영되는 인공부화장에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공부화장에서는 병아리. 오리, 꿩을 인공으로 부화해 농가에 공급하고 있었다. 온도계를 이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인공부화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석탄을 이용한 보일러 시설과 화덕은 여러 종류로 만들었다. 군대의 주둔지에는 이미 조개탄을 사용하는 난로와 페치카가 이미 보급된 상태다.
연탄도 만들어 이미 기술원에서는 사용하고 있었다.
“석탄에서는 유독가스가 나오니 항상 조심하도록 해요.”
“넷! 그래서 연탄난로는 철수하고 이제는 중앙난방식으로 교체할까 하옵니다.”
“그러려면 배관 시설이 제일 문제군.”
“폐하, 배관은 모두 동관으로 만들기 때문에 제작은 별로 어렵지는 않사옵니다. 하지만 너무 구리 가격이 비싸서 문제가 조금 있사옵니다.”
국방과학기술원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풍차를 이용해 두레박 형식으로 물을 퍼 올리는 우물도 있고 또한 펌프 시설도 있었다.
“어머나, 이상한 물건이 많네요?”
정향 대공주가 감탄하자 장주한이 나서며 답했다.
“마마, 모두 태왕폐하께서 고안하신 물건들이옵니다.”
“예? 정말요?”
“그렇사옵니다.”
정향 대공주는 이런 모습을 보며 너무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전에는 전혀 보지 못하던 물건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이런 물건을 고안했다는 태왕을 바라보니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사람이 어떻게 혼자서 이렇게 많은 새로운 물건을 고안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정향 대공주는 장주한의 대답을 그저 그러려니 받아 들였다. 어차피 태왕폐하의 명령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드니 태왕의 업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이렇게 답한다고 판단했다.
‘하긴 뭐 세상사가 다 그런 거지.’
이곳 국방과학기술원에서 개발되는 새로운 무기나 물건들은 거의 9할이 최인범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최인범은 오래전에 명나라를 다니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설명서를 써준 서책을 만들었다. 그 서책에 있는 허접한 그림 솜씨로 그려놓은 수많은 설계도를 보며 국방과학기술원에서는 하나하나 개발하고 있었다.
개발에 성공해 어느 정도 실용성이 있을 경우는 양산체제로 전환해 보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연구가 동시 다발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무기를 개량하거나 신무기를 만드는 부서로 찾아갔다.
“폐하, 화차도 화약 성능이 좋아서 사거리가 전보다 2할 정도 늘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별도의 무기를 만들지 않아도 화차만 보급해도 되겠군요.”
이렇게 응수하자 홍성철이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폐하, 새로운 무기가 만들어 졌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성능이 좋은가요?”
“폐하, 아직 실험 발사를 안 해 정확한 성능은 모르옵니다. 계산상으로는 위력이 대단하지만. 거북선을 개발을 연구하고 화포와 화차를 개발하다가 젊은 연구원이 특별한 무기를 만들었사옵니다.”
도대체 뭐를 만들어 놨기에 주저하면서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지 잘 이해되길 않았다. 주저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비용을 많이 소비해 개발한 무기 같았다.
그래서 홍성철을 따라 새로운 무기를 만들었다는 창고로 가게 되었다. 무기는 커다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홍성철이 가려진 천을 소리 나게 벗기자 웅장한 모습의 신무기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고 두 종류가 있었다.
“커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