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뭐든 처음은 어렵다>
단동 하항에 도착한 최인범은 조선소를 돌아보고 있었다. 압록강에서 뗏목으로 운반된 거대한 원목을 가공해 만드는 배들은 점점 대형으로 변하고 있었다.
판옥선 개량을 책임진 정민선 해양부 차관이 옆에서 따라다니며 설명하고 있었다.
“폐하, 앞으로 6개월이면 제 4함대에서 필요한 30척은 새로 개발된 전투함으로 모두 건조될 겁니다.”
“그렇다면 해군에서 해상훈련도 해야 하니 가을이나 실전배치가 가능하겠군요.”
“그렇습니다.”
해변에 있는 단동 조선소에서는 대진국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들이 건조되고 있었다.
종전에 사용하던 판옥선의 경우 대략 길이가 32미터 정도에 폭이 12미터 정도인 배들이나 새로 건조되는 판옥선의 경우 52미터에 폭이 13미터로 변했다. 그래서 종전의 판옥선과 구분하기 위해 전투함으로 칭하고 있었다.
새롭게 개발된 전투함은 전보다 날렵한 유선형으로 변하고 돛이 2개 3개로 변했다. 2개는 전과 같은 형태이나 하나는 삼각돛을 달아서 측풍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길이가 길어지고 노의 수도 7개에서 10개로 늘고 격군의 수는 노 하나에 5명씩으로 이제는 100명이다. 전투원이나 선장이나 지휘관인 함장들이 모두 70명이라 총 170명으로 대폭 증가되었다.
노는 평소에는 3-4명이 필요하지만 최고 속도를 낼 경우는 5명이 젖게 된다. 그래서 격군들은 평상시에는 2-40명은 해상전투요원이나 해병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유선형이다 보니 전보다 속도가 조금 빨라지고 사용할 공간도 전보다 상당히 넓어져서 자연히 장거리 운항이 가능하게 변했다.
조선소에는 제4함대 함대장으로 내정된 대마불이 와 있었다.
“마불, 전투함에 대해서 많이 배웠냐?”
“넷! 이제 건조는 모르지만 수리할 수 있습니다. 목수만 있으면 가능하옵니다.”
“그럼, 함정에 목수들도 데리고 가야되겠군.”
“넷! 장거리를 다니려면 반드시 배의 수리 기술을 가진 목수들도 해군에 포함해야 됩니다.”
“해군에도 공병 장교와 준사관을 두어야 되겠어.”
새로 건조되는 전투함들은 모두 제 4함대로 배속되어 앞으로 황해를 넘어 한반도 남쪽의 남해나 왜의 해역 또는 동중국해로 작전반경을 넓히게 된다. 필요하면 접안시설이 있는 부두나 방어시설도 건설해야 하니 반드시 공병대도 필요했다.
드디어 최인범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대양함대를 만들게 된 것이다. 앞으로 점차 바다를 통해 남쪽으로 진출할 생각이다.
“차관께서는 전투함으로 끝내지 말고 더 큰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연구하세요. 이런 정도 크기로는 목표까지 가기가 어려우니까요.”
“알겠습니다.”
“승무원은 같더라도 배의 크기는 지금보다 폭은 1항정도 넓히고 길이는 5할은 더 길어야 됩니다.”
“넷! 바로 모형을 제작해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무장력은 지금과 같아도 됩니다. 화포들의 성능이 개량되고 있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적재 공간을 늘리는데 주력하세요.”
“넷!”
최인범은 조선소를 돌아보다가 봉황성으로 향했다. 봉황성으로 거의 도착하자 그곳에는 커다란 관문이 건설되어 있었다. 봉황산성과 연결된 관문에는 남제일관문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었다.
최인범은 관문 설치를 별로 환영하지 않았으니 조선의 침공을 무방비 상태로 놔둘 수는 없다고 주장해 결국 승인해 건설된 관문이다.
수문장이자 수비대장에게 물었다.
“언제 화포는 비치하나?”
“내년이나 되어야 화포는 배치될 예정입니다. 화포들을 모두 전방으로 보내기 때문에요.”
“당분간 크게 위험한 요소가 없다고 보지만 경계는 잘 서도록 해.”
“넷!”
