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오랜만에 진하게 뜨거운 밤을 보내고 편전으로 와서 행정 업무를 보고 있었다. 각도의 도지사들이 보낸 서찰을 살폈다.
공문들은 모두 내무장관을 거쳐서 올라오지만 도지사의 서찰인 공문은 모두 최인범이 읽고서 필요한 조치를 내리고 있었다. 군수나 시장들의 서신은 내무장관 전결로 처리했다.
특히 멀리 동쪽에 있는 간동도(연해주)에 새로 시가 건설되어 시장을 보내달라는 내용을 보자 기쁜 표정으로 즉시 지시했다.
“내무장관은 빨리 관료들을 간동도로 보내도록 하시오.”
“넷!”
간동도가 발전해야 북해도 근처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다. 내해와 같은 황해 지역과는 천지차이로 수산물이 많이 잡히는 곳이라 빨리 개발해야 되는 곳이다.
바쁘게 행정 업무를 행기고 있는 중. 뭔지 잘 모르지만 장 차관들이 어수선해 보이고 보고하면서 눈치를 슬슬 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조금 이상하군.’
황궁 안에서 벌어진 사소하다면 사소한 잠자리 때문에 아침부터 장차관들이 술렁였다. 편전을 들락거리며 만나면 수군거렸다.
“태왕폐하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내명부를 저리 관리하시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왜 저러시는 거야?”
“장자 승계원칙을 무시하다니. 그러면 반란의 위험성이 더 많은데.”
“누가 아니라나. 뭔가 문제가 있어.”
장자 세습을 원칙으로 하는 동양에서는 최인범의 행동이나 언사는 장관이나 차관들이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 때문에 아침부터 술렁이자 정보를 담당하는 최복동이 슬며시 태왕을 찾아 왔다.
최복동은 그래도 지근거리에 있으며 태왕께 할 말을 할 수 있는 위치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어제 황궁 안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요? 장관들과 차관들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서 모두 술렁이고 있사옵니다.”
“특별한 일은 무슨?”
“폐하, 어젯밤에 모란전에서 주무시고 그곳에서 진 빈마마께 아들을 낳으면 황비로 봉해준다고 하셨다면서요? 더구나 장자 승계를 안 하시는 것처럼 말씀도 하셨으니 소란스러운 거야 당연하죠. 폐하의 그런 말씀 때문에 각료들이 아침부터 소란스럽습니다.”
최복동의 이런 보고에 최인범은 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무랐다.
“장 차관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일들이 없나? 내가 어디서 어떤 왕비와 잠을 자던 자신들이 무슨 상관이라고. 진 빈이 비록 재혼으로 나에게 시집을 왔어도 현재는 내 아내임은 분명한데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
“폐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진 빈이 아들만 낳으면 황비로 봉한다고 하신 말씀이 문제라는 겁니다.”
최복동의 말에 최인범은 더욱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이거 황궁의 내명부가 큰 일야. 진 빈 문제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기에는 황궁에서 벌어진 일이 이렇게 빨리 외부로 소상하게 알려지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국가의 정보나 보안을 담당하는 정보원장의 판단으로는 그런 점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빨라도 너무 빠르게 황궁의 내궁에서 벌어진 소소한 일들까지 외부로 알려진다는 사실은 문제가 분명 있었다.
많은 구성원으로 조직된 황실이라 비밀이야 밖으로 흘러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정도로 빠르다면 조금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최복동은 태왕께서 진 빈에 대한 문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문제를 지적하자 매우 놀랐다. 황궁 내궁의 일이 외부로 너무 쉽게 퍼지는 사실을 태왕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챙기자 뭔가 이상했다.
‘혹시? 일부러?’
제왕은 본시 특별한 존재라 무치이며 또한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방법으로 뭔가 점검하고 확인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가끔 후계 문제를 가지고 신하들을 시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주 쓰면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큰 혼란이 오지만 가끔 그런 흔들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최인범은 슬며시 최복동에게 지시했다.
“어제 벌어진 내궁의 일을 누가 외부로 연락해 발설한 것인지 철저하게 조사해 보시오. 아는 사실을 남에게 말하는 것이 설사 죄는 아닐지라도 황실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보안이 필요하지 않소. 아무래도 매화나 모란전에 있는 궁녀와 상궁들이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폐하! 기회에 고아출신 궁녀들로 모조리 채우시려고요?”
“그렇소. 이참에 황궁 안에서 사는 시녀들과 상궁들을 깔끔하게 교체해서 정리합시다.”
“넷!”
사실 최인범은 이런 생각을 하고 진 빈을 일부러 품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너무 소상하게 황실 내부의 사소한 사건이 외부로 널리 퍼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첩자 짓을 하는 궁녀들이 황궁 안에 너무 많아.’
만약 누군가 고의적으로 크게 소문을 냈다면 기회에 처리해서 본보기를 보일 요량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중요한 말이 밖으로 유출될 염려가 많았다.
‘앞으로 내궁에서 무슨 말을 하기도 힘들겠어.’
개국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조선이나 명나라에서 많은 인물들이 속속 대진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한번쯤 장차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할 때가 되었다.
‘걸리면 속아 내는 거야.’
특별히 문제가 있는 장차관이야 없었다. 하지만 점점 커져가는 나라의 규모로 보아 국무위원들에 대한 새로운 조각이 필요했다.
최인범은 근정전에서 머물며 이지함을 불러 지시했다.
“새로 대진국으로 들어온 인사들의 명단을 가져오게.”
“넷!”