관문을 통해 봉황 산성으로 올라가자 그곳에는 한창 봉황사를 짓고 있었다.
왕미미의 죽음으로 이곳에 사찰을 지어 유골을 봉안하기 위해서다. 유골을 보관할 커다란 석탑은 이미 완성되었다. 형태는 석탑 중에 단조로우면서 품위가 느껴지는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그대로 본 따서 건립해 놓았다.
크기는 부여의 5층 석탑보다 3배는 크고 1층 내부로 들어가 유골함을 지하와 지상1층과 2층에 넣을 수 있는 구조다. 앞으로 왕실이나 또는 공로가 많은 신하들도 같이 넣어두기 위해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최인범은 앞으로 이곳에 유골함이 많아질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우울했다.
“후우! 결국 전쟁을 하긴 해야 되는군.”
이미 피하기는 틀린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쯤 명나라에서도 비사성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전쟁을 계획한다고 판단했다.
천하의 중심인 황제국은 오직 하나라는 사고방식을 지닌 한족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도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을 것이라 쉽게 침공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조금 급해지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가면 큰 무리가 없이 명나라와 대적할 힘은 지니게 될 거야.’
최인범이 제일 고민인 것은 후미에 있는 조선이 누구 편을 들지가 관건이다. 만약 명나라를 돕겠다고 나서면 협공을 당하게 되니 쉬운 싸움이 아닐 것 같았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던 최인범은 근처에 있는 별궁으로 가게 되었다, 월녀의 거처인 공주궁을 짓는 다고 시작한 공사는 부수적으로 많은 공사를 했다. 공사장을 돌아보니 동물원 이외에 식물원이자 묘목 생산 단지도 건설되고 가축 개량을 위한 목장도 건설되었다.
인삼재배를 연구하는 시설도 들어서자 문뜩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외부적인 사업이나 전쟁도 필요하지만 우선 집안이 평안해야 하니 봉황성으로 가서 내명부부터 질서를 잡는 일이 급하게 느껴졌다.
방치하는 행동으로 아내를 잃고 보니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해 빠르게 봉황성으로 향했다. 이런 저런 주변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더욱 급해진 것이다.
봉황성에는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다. 황궁을 건설하기 위해 마치 성벽과 같은 높은 담을 쌓고 밖에서 퍼 올린 토사를 황궁 안에 넣고 다지기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비를 적게 들이며 황궁의 위용을 더 크게 하기 위해 지대를 약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황궁 안에 배수 시설을 원할 하기 위한 보완 작업이다.
최인범은 단동을 거쳐 봉황성에 도착하자 공사장들을 직접 돌아보고 있었다. 옆에는 내무장관을 비롯해 건설부 장관과 자순 태감이 수행하고 있었다.
너무 거창한 공사를 하는 모습에 최인범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돈 벌어서 성만 건설하다가 끝나겠네요.”
“폐하, 이런 정도 규모로는 건설해야 수도로의 풍모를 갖추게 됩니다.”
“인구가 늘면 식수도 문제가 아닌가요?”
“폐하, 그럴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온천도 많아 그런 물을 식수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이곳 봉황성 주변에는 의외로 그리 뜨겁지는 않으나 지하에서 온천수가 품어 나오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이곳에는 온천수를 지게로 날라다가 파는 물장수가 의외로 많았다.
운하 공사는 황궁의 담과 연결된 해자만 파는 것이 아니다. 봉황성 내의 배수 시설도 새로 하기 때문에 운하를 파는 곳도 있었다. 압록강 지류하천인 초하(草河)가 옆에 흐르고 초하가 자주 범람하기 때문에 운하를 파서 도시의 낮은 저지대를 높이거나 제방 공사를 했다.
새로 도로를 내는 공사도 많아져 이곳은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했다. 그 때문에 초하 건너편에도 새롭게 주택 단지나 공업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봉황성은 사실 그리 넓은 지형은 아니다. 그래서 가로 세로 1킬로미터에 달하는 황궁을 짓고 나면 많은 공간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황궁이 있는 초하가 양쪽으로 흐르는 지역은 상업과 행정지역이고 실질적으로 주택들이 들어서는 곳은 초하를 건너가서 많이 건설되고 있었다.