이주한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명단을 보다가 눈에 뜨이는 사람을 챙기려고 가져오라고 했다. 한참 서류를 살펴보던 최인범은 명단에 서계와 장거정이 보이자 눈에서 빛이 났다.
‘두 사람이 같이 왔군.’
장거정이야 아직 어리지만 서계야 40대라 그를 고위직으로 발탁해 얼마든지 활용할 길이 있었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으로는 진사출신인 강사상과 최재성이 보였다.
‘이름이 조금 특이하군.’
점시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최복동이 들어와 보고했다.
“폐하, 어제 매화 전에서 있었던 사건을 발설한 사람은 바로 매화전에서 일하는 상궁과 시녀들이 외무장관에게 알려서 널리 알려졌사옵니다.”
“뭐라? 외무장관이?”
“넷!”
진명하 외무장관은 진 빈의 오라버니라 아마도 신이 나서 위세를 떠느라고 그런 사실을 장차관에게 발설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강한 벌을 주기도 인사를 단행하기가 조금 약했다.
“연루자가 그 사람뿐인가?”
“아니옵니다. 모란 궁에서도 상궁이 발설해서 국방장관이 명나라 출신 장교들이 모여 무슨 대책회의까지 했다고 하옵니다.”
“뭐라? 국방장관이 군인을 모아서 대책회의를 소집해? 참석자는 누구고?”
“폐하, 아직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사옵니다.”
외무장관이나 국방방관은 모두 두 여자들의 측근이라 충분히 걱정하고 위세를 떨만한 위치다. 그러나 새로운 조각을 생각하던 최인범은 기회에 장관들을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환관이 담당하던 비서실 업무를 이제는 조선의 승정원처럼 완전히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내무장관과 정보원장 그리고 감사원장을 불러 그들에게 지시했다.
“명나라에서 온 서계와 장거정 그리고 조선에서 온 강사성과 최재성을 불러 오시오.”
“넷!”
네 사람이 오자 최인범은 즉시 어전회의를 열어 새로운 행정조직과 인사를 발표했다.
국방장관과 사단장을 겸직하던 장전중은 새로 만든 병무청장으로 발령을 냈다. 현역인 군인에서는 완전히 물러나게 했다. 이는 고급장교들을 모아서 황실의 일을 발설하며 불평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판단한 것이다.
진명하는 외무장관에서 물러나고 그는 한양에 있는 교역사무소를 무역대표부로 만들어 그곳에서 주재하는 대사로 보내게 되었다.
감사원장이던 이지함은 국방장관으로 보내고 서계를 외무장관으로 발탁했다.
감사원장 최재성 그리고 장거정과 강사상은 새로 생긴 비서실의 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이외에는 교육부에서 학교 교육만 전담하는 교육청을 신설해 교육청장에 이민교를 임명했다.
“교육청장은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철저히 전인 교육을 하시오.”
“넷!”
큰 변화가 있는 인사는 아니다. 하지만 황실 내부의 일을 가지고 소문을 퍼트리거나 왈가왈부한 장관들이 차관급으로 내려가는 문책성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특별한 것은 비서관으로 장거정과 강사상을 등용함으로 새롭게 측근을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비서실과 내시부의 업무가 완전히 분리됨으로 내시부의 힘이 더 약해진 것이다.
서계의 외무장관 발탁은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적을 잘 아는 사람이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명나라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아는 서계를 임명해 난국의 외교관계를 정립하려는 생각이다.
“외무장관은 정보원장과 협조해서 이미 여러 나라와 다양한 세력으로 변해 난국으로 만들어진 명나라의 정치 세력들과 사신을 보내서 잘 협상해 보도록 하시오.”
“넷!”
정식으로 나라로 선포한 셈이니 주변국으로 사신을 보내도 된다는 뜻이다.
또한 내명부 즉 황실에서는 그동안 매화전이나 모란전에서 근무하던 상궁이나 시녀들이 모조리 교체되었다. 전에 있던 여자들은 모두 봉황산성 근처에 있는 별궁으로 보내졌다.
자순 태감에게 지시를 내렸다.
“별궁으로 떠나게 되는 궁녀들의 경우 원하면 모두 혼인시켜 완전히 별궁에서도 내보내도록 하시오.”
“넷!”
졸지에 수족으로 부리던 많은 궁녀들이 완전히 잘라져 떠나 버리게 된 두 여자는 조금은 입장이 다르지만 모두 낙담했다.
정향 대공주는 앞으로 독수공방할 세월이 더 길어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난국으로 변한 명나라라 남경과 지금처럼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법이 없으니 그것도 은근히 걱정이다.
‘이러다 남경으로 돌아가라면 어쩌지?’
진유향은 태왕이 자신 소생을 후계자로 삼을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후우! 내가 공연히 허튼 욕심으로 허리만 아프게 힘만 뺐어.’
최인범은 각료들이 사이에서 아직도 적장자 승계로 말들이 생기자 그에 대해서도 보다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했다.
“각료들은 아직 있지도 않은 왕자들을 두고 왈가왈부 하지 마세요. 아무려면 큰 아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래도 장자계승이야 지켜지는 것이 원칙이죠. 하지만 살다보면 그게 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어서 경각심을 심어주기 한 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폐하, 하지만 황비로 봉하는 문제는 어찌 하시려는지?”
“그건 황궁으로 와서 같이 살게 되면 황비로 봉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왕비로 그냥 놔둔다는 뜻이니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대략 정리가 됐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과학기술원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신무기 개발도 매우 중요하지만 새롭게 개발되는 농기구를 비롯한 많은 장비들을 개발하는데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