조선과 전쟁이 벌어지면 남쪽에 있는 봉황 산성이 주된 방어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의 도로에는 봉황산성과 연결된 관문이 있고 그곳을 남제일관문이라고 명명했다.
전략적인 관점으로 보면 압록강이 1차 방어선이고 2차로는 봉황산성의 남제일관문 그리고 3차로는 초하가 해자역할로 방어선이 구축되는 것이다. 그래서 황궁 북쪽에는 새로 거대한 산성이 생기고 그곳은 양쪽으로 흐르는 초하와 연결되어 북쪽을 방어하게 된다.
그래서 초하의 왼쪽으로 갈라지는 작은 하천의 경우 준설되고 그 위에 대형 돌다리도 놓았다. 하천의 폭이 넓은 곳이 200미터 좁은 곳이 50미터 폭이 불과해 아치형으로 돌다리를 놓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황궁의 정남향으로 이어지는 대로와 돌다리가 연결되는 형태다. 그곳에는 돌다리와 연결된 남대문이 설치되어 유사시 돌다리는 끝부분인 남대문 바로 앞은 폭이 20미터 정도인 도개교 형태로 변하게 된다.
도개교를 설치하는 방법은 조선이나 명나라에서는 없는 축성방법으로 흔히 유럽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 때문에 성곽은 대부분 유럽식으로 건설되고 있었다. 성곽이 높지는 않고 폭이 넓어 성곽에는 모두 포대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축조되고 있었다.
도성의 건설공사 현장을 돌아보고 이제는 후원이자 왕비들의 처소로 변한 근정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중에는 황후가 지내는 교태전으로 변하게 되는 건물로 돌아와 정식으로 옥좌에 앉았다.
옥좌에는 호피를 깔아 푹신하지만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이거 너무 어색해서 몸이 근질거릴 지경이군.’
본시 과한 의식 절차를 싫어하다보니 상당히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슨 일이고 처음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로 최인범은 불편하다는 점 때문에 내무장관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근정전에서 여는 조회는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삼가도록 하세요.”
“에이.”
결국 명나라나 조선에서 매일 아침에 열리는 조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대신들이 모이는 회의는 구분하게 되었다.
어전전체회의는 소위 차관과 국장급까지 모두 모이는 회의다. 그리고 어전회의는 장관과 차관급이 모이는 회의고 평상시에는 국무조정회의라고 해서 내무부 장관이 주제하는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아직은 의정부를 별도로 둘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행정 수반인 국무총리를 두어 최인범이 잘 알고 익숙한 대통령제와 비슷하게 운영할 요량이다.
물론 왕정 국가다 보니 대통령제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와 비슷한 행정기구를 만들고 있었다. 더구나 교통이 발달하고 통신수단이 발달한 상황이 아니라 중앙집권 체제지만 지방 정부에게 자치권을 많이 줄 수밖에 없었다.
우선 행정 일에 대해 일부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나자 와서 꼭 결정하려던 문제를 자순 태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명부는 전에 결정했던 그대로 확정해.”
“넷!”
“그리고 후계 문제는 황후나 황비의 자식만 차별 없이 승계할 수는 있도록 만들어 두고.”
“알겠습니다.
장자 우선순위는 꼭 명시하지 않았다. 이유는 장자라고 해서 꼭 왕이 될 재목이 태어난 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조금 여유롭게 만든 것이다.
아직은 후계를 거론할 때는 아니지만 원칙은 정해놓아야 내명부도 안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지시를 받자 자순이 급하게 물었다.
“폐하, 그렇다면 어떤 분부터 황비로 정하죠?”
“일단 황궁도 건립되지 않았으니 지금처럼 그대로 왕비로 칭하도록 해.”
“넷!”
이 말의 뜻은 현재 왕비로 정해졌다고 해도 저절로 황비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순 태감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언제 황비마마를 정하시려고요?”
“그야 왕비의 몸에서 자손을 보면 그때는 황비로 정하면 돼.”
“알겠사옵니다.”
이런 결정은 이내 황궁 내에 있는 두 여자에게 알려졌다. 그러자 진 빈은 새로운 희망이 생기고 아직 신혼방도 꾸리지 못한 정향 대공주는 더욱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이제 황비도 되지 못하고 왕비로 만족하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긴 것이다